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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악당 본거지에 입성합니다 (11/102)

11. 악당 본거지에 입성합니다.2021.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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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행히 날이 저물기 전에 우리는 황자궁에 도착할 수 있었다. 우릴 태워 온 블랙이 곧 정원 한복판에 우아하게 착륙했고, 나와 에드도 그에 맞춰 땅에 내려섰다. 그리고 마침내 궁을 가까이에서 보게 된 순간,

16567314591893.jpg“와…….”

나는 감탄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멋져서 흘러나온 감탄은 아니었다.

16567314591893.jpg‘궁이 되게…… 악당들 본거지 같은 분위기네. 에드가 직접 이렇게 꾸몄나?’

그의 정령인 블랙도 검은색, 그가 입은 로브도 검은색이었다. 그걸로도 모자라 본인이 지내는 궁의 외관마저 검은색과 금색으로 꾸며 놓았을 줄이야.

16567314591893.jpg‘본인이 악당이란 거, 사실 알고 있는 거 아니야?’

모르면서도 이렇게 악당 포스를 풍기는 거라면, 그의 타고난 악당 센스(?) 자체가 특출난 게 분명했다. 이걸 참, 재능이라고 해야 할지……. 그렇게 놀라고 있는데 에드가 기습질문을 던졌다.

16567314591907.jpg“마음에 들어?”

16567314591893.jpg“네! 정말로 멋져요!”

차마 속마음을 그대로 말할 순 없기에, 나는 서비스업으로 단련된 미소를 얼굴에 둘렀다. 그 또한 그에 맞춰 화사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어쩌면 우린 서로가 서로에게 비즈니스용 미소를 짓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언제 나왔는지, 에드의 궁에서 일하는 사용인들이 우릴 향해 고개를 숙여 왔다.

16567314591916.jpg“오셨습니까, 전하.”

나는 그들을 쭉 둘러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16567314591893.jpg‘한나는 아직 도착 못 했나 보네.’

그들 사이에 한나가 없었다. 그녀가 나보다 더 먼저 출발하긴 했지만, 하늘을 날아온 나보다 빠르게 도착하긴 어려웠던 듯했다. 실망에 젖어 있을 틈도 없이, 이번엔 연미복 차림의 남자가 다가와 인사했다.

16567314591927.jpg“전하, 무탈하게 다녀오셨습니까?”

복장이나 태도로 보건대 집사쯤 돼 보였다. 그리고 에드의 집사답게 그 또한 유독 악역 같은 인상이었는데, 덕분에 나는 그의 정체를 대강 짐작할 수 있었다.

16567314591893.jpg‘날카롭게 찢어진 눈매의 흑발 남자……. 이 사람이 혹시 킬리안?’

킬리안은 원작에서 에드의 왼팔이자, 지략가 역할의 수하로 등장했었다. 거기에 ‘날카로운 눈매를 가진 흑발 남자’로 자주 묘사됐었던 걸 생각해보면, 이자가 그 킬리안일 가능성이 컸다. 이어진 에드의 말을 듣고서 나는 내 예상이 옳았음을 곧장 알게 됐다.

16567314591907.jpg“킬리안. 이쪽이 내가 얘기했던 그 약혼녀, 레냐야. 인사하도록 해.”

16567314591927.jpg“처음 뵙겠습니다, 레냐 님. 저는 킬리안…… 전하의 보좌관으로 지내고 있는 자입니다.”

킬리안이 나를 향해 정중히 허릴 숙였다가 폈다. 그러곤 다시 입을 열었다.

16567314591927.jpg“약혼에 관한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황자비가 되실 분이니 앞으로 부족함 없이 모시겠습니다.”

약혼 얘길 이미 들었다는 데서 잠깐 이상함을 느꼈지만, 그보단 눈앞에 있는 킬리안 자체에 더 관심이 갔다.

16567314591893.jpg‘역시나 이 남자가 킬리안이었어.’

그는 다방면으로 능력이 좋은 사람이었다. 그러니 원작에서처럼 소 닭 보듯 할 게 아니라, 미리 친해지는 게 좋을 듯했다. 다행히 나는 그의 호감을 쉽게 살 방법을 알고 있었다.

16567314591893.jpg“처음 봬요, 킬리안. 저도 잘 부탁드려요. 그리고…….”

나는 그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을, 비장의 무기를 비로소 내밀었다.

16567314591893.jpg“정말로 멋진 넥타이네요.”

16567314591927.jpg“……!!”

내가 그의 넥타이를 칭찬하자마자 그의 몸이 휘청거렸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그의 마음을 빼앗는 그 비장의 무기였다. 그는 패션…… 그중에서도 넥타이에 상당히 집착하는 ‘넥타이 매니아’라, 작은 칭찬만 건네도 이렇게 정신을 못 차리는 것이다.

16567314591927.jpg“이 넥타이의 아름다움을 알아보시다니……. 역시나 보통 감각을 지닌 분이 아니시군요.”

16567314591893.jpg“별말씀을.”

16567314591927.jpg“벌써 제 혼을 다 바쳐서 모시고픈 기분입니다. 그러니 저를 포함하여 이곳 사용인들에게는 말을 편히 낮춰 주십시오.”

16567314591893.jpg“으음, 그래도 될……까?”

16567314591927.jpg“물론입니다. 전하와 혼인을 약속하신 분이니 응당 그러셔야 합니다.”

16567314591893.jpg“알겠어, 킬리안. 그럼 그렇게 하도록 할게.”

역시나 넥타이 칭찬의 약발은 대단했다. 만난 지 5분도 안 돼 그가 벌써 내게 호감의 눈빛을 보내오고 있었다. 그렇게 나와 킬리안이 서로에게 끈끈(?)한 시선을 보내고 있을 때, 에드가 끼어들었다.

16567314591907.jpg“자, 인사는 그쯤 하고…… 킬리안, 저녁 만찬은 잘 준비되고 있어?”

16567314591927.jpg“물론, 명령 주신 대로 최고의 만찬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16567314591907.jpg“좋아. 그럼 가서 만찬 준비에 집중하도록 해. 난 레냐한테 궁 안내 좀 해 줄 테니까.”

16567314591927.jpg“예, 전하.”

킬리안은 고개를 꾸벅 숙이곤 에드의 명령에 따르고자 사라졌다. 다른 사용인들도 전부 돌려보내고서, 에드는 나를 궁의 정문으로 이끌었다. 나는 그 틈에 에드에게 물었다.

16567314591893.jpg“만찬을 준비해 두라고 하셨어요?”

16567314591907.jpg“응, 당연하지. 네게 대접해 줘야 하니까.”

16567314591893.jpg“하지만…… 어떻게요? 저희가 함께 오기로 한 건 바로 어제였잖아요. 어떻게 저랑 약혼하고, 함께 도착할 걸 킬리안에게 하루 만에 전달할 수 있었죠?”

물론 이동이 빠른 정령을 통해서 서신을 전달한다면야 하루 만에 전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에드의 정령은 우릴 태워서 여기까지 오느라 그럴 만한 시간이 없었다. 즉, 그에겐 하루 안에 서신을 황자궁까지 보낼 만한 방법이 없는 것이다.

16567314591893.jpg‘마법을 써서 원격으로 연락을 취한 게 아닌 이상 불가능한 일일 텐데? 혹시 벌써 그 정도 수준의 마법을 배웠나? 그게 아니면…….’

불길한 생각을 떠올려 버린 나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16567314591893.jpg‘마법을 사용하는 다른 수하를 이미 거느리고 있는 건가? 예를 들면 이시스라든가…….’

이시스, 그 사악한 이름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어깨에 소름이 올라왔다. 킬리안은 능력이 있어도 오직 에드에게만 그 능력을 썼으니 그리 위험하지 않지만, 이시스는 달랐다.

16567314591893.jpg‘그 여자…… 아니, 그 남자라고 해야 하나? 여하간 너무 위험한 인간이야. 벌써 에드 옆에 붙어 버린 상황이면 곤란한데.’

그와 에드를 애초에 못 만나게 하는 건 쉽다. 그러나 이미 만난 걸 떨궈 놓으려면 배 이상으로 힘이 들어갈 터였다. 심각한 얼굴로 굳어 있었더니 에드가 설명했다.

16567314591907.jpg“내가 공작성에 있을 때, 킬리안이 본인 정령을 통해서 내게 서신을 보냈었어.”

16567314591893.jpg“킬리안이요?”

16567314591907.jpg“응. 언제 올 거냐고 묻길래, 오늘 너와 함께 도착할 것 같다고…… 나도 그렇게 킬리안 정령을 통해서 답장했고. 만찬을 준비하란 지시도 그때 내렸던 거야.”

16567314591893.jpg“아아…….”

마법으로 연락을 주고받은 건 아닌 듯했다. 아니면 에드가 내게 거짓말을 하는 중이거나.

16567314591893.jpg“…….”

나는 잠깐 에드를 의심의 눈초리로 살피다가, 이내 관두었다.

16567314591893.jpg‘걱정도 너무 많이 하니까 피곤하네. 괜찮겠지 뭐. 아까 사용인들이 전부 나왔을 때도 이시스로 보이는 사람은 없었으니까.’

내가 그리 판단하고 표정을 풀자, 에드도 따라서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16567314591907.jpg“이제 좀 궁금증이 풀렸어? 계속 가도 되지?”

16567314591893.jpg“네, 시간 끌어서 죄송해요. 안내 부탁드릴게요.”

놀란 심장을 진정시키고 나자 비로소 화려한 궁 내부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추운 북부에 있는 공작성과 이곳은 분위기가 정말로 달랐다. 모든 게 더 산뜻하고, 화려하고, 세련된 느낌이었다. 그리 감탄하며 걷다 보니 어느새 2층 침실 앞이었다. 에드가 문을 열어 주며 나를 그 안으로 안내했다.

16567314591907.jpg“여기서 지내면 될 거야. 한번 들어가서 봐 봐.”

그의 말을 듣고서 내 전용 침실에 들어선 순간 감탄이 흘러나왔다.

16567314591893.jpg“와…….”

아까와 달리, 이번 감탄은 멋져서 흘러나온 순수한 감탄사가 맞았다.

16567314591893.jpg‘완전 소녀 취향 제대로 저격해 놨네?’

물론 궁의 외부는 좀 악당 소굴 같은 느낌이긴 했지만, 내 방만은 다행히 그렇지 않았다. 덕분에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들뜨게 되었다.

16567314591893.jpg“정말 따스하고 예쁜 방이네요. 특히 커튼……. 북부에서 지낼 땐 저런 투명한 레이스 커튼은 꿈도 못 꿨거든요. 두꺼운 모직 커튼이 아니면 밤에 한기가 고스란히 들어와서요.”

16567314591907.jpg“그래?”

16567314591893.jpg“네, 그래서 이렇게 레이스가 살랑이는 커튼을 보니까 정말…… 정말로 좋아요.”

나는 다가오라고 손짓하듯 살랑이는 커튼을 멍하니 보다가, 창가로 향했다. 그곳에 서자 노을로 물든 정원이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16567314591893.jpg‘예쁘다…….’

노을빛이 깔린 그곳은 모든 게 아름답게 붉었다. 붉은 잔디, 붉은 정원석, 붉은 분수대…… 그리고 붉은 머리카락을 휘날리고 있는 사람.

16567314591893.jpg“……?!”

붉은 머리카락을 휘날리던 이와 눈 마주친 순간, 나는 뒤로 물러섰다. 온몸의 솜털이 곤두섰다. 마치 봐선 안 될 것을 끝끝내 보아 버린 것처럼.

16567314591893.jpg‘방금 설마……?’

부디 내가 본 것이 ‘그것’이 아니길 기도하며, 다시 그 방향을 살폈다. 다시 봤을 땐 그곳에 아무것도 없었다.

16567314591907.jpg“레냐? 왜 그래?”

16567314591893.jpg“조금…… 한기를 느껴서요. 오는 길에 계속 멀미를 해서…… 몸 상태가 안 좋은가 봐요.”

16567314591907.jpg“그래? 그럼 어서 쉬는 게 좋겠다. 만찬이 준비되려면 아직 시간도 많이 남았으니까.”

그는 나를 침대까지 부축해 주곤, 종을 울려 근처에 있던 시녀들을 불렀다.

16567314591907.jpg“레냐에게 편한 옷과 씻을 물을 가져다주도록 해.”

16567314591916.jpg“예, 전하.”

시녀들은 물과 옷을 가지러 분주하게 움직였다. 그러는 동안에도 내 몸의 떨림은 멈추지 않고 있었다.

16567314591893.jpg‘아까 그건…… 피곤해서 잘못 본 거였겠지……?’

언뜻 본 듯한 그자의 형상이 자꾸 머릿속에 어른거렸다. 카펫에 묻은 기름 얼룩처럼 흐릿하면서도, 좀처럼 기억에서 지워지질 않았다.

16567314591907.jpg“레냐, 괜찮겠어? 너무 힘들면 만찬은 취소해도 돼.”

에드의 목소릴 듣고서야 비로소 정신이 들었다. 나는 곧 고개를 내저었다.

16567314591893.jpg“아니요. 킬리안과 다른 사용인들이 힘들게 준비해 줬는데 그 성의를 수포로 만들고 싶진 않아요. 그리고 무엇보다…….”

16567314591907.jpg“……?”

16567314591893.jpg“전하께 폐 끼치지 않으려면 제가 하루빨리 황자비 역할을 소화해야 하니까요. 그걸 위해선 오늘 자리에 참석해서 분위기 파악을 끝내고, 사용인들 얼굴까지 어느 정도 익혀둬야만 하고요.”

열의를 보여 주면 기뻐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기뻐하기보다는 놀란 듯했다. 평소보다 조금 더 크게 뜨인 눈으로 나를 응시하기만 하다가, 한참 지나서야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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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67314591907.jpg“……내가 고작 나 하나 편해지자고 아픈 네게 무리한 일정을 강요할 것 같아? 힘들면 정말로 쉬어도 괜찮아. 적응이야 천천히 하면 그만이지.”

그가 내 손목을 감싸듯 부드러이 붙잡아 왔다. 몹시도 따뜻한 손길이었다. 전부 연기라는 걸 알면서도 한순간 마음이 흔들렸을 만큼. 그 즉시 나는 흔들리려는 마음을 다잡았다.

16567314591893.jpg‘거짓말……. 불필요하고 방해만 된다고 판단되면 약혼녀든 뭐든 바로 내칠 거면서.’

그가 나를 아무리 무르게 대하더라도 나까지 정말로 무르게 행동할 순 없었다. 저 가면 밑에 숨겨진 진짜 표정이 얼마나 차가운지 충분히 알고 있으므로.

16567314591893.jpg“저를 위해 주시는 그 마음은 감사히 받을게요. 하지만 괜찮아요. 그냥 지금은 조금 쉬고 싶을 뿐이에요.”

그는 의미를 알기 어려운 눈빛으로 나를 살피더니,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16567314591907.jpg“……알겠어. 그럼 푹 쉬다가 시간 맞춰서 내려오도록 해.”

16567314591893.jpg“네, 이따가 봬요.”

그가 설득을 관두고 떠난 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시녀들이 옷과 물을 가져왔다. 몸을 대충 씻어 내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자 자연스레 눈이 감겨 왔다.

16567314591893.jpg‘쉬면 다 괜찮아질 거야.’

오는 길에 그 고생을 했으니 헛것을 볼 만도 했다. 그러니 자면서 체력을 회복하면 괜찮아 지리라 여기며, 나는 포근한 침대 속에 파묻혔다. * * * 에드가 본인 침실에 도착했을 즘, 그의 얼굴 위에서 부드러운 미소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사막의 밤처럼 메마르고 차가운 냉기만이 그 자리에 대신 남아 있었다. 생각할 것이 많았던 그는 침실에 들어서자마자 말없이 시종들을 물렸다. 그러곤 먼지투성이 옷을 홀로 벗어 내며 생각했다.

16567314591907.jpg‘왜 날 보면서 그런 표정을 지었던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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