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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왜 갑자기 예뻐 보이지? (21/102)

21. 왜 갑자기 예뻐 보이지?2021.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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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시스는 본인이 말했던 대로 날이 밝자마자 마탑으로 떠났다. 다만, 떠날 때 에드에게 괜히 찜찜한 말을 남기는 것도 잊지는 않았다.  

1656731627675.jpg“제가 떠난 뒤에도 부디 기억하십시오. 사사로운 감정 따위에 휩쓸려서 대의를 잊어선 안 된다는 것을…….”

  그리 경고하며 그는 에드 옆에 있던 레냐를 눈짓으로 힐끔힐끔 가리켰다. 그 사사로운 감정을 유발하는 게 누구인지 알려 주기라도 하듯이. 그러곤 다시 음흉한 목소리로 에드의 귓가에 속삭였다.  

1656731627675.jpg“감정에 휩쓸려 한낱 우매한 것들에게 정을 주었다가 ‘그분’께서 어떻게 되셨는지, 이미 아시지 않습니까?”

  그가 말하는 ‘그분’이 에드 자신의 어머니를 뜻함을, 에드는 곧바로 알아들었다. 감히 어머니를 들먹이는 그 건방진 모습에 또다시 화가 폭발하려는 찰나-  

1656731627675.jpg“물론 제 눈과 마음이 항상 당신께 향해 있으니 그렇게 되기 전에 제가 먼저 나설 것이지만 …….”

  눈치 빠른 이시스는 마지막으로 거기까지만 말한 뒤 곧장 떠났다. 에드의 인내심이 어느 선에서 끊어지는지 정확히 알고 있던 듯했다. 그때를 떠올리며 에드는 주먹을 꽉 틀어쥐었다.

16567316276763.jpg‘건방진 놈. 진작 내보냈어야 했어.’

생각할 때마다 속이 끓었다. 당시 옆에 레냐가 있어서 최대한 참을 수밖에 없었던 게 한스러울 뿐이었다. 그가 그렇게 불쾌한 생각에 잠겨 있을 때,

16567316276845.jpg“전하?”

레냐가 그를 불러왔다. 그녀의 걱정 가득한 눈빛을 본 순간 비로소 정신이 들었다.

16567316276763.jpg‘너무 찌푸리고 있었나?’

봄꽃 향기가 가득한 정원에서 약혼녀와 평화롭게 티타임을 즐기는 중에 인상을 쓰다니, 안 될 일이었다. 그가 표정을 풀자 레냐가 물어 왔다.

16567316276845.jpg“혹시 이번 간식이 입에 안 맞으세요? 갑자기 말씀도 안 하시고 인상도 그렇게…….”

전에 간식이 정말로 맛있었다고 말해 준 뒤부터였을까? 이따금 그녀는 새 간식을 만들어서 가져다주고 있었다. 오늘도 그들은 에드의 쉬는 시간을 틈타서 함께 ‘꿀타래’라는 걸 맛보는 중이었다. 거미줄처럼 얇고 달콤한 실뭉치 안에 설탕과 견과류를 집어넣은 간식이었다. 대체 어떻게 만든 건지 짐작조차 못 하겠지만, 어쨌든 이번 간식도 그의 입맛을 완벽하게 사로잡았다. 까닭에 그는 레냐의 물음에 단호히 대답할 수 있었다.

16567316276763.jpg“아니, 간식은 정말로 맛있게 잘 먹고 있어. 그냥 좀 걱정거리가 있어서.”

16567316276845.jpg“걱정? 심각한 건가요?”

그가 다시 고개를 내저었다.

16567316276763.jpg“심각한 건 아니고, 슬슬 공작에게서 답신이 올 때가 됐는데 아직 기별이 없으니까. 무슨 문제가 생긴 건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16567316276845.jpg“아아, 그런 거면 걱정하지 마세요. 곧 올 거예요. 저희 아버지가 그래도 서신 하나는 확실하게 재깍재깍…….”

안심한 얼굴로 대꾸하던 레냐가 문득 허공을 보며 말을 줄였다. 이윽고 그녀의 입술 새로 가벼운 웃음이 흘렀다.

16567316276845.jpg“혹시 그거 아세요? 동방의 어느 먼 나라에는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라는 속담이 있대요.”

16567316276763.jpg“음? 호랑이?”

16567316276845.jpg“네, 어떤 대상에 관해 얘기하고 있을 때, 신기하게도 그 대상이 딱 맞춰서 나타나는 상황에서 쓰는 말이죠. 마치 지금처럼요.”

레냐가 에드의 뒤를 손끝으로 가리켰다. 그에 따라 에드는 뒤를 돌아보았고, 날아오는 부엉이 형상의 정령을 곧 발견하게 되었다. 정령은 이내 그들 머리 위까지 날아와서 둘둘 말린 편지를 툭, 떨어트리곤 그대로 떠나갔다. 공작에게서 온 서신임을 이미 알고 있던 모양이다. 레냐는 자연스럽게 그것을 주워서 에드에게 건넸다.

16567316276845.jpg“호랑이가 왔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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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신을 건네주며 보인 레냐의 미소가 유독 싱그러워 보였던 건, 갓 싹트기 시작한 봄꽃들의 향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부드럽게 곡선을 그리는 입술, 실바람에 살랑거리는 잔머리……. 그녀가 찰나의 순간 보여 준 그 모습은 그의 무채색의 눈동자 속에 아로새겨졌다. 물론 그 모든 과정 또한 찰나에 지나지 않았고, 그는 태연히 제 앞으로 온 그 서신을 받아 들었다. 그러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것을 읽어 내려갔다.

16567316276763.jpg“……!”

좀 전에 레냐 탓에 잠깐 멍해지고 말았지만, 정신을 똑바로 차리려고 굳이 애쓸 필요는 없었다. 그 편지 안에 정신이 번쩍 들, 충격적인 내용이 이미 적혀 있었으니까.

16567316276763.jpg“이런…….”

딱딱하게 굳은 그의 표정을 보고 레냐도 곧 불안함을 내비쳤다.

16567316276845.jpg“아버지가 뭐라고 적으셨어요? 혹시 무례한 요구 같은 게 적혀 있는 건 아니죠? 아니면 허락 없이 도망치듯이 떠난 거니까 결혼도 허락 못 해 준다든가…….”

16567316276763.jpg“그게 아니라…….”

그가 무거운 한숨을 푹 내쉬었다.

16567316276763.jpg“일단, 차분한 마음으로 들어. 조금 나쁜 소식이니까.”

16567316276845.jpg“……네, 말씀해 주세요.”

16567316276763.jpg“네 오빠, 그러니까 니콜라스 공이…… 쓰러졌다는 모양이야.”

16567316276845.jpg“……?!”

그의 말이 끝난 순간 레냐는 들고 있던 포크를 떨어트렸다.

16567316276763.jpg“현재 치료받는 중이라, 결혼식 준비가 조금 더뎌질 수 있다고 적혀 있어. 공작은 네가 걱정할 테니까 사실대로 말하지 말고 적당히 둘러대라는데…… 이런 중요한 얘길 숨기는 건 좀 아닌 것 같아서.”

16567316276845.jpg“……편지…… 제가 봐도 될까요?”

16567316276763.jpg“물론.”

건네받은 서신을 읽어 내려갈수록 그녀의 낯빛이 굳어졌다. 그만큼 충격에 젖은 모습은 처음이라, 에드는 가만히 그녀를 불러 보았다.

16567316276763.jpg“레냐?”

16567316276845.jpg“저 잠깐 오빠 좀 보고 와야 할 것 같아요. 중요한 때에 시간 끌어서 죄송해요. 하지만 닉 오빠는 저한테 정말로…….”

16567316276763.jpg“설득하려고 애쓸 필요 없어. 허락이 필요한 일이 아니잖아. 걱정되면 당연히 다녀와야지.”

16567316276845.jpg“……감사해요.”

지금 바로 짐을 싸서 떠나려는 생각인지 레냐는 곧장 자리를 벗어났다. 정원에 혼자 남겨진 에드는 아직 접시에 남아 있던 간식을 말없이 입에 넣었다.

16567316276763.jpg“…….”

단맛이 혀를 적셔가는 중에 떠오른 것은, 왜인지 레냐의 얼굴이었다. 그녀가 보인 웃는 얼굴, 그리고 오빠의 소식을 듣고서 보인 당황한 얼굴 등이 떠올랐다. 그러나 입 안에 남았던 모든 단맛이 사라진 뒤 떠오른 것은―  

1656731627675.jpg“감정에 휩쓸려 한낱 우매한 것들에게 정을 주었다가 ‘그분’께서 어떻게 되셨는지, 이미 아시지 않습니까?”

  그렇게 말하며 웃던, 이시스의 얼굴이었다.

16567316276763.jpg‘사사로운 감정이라…….’

문득 기분이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그는 접시에 남아 있던 간식을 기계적으로 씹어 삼키고는 곧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급한 맘에 한나를 부를 정신도 없어서 나는 직접 짐을 챙겼다.

16567316276845.jpg‘걱정할 테니까 나한테 알리지 말라고? 그걸 왜 자기가 정해? 대체 무슨 생각인 건데, 공작은!!’

에드가 서신 내용을 알려 줬을 땐, 도저히 믿기가 어려웠었다. 공작이 아무리 생각이 없다지만, 설마 니콜라스에 관한 일을 내게 숨기려 들었을까 싶어서였다. 그러나 직접 확인해 본 편지에는 에드가 말한 그대로가 적혀 있었다.

16567316276845.jpg‘닉 오빠가 나한테 어떤 존재인지 본인도 알면서!!’

원작의 레냐에게도 그랬겠지만, 내게도 닉 오빠는 정말로 소중한 이였다. 빙의한 직후 그 싸늘한 북부에서 헤맬 때도 그가 있었기에 나는 버틸 수 있었다. 그런데 아버지 역할을 제대로 해 준 적도 없는 공작이, 그런 소중한 니콜라스에 관한 것마저 숨기려 했다는 것이…… 나는 정말로 참기 힘들었다. 그래서 정신없이 짐을 챙겨 궁의 정문으로 나왔는데, 막상 나왔더니 막막했다.

16567316276845.jpg‘생각해 보니…… 뭐 타고 가지? 에드한테 그 멀리까지 또 태워다 달라고 하긴 좀 그렇고, 한나하고 같이 바이올렛을 타고 가자니 바이올렛이 못 버틸 것 같고.’

북부에서 지낼 땐 외출할 때 한나의 바이올렛을 함께 탔었는데, 그때도 바이올렛은 조금 버거워했었다. 그녀의 얇은 다리는 딱 한나의 몸무게만 버틸 수 있게끔 설계된 것 같았다. 그러니 두 명이나 등에 싣고서 북부까지 달리면 그 가느다란 다리가 똑 부러져 버릴지도 몰랐다.

16567316276845.jpg‘킬리안에게 말해서 마차라도 구해 달라고 해야 하나? 그런데 구할 수 있으려나 모르겠네……. 제국엔 마차가 워낙 드물어서.’

사람들 상당수가 본인의 정령을 타고 다니는 바람에 상대적으로 탈것이 부족한 제국의 상황이 이럴 땐 퍽 답답하게 느껴졌다. 아예 정령이 없는 외국인이나, 정령이 있더라도 나처럼 탈 수 없는 정령을 지닌 이들은 대체 어쩌란 말인가. 그렇게 발을 동동 구르고 있을 때였다. 뒤에서 알렉시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16567316317853.jpg“레냐 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16567316276845.jpg“알렉시스? 그리고 옆에 분은…….”

내가 낯선 기사를 보고 의아해하자, 그 기사가 이내 고갤 숙여 인사해 왔다.

16567316331538.jpg“저는 전하를 모시는 중급 기사, ‘카롤라’입니다. 인사드리게 되어 영광입니다.”

짧게 자른 붉은색 머리카락과 선명한 녹색 눈 덕분일까? 첫인상이 퍽 강렬하게 느껴지는 기사였다, 카롤라는. 내가 그녀의 인사를 받아주자, 알렉시스가 다시 입을 열었다.

16567316317853.jpg“북부로 가신다고 들었습니다. 저희가 태워다 드리죠.”

16567316276845.jpg“네? 정말인가요? 그럼 전 정말로 감사하겠지만…… 경께선 기사단을 이끄느라 바쁘시잖아요. 저 때문에 자리를 비운다고 하면 전하께서 불허하실 것 같은데…….”

16567316317853.jpg“걱정하지 마십시오. 전하의 기사단은 저랑 카롤라가 없다고 위태로워질 만큼 약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아가씨를 모셔다 드리는 건 전하께서 직접 내린 명령이기도 하고요.”

그 말에 나는 다소 의아함을 느꼈다.

16567316276845.jpg‘에드가 알렉시스에게 명령을? 만찬 때 나랑 알렉시스를 함께 두길 꺼렸지 않나?’

에드는 알렉시스의 기운 탓에 내가 힘들어하는 거라며 알렉시스를 만찬장에서 내쫓기까지 했었다. 그래서 다소 의아했는데, 곧 이어진 알렉시스의 설명 덕분에 금방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16567316317853.jpg“급한 일인 만큼 아가씨를 최대한 빠르게 모셔다 드리기 위한, 전하의 배려이지요. 가장 빠른 것은 역시 전하의 정령이지만…… 그래도 기사단에서는 저랑 카롤라의 정령이 제일 빠르거든요.”

16567316276845.jpg“아아…….”

워낙 급한 때인 만큼 그냥 가장 빠른 이들을 선별해서 내게 붙여 주기로 한 듯했다. 충분히 이해가 가는 이유라서, 나는 더 고민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16567316276845.jpg“그럼 급한 상황이라, 신세 좀 질게요.”

16567316317853.jpg“신세라니요. 아가씨를 모셔다 드릴 기회를 얻었으니 오히려 저희가 영광입니다.”

알렉시스의 말일 끝나자마자 그들은 곧바로 본인들의 정령을 소환했다. 알렉시스와 카롤라의 정령은 둘 다 독수리였는데, 색상과 종이 달랐다. 알렉시스의 정령은 청록색, 카롤라는 붉은색이었다. 정령 위에 올라탄 알렉시스가 이번엔 내게로 손을 내밀었다.

16567316317853.jpg“제 손 잡으시죠. 발밑도 주의하시고요.”

16567316276845.jpg“고마워요.”

그리 감사의 인사를 건네고서 알렉시스의 손을 붙잡은 순간-

16567316276845.jpg“……?”

심장에서 저번과 똑같은 기묘한 감각이 느껴졌다.

16567316276845.jpg‘저번에도 느껴지더니 이번에도 또 느껴졌어. 이 두근거림, 대체 뭐지? 왜 알렉시스랑 닿을 때만 느껴지는 걸까? 게다가…….’

정령에 올라탄 뒤, 알렉시스가 붙잡아 준 손을 슬쩍 확인해 보았다. 역시나 물기가 묻어 있었다.

16567316276845.jpg‘손바닥이 식은땀투성이야. 알렉시스, 혹시 어디 아픈가?’

그와 닿을 때마다 느껴지는 기묘한 떨림, 그리고 왜인지 땀으로 젖어있는 그의 손……. 무언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래서 혹시 어디 아프냐고 물으려 했는데, 알렉시스의 물음이 더 빨랐다.

16567316317853.jpg“꽉 잡으셨죠?”

16567316276845.jpg“네? 앗, 네……. 출발해 주세요.”

어쨌거나 닉 오빠가 쓰러진 지금은 영문 모를 두근거림 따위를 걱정할 때가 아니었다. 나는 불필요한 고민을 관두고서 알렉시스의 정령을 꽉 붙잡았다. * * * 비슷한 시각, 루카스는 교황의 명령에 따라 바다를 건너 제국에 도착한 상태였다. 제국과 상의 없이 은밀히 움직이는 것이기에 데려온 수하는 단 두 명뿐이었지만, 그렇다 해도 그들은 누구보다 강하고도 충성스러운 이들이었다. 그래서 걱정할 필요 없다고 생각했었다. 지금처럼, 혼자서 미아가 돼 버리기 전까지는.

1656731634485.jpg‘여긴…… 어디지?’

항구에 도착해서 정확히 30분이 지났을 무렵에 루카스는 일행들을 놓치고 길을 잃었다. 애초부터 타고난 길치이긴 했지만, 지금까지는 길을 잃어도 수하들이 알아서 잘 찾아 준 덕에 큰 사고는 없었다. 하지만 이곳은 예르타 신성국과 다르게 사람도 많고, 시끄럽고, 길도 너무나 복잡했다. 진즉 그를 찾아 줬어야 할 수하들도 지금은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1656731634485.jpg‘같은 길을 빙빙 돌고 있어.’

사악한 미로에 갇힌 것처럼 같은 곳만 빙빙 돌고 있다. 그것이, 루카스가 자신의 상황에 대해 엄중하고도 진지하게 고민해 본 결과 나온 결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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