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화 완벽하게 (6)
은성식품 신축 공장 내부.
이곳에는 군 조리시설이나 구내식당 등지에서 쓸 법한 대형 조리기구가 가득 들어차 있었다.
산하는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며 준비 상황을 다시 한번 점검했다.
도시락 배송 차량 준비, 3시간 안에 모두 도착할 수 있도록 최단 거리 탐색, 시위대가 더 늘어날 것을 대비해 넉넉한 재료 준비 등등.
“네, 대표님. 차질 없습니다.”
직원의 대답에 산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수고했어요.”
이윽고 산하는 손뼉을 치며 내부의 모두에게 외쳤다.
“자,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점심시간에 늦지 않게 배달해야 합니다. 다들 잘 부탁드립니다.”
그러자 실내의 모두가 소리쳤다. 그들은 은성식품 공장 증설 시기에 발맞춰 뽑은 신입사원들이었다.
“대표님, 잘 부탁드립니다.”
신입사원들은 대표에게 잘 보이기 위해 빠릿빠릿하게 움직였다. 그들이 기본 육수를 끓이고, 각종 재료를 바로 투입할 수 있게 준비하는 사이 산하는 된장을 준비했다.
준비 과정이야 도움을 받는다지만, 재료를 투입하거나 된장을 풀고 간을 보는 등의 작업은 직접 하기 위해서였다.
잠시 후.
신입사원이 각자에게 배당된 일을 마치고 뒤로 물러서자, 산하는 포인트를 사용했다.
1포인트에 20분이 유지되기에, 모든 포인트를 쏟아부어 된장찌개의 맛을 극대화할 예정이었다.
이번 미션의 주요 과제는, 미슐랭 식당 된장찌개 맛을 도시락으로 선보이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가 생각하기에, 도저히 포인트를 안 쓰고는 달성할 수 없는 미션이었다.
산하는 곁에 서 있던 상익에게 말했다.
“다시 말하지만, 5분 초과하면 알려 줘.”
“네, 형. 그런데 왜 5분이에요? 저한테만 살짝 알려 주시면 안 돼요?”
“알면 다쳐.”
“사실 알고 있어요.”
“알고 있다고?”
“네, 하지만 형이 굳이 숨기고 싶은 것 같으니까 말 안 할게요.”
“?”
“전 다 알거든요.”
“알긴 뭘 알아?”
“다 안다니까요.”
그 말을 끝으로 상익은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대량이라 어쩔 수 없지만, 이렇게라도 정성을 담으려는 거죠?
아무리 팬이 도와준다곤 해도, 이렇게 보답하는 사람은 형뿐일 거예요.
보통은 시위 현장에 가서 말이나 좀 하고, 돈으로 때울 텐데.
그 순간, 산하가 다듬어진 재료를 스테인리스 솥에 쓸어 넣으며 외쳤다.
“강상익, 시간 재고 있어?”
당황한 그가 얼른 시계 타이머를 확인했다.
“30초 경과했습니다.”
“오케이.”
산하는 미션의 모든 조건을 맞추기 위해 손을 바삐 놀렸다. 남들이 보기에는 대충 넣고, 휘젓고, 된장 푸는 모습으로 보일 지경이었다.
상익은 그 모습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형이 왜 저러지?
꼭 뭐에 쫓기는 것 같이.
아! 점심시간에 안 늦으려고 저러시는 거구나.
한쪽에 물러서서 대기하던 신입사원들도 비슷하게 생각했다.
와, 이걸 직접 다 하시는구나.
그런데 이런 방식으로 맛이 제대로 나긴 할까?
한참 후.
마지막 솥의 된장찌개를 완성한 산하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앞서 완성된 된장찌개를 확인한 뒤 배달 용기에 옮겨 담으라고 지시한 다음, 또 제자리로 와서 된장찌개를 만드는 작업만 반복하느라 바빴기 때문이었다.
현재 작업은 착착 진행되어 조금 전 2차 분량이 출발했다.
“형, 슬슬 출출한데, 우리도 밥 먹죠?”
산하는 여기서 점심 먹을 생각이 없었다. 미션이 해결될 때까지 현장 상황을 지켜볼 예정이었다.
“이거 다 하고, 우리도 거기 가서 먹자.”
“오, 그것도 괜찮죠. 그런데 형이 거기 가면 사람들 난리 날 텐데요?”
“어차피 활동 중단하기로 한 마당이니까 얼굴은 숨겨야지.”
“아하! 그렇겠죠. 형, 이거 맛 한번 보여 주시면 안 돼요? 아까부터 궁금해서.”
산하는 된장찌개를 그릇에 살짝 덜어서 상익에게 주었다.
상익은 산하가 직접 만든 요리를 자주 먹어왔기에, 이번 대량 생산에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이런 식으로 만든 것과는 차이가 크게 날 거라고 생각했다.
후릅-
그릇을 기울여 된장찌개 맛을 본 상익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리고 그릇을 최대한 기울여 된장찌개를 모조리 마셨다.
“와, 형. 이렇게 끓였는데, 어떻게 똑같은 맛이 나죠? 대박!”
“뭐 인마? 이렇게 끓여? 그게 무슨 뜻이야? 대충 만들었다는 말이야?”
“아, 아니. 제 말은 그게 아니라, 이것도 나름 대량 생산인데 어떻게 이런 맛이 나냐, 뭐 이런 거죠.”
“아, 그러셨어요? 그런 변명은 됐고요. 마지막 도시락 포장 투입.”
“투입!”
* * *
독일에서 온 외신기자는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전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장면이 건물 아래쪽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그건 바로 예술인들이 펼치는 항의 시위였다.
동양화, 서양화, 만화 등이 한데 뒤섞인 그 풍경은 그 자체로 예술이었다.
예술가들은 현실을 풍자하는 그림을 그려서 현 실태를 고발하고 있었다.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붓글씨협회에서도 이 대열에 합류해 각자 의미 있는 글귀를 썼고, 문학인들도 돗자리를 깔고 앉아 현 실태를 비판하는 글을 육필로 써 내려갔다.
이 모든 저항의 물결은 도일그룹과 정치권으로 향했다.
“정말 놀랍지 않습니까?”
독일 기자의 질문에, 프랑스 출신 기자가 답했다.
“동의해요. 눈으로 직접 보니 더 놀라워요. 이게 하산해 한 사람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니.”
“꼭 한 사람 때문이라기보다는, 일종의 기폭제가 된 게 아닌가 싶어요. 다들 불합리한 사회구조에 불만을 품고 있다가, 폭발한 거죠. 이번 사건, 많은 사람이 엮여 있잖아요.”
“글쎄요. 제 생각은 그렇지 않은데요?”
“어떤 생각인지 들어볼 수 있을까요?”
“우선, 하산해는 대중이 교감할 수 있는 힘든 과거를 가지고 있어요. 알고 계시죠?”
“알죠.”
“그 과거를 하산해 팬이라면 대부분 다 알고 있어요. 어려웠고, 끊임없이 실패했고, 도전했고.”
“그래서요?”
“그래서 팬들은 하산해의 삶에 자신을 투영했는지도 모르죠. 물론 그의 요리에 반한 사람도 있고, 노래나 책을 사랑하는 사람도 있고, 각양각색이긴 하겠지만요.”
독일 출신 기자가 더 말해보라는 고갯짓을 하자, 프랑스 출신 기자가 말했다.
“그런 하산해가 이번 콘서트를 계기로 전 세계에 엄청나게 이름을 알렸잖아요. 저도 깜짝 놀랐거든요. 실력이 그 정도인 줄은 처음 알았는데, 당장 프러포즈하고 싶을 정도였어요. 제가 이 정도인데, 아마 한국인으로서는 정말 가슴이 뭉클하고 자부심을 느끼게 되는 순간 아니었을까 싶어요.”
독일 기자가 그녀의 말을 받았다.
“그러니까, 그 뿌듯하고 자랑스러운 순간에 도일그룹이 찬물을 뿌렸다 이거군요?”
“찬물 정도가 아니라 더러운 기분을 느끼게 해 준 거겠죠.”
“뭐, 그쪽 말도 일리가 있긴 하군요. 하지만 전 세계 어디를 가나 불합리한 사회 구조는…….”
독일 기자가 무언가 더 말을 이어가려던 순간이었다. 아래쪽에서 고막이 먹먹해질 듯한 함성이 들려왔다.
두 사람은 황급히 아래쪽을 내려다보았다.
시위대와 저항예술가들이 자리한 곳에서 제법 떨어진 외곽, 그곳에 수많은 탑차가 줄지어 정차하고 있었다.
“저건 뭐죠?”
독일 기자는 대답이 없자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프랑스 기자는 벌써 저쪽으로 뛰는 중이었다.
“이런, 치사하게. 같이 갑시다!”
* * *
“여러분! 오전 중에 말씀드렸죠? 우리 하산해 님이 이 광장의 모두를 위해 도시락을 준비한다고 하셨는데요, 방금 도착했습니다.”
사회자의 외침에, 광장의 모든 이가 물개박수를 쳤다.
“뒤쪽에 차량이 대기 중입니다. 수량 넉넉하다고 하셨으니까, 다들 질서 있게 가셔서 순서대로 받아 주세요.”
사람들은 정의 구현을 외치러 온 만큼, 다들 질서 있게 도시락을 받아 가기 시작했다.
가장 처음으로 도시락을 받은 이는 외곽에 자리해 있던 사복경찰이었다.
그는 시위 현장의 동향을 감시하기 위해 투입되었는데, 마침 배가 고팠다.
이거 먹는다고 상부에서 뭐라고 하진 않겠지?
마침 점심시간이기도 하고, 나만 안 먹으면 이상해 보이잖아.
그럼, 그렇고말고.
어디 보자.
음, 반찬 괜찮네.
역시 은성식품이야.
그는 밥과 반찬을 신나게 먹다 말고 작은 플라스틱 용기를 발견했다.
이건 뭐지?
사복경찰이 뚜껑을 열자, 입에 침을 고이게 하는 향이 후각을 자극했다.
뭐야, 된장찌개네?
냄새 좋고.
아직 따끈한 된장찌개를 바라보던 그는 무심코 그곳으로 숟가락을 가져갔다. 이내 그의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커졌다.
미, 미친!
이게 뭐지?
눈이 돌아간 그는 플라스틱 용기를 들어서 된장찌개를 꿀꺽꿀꺽 마셨다. 된장찌개는 순식간에 바닥나 버렸다.
말도 안 돼. 무슨 놈의 된장찌개가 이런 맛이?
설마, 이게 하산해의 미슐랭 요리?
이 정도 맛이었어?
사람들 말대로 진짜 대박이네?
그래서 사람들이 그렇게 줄을 서서 먹어댔던 거구나.
이걸 도시락으로 제공하다니.
그는 처음 맛보는 된장찌개 맛에 반한 나머지, 플라스틱 용기를 혀로 핥았다.
그러다가 정신을 차렸다.
이런, 너무 추잡스러웠나?
하나, 그런 모습은 주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다들 먹느라 정신없거나 아쉬워하거나.
사복경찰 또한 아쉬워하며 도시락 나눠 주는 곳을 바라보았다.
한 개 더 먹어도 될까?
상황이 이렇게 되자, 구경하던 외신기자들이 호기심을 보였다.
“얼마나 맛있길래 저러죠?”
“그러게요. 아주 도시락 용기까지 씹어먹을 기세네요. 우리도 어떻게 달라고 해 볼까요?”
“그래 볼까요?”
이때는 마침 산하의 눈앞에 미션 완료 메시지가 뜬 시점이었다.
[미슐랭 식당 된장찌개 맛을 도시락으로 선보이자, 완료되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요리를, 맛만 보면 그대로 구현할 수 있습니다.]
그는 엄청난 보상을 보면서도, 흐릿해진 메시지에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형, 우리도 얼른 먹어요.”
눈앞을 응시하던 산하가 고개를 돌렸다.
“그래, 그러자.”
산하와 상익은 차량으로 사방이 가려진 공간에 자리를 깔고 앉아 도시락을 먹었다.
두 사람이 식사를 거의 마무리할 즈음, 직원 한 명이 찾아왔다.
“저기, 대표님.”
“네, 무슨 일입니까?”
“저기 외신기자들이, 혹시 남는 도시락 있으면 팔 수 없냐고 하시는데요?
“우리 도시락 얼마나 남았죠?”
“꽤 많이 남았습니다만, 된장찌개가 별로 없습니다.”
“된장찌개는 얼마나 남았어요?”
“한 백 인분 정도 됩니다.”
“그거밖에 안 남았어요?”
“네, 드신 분이 자꾸 더 달라고 하셔서요. 안 드리기도 뭐 했습니다. 다들 된장찌개 담았던 빈 용기 핥고 계시더라고요.”
“그래요. 잘했어요. 일단 드실 분은 다 드신 것 같죠?”
“네, 그럼 팔까요?”
“아니요. 그냥 드리세요.”
“저기…… 대표님.”
“네?”
직원은 잠시 망설이더니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남은 된장찌개는 우리 직원들 주시면 안 될까요?”
산하가 씨익 웃는다.
“외신기자들까지만 나눠 주시고, 그렇게 하세요.”
“감사합니다!”
직원이 만면에 미소를 감추지 못한 채 돌아가자, 상익이 흐흐 웃었다.
“넌 왜 웃어?”
“이 맛 한번 보면, 욕심 안 내곤 못 배기죠.”
잠시 후.
옹기종기 모여있던 외신기자들은 도시락 반찬을 맛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맛은 그럭저럭 괜찮은데, 그렇게 오버할 맛은 아니군요?”
“그냥 하산해가 직접 제공했다는 것에 반한 거 아닐까요? 여기 다들 팬이거나, 관련된 사람이잖아요.”
“그런가 봐요.”
그때, 기자 중의 한 명이 눈을 부릅떴다.
“오 마이 갓!”
“왜 그래요? 뭐 문제 있어요?”
독일 기자가 플라스틱 용기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문제가 아주 많아요.”
그 말을 끝으로 그 기자는 된장찌개를 들이마셨다.
그 모습에 다른 기자들이 서로 눈을 마주쳤다. 그리고 말도 없이 다들 된장찌개를 맛보았다.
감탄사가 동시다발적으로 울려 퍼졌다.
“이게 미슐랭 요리?”
“세상에!”
“이거 미쳤군요.”
“이럴 수가.”
“이런 거였군요.”
* * *
<하산해 도시락 배달, 시위대 환호>
<하산해의 미슐랭 요리 일부, 도시락에 담겼다>
- 여기 도시락 된장찌개 돌았어요. 하산해 식당에서 먹던 딱 그 맛이에요.
- 뭐야, 그냥 도시락 아니고요?
- 된장찌개는 하산해가 직접 만들었나 봐요. 먹고 뿅 갔다니까요.
- 그 많은 양을요? 거기 사람이 몇 명인데, 에이 설마.
- 아니에요. 그날 사람들 난리 났잖아요. 된장찌개 더 달라고.
- 와, 그날 가야 했는데.
- 그게 진짜예요? 와, 줄 서서 먹는 걸 그냥 먹을 수 있다니.
- 내일도 주실까요?
- 대박! 나도 가야지.
인터넷상으로 도시락에 관한 소문이 널리 퍼졌고, 속으로 응원만 하던 팬이 도시락을 먹기 위해 시위에 참여했다.
그중에는 이번 사건에 큰 관심 없던 일반인도 있었다.
그러자 시위대 숫자는 며칠 만에 대거 불어났다.
그들은 점심시간만 되면 눈을 반짝였다.
한편, 정부는 상당히 곤란한 입장에 처해 있었다. 도일그룹에 관한 부정적 이미지가 국가로 번질 우려가 있어서였다.
이 모든 게 사법부와 정치권이 도일그룹을 옹호한 탓이었다.
사실상 이번 사건은, 도일그룹이 권력자와 짜고 남의 재산을 훔친 범죄였다. 이런 범죄에 가담한 것도 모자라 옹호하는 인간들이라니.
“정말 나라 망신은 다 시키는군요.”
“그나마 일부는 돌아서는 추세입니다. 이미 언론은 대거 돌아섰고요. 이대로라면, 시간이 조금 걸릴 뿐이지, 막는 건 힘들 겁니다.”
“그래도 너무 느려요. 수출 감소야 한계가 있다지만, 이대로 우리 나라에 안 좋은 이미지가 입혀진다면 곤란합니다.”
* * *
이번 사건에 연루된 정치인들은 연일 한 장소에 모여 토론했다.
“이것들, 지치지도 않는군요.”
“하산해가 무슨 도시락인지 뭔지를 배달하면서 더 많이 늘어났답니다.”
“모든 활동을 접는다 어쩐다 하더니, 순 거짓말쟁이 자식이네요. 이건 활동이 아니라 이건가?”
“뭐, 딱히 대중 앞에 나서진 않긴 했어요.”
“조금씩 압박감이 느껴지긴 하네요.”
“에이, 무슨 압박감을 느끼십니까? 제놈들이 아무리 모여 봐야 계란으로 바위 치기죠. 입법부랑 사법부만 꽉 틀어막고 있으면 만사 오케이예요.”
“이러다가 송청세 전 대통령 때만큼 불어나면 어쩌실 겁니까?”
“그런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맙시다. 다 잘 될 겁니다.”
그 시각, 포털사이트가 새로운 뉴스로 뒤덮였다.
<하산해, 노벨 문학상 수상>
<유럽 노벨문학상 배팅 사이트, 수상자 또 맞혔다>
<작가 면벽, 노벨문학상 단골 후보 제치고 1위>
<하산해, 시상식 참가 불투명>
이 뉴스가 전 세계로 퍼져 나가기 무섭게, 다른 문학상에서도 하산해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말이 새어 나왔다.
전 국민은 이 소식에 크나큰 자부심을 느꼈다.
더 활동하면, 이름을 더 크게 날려서 국위 선양할 인재.
그것이 국민들이 바라보는 하산해의 모습이었다.
하나 지금은 도일그룹 사건으로 인해 하산해의 활동이 중단된 상태였다.
일반 국민들도 이 사실에 열 받기 시작했다.
- 아니, 우리나라에 이런 천재가 탄생했는데, 밀어주지는 못할망정, 다들 지랄이네요.
- 그러게요.
- 이러다가 봉막걸리랑 하산해 라면도 생산 중단하는 거 아니에요?
- 지금 그게 문제에요? 시상식도 못 가게 생겼는데.
- 저는 큰 문제예요. 우리 할아버지 주식이거든요.
- 아…….
- 이거, 솔직히 전 국민의 문제 아니에요? 도일 그룹에서 정치권이랑 짜고 친 고스톱이잖아요.
- 그래서 저도 이번 주말에는 나가 볼까 해요.
- 저도요.
- 저도.
분위기가 점점 험하게 흘러가자, 이번 사건과 큰 관련 없는 정치인들은 위기감을 느꼈다. 자신들마저 도매금으로 넘어가는 분위기였다.
한마디로 정치생명이 위태롭다는 뜻이었다.
이대로라면 송청세 퇴진 시위 당시 상황이 그대로 재현될 가능성이 있었다.
그들은 여야를 가리지 않고, 이번 일에 관련 없는 국회의원끼리 이합집산했다.
“안 되겠어요. 의견 맞는 의원님들 모아서 특별법안 통과시킵시다. 아슬아슬하긴 하지만, 가능할 것 같습니다.”
“지금 날치기로 통과시키자는 겁니까?”
“이미 국민적 합의는 이뤄진 거나 마찬가지 아닙니까? 이대로 통과시키면 우린 국민적 영웅이 되는 겁니다. 그게 아니면 다 같이 역적이 되거나. 다음 선거에서 떨어지고 싶습니까?”
“너무 단순하게 생각하시는 거 같네요.”
“최 의원, 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아아, 내가 말이 헛나왔어요. 그저 다각도로 생각을 해 봐야 한다, 이 말이죠.”
“그 말이 그 말 아닙니까? 말조심하세요!”
정치인들은 모였다 하면 싸우면서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이 상황에서도 서로 이득을 챙기느라 눈치 보기에만 바빴다.
* * *
시간이 제법 흘렀다.
산하는 하루도 안 빠지고 시위 현장에 도시락을 배달했지만, 아직도 도일그룹 사건 해결은 지지부진한 상태에 놓여 있었다.
시위대도 이런 상황에 조금씩 지쳐 가고 있었다. 직장을 다니랴, 시위에 참가하랴.
이 와중에도 대한민국의 일부 권력자들은 여전히 도일그룹을 감싸기 바빴다.
“고 회장이 일을 제대로 하는군요.”
“당연하지 않습니까? 그쪽이 더 급할 텐데.”
“그러고 보니, 댓글 분위기 어수선한 것도 고 회장 작품이라면서요?”
“쉿! 그 얘기는 꺼내지 맙시다. 그나저나 이대로 버티면, 유야무야 넘어갈 수도 있겠어요. 시간은 우리 편입니다.”
“맞습니다. 이번 겨울은 유독 춥다더군요. 그나마 다행이지 뭡니까?”
“그보다 이번 일만 끝나면, 손볼 놈들이 한둘이 아니라는 건 알죠?”
“알죠. 저도 벼르고 있습니다.”
그 시각, 미합중국.
대통령 노블 앤더슨은 임기가 얼마 안 남아 있었다.
해서 마지막을 장식하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고 있었는데, 그 와중에 한국에서 도일그룹 사건이 터졌다.
여기에서 영감을 얻은 그는 보좌관과 대화 중이었다.
“이 정도면 하산해도 마음이 돌아서지 않았겠습니까? 예전에 송 대통령 사건도 그렇고, 나라에서 매번 이렇게 대하는데, 정이 뚝 떨어지겠군요.”
“가능성은 있을 것 같습니다. 다만, 몇몇 문제가 있긴 합니다. 나라를 버린 배신자 이미지도 그렇고, 과연 미국에서 적응을 잘할지…….”
“이 정도 인재를 품을 수 있는데, 그건 어떻게든 도와줘야죠. 나는 하산해가 우리나라에 와서 제대로 꽃을 피우리라고 믿어요. 신뢰와 명성이 그와 함께할 겁니다.”
그의 확고한 발언에, 보좌관이 말했다.
“그럼 방법은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직접적으로 찾아가는 건 국가적으로 상당히 부담스러운 일이기에…….”
“고민할 필요 있습니까? 슬쩍 소문부터 흘려 보세요.”
며칠 후.
하산해가 미국 시민권을 얻었다더라, 한국에 염증을 느껴서 미국으로 간다더라 등 여러 내용의 소문이 떠돌았다.
이 소문은 정·재계를 비롯해 언론사로도 퍼져 나갔다.
그러자 세계 각국에서 앞다투어 하산해에게 러브콜을 보내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떡 줄 놈은 생각도 안 하는데, 김칫국부터 마시는 형국이었다.
뉴스에서도 이 내용을 비중 있게 다뤘다.
<미 대사관, 인터뷰 요청에 묵묵부답>
<수많은 나라에서 러브콜, 모두가 하산해를 원한다>
<우리에게 오라, 각 나라 파격 대우 약속>
<영국, 작위 수여 가능성도 열어 둬>
<대한민국 천재, 이대로 다른 나라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