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과거에서 재능이 쏟아져-426화 (426/445)

426. 돌아가기과거에서 재능이 쏟아져

외전 5화. 과거의 영광 (1)

오십 줄에 들어선 채동진은 파리채를 들고 벽 모퉁이를 노려보았다.

탁-

파리 한 마리가 수명을 채우지 못하고 즉사했다.

왠지 모를 쾌감을 느낀 동진은 하하 웃었다. 그러다가 문득 처량한 생각이 들어 우울한 표정을 지었다.

이 가게도 미친 듯이 잘나갈 때가 있었는데.

내가 물려받고는 이 모양 이 꼴이니 원.

정말 문을 닫아야 하나?

그가 이런 마음을 먹게 된 건 장사가 잘 안되는 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가끔 방문하는 특정 손님이 큰 이유였다.

손님 중에는 아직도 옛 맛을 그리워하며, 해외에서 일부러 찾아오는 이도 있었다. 아버지의 옛 단골이었다.

오늘도 그 단골 한 명이 다녀갔는데, 올 때는 기대감에 가득 찬 눈빛으로 신나게 말을 늘어놓았지만, 갈 때는 가타부타 말도 없이 계산만 하고 사라졌다.

이 모든 게 그의 마음에 상처가 되었다.

매출 감소는 어떻게든 버틸 수 있었지만, 매번 전해져 오는 타인의 실망감은 가슴을 답답하게 만들었다.

그 때문에 오늘은 그만둬야지, 내일은 그만둬야지 한 날이 부지기수였다.

그런데도 그는 그만두지 못했다.

자신마저 포기하면, 아버지의 그 훌륭한 솜씨가 이 세상에서 영영 사라질 거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동진이 영업 중단을 차일피일 미루는 이유였다. 이제나저제나 아버지 실력의 발치라도 따라가기를 희망하면서.

그러나 아무리 연습해도, 똑같은 재료, 똑같은 방식으로 조리해도 아버지의 그 맛은 나오지 않았다.

아니, 반의반도 따라가지 못했다.

오죽하면 뛰어난 제자라도 나타나, 아버지의 솜씨를 반만이라도 따라가 주기를 희망했겠는가.

동진은 한숨을 푹 내쉬고는 죽은 파리를 치웠다.

그때, 출입문이 열리며 누군가가 들어섰다.

“실례합니다.”

그는 자신이 직접 가게 문을 열었으면서도, 가끔 찾아드는 손님이 반가우면서도 반갑지 않았다. 이번에도 아버지의 단골이 찾아왔다가 실망하고 돌아갈까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별수 없었다.

손님이 왔으니, 일단은 반갑게 맞아야지.

그는 이율배반적인 감정에 사로잡힌 채로 고개를 돌렸다.

“어서 오세요. 몇 분이…….”

그는 말을 하다 말고 입을 떡 벌렸다. 전혀 예상치도 못한 손님이 가게 문을 등지고 서 있었다.

동진은 뒷말을 내뱉지 못한 채 입만 뻐끔거렸다.

그러자 산하가 먼저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식사 되나요?”

“시, 식사요?”

“네.”

동진은 산하의 말에 소름이 쫙 돋았다. 그에게 있어 하산해는 그 이름도 드높은 미슐랭 요리사였다.

각종 모임에 갈 때마다 입에 침을 튀기며 단골 소재로 잡는 존재라고나 할까.

그런 이가 자신의 가게에 방문을, 그것도 식사하러 와 주었다는 것에, 동진은 감격의 눈물을 흘릴 뻔했다.

“사장님?”

생각에서 빠져나온 동진은 다급히 한쪽 테이블을 가리켰다.

“아, 아 네네! 여기, 여기로 앉으세요. 뭐 주문하시겠어요?”

“간짜장이랑 탕수육 부탁합니다.”

“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동진은 후다닥 주방으로 들어서려다가 멈칫했다. 오늘은 문득 하산해마저 실망하게 하기 싫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곧장 몸을 돌리더니 조심스레 운을 뗐다.

“저기, 하산해 씨?”

“네?”

“혹시 시간 괜찮으신가요?”

“무슨 말씀이신지?”

“혹시 오늘 급하신 거 아니면 여기 앉아서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어요? 제가 꼭 맛보여 드리고 싶은 요리가 있어서 그럽니다.”

산하는 뜬금없는 그의 제안에 고개를 갸우뚱했다.

맛보여 주고 싶은 게 있다고?

이런 제안은 또 처음이네.

뭐, 나야 좋지.

이따가 말도 좀 섞고, 이것저것 물어봐야 하니까.

산하가 생각하느라 답이 없자, 동진은 거절의 의미로 알아듣고 실망했다.

“이런, 바쁘신 분인데,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오늘은 시간이 많습니다. 기다릴게요.”

그의 말을 듣자마자 동진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럼, 진짜 잠시만, 정말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아, 여기 더우시면 에어컨 빵빵하게 트세요.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동진은 부리나케 가게 문을 열고 사라졌다.

어느새 손에 쥐어진 리모컨을 바라보던 산하가 하하 웃었다. 왠지 재미있는 날 같다고 생각하면서.

한참 후.

동진은 자신의 차를 가게 앞에 세웠다. 뭐가 그리 급한지 운전석에서 뛰어내리다시피 한 그가 차 뒷문을 열었다.

그곳에는 머리가 허옇게 센 노인이 눈을 끔뻑끔뻑하고 있었다.

“아버지, 얼른 내리세요.”

“야, 이놈아. 집에서 잘 쉬고 있는 사람을 왜 끌고 오냐고 물었잖어? 난 이제 못한다고 혔어? 안 혔어?”

“하셨죠. 저도 다 알죠. 그런데 오늘은 진짜 진짜 진짜 특별한 손님이 오셨거든요.”

“이제야 실토하는구만. 특별한 손님? 내 단골? 일 없다. 괜히 봐 봐야 속만 쓰리지.”

“단골 말고요. 다른 쪽으로 특별한 손님요.”

주름진 얼굴의 노인은 동진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오늘따라 호들갑을 떨고 있는 아들의 표정이 밝아 보였다.

이젠 호기심 따위는 다 사라졌다고 생각했던 노인에게 궁금증이 밀려들었다.

“대체 누군데 그려?”

“보시면 알아요. 아버지 얼른 들어가세요. 몸 불편하시더라도, 오늘 딱 한 번만 저 좀 도와주세요.”

자신을 설득하려 애쓰는 아들놈의 태도에, 노인은 클클 웃었다.

“알았다, 이놈아. 오늘 내 허리 부러지면 다 네놈 탓인겨.”

“네, 아버지. 죄송해요. 딱 오늘 하루만이에요. 아버지 요리가 어떤지, 제대로 한번 보여 주세요.”

“거참, 뭐 하자는 겐지.”

이곳 중화요리 전문점의 창업주인 채무성은 아들의 부축을 받아 차에서 내렸다. 뜨거운 햇살에 눈살을 찌푸리던 노인의 시선이 낡디낡은 간판으로 향했다.

“참 세월 빠르다. 빨라.”

“그러게요. 저 어릴 때 학교 다녀오면 아버지가 만든 짜장면 먹기 바빴는데, 그때 생각나네요.”

“밥 대신 짜장면만 죽어라 먹었지?”

“아버지도 참. 제가 언제요?”

“그건 네놈이 더 잘 알겠지.”

“…….”

“그래서, 뭐 먹고 살지는 정했고? 아닌 것 같으면 얼른얼른 접어야 할 게 아니냐? 언제까지 이것만 붙잡고 있을 거야? 이거 붙잡고 있으면 쌀이 나와? 떡이 나와? 후딱후딱 접고 얼른 장가나 가야지.”

“아버지, 제 나이에 무슨 장가를 가요?”

“네 나이가 어때서? TV 보니까, 나이 육십에도 잘만 가더라.”

“그건 연예인이니까 그렇고요. 저는 시골 촌놈이잖아요.”

“에라이 못난 놈.”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채무성이 지팡이를 탁탁 짚으며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이내 그의 눈에 띈 사내가 있었다.

“어디서 많이 보던 사람인데.”

“예, 아버지. 아마 TV에서 아주 많이 보셨을 거예요. 하산해 아시죠?”

노인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하산해? 배울 것 없어 하산했다는 그 하산해?”

“아버지 그런 말을 대놓고 하시면 어떡해요? 하산해 씨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산하는 드디어 나타난 이곳 주인과 노인을 바라보며 하하 웃었다.

“괜찮습니다. 조금 민망한 것 빼면요. 전 아직 배워야 할 게 많거든요.”

“에이, 뭐든 다 잘하시면서. 죄송하지만, 조금만 더 기다려 주세요. 최고 주방장님이 끝내주는 요리 만들어 주실 겁니다.”

이내 동진은 인사 주고받을 틈도 없이, 아버지를 등 떠밀다시피 해서 주방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속삭였다.

“아버지, 다른 건 몰라도 중화요리는 아버지가 최고잖아요. 우리 중화요리 전문점 본래 실력이 어떤 건지 보여 주세요. 하산해도 깜짝 놀라게요.”

노인이 인상을 구겼다.

“어이구, 이 나이를 거꾸로 처먹은 아들놈을 보았나. 고작 자랑하고 싶어서 이 늙은이를 데려왔어?”

“쉿! 아버지 목소리 낮추시고요. 아버지는 이제 열정도 없으세요? 이참에 아버지가 중화요리만큼은 하산해도 따라오지 못한다는 걸 보여 주세요. 그럼 저 이 가게 문도 닫고, 색시도 구해 올게요.”

노인은 구미 당기는 아들의 제안을 덥석 물었다.

“진짜야? 두말하면 이 지팡이로 얻어맞을 줄 알아.”

“그럼요. 그럼요. 자자, 아버지 뭐부터 준비할까요?”

“뭐 주문했는데?”

“간짜장이랑 탕수육이요.”

“간짜장? 그거 좋지.”

“아 참, 마파두부도 해 주세요.”

“많기도 많다. 진정 오늘내일하는 이 아비 쓰러지는 꼴 보고 싶으냐?”

“아버지, 저 진짜 장가간다니까요? 간짜장부터 시작하면 되죠?”

끙 소리를 내던 노인은 간짜장에 관해 떠올렸다.

간짜장에서 간은 흔히 알고 있는 소금간 따위가 아니다. 물기가 별로 없게 만든다는 뜻으로, 마를 건(亁)에서 유래했다.

하지만 그 맛을 제대로 살리는 집은 드문 요리이기도 했다.

주문이 들어오면 바로 만들어야 하지만, 어떤 가게는 미리 만들어 두기도 하고, 또 어떤 가게는 기존 짜장 소스에 양파만 대충 추가해서 만들어 주는 집도 많았다.

정말 어처구니없는 곳은 일반 짜장 소스와 면을 분리해서 내놓고 간짜장이라고 우기는 경우까지 있었다.

하나, 채무성은 자신이 영업하던 시절, 단 한 번도 요리의 원칙을 어기지 않았다. 거기에 더해진 그의 손맛은 수많은 단골을 밤잠 못 자게 만들었다.

그 당시 기억을 더듬어 보던 채무성은 실로 오랜만에 열의를 불태웠다. 어린 시절 구박받아 가며 배웠던 요리 실력을 마지막으로 한껏 뽐내 볼 생각이었다.

진정한 간짜장이 무엇인지 보여 주마.

이내 주방에서는 티격태격하는 말소리와 지지고 볶는 소리가 정겹게 들려왔다. 홀에서 기다리던 산하는 이런 분위기가 무척 마음에 들어 희미하게 웃기만 했다.

그러다가 벽에 붙은 낡은 A4 용지를 발견했다.

<중화요리 대가 채무성님의 요리 비법을 전수받으실 제자 구합니다.>

산하는 공고문을 읽어 보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채무성?

어디서 들어 본 것도 같고.

아닌가?

이름을 되뇌어 보던 그는 어깨를 으쓱하고 관심을 거뒀다. 지금 그의 머릿속에는 오로지 단서를 찾아 팔을 고치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로부터 한참이 흘렀다.

“자, 나왔습니다. 우리 아버지표 특제 간짜장, 탕수육, 마파두부.”

“마파두부요?”

“이건 서비스입니다. 실은 제가 하산해 씨 팬이라서요. 맛있게 드세요.”

“그러셨구나. 이거 배 터지겠는데요? 감사히 잘 먹겠습니다.”

“별말씀을요. 혹시 필요하시면, 비벼 드릴까요?”

“괜찮습니다. 제가 할게요.”

“네, 그럼 맛있게 드세요.”

동진은 뒤로 멀찌감치 물러나 산하를 바라보았다. 그는 뉴스에서 보았던 대로 팔이 불편한지, 왼손만 사용하고 있었다.

역시, 포크 하나 가져다드리길 잘했네.

그의 생각이 끝나기 무섭게 산하가 포크를 들어 보이며 싱긋 웃었다.

“고맙습니다.”

“별말씀을요.”

그 후 산하는 간짜장을 어렵사리 비벼 입 안에 집어 넣었다. 그 순간 그의 동공에 지진이 일어났다.

그는 요리 재능을 한껏 얻은 후로 타인의 요리에 놀란 적이 별로 없었다. 이만큼 놀란 건 오늘이 처음이라고 할 수 있었다.

뭐야, 이 맛은.

장난이 아닌데?

거기다가 가게에 손님이 너무 없어서, 식자재 상태도 안 좋을 거라고 예상했는데.

모두 신선해.

간짜장은 덜하지도 더하지도 않은 양파의 아삭함과 적절한 간, 불맛, 고기의 씹는 맛까지 모든 것이 대단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산하는 뒤이어 탕수육을 먹고는 크게 놀라지 않았으나, 마파두부를 먹고 또 한 번 크게 놀랐다.

여기 대체 뭐야?

* * *

산하는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피식 웃고 말았다. 쇳조각의 단서를 잡으러 갔다가, 졸지에 한 노인에게 중화요리를 배우게 생긴 탓이었다.

그저 요리에 대한 감상평을 말한 것뿐인데, 노인의 아들이자 그곳의 사장 채동진은 무척이나 기뻐했었다.

그 틈을 탄 산하는 식당 내부 공고문을 슬쩍 쳐다보며 질문을 던졌었다.

“제자를 구하신다고요?”

“네? 네. 이젠 뭐 하려는 사람도 없지만요.”

“그거 제가 한번 해 보면 안 될까요?”

“네!?”

몇 시간 전 기억을 떠올린 산하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때로는 배울 자가 없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많은 재주, 이것도 그중의 하나이리라.

그나저나 열흘이라.

노인은 자신의 청을 거부했으나 아들의 성화에 못 이겨 수락했다. 정 그러면 딱 열흘만 가르쳐 보겠다고.

그 아들도 말을 덧붙였었다.

오래전, 배우겠다고 온 사람은 많았으나, 제대로 된 맛을 끌어낸 사람이 없었다나 뭐라나.

그러니 당신만은 꼭 성공해 달라고.

그 말을 듣고 있던 노인이 말하기를, 맛의 차이는 가르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닌 미묘한 것이라고도 했다.

그러니 잘 생각해 보고, 안 그래도 바쁠 텐데 시간 버리지 말라던가.

하지만 산하는 딱히 배울 필요까지는 없었다. 언젠가 광화문 시위대에게 도시락을 만들어 전달하는 미션을 해결하고 받은 보상 때문이었다.

산하는 그 당시 받았던 보상의 내용을 떠올렸다.

[세상 모든 요리를 맛만 보면 그대로 구현할 수 있다.]

이 능력으로 인해, 산하는 이미 채무성이 맛보여 준 요리를 그대로 재현할 수 있었다.

그런데도 그가 배움을 청한 것은 알리바이를 위한 것이었다. 그가 아무리 천재라고는 하나, 딱 한 번 맛만 보고 그대로 재현한다는 건 아무도 못 믿을 일이었다.

노인의 단골이 혹시라도 자신의 식당에 찾아와 맛을 본다면 이상하다고 생각할 수 있었다.

그에게 하루라도 배운 사실이 있어야 세상 모든 이가 받아들이기 쉬우리라 생각되었다.

그와 더불어 남의 솜씨를 함부로 가져오는 건 마음 한편이 불편하기에, 이러는 편이 좋았다.

언젠가 사람들이 맛있게 먹어 줄 생각에 흐뭇하게 웃던 산하는, 본래 목적을 상기했다.

그러고 보니 단서를 찾아야 하는데, 아무것도 못 물어봤네.

초면에 그런 거 물어보면 이상하게 생각할 테니까, 조금 더 친해지면 슬쩍 물어봐야겠다.

교차 검증상으론 그쪽 동네가 맞는 것 같은데 말이야.

* * *

며칠 후.

채무성은 구부정한 허리를 겨우 펴며 윅질 시범을 보였다.

“자, 한번 해 보시게.”

산하는 불편한 오른손이 아닌 왼손으로 윅 손잡이를 잡았다. 식당을 운영하면서 자주 사용한 탓인지 그리 어색하지는 않았다.

단지 서양 요리와 중화요리의 윅질은 다르기에 그 폼이 약간 다를 뿐이었다.

“이렇게요?”

“거기서 힘을 더 줘 보게.”

이내 산하는 그의 말을 완벽하게 수행했고, 노인은 고개를 가만히 끄덕였다.

역시 유명한 요리사라 그런가? 기본기가 탄탄하구만.

그럼, 이건?

노인은 왠지 모를 열정이 불타올라 윅 손잡이를 잡았다. 곧 뜨겁게 달궈진 윅 내부에서 돼지기름이 고소한 내음을 풍겼고, 춘장이 맛깔나는 소리를 내며 볶아졌다.

곧 야채가 투입되자, 뜨거운 불이 솟구치며 불맛을 입혔다. 노인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현란한 솜씨였다.

물론, 윅을 내려놓으며 힘겨운 신음을 내뱉긴 했지만.

“자, 어떤가?”

“네, 스승님, 한번 해 보겠습니다.”

“스승님은 무슨.”

노인은 속으로 좋으면서도 괜히 퉁명스럽게 말했다. 과거 제자를 많이 들였으나, 누구도 자신의 수준까지 배우고 떠나간 이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실망감과 패배감에 휩싸였던 그 얼굴들을 어찌 잊겠는가.

노인 채무성은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려 애쓰며 산하의 손길을 지켜보았다. 그러던 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가 아들에게 들은 바로, 하산해는 그 어디에서도 중화요리를 선보인 적이 없다고 했다.

한데 저 실력은 무엇이란 말인가. 아들놈은 한 달을 배워도 제대로 못 하던 걸, 이 사내는 단번에 해내었다.

손 기술, 불 조절, 재료를 넣는 시와 때. 그 어느 것 하나 적절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단지 오른팔이 불편해서 그 행위에 다소 제한이 있을 뿐이었다.

어찌 한 손으로도 저리 능수능란할꼬.

그는 놀람을 애써 감추며 말했다.

“아주 잘 하시는구만.”

“감사합니다.”

“이 정도면 가르치기가 쉽겠어. 자 다음은…….”

노인은 자신의 대표 요리인 간짜장과 마파두부 만드는 법을 열심히 가르쳤다. 약간의 희망을 담고서.

잠시 후, 산하가 처음으로 만든 간짜장이 완성되었다.

“그럼 맛 한번 볼까?”

노인은 맛에 있어서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보통 손맛이라고도 불리는 요리의 특수성 때문이었다.

같은 조건으로 요리를 만들어도 사람마다 천차만별의 맛을 내기 마련이니.

누군가가 자신의 손맛을 따라 하기는 힘들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의 모든 제자들이 그랬듯이.

해서, 하산해가 아무리 습득이 뛰어난 천재라고는 해도 그대로 재현하기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아니 염두에조차 두지 않았다.

그것도 고작 반나절 가르친 참이니 말해 무엇하랴.

그저 그가 요리로 이름은 높으니, 맛은 뛰어날지언정, 전혀 다른 맛이 튀어나오리라 짐작했다.

채무성은 오랜만에 들인 제자는 어떤 개성을 가지고 있나 궁금해하며 젓가락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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