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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냠냠이로 길들입시다 (16/102)

16. 냠냠이로 길들입시다2021.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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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드의 말을 끝까지 듣고 나서야 비로소 나는 전부 이해할 수 있었다.

16567315387195.jpg‘물약을 너무 조금 만들어줘서가 아니었어. 오히려 평균치보다 지나치게 많이 만들어줘서…… 그래서 놀란 거였어!’

그걸 알고 나자 부끄러움이 씻은 듯 가셨다. 그사이 에드가 또다시 내게 물었다.

16567315387198.jpg“본인이 어느 수준인지 잘 모르는 걸 보니 신관으로부터 정식으로 교육받아 본 적 없는 것 같은데, 맞지?”

16567315387195.jpg“네. 성력 운용부터 물약 만드는 것까지, 전부 독학으로 배웠어요.”

16567315387198.jpg“이런…….”

그가 “안타깝네…….”라고, 흘리듯 중얼거렸다. 그러곤 킬리안 쪽으로 몸을 돌렸다.

16567315387198.jpg“킬리안, 레냐에게 붙여 줄 신관을 찾아봐. 가르쳐 본 경험이 풍부한 인물 위주로. 아, 신학교 교원으로서 근무한 경력이 있으면 더 좋고.”

그가 킬리안에게 내린 명령을 듣고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16567315387195.jpg“가르쳐 본 경험……? 제게 가정교사를 붙여 주시려는 건가요?”

16567315387198.jpg“물론이지. 지금 넌 굉장히 값진 원석을 지닌 거야. 원석인 채로 놔두면 너무 아깝잖아. 갈고 닦아서 보석으로 만들자.”

단순히 내 능력을 인정해 주는 걸 넘어서, ‘보석 원석’이라고까지 말해 주었다. 그 대단한 칭찬 덕분에 마음 한쪽 구석이 기분 좋게 간질거렸다. 다만, 마냥 기뻐하며 웃을 순 없었다.

16567315387195.jpg‘능력을 높게 사 준 건 고마운데, 신관 몸값이…… 장난 아니지 않나? 신학교 교원 경력까지 있는 사람을 데려오려면 돈 엄청 깨질 텐데?’

내가 이 궁에서 이미 놀고먹는 상황이긴 해도 생활비를 많이 쓰는 편은 아니었다. 그에게 나 하나 먹여 살리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닐 터였다. 하지만 거기에 신관을 고용해 버리면?

16567315387195.jpg‘나 때문에 생기는 지출이 거의 두 배로 뛸지도 몰라. 나중에 이혼하면 생판 남 될 관계인데 그 정도로 의지하는 건 좀…….’

마침 에드가 내 그런 불편한 마음을 꿰뚫어 본 듯했다. 매서운 시선을 보내면서 물었다.

16567315387198.jpg“설마 비용을 걱정하는 건 아니지?”

정곡이었다. 차마 아니라고 말은 못 하고 침묵만 지켰더니 그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16567315387198.jpg“레냐……. 알잖아, 내 투자 안목이 썩 나쁘지 않다는 거.”

16567315387195.jpg“……물론 알죠.”

16567315387198.jpg“여러 투자처에서 들어오는 이익금만으로도 이미 작은 영지 몇 개를 구매할 정도는 돼. 황자로서 받은 재산을 제외해도 말이야.”

16567315387195.jpg“……?!”

16567315387198.jpg“단언하는데, 내 재정 상황은 네가 걱정할 만한 수준이 절대 아니야.”

그가 장난스럽게 눈가를 찌푸렸다.

16567315387198.jpg“나를 이 나이 될 때까지 영지 세금으로 놀고먹기만 한, 한심한 놈으로 보지 말아 줬으면 해.”

16567315387195.jpg“네?! 전하를 그렇게 생각한 적 한 번도 없어요!”

16567315387198.jpg“그럼 부담 가질 필요 전혀 없잖아. 게다가 너에 대한 투자는 나에 대한 투자이기도 하거든. 내 약혼녀니까.”

절대 마음 주지 않겠다고 다짐했음에도 한순간 또 심장이 뛰었다. 반칙이나 다름없이 잘생긴 얼굴로 이런 상냥한 말을 해 대다니……. 이러면 레냐 뿐 아니라 누구라도 속절없이 넘어갔겠구나 싶었다. 어쨌든 덕분에 그에게 금전적 폐를 끼칠지도 모른단 생각은 많이 사라진 상태였다.

16567315387195.jpg“으음……. 알겠어요. 열심히 배워 볼게요. 우리 모두에게 도움이 되도록.”

그제야 그는 제 무기와 치유의 물약들을 챙겨서 다시 연무장으로 갔다. 거기서 기사들을 데리고 이것저것 점검할 게 많다고 했다. 킬리안 또한 내게 붙여 줄 신관을 찾아봐야 한다며 바빠졌다.

16567315387195.jpg‘가정교사라……. 어떤 사람이 오려나?’

잘은 모르겠지만, 점잖고 고지식한 사람일 듯했다. 예컨대 원작의 남주인공이었던 ‘루카스’처럼. 성직자들은 대개 그런 이미지인 것이다.

16567315387195.jpg‘누가 오든 열심히 해야지.’

만나기 전까진 알 수 없을 인연에 대해 이것저것 추측하는 건 무의미했다. 나는 쓸데없는 생각을 털어 낼 겸 기지개를 쭉 켜곤, 전날 밤에 심심풀이로 읽던 책이나 마저 읽어 내려갔다. * * * 에드는 실제로 마족을 잡을 수 있을 만큼의 병력이 준비된 다음에서야 비로소 출정했다. 보여주기식 토벌이라고 대충대충 했다가는 눈치 빠른 이들이 자작극을 꿰뚫어 볼 수도 있기에, 준비부터 그토록 심혈을 기울였다. 그랬음에도 광산으로 이동하는 내내 그는 걱정에 잠겨 있었다.

16567315387198.jpg‘별일 없어야 할 텐데.’

에드 자신을 걱정하는 건 아니었다. 궁에 혼자 남겨 두고 온 약혼녀의 안위가, 그는 걱정스러웠다. 중요한 약혼녀인 만큼 몰래 호위도 붙여 두었고, 그녀에게 해코지할 가능성이 있는 이시스도 자신이 데려왔지만…….

16567315387198.jpg“쯧.”

그래도 여전히 걱정은 줄어들지 않았다. 그때였다.

16567315417576.jpg“전하? 전하!”

16567315387198.jpg“……?”

그가 돌아보자, 에드를 한 번 더 목청껏 부르려던 알렉시스가 입을 다물었다.

16567315417576.jpg“토벌 때문에 심란하십니까? 여러 번 불러도 대꾸가 없으셔서, 무슨 일 난 줄 알았습니다.”

16567315387198.jpg“잠깐 생각할 게 있었어. 그보다 부른 이유는?”

16567315417576.jpg“제법 많이 왔으니 이쯤에서 행군을 멈추고 식사하는 게 어떨지요?”

레냐를 생각하는 동안 어느새 상당히 많은 거리를 와 있었다. 다른 병사들 때문에 마음껏 날아서 이동할 수 없으니 빠른 속력은 아니었다고 해도, 반나절 정도 더 가면 목적지에 닿을 듯했다.

16567315387198.jpg“그래. 이 언덕만 넘고서 멈추지.”

에드의 명에 따라 병사들은 언덕을 넘어, 그 앞에 있던 평야에 자리를 잡았다. 에드 또한 수하들과 함께 적당한 자리에 앉았다. 그러곤 직사각형 모양의 나무통을 가방에서 꺼냈다.

16567315387198.jpg‘드디어 이걸 열어 볼 순간이 온 건가?’

그것은 레냐가 그에게만 몰래 챙겨 준 간식이었다.  

16567315387195.jpg“출출하실 때 열어 보세요.”

16567315387198.jpg“간식이야?”

16567315387195.jpg“네, 생소할지도 모르지만, 분명 마음에 드실 거예요.”

  ‘생소’할지도 모른다는 말에 내용물이 몹시도 궁금했었다. 그렇다고 병사들이 뒤따라오는 상황에서 열어 볼 순 없으니, 이동 내내 호기심을 꾹 참아 온 것이었다.

16567315387198.jpg‘생소할 거라니. 대체 뭘 준비했길래.’

그는 내심 기대한 채로 간식 통을 열었다. 마침내 보게 된 그 간식은, 레냐가 한 말대로 몹시 생소했다.

16567315387198.jpg‘상당히 독특한 형태……. 이게 뭐지?’

그는 가운데가 뚫려 있는 원형의 빵 조각을 조심스레 집어 들었다. 그것은 그녀가 살던 세계에는 있지만, 그가 사는 이곳엔 존재하지 않는…… 흔히 ‘도넛’이라 불리는 그 음식이었다. 그리고 생전 처음으로 도넛을 본 에드의 감상은 간단했다.

16567315387198.jpg‘썩 먹음직스럽게 보이진 않는데?’

보통의 빵과 다르게 조금 기름지고, 표면에 하얀색 뭔가가 덕지덕지 묻어 있는 점이 신기하긴 했다. 다만 그뿐이었다. 조금 재밌게 생겼다는 점을 제외하면, 여느 빵과 다르지 않아 보였다.

16567315387198.jpg‘하긴. 곱게 자란 영애가 베이킹 같은 걸 해 봤을 리 없지.’

베이킹을 포함하여 온갖 생산행위는 원래 평민들의 몫이었다. 공작 영애인 그녀의 역할은 그 좋은 생산품들을 그저 우아하게 앉아서 소비하는 것뿐. 빵 한가운데에 뚫려 있는 구멍도, 아마 밀가루를 처음 만져본 그녀가 반죽에 실수를 해서 생겼을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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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67315387198.jpg‘그렇다고 버릴 순 없으니…….’

레냐를 서운하게 만들었다간 순탄한 결혼 생활은 물 건너갈 터. 거기까지 계산을 마친 그는 억지로 그것을 집어 들어 베어 물었다.

16567315387198.jpg“……?”

외양은 평범한 빵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그래서 보나 마나 퍽퍽하고 몰개성한 맛일 거라고 예상했었다. 그러나 그것을 한입 베어 문 순간…… 예상 못 한 부드러운 단맛이 입 안에 퍼져 나갔다.

16567315387198.jpg‘촉촉해. 게다가 적당히 기름지고…… 무엇보다, 달아.’

도넛은 평소 달달한 간식을 즐겨 먹는 그를 단숨에 사로잡았다. 어느새 그는 손에 들린 것을 다 먹어 치우고, 두 번째 것을 입가로 가져가고 있었다.

16567315387198.jpg“……!”

두 번째 도넛을 베어 물자 이번엔 고소하게 달콤한 코코넛 향기가 혀를 적셨다. 물론 그것 또한 그의 취향을 완벽하게 저격하는 맛이었다. 애초에 그것들 전부 레냐가 킬리안에게 조언을 구하여 만든 도넛인 까닭이었다. 킬리안은 에드가 좋아하는 맛을 잘 알고 있었다. 덕분에 레냐도 에드의 입맛에 딱 맞는 토핑들로만 도넛을 꾸밀 수 있었다. 본인도 모르는 사이, 그는 벌써 세 번째 도넛으로 손을 뻗고 있었다.

16567315417576.jpg“전하? 지금 뭘 드시는 겁니까?”

알렉시스가 먼저 묻자, 근처의 다른 기사들도 에드의 간식을 흘깃거렸다.

16567315453387.jpg“동그란 빵? 이런 모양은 처음 봅니다.”

16567315453387.jpg“뭔가 뿌려져 있는 것 같기도 하고…….”

16567315453387.jpg“꽤 많은데, 혹시 레냐 아가씨께서 저희와 함께 나누라고 준비해 주신 간식입니까?!”

도넛을 바라보는 그들의 눈빛에 어느덧 식탐이 깃들어 있었다. 입에 고인 침을 꿀꺽, 삼키는 모습이 꼭 굶주린 승냥이 떼를 연상시켰다. 한 조각이라도 던져 달라고 눈빛으로 호소하는 그들에게 에드가 생긋 웃으며 말했다.

16567315387198.jpg“아니. 혼자 몰래 먹으라고 챙겨 준 간식이다. 너희는 너희들 애인이 챙겨 준 걸 먹도록.”

16567315453402.jpg“예에…….”

실망한 소릴 내며 그들은 마른 고기와 퍽퍽한 빵으로 배를 채웠다. 물론 그러거나 말거나 에드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고, 마지막 도넛까지도 혼자서 맛있게 먹어 버렸다. * * * 나는 창가를 멍하니 내다보며 걱정에 젖었다.

16567315387195.jpg‘도넛은 잘 먹었으려나?’

한나와 킬리안의 도움을 받아서 열심히 튀긴 간식이었다. 이 세계에 없는 간식을 만들려다 보니, 재료 찾는 것부터가 상당히 힘들었었다. 다행히 부유한 황자궁엔 온갖 식재료가 다 있었다. 덕분에 어찌저찌 간신히 도넛을 완성시키는 게 가능했다.

16567315387195.jpg‘꽤 고생하긴 했지만…… 맛있는 음식만큼 사람 꾀는 데 효과적인 게 없단 말이지?’

경계심 강한 길고양이들도 냠냠이(?) 앞에선 무력해지지 않던가. 그리 생각해 보면 새벽부터 반죽하느라 부지런히 움직인 보람은 충분히 있었다. 덕분에 무탈하게 도넛을 챙겨 보냈으니, 이제 다음 퍼즐 조각을 맞춰야겠다고 생각했을 때였다. 마치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딱 맞춰서 킬리안이 나를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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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67315387195.jpg“응, 일단 들어와서 앉아.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거든.”

나는 킬리안에게 자리를 권하는 동시에, 한나에게 눈짓으로 신호를 보냈다. 한나는 아까 내가 명령해 둔 대로 미리 챙겨 둔 도넛과 차를 그에게 내주었다.

16567315474927.jpg“오, 이게 전하께 드렸다는 그 도…….”

16567315387195.jpg“도넛.”

16567315474927.jpg“예, 그 도넛이라는 음식입니까?”

16567315387195.jpg“맞아. 전하께 드리고 남은 걸 몇 개 챙겨 놨어. 한번 먹어 봐.”

그는 내 권유에 머뭇거렸다. 에드를 위해서 내가 직접 만든 음식을 자신이 먹어도 되는지, 걱정하는 듯했다. 내가 한 번 더 권하고 나서야 겨우 그가 도넛을 입가로 가져갔다.

16567315474927.jpg“……!!”

도넛을 베어 문 즉시 그의 눈이 크게 뜨이는 걸 보고, 내가 물었다.

16567315387195.jpg“어때?”

16567315474927.jpg“평범한 빵과 달리 아주 촉촉하군요. 생소한데도, 상당히 맛있습니다.”

16567315387195.jpg“마음에 든다니 다행이야. 많이 남았는데 더 줄까?”

16567315474927.jpg“더 주신다면 저야 환영이지요.”

그는 거기에 홍차까지 곁들여 가며 행복한 도넛 타임을 즐겼다.

16567315387195.jpg‘잘 먹어줘서 다행이다. 적당히 배불러야 내 얘기도 더 열린 마음으로 들어 줄 테니까…….’

원활한 대화를 이끌어 가기 위해 나는 킬리안이 배를 채우길 기다렸다. 그렇게 그가 접시를 거의 비워 갈 즘. 비로소 나도 슬쩍 입을 열었다.

16567315387195.jpg“그래서, 내가 킬리안을 부른 이유를 보여 줄까 해.”

구태여 말로 할 필요 없었다. 나는 직접 자리에서 일어나, 옷장을 열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 안에 들어 있던 내용물을 보게 된 킬리안은…….

16567315474927.jpg“그, 그건……?!”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한 채, 그대로 얼어붙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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