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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서 재능이 쏟아져-415화 (415/445)

415화 완벽하게 (2)

스피커 회사 사장은 주문이 몇 개 들어왔나 보다, 생각했다. 그럴 때마다 판매팀장이 뛸 듯이 기뻐하며 찾아왔고, 자신도 기뻐하곤 했었다.

그러나, 이제 몇 개 팔아서는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웠다.

“언제 출근했어요?”

숨을 헐떡이던 판매팀장은 당황했다. 언제나 이렇게 찾아오면 같이 기뻐하던 사장님의 안색이 너무나 어두웠다.

“사장님, 무슨 일 있으세요?”

“일은요. 이 못난 사장 만나서 희망이 없죠?”

“네? 무슨 말씀이세요? 이렇게 어려운데도 월급은 꼬박꼬박 챙겨 주시는데. 일도 제대로 안 하고 월급 받아 가느라 죄송할 따름이죠.”

“다들 시간을 내게 맡겼는데, 당연히 그 대가는 지급해야죠.”

“역시 우리 사장님, 그래서 제가 여기를 못 떠난다니까요.”

사장이 허허 웃는다.

“미안하지만…… 이제 떠나야 할지도 모르겠어요.”

사장은 애처로운 눈빛으로 상품 박스를 다시 매만졌다.

“이놈도 이제 떠나보낼 때가 됐나 봅니다.”

“사장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더 생산해도 모자랄 판인데요.”

사장은 박스 쓰다듬던 손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모자라다니.”

“지금 주문이 잔뜩 들어왔습니다. 창고 재고로는 어림도 없는 양입니다.”

사장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물었다.

“뭐, 뭐라고요? 그게 대체 무슨 말이에요? 자세하게 좀 얘기해 봐요.”

“일반 소비자들이요. 저도 아직 어떻게 된 건지는 잘 모르겠는데, 주문이 잔뜩 밀려들어 온 건 확실합니다. 지금 쌓인 재고로도 감당이 안 될 것 같습니다.”

사장이 눈을 크게 떴다.

“세상에, 그게 정말입니까?”

“네, 사장님. 저도 깜짝 놀라서 바로 달려오는 길입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어디 한번 봅시다.”

사장과 판매팀장은 사무실로 달려갔고, 이내 주문 목록을 확인했다. 자체 홈페이지를 비롯해 오픈마켓에 이르기까지, 주문이 쇄도하고 있었다.

“사실이군요. 이게 대체 어떻게…….”

판매팀장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드디어 소비자들이 사장님이 지켜 낸 제품의 진가를 알아주나 봅니다.”

“정말 그런 걸까요?”

“네, 사장님. 지금까지 제품에 쏟으신 열정이 얼만데요. 당연히 이렇게 되어야 했는데, 반응이 너무 늦었네요.”

사장은 너무 당황스러우면서도 기쁜 나머지 허허 웃기만 했다. 그의 눈가에는 작은 물방울이 고여 있었다.

이날 오후.

스피커 회사는 고객 응대를 하는 과정에서 제품이 잘 팔린 이유를 알아냈다. 그건 바로 하산해 때문이었다.

이 회사 사장과 판매팀장은 풍류 홈페이지의 한 부분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성능에 비해 말도 안 되는 가격의 국산 명품 수제 스피커이며……>

“사장님, 드디어 우리도 명품 스피커로 거듭나나 봅니다.”

“그러게요. 이렇게 고마울수가 있나요. 이게 다 하산해 씨 홍보 덕분이었네요.”

“에이, 제품이 좋으니까 홍보도 해 주신 거죠.”

“글쎄요. 그런 거였으면 이미 우리 스피커는 잘 팔리고 있었어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아무튼, 이 고마움을 보답해야 할 텐데, 방법을 모르겠네요.”

“사장님, 당장은 그게 급한 게 아니지 않습니까? 직원부터 구하셔야죠?”

“그건 그렇습니다. 얼른 전화부터 돌립시다. 몇 명이라도 돌아오긴 할 거예요.”

“네, 아직 새 일자리를 못 구했으면 바로 올 겁니다. 사장님이 얼마나 잘해 주셨는데요.”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이날, 스피커 회사는 때아닌 인력 가뭄에 시달렸고, 제품을 포장하고 배송하느라 밤늦게까지 일했다.

그렇게 늦게 퇴근한 사장은 짐을 내려놓은듯 홀가분한 표정이었다.

양손에는 먹을거리를 잔뜩 사들고 콧노래까지 흥얼거렸다.

딩동-

“여보, 나왔어.”

곧 현관 문이 벌컥 열렸다.

“당신은 전화기도 꺼 놓고…… 그게 다 뭐예요?”

“아, 이거? 당신이랑 우리 딸 주려고 사 왔지. 그리고 꺼 놓은 게 아니라 충전할 시간이 없었어.”

그녀는 남편의 뒷말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이 양반이 미쳤어. 지금 생활비도 모자라서 쩔쩔매는 판에…….”

말을 이어 가던 그녀는 곧 입을 닫았다. 다른 집에서 들을까 우려한 탓이었다.

“일단 들어와요.”

이내 그가 들어서자마자 그녀는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냈다.

“이게 무슨 짓이에요? 이럴 돈 있으면 나 줘요.”

“물건이 제법 팔렸어.”

“그래요?”

“그래.”

“또 꼴랑 몇 개 팔아 놓고 생색은, 이런 거로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는 말은 하지 말아요. 더는 못 참아요. 이러다가 우리 집까지 넘어가게 생겼어요.”

그는 와이프의 타박에도 빙글빙글 웃었다.

“그럴 일 없으니까 안심해.”

“그러고 보니까, 당신 표정이 왜 그렇게 좋아요? 혹시! 투자자라도 나타났어요?”

“투자자? 아! 그렇지. 투자자라고 할 수 있지.”

“투자자면 투자자지, 할 수 있다는 건 또 뭐예요?”

그때였다. 학원에서 돌아온 부부의 딸이 현관문을 벌컥 열었다.

“엄마, 아빠. 빅뉴스야, 빅뉴스! 하산해 님이 이번 온라인 콘서트…….”

그녀가 화를 냈다.

“딸! 엄마가 뭐라고 했어? 공부가 우선이라고 했지? 너 자꾸 하산해 꽁무니만 쫓아다니면 이번 콘서트 관람이고 뭐고 어림도 없어!”

“엄마, 그게 아니고…….”

그때, 스피커 회사 사장이 들뜬 음색으로 말했다.

“딸, 하산해 콘서트 꼭 봐라. 다섯 번도 보고, 여섯 번도 봐. 알았지?”

와이프가 그의 등짝을 강타했다.

“이이가 미쳤나 봐. 편들 게 따로 있지.”

등을 비비던 그가 말했다.

“아니지, 우리 투자자님 도와드려야 하는데, 이런 게 대수야? 딸, 여기저기 홍보도 하고 그래. 그래야 은혜를 조금이라도 갚지.”

“아빠는 벌써 알고 있었네. 치, 아쉽다.”

“당연하지. 주문이 그렇게 밀려들어 오는데 모를 수가 있나.”

“아무튼, 아빠 잘됐다. 드디어 근검절약에서 해방인가! 우리 하산해 님 투어 갈 수 있는 거야?”

부녀의 대화를 듣고 있던 그녀가 궁금증을 토해 냈다.

“이게 다 무슨 소리예요?”

“여보, 오늘 우리 제품 재고 다 털었어. 아니지, 물량이 모자라서 내일부터 야근도 계속 해야 할 거야. 나 못 들어오니까, 저녁 혼자 먹어.”

“뭐, 뭐라고요!? 그게 대체 무슨 말이에요?”

사장은 오늘 있었던 이야기를 상세히 말해 주었다.

“세상에, 하산해가요?”

“엄마엄마, 봐봐, 하산해 님 대박이라고 했지? 이런 분이라니까.”

“말도 안 돼…….”

“아빠아빠, 나나 그 스피커 몇 개만 주면 안 돼? 품절이라고, 친구들이 아쉬워했어. 아! 공짜로 주는 거 아니고 파는 거야.”

“그러엄, 어떤 분 부탁인데, 당연히 들어 드려야지. 그건 걱정 말고 이거나 실컷 먹자.”

그의 딸은 그제야 바닥에 놓인 먹거리를 발견했다.

“우와! 아빠 오늘 기분 냈구나. 이게 다 얼마치야?”

그제야 현실을 자각한 사장의 와이프도 기뻐했다.

“세상에, 이런 날이 다 오네요.”

이날, 사장과 그의 가족은 오랜만에 웃음을 되찾았고, 밤이 깊도록 하하호호 웃었다.

* * *

<하산해 스피커 추천에, 국내외 일부 업체 돈벼락>

<쓰러져 가던 중소기업, 하산해가 되살렸다>

<국내외 일부 스피커 업체, 주문 폭주에 밤샘 작업>

<스피커 사건, 하산해 인기 실감>

<하산해 추천 스피커, 정말 기존 콘서트 현장감 되살릴까?>

- 으으, 사러 갔는데 다 품절인 거 있죠?

- 내일 오전에 소량 들어온다니까, 대기 타세요.

- 에이, 무슨 스피커로 그렇게나 차이 난다고, 하산해 뻥 치는 거 아니에요?

- 지금 우리 하산해 님이 거짓말한다는 거예요?

- 그게 아니라, 현실적으로 말이 안 되잖아요.

- 맞아요. 이거 혹시 스피커 회사한테 뒷돈 받은 거 아닌가 싶어요.

- 어? 그러고 보니 그렇네요. 홍보 대가 받았나?

- 콘서트 관람해 보면 알겠죠. 이참에 하산해 거짓말쟁이로 몰락하는 거?

- 와, 안티들 여기 다 몰려왔네.

뉴스를 살펴보던 산하에게 상익이 말을 걸었다.

“형, 이번에 너무 과하게 말한 거 아니에요?”

“뭐가 과해?”

“추천 스피커와 비슷한 품질의 제품을 쓰면, 오프라인 콘서트에 가까운 현장감을 느낄 수 있다. 이 부분이 좀 그런데요? 풍류 직원들도 걱정하는 눈치고요.”

“걱정하지 마. 내가 다 구입해서 들어 보고 말하는 거니까.”

산하는 확신에 차 말하고는 눈앞을 바라보았다.

[현재 - 19%]

그나저나 이게 왜 이렇게 더디게 올라가냐?

제품 홍보 더 해야겠는데?

“상익아, 추천 제품 목록 추가해야겠다.”

“네!? 또요?”

“그래, 다들 품절이라잖아.”

“아니, 형. 갑자기 스피커 홍보는 왜 이렇게 하세요?”

“그래야 온라인 콘서트가 완벽해지지. 그리고 국내 업체 중에 괜찮은 곳도 살려 주고, 일석이조 아니냐?”

“형, 그거 아세요?”

“뭐?”

“안티팬들이 벼르고 있어요. 이번에 형이 스피커 회사에 뒷돈 받아먹었다고요.”

“알아, 아까 댓글에서 봤어.”

“아무렇지도 않아요?”

“난 찔리는 거 하나 없이 깨끗한데? 무서워하기라도 해야 하냐?”

“아니요. 그건 아니지만, 신기해서요. 아무래도 슈퍼스타를 할 사람은 정해져 있나 봐요.”

“정해지기는 개뿔.”

“맞는데요. 아마 저 같았으면 하라고 해도 못 했을 거예요. 기자부터 시작해서 안티팬까지, 생각만 해도 무섭습니다. 그런데 형 진짜 추천 제품 추가하실 거예요?”

“그렇다니까. 지금 써 줄 테니까 기다려 봐.”

산하는 또 한 번 스피커를 추천했고, 아쉬워하던 몇몇 스피커 회사도 대박을 맞이했다.

그 시각.

고상식은 히말라야산맥을 오르고 있었다. 거대한 봉우리마다 만년설이 하얗게 뒤덮여 그 위용을 자랑했다.

숨을 거칠게 내뿜던 그는 잠시 멈춰서서 자연이 빚어낸 장관을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돌연 히죽 웃었다.

지금쯤이면 메일이 전송됐겠지?

영감쟁이, 기대하라고.

그때였다.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왔다.

“일어나세요. 회장님께서 면회 오셨습니다.”

눈을 퍼뜩 뜬 고상식은 멀뚱멀뚱 천장을 바라보았다.

여긴……?

상식은 사방이 단색으로 뒤덮인 이곳이 뭐 하는 곳인지 깨달았다. 이곳은 정신병원 폐쇄병동이었다.

그가 감방에서 이곳으로 옮겨진 지도 몇 달이 지났다.

구속복과 재갈을 착용한 그가 버둥거렸다.

“읍! 읍읍!”

“그래, 잘 지냈느냐?”

“으읍!”

“그리 난리 칠 것 없다. 다 네가 자초한 것 아니더냐?”

고상식은 화가 나서 더 심하게 버둥거렸지만, 고 회장은 손자를 차가운 눈동자로 바라볼 뿐이었다.

* * *

드디어 하산해의 온라인 콘서트 당일이 되었다.

산하는 온라인 콘서트 공연을 위해 연습을 거듭했지만, 한편으로는 스피커 품질 달성에도 노력을 기울였다.

심지어 현지에서 다른 스피커를 구입해서 들어보기도 했다.

그 노력이 빛을 발했는지, 산하의 시야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온라인 콘서트를 생생하게, 완료되었습니다.]

[스피커 품질 수준을 초과 달성했습니다.]

[추가 보상이 주어집니다.]

[현장의 느낌이 75% 이상 관객에게 전달됩니다.]

[주의 - 관객의 선택에 따라, 개개인의 콘서트 질이 달라집니다.]

됐어!

이 정도면 역대급 온라인 콘서트가 될 거야.

산하는 그간 콘서트를 기다려왔던 팬에게 멋진 선물이 되리라고 여겼다. 이번 콘서트 선물 보따리에는 크게 미술 콘서트, 북 콘서트, 음악 콘서트가 들어있었다.

“형? 이제 가셔야죠?”

“알았어.”

멋들어지게 옷을 차려입은 산하는 한 장소로 들어섰다. 이곳은 맥도웰 감독 및 영화사 관계자에게 부탁해 임대한 영화 세트장이었다.

각 테마에 맞게 꾸며진 이 세트장 중에서, 산하가 현재 자리한 곳은 음악 콘서트장이었다.

한편, 백인우월주의 카페에서는 이날을 기다려왔다. 하산해의 팬이 대거 몰리는 이날, 그들은 채팅창에서부터 분란을 조장할 계획을 세웠다.

이건 시작에 불과했고, 그들은 악의적인 소문, 합성 사진, 소송 따위를 준비해 놓고 있었다.

그곳의 회원 중 한 명인 안토니 모리슨도 팔짱을 낀 채 대기하고 있었다.

어이, 동양의 애송이.

네깟놈이 미국을 이 모양으로 만들어 놔?

내 여자친구마저 떠나가게 만들다니, 용서하지 않겠어.

그는 하산해가 추천해서 사놓은 스피커를 힐긋 쳐다보았다.

어딜 업체랑 담합해서 비싼 스피커나 팔아 처먹으려고.

소비자 기만에, 사기 아니야?

이건 집단으로 소송 걸어도 할 말 없겠지?

두고 보자, 하산해.

그는 알아서 자폭해 준 하산해를 조롱하며, 모니터 화면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때였다.

산하가 마이크를 잡았다.

“안녕하세요? 온라인 예술 종합 콘서트에 오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그가 한국어로 말하자, 콘서트를 지켜보던 전 세계 팬들의 화면에, 자기 나라에 맞는 언어로 자막이 표시되었다.

“이렇게 많은 분들이 찾아 주셔서 정말 감격스러운데요. 오늘을 위해…….”

산하는 관객들에게 한참 인사말을 전했고, 그 후 음악 콘서트의 시작을 알렸다. 그가 처음으로 선보일 것은 클래식 기타 연주였다.

그때 산하의 눈앞에 미션이 떴다.

[돌발 미션 - 관객 만족도를 99% 이상 끌어내자.]

[보상 - 유비원의 클래식 기타 솜씨 97%로 상향.]

뭐야, 이거.

이러면 공연 수준에 차이가 날 텐데.

보상으로 기타 솜씨 상향되면 상관없으려나?

잠시 생각하던 산하는 포인트를 사용했고, 의자에 앉아 다리오의 클래식 기타를 파지했다.

이내 사방이 어두워지고, 따스한 빛 한줄기가 그의 주변으로 내려앉았다.

그걸 지켜보던 안토니 모리슨이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이 따위 지루한 걸 좋아하다니. 다들 미쳤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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