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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남주님, 이렇게 나타나시다뇨? (22/102)

22. 남주님, 이렇게 나타나시다뇨?2021.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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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국에서 길을 잃을 줄이야. 길치인 루카스에게 이는 너무나 혹독한 시련이었다. 난감해진 그는 아까 분명 지나쳤음에도 또다시 눈앞에 나타난 그 술집 간판만을 싸늘하게 노려보았다. 그러는 시간이 길어지자, 슬슬 행인들이 그의 뒤에서 쑥덕거리기 시작했다.

16567316410603.jpg“저기 봐, 예르타 성기사 아니야?”

16567316410603.jpg“맞는 거 같은데……? 왜 저기서 심각한 표정으로 저러고 있지?”

16567316410603.jpg“저 술집에서 악한 기운이라도 느꼈나?”

저 술집에서 악한 기운을 느낀 거라는 둥, 저곳을 피해야 한다는 둥, 그들은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었다. 더 그러고 서 있다가는 죄 없는 술집이 오명을 뒤집어쓰게 될 터. 그러니 어디로든 움직이긴 움직여야겠는데, 정작 어느 방향으로 움직여야 하는지를 모르니 막막했다. 이도 저도 못 하고 그렇게 고민에 빠져 있던 순간.

16567316410618.jpg“……?”

문득, 애초에 그가 이 땅에 온 목적인, 그 수상한 마력이 느껴졌다. 예르타 신성국에 있을 때보다 훨씬 더 가깝고도 선명하게.

16567316410618.jpg“…….”

목표가 정해졌다. 그는 자연스레 마력이 느껴지는 방향을 향해 걸음을 움직였다. 그의 걸음에서 불필요한 망설임은 어느새 깨끗이 사라지고 없었다. * * * 에드와 그의 정령 블랙을 타고 올 땐 하루도 안 지나서 황자궁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알렉시스와 카롤라의 정령은 그만큼 빠르지 못했다. 게다가 내 멀미 때문에 계속 가다 서길 반복하기까지 한 결과, 해 질 녘부터 우리는 이동을 멈추고 밤새 묵을 숙소를 찾아다녀야 했다. 겨우 숙소에 도착했을 때 내 몸이 녹초가 돼 있던 건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16567316410628.jpg‘휴……. 멀미 날 때마다 계속 성력을 써 대니까 피로감이 장난 아니네. 내일 아침에 눈 뜨자마자 멀미약부터 사러 가야겠어…….’

약이라도 미리 챙겨 왔으면 좋았을 것을. 오빠가 쓰러졌단 얘기에 급히 출발해서 그럴 겨를이 없었다. 덕분에 완전히 지쳐버려서 침대에 털썩 주저앉았더니, 카롤라가 내게 멋쩍게 사과를 건넸다.

16567316410633.jpg“더 편하게 모셔다 드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숙소를 급히 구하느라 누추한 곳에서 묵게 됐지만, 오늘만 참아 주시면 내일은 꼭 도착할 수 있게끔 서두르겠습니다.”

16567316410628.jpg“아뇨, 경께서 사과하실 일이 아니에요. 숙소를 급히 구한 것도 애초에 제 멀미 때문이었으니까. 그보다 알렉시스는 괜찮나요?”

진작부터 그의 상태가 신경 쓰였던 까닭에 나는 걱정을 담아서 그에게 물었다.

16567316410628.jpg“계속 식은땀을 흘리시는 것 같던데……. 혹시 어디 아프신 건가요?”

16567316424439.jpg“제가요? 하하, 아닙니다. 오늘따라 좀 덥다 보니 저도 모르게 자꾸 땀이 흐르는군요.”

그의 대답을 들은 나는 머릿속에 물음표를 띄울 수밖에 없었다.

16567316410628.jpg‘덥다고……?’

환절기라 아직은 밤기운이 쌀쌀했다. 더워서 땀이 흐를 만한 날씨는 확실히 아니라고 할 수 있었다.

16567316410628.jpg‘뭐지? 두껍게 입어서 그런가?’

두껍게 입었으면 그럴 수도 있겠구나― 싶어서 더 묻지 않자, 알렉시스도 물러가려는 듯 고갤 숙여 인사했다.

16567316424439.jpg“그럼 이만 비켜 드릴 테니 혹시라도 무슨 일 생기면 부르십시오. 저희 둘이 이 문 바로 앞에서 번갈아 가며 지키고 있을 테니까요.”

16567316410628.jpg“네, 감사해요. 두 분 덕분에 오늘은 안심하고 잠들 수 있겠네요.”

16567316424439.jpg“별말씀을.”

둘은 환한 미소로써 내 인사에 답해 주곤, 비로소 방을 떠났다.

16567316410628.jpg‘든든하네. 그냥 기사도 아니고 상급과 중급 기사가 번갈아 가면서 밤새워 지켜 준다니…….’

그들 덕분에 마음이 놓여서인지 지독한 수마가 밀려왔다. 대충 몸을 씻어 낸 후, 나는 기절하듯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 * * 누가 먼저 경계를 설지 정하고자 두 기사는 복도에서 잠깐 대화했다. 그리고 짧은 상의 끝에, 첫 순번은 카롤라로 정해졌다. 그사이 잠깐 옆방에서 눈을 붙이기로 한 알렉시스가 카롤라에게 간단히 인사를 건넸다.

16567316424439.jpg“수고하고, 3시에 교대해줄 테니까 깨워.”

16567316410633.jpg“예. 푹 쉬십쇼, 단장님.”

카롤라의 인사를 받아준 뒤 알렉시스는 옆방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문을 닫은 순간―

16567316424439.jpg“헉, 헉……. 윽……!!”

그가 머리를 감싸 쥔 채로 벽에 쓰러지듯이 기댔다. 어느새 그의 몸은 아까보다 훨씬 더 많은 땀으로 축축하게 젖은 채였다.

16567316424439.jpg‘아까부터 왜 자꾸 두통이……. 하마터면 아가씨한테까지 걱정 끼쳐드릴 뻔했어…….’

레냐와 카롤라가 걱정할 듯하여 아픈 티는 못 냈지만, 그는 오는 내내 두통에 시달렸었다. 그것뿐이었다고 해도 충분히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그러나 그게 다가 아니었다.

16567316437591.jpg―알렉……시스……. 꾸물거리지 말고…… 죽……여라…….

두통과 함께, 머릿속에서 어떤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뭔지 모를 그것은 그에게 계속해서 명령했다. 어서 누군가를 죽이라고.

16567316424439.jpg‘아까부터 이 환청은 대체……. 아침에 뭘 잘못 먹었던가?’

그는 벽에 기댄 채로 몇 분간 고통스레 신음했다. 그러다가 무심결에 중얼거렸다.

16567316424439.jpg“이 망할 환청이 누굴 자꾸 죽이라는 건지…….”

그 순간, 두통이 씻은 듯 멈췄다. 마치 그가 물어보길 기다렸다는 듯이. 그리고…….

16567316437591.jpg―레냐 폰 몬트. 그 여자를 당장 죽여라.

16567316424439.jpg“……뭐라고? 대체 그게 무슨…… 으윽, 아아악!!”

무슨 헛소리를 하느냐고 따져 묻기도 전, 참을 수 없는 격통이 그를 덮쳐 왔다. 비명을 억지로 삼키며 몸부림치는 그의 눈동자에는 어느덧 불길한 붉은빛이 일렁거리고 있었다. * * * 잠자리가 다소 불편해서 평소보다 일찍 깨어나게 되었다. 두 기사들도 마침 잠들지 않고 깨어있던 차라, 우린 곧장 숙소 1층에 붙어있는 식당으로 내려갔다. 거기서 대충 배를 채우며 나는 슬쩍 알렉시스를 살펴보았다.

16567316410628.jpg‘오늘은 아무렇지도 않아 보이네? 역시 어젠 그냥 더워서 그랬던 걸까?’

이번에도 그냥 그리 생각하고 넘기려다가, ‘그래도 혹시?’ 하는 마음에 말했다.

16567316410628.jpg“두 분, 잠깐 손 좀 빌려주시겠어요?”

16567316424439.jpg“……?”

16567316410633.jpg“……?”

둘은 의아해하면서도 일단 손을 내밀었다. 나는 그들의 손을 차례로 붙잡고서 성력을 살짝씩 불어넣어 보았다.

16567316410628.jpg‘이시스의 인이 없어. 둘 다 안전해.’

내가 사용인들 속에서 이시스의 첩자들을 찾아낼 때, 기사단원 대부분은 토벌에 나가 있었다. 즉, 그들은 따로 조사해 보지 못한 상태였었다. 거기에 이시스가 의외로 쉽게 쫓겨나서 방심하는 바람에 그 뒤로도 기사들을 신경 쓰지 않았다가, 어제 알렉시스의 상태가 영 이상해 보여서 이참에 해 본 것이었다. 인이 없다는 사실에 안심하고 있자 알렉시스가 물었다.

16567316424439.jpg“방금 뭐 보신 겁니까?”

16567316410628.jpg“그냥 손금이요. 그보다, 다들 드셨으니 이제 일어날까요?”

16567316424439.jpg“……? 예, 그럽시다. 느긋하게 있을 때가 아니죠.”

알렉시스는 흔쾌히 대답한 뒤, 이어서 말했다.

16567316424439.jpg“그리고 아까 화장실 가면서 주인장에게 물어봤는데, 여기서 서쪽으로 쭉 걸어가면 금방 시장이 나온다고 합니다. 약이랑 요깃거리는 거기서 구매하면 될 것 같습니다.”

16567316410628.jpg“아아, 다행이네요. 금방 나온다니. 시간을 많이 아낄 수 있겠어요.”

한 시간 안에 필요품을 다 구매한 뒤 곧장 떠나기로 정하고서, 우리는 일어났다. 그리고 시장으로 향했다. 아니, 정확히는 ‘향할 계획’이었다. 그러지 못한 건, 웬 수상한 사내가 불쑥 나타나 내 앞을 가로막아서였다.

16567316437591.jpg“잠깐.”

16567316410628.jpg“……?”

사내는 온몸을 가리는 긴 망토 차림에다가 얼굴도 후드로 반 정도 가린 채였다. 그런데도, 나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16567316410628.jpg‘미남이네?’

깊게 눌러쓴 후드 안에서조차 그의 선명한 황금빛 눈동자는 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16567316410628.jpg‘눈이 완전히 금색……. 잠깐, 원작에서도 금안의 인물이 등장하지 않았었나? 다른 소설에서였나?’

소설 속 황금색 눈동자를 가진 남자들이 한둘이 아니다 보니 떠올리기가 어려웠다. 어쨌든, 그는 누구나 인정할 듯한 미남이었다. 에드가 다정하고 따스한 인상(물론 인상만)의 미남이라면, 그는 더 고지식하고 차가워 보이는 인상의 미남이라 해야 할까? 그래서 그 잘난 얼굴을 좀 더 구경하고 싶었으나 그럴 수 없었다. 그가 내 귓가에 이상한 말을 속삭여 왔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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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67316410618.jpg“기운이…….”

16567316410628.jpg“예?”

16567316410618.jpg“당신의 주위에서 불길한 기운이 느껴집니다.”

나는 이 미남의 입에서 나온 말을 되새겨 보다가, 이내 그의 의도를 파악했다.

16567316410628.jpg‘신종 종교 권유……?’

‘도를 믿느냐’라든지, ‘기운이 좋아 보인다’라든지……. 그런 식으로 본인들의 종교를 권하는 자들을 저쪽 세계에 살 적에도 몇 번 만나 본 적 있었다. 내 눈앞의 이 남자도 그런 목적으로 다가온 듯했다. 그게 아니라면 갑자기 모르는 여자에게 다가와 ‘불길한 기운’ 운운하며 말을 걸 이유가 없었으니까. 여하간 닉 오빠를 빨리 만나려면 서둘러야 하는 관계로 남자를 더 상대해줄 순 없었다.

16567316410628.jpg“죄송하지만, 저희 오빠가 아픈 상황이라 지금 가봐야 해서요.”

16567316410618.jpg“아프다고요? 환자가 있습니까?”

16567316410628.jpg“네? 아, 네. 친오빠가 쓰러졌어요. 그래서 가던 중이었고요.”

16567316410618.jpg“도와드릴까요?”

툭, 그가 던진 말에 나는 잠깐 멍해졌다.

16567316410628.jpg“……어떻게요?”

16567316410618.jpg“제게 치료하는 힘이 있습니다.”

길에서 만난 낯선 남자가 자신에게 치료하는 힘이 있다고, 나를 도와주겠다고 한다. 응당 경계해야 할 상황인데도, 나는 그러기가 힘들었다.

16567316410628.jpg‘무슨 눈빛이 이렇게 순진무구한 꽃사슴 같고 난리야? 혹시 진심인가? 성력이라도 있는 거야?’

눈빛뿐이 아니었다. 환자가 있느냐고 묻는 그의 목소리에서 또한 순수한 의도만이 느껴졌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정말 도와줄 수 있겠느냐고 물으려던 찰나-

16567316424439.jpg“웬 놈이냐!!”

알렉시스가 그리 외쳤다. 동시에 카롤라가 나를 자신의 쪽으로 잡아당겼다. 타고 갈 정령을 소환하느라 잠깐 한눈팔려 있던 두 기사들이 뒤늦게 남자를 발견한 듯했다. 곧이어 그들은 재빠르게 검을 뽑아 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가장 놀란 것은 그 낯선 남자가 아닌, 나였다.

16567316410628.jpg“……!!”

내게 이 꽃사슴 같은 남자는 그리 위협적으로 느껴지지 않았었다. 단지 얼굴과 눈빛 때문이었을까? 그건 잘 모르겠다. 어쨌든 그를 해치지 못하게 막아야 할 듯해서 급히 나섰다.

16567316410628.jpg“잠깐만요, 두 분 다 진정하세요. 그냥 종교 권유 때문에 온 사람 같아요.”

내 말을 듣고 카롤라가 고개를 갸웃했다.

16567316410633.jpg“종교요?”

16567316410628.jpg“네, 검은 집어넣으셔도 돼요. 위험하지 않은 것 같으니까.”

거기까지 말해도 그들은 머뭇거렸다. 어찌 보면 당연한 반응이다. 그들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 에드이고, 그들이 최우선으로 따라야 할 것은 에드의 명령이므로. 그 말은 즉, 내가 말리든 말든 여차하면 그들은 내게 접근한 이 남자를 살해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걸 모르는 건지, 이 눈치 없는 낯선 남자는 후딱 도망치지 않고 계속해서 얼쩡거렸다.

16567316410618.jpg“아뇨, 이건 권유가 아니라 경고…….”

16567316410628.jpg“죄송해요. 지금 일행들이 상당히 경계하고 있어서요. 그럼 이만.”

나는 살기 담긴 시선으로 그를 노려보는 두 기사들을 거의 밀치다시피 정령에 태웠다. 그 뒤 함께 날아오르고서야 비로소 마음이 놓였다.

16567316410628.jpg‘휴……. 긴장했네. 칼부림이 밥 먹듯이 일어나는 세계니까 조심해야지. 그런데 그 사람, 정말로 뭐였지?’

자꾸만 떠오르는 그의 목소리를 잊고자 고개를 내저었으나 헛수고였다. 그럴수록 그의 그 이상한 경고는 메아리처럼 내 머릿속에서 반복되고, 또 반복되며 맴돌 뿐이었다. * * * 레냐가 시장으로 향하고 있을 무렵. 황자궁에 남았던 에드는 아직 꿈속을 헤매고 있었다. 그가 평소처럼 일찍 깨지 못한 이유는 간단했다. 그를 붙잡고 있는 그 꿈이 무척이나 슬프고도 기묘해서였다. 왜인지 꿈속에서의 그는 지금보다 더 성장한 모습이었고, 마찬가지로 지금보다 성숙해 보이는 레냐를 끌어안고 있었다. 그리고 레냐는 곧 죽을 것처럼 창백한 얼굴로 그의 귓가에 이렇게 속삭였다.  

16567316410628.jpg“넌 악역에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야. 그러니 내가… 그 역할에서 해방시켜 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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