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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아니, 뭐 이런 비싼 걸 주고 그래? (27/102)

27. 아니, 뭐 이런 비싼 걸 주고 그래?2021.07.02.

공작이 말한 ‘마음대로 해라’의 뜻은 분명했다. 다소 퉁명스러운 어투긴 했지만, 어쨌든 들어와도 된다는 것이었다. 말도 없이 가출했다고 안 들여보내 줄까 봐 내심 걱정했던 레냐는 그제야 안도할 수 있었다.

16567317176551.jpg“휴……. 다행이네요, 카롤라. 쫓겨나진 않았어요.”

16567317176556.jpg“저분이 레냐 아가씨의 부친이신…….”

16567317176551.jpg“네, 몬트 공작이세요.”

16567317176556.jpg“세상에…….”

공작을 상대하느라 몰랐는데, 왜인지 카롤라는 놀란 표정이었다. 심지어 아직도 동그래진 눈으로 공작의 멀어져 가는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16567317176551.jpg‘많이 놀라네. 하긴, 저런 인간한테서 어떻게 나처럼 착한 딸이 나왔는지 궁금하려나?’

레냐는 그리 자신만만하게 생각했으나, 카롤라가 놀란 이유는 따로 있었다.

16567317176556.jpg“그 전설로만 들었던 위인을 드디어 이렇게…….”

16567317176551.jpg“음?”

16567317176556.jpg“아뇨,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냥 제 사적인 존경심일 뿐이니 신경 쓰지 마십시오.”

16567317176551.jpg“존경? 설마 공작께 존경심을 가지신다는 의미인가요?”

‘저런 못된 공작을 존경하는 사람이 있을 리가 없어!’ 하는 생각으로 던진 물음이었건만. 카롤라의 대답은 이번에도 레냐의 그 예상을 뒤엎었다.

16567317176556.jpg“예, 아마 저뿐만이 아니라 다른 기사들도 전부 존경할 겁니다. 마족 전쟁 때 각하께서 활약하신 이야기를 다들 어릴 적부터 듣고 자라서요.”

16567317176551.jpg“전쟁…….”

16567317176556.jpg“그래도 여기 머무는 동안 그런 사적인 감정은 철저히 접어 두겠습니다. 어디까지나 임무 차원에서 온 거니까요.”

말은 그렇게 해 놓고도 카롤라는 쭉 공작이 사라진 방향만 보고 있었다. 사용인들이 와서 알렉시스와 쓰러진 루카스를 데려가는 동안에도 심지어 계속 바라보았다. 레냐로서는 황당할 따름이었다.

16567317176551.jpg‘공작을 존경하는 기사들이 많다고? 마족 전쟁 때 활약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저 냉혈한의 인기가 그 정도야……?’

부정하고픈 진실을 듣고서 레냐는 충격에 젖었다. 그리고 긴 고민 끝에, 간단한 결론을 도출해 냈다.

16567317176551.jpg‘다들 공작의 본성을 모르고 환상에만 젖어 있나 봐……. 냉기 풀풀 날리면서 몹쓸 말만 쏟아 내던 걸 카롤라도 봤어야 했는데.’

그가 얼마나 못됐는지를 폭로하고 싶은 걸 꾹 참고서, 레냐는 걸음을 움직였다. 지금 말해 줘도 어차피 안 들을 터. 부디 카롤라의 눈에 씐 두꺼운 콩깍지가 하루빨리 벗겨지기만을 기도할 뿐이었다. * * * 카롤라는 객실로 안내되었고, 나는 물론 내가 원래 사용하던 침실에 그대로 들어왔다. 한 달도 안 돼서 돌아온 탓인지 다행히 별로 낯설지 않았다. 나는 자연스럽게 책상 서랍에서 펜과 종이를 꺼냈다. 루드비히 말로는 닉 오빠의 상태도 지금은 많이 호전되었다고 하니, 더 급한 일부터 처리할 요량이었다.

16567317176551.jpg‘이시스가 한 짓을 빨리 알려 줘야 해.’

이시스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위험한 마법을 썼었다. 타인을 조종하는 마법이라니. 알렉시스 말고 그 마법에 걸려든 사람이 또 있다면 정말로 큰일이었다. 그래서 최대한 그때 일을 자세히 적되, 이렇게 덧붙였다. ―나중에 알렉시스가 궁에 귀환하더라도 그를 벌하지는 말아 주세요. 그는 그냥 조종당했을 뿐이니까요. 그보다는 이시스의 저주에 걸려든 이가 더 없는지 찾아내는 것이 급선무라고 생각해요. 신관을 고용해서 그들의 도움을 받으세요. 그럼 일이 더 수월해질 거예요.― 나는 그렇게 쭉쭉 적어 낸 서신을 리본으로 묶어서 봉했다.

16567317176551.jpg‘에드한테 잘 설명했으니까 알렉시스는 괜찮겠지. 그보다…… 이걸 황자궁까지 어떻게 보내지?’

루드비히의 부엉이 정령은 빠르고도 정확하게 편지를 배달해 준다. 하지만 공작가의 집사인 루드비히에게 내 서신을 부탁할 순 없었다. 공작이 급히 다른 곳에 서신을 보내야 할 일이 생길 수도 있으니까. 몬트 가문에 위탁하지 않고도 편지를 보낼 방법을 찾아내고자, 나는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16567317176551.jpg‘음, 한번 도전해 볼까?’

고민 끝에 내가 한 일은 삐약이를 소환한 것이었다. 소울스톤으로 성장해서 ‘날 수 있게 된’ 나의 소중한 정령, 삐약이를.

16567317192319.jpg―삐이!

어느새 나타나서 애교를 부리는 삐약이에게, 나는 진지하고도 엄한 태도로 입을 열었다.

16567317176551.jpg“부탁하고 싶은 일이 있어.”

16567317192319.jpg―삐이?

삐약이가 이해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지도를 펼쳤다. 그다음 한 지점을 손으로 짚었다.

16567317176551.jpg“내가 들고 있는 이 편지를 여기 공작성에서―”

공작성의 위치를 짚어 준 뒤, 곧이어 훨씬 더 남쪽에 있는 황자궁을 짚었다.

16567317176551.jpg“여기 황자궁까지 배달해 줘.”

16567317192319.jpg―…….

16567317176551.jpg“할 수 있겠어?”

16567317192319.jpg―삐이……….

16567317176551.jpg“못 하겠어?”

16567317192319.jpg―삐…….

삐약이는 다소 자신 없는 새소리로(?) 지도를 기웃거렸다. 그렇게 잠시간 지도를 살피다가, 이내 날개를 활짝 펼쳤다.

16567317192319.jpg―삐!!

그건 분명 ‘생각해보니까 할 수 있을 것 같아. 내게 맡겨 줘’라는 의미의 몸짓이었다. 내가 내 정령을 믿지 않으면 누가 믿겠는가- 라는 마음으로 나는 편지를 삐약이의 다리에 묶었다. 그다음 창문을 열고서 훌쩍 날려 보냈다.

16567317176551.jpg“잘 다녀와!”

16567317192319.jpg―삐!

16567317176551.jpg“그리고 혹시 못 찾겠으면 다시 돌아오도록 하고!”

16567317192319.jpg―삐!삐!

16567317176551.jpg“비 올 땐 그냥 맞지 말고 꼭 지붕 있는 곳으로 피해! 알았지?”

16567317192319.jpg―삐!삐!삐!

삐약이는 자신만만하게 대답하고는 멀리 날아갔다. 어린 딸아들을 심부름 보내는 어머니의 마음이 이러할까? 몹시도 불안했지만, 나는 삐약이를 끝까지 믿기로 했다.

16567317176551.jpg‘됐다. 삐약이가 편지를 전해주면 그 뒤부턴 에드가 알아서 할 거야.’

고로, 이제 내가 해야 할 일은 하나뿐이었다. 그걸 위해 나는 우선 긴 여정으로 인해 묻은 흙먼지를 욕실에서 씻어 냈다. 옷도 깨끗한 것으로 갈아입고서, 곧장 방을 나섰다. 그리고 마침내 본래의 목적대로 닉 오빠의 침실 문 앞에 섰으나―

16567317176551.jpg“…….”

정작 노크는 쉽게 할 수가 없었다.

16567317176551.jpg‘나한테 분명 화 많이 났겠지?’

그는 그토록 내게 많은 애정을 쏟아 주었는데, 나는 고작 편지 한 통 남기고서 그를 떠나갔다. 말 한마디 없이 훌쩍 떠나간 여동생을 그는 예전처럼 반겨 줄까? 장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영영 이대로 서 있을 순 없는 일이라, 나는 용기를 냈다.

16567317176551.jpg“오빠, 나야. 들어가도 돼?”

아까 분명 루드비히가 말했다. 닉 오빠는 현재 침실에서 독서 중이라고. 그렇건만, 내 부름에 들려오는 대답은 없었다.

16567317176551.jpg“……닉 오빠?”

그새 잠든 걸까? 아니면…… 내 얼굴을 꼴 보기도 싫어진 걸까? 부정적 생각에 젖어 가던 때였다. 침실 안에서 부스럭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다가 문이 열리고, 그토록 기다렸던 닉 오빠가 나왔다.

16567317219383.jpg“레냐.”

놀라는 바람에 나는 그의 부름에 대답하지 못했다. 열이 오른 것처럼 그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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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와중에도 그는 나를 보고 웃어 주려고 입가를 끌어올리고 있어서, 무언가 울컥거리며 뜨거운 감정이 솟았다.

16567317176551.jpg“오빠…….”

16567317219383.jpg“돌아왔구나. 거기서 잘 지냈어? 힘든 건…… 없고?”

16567317176551.jpg“……지금 나한테 그렇게 물어볼 때야? 당장 본인부터 쓰러질 것처럼 비틀거리면서 무슨……. 아니, 일단 들어가서 얘기하자.”

일단은 비틀거리는 닉 오빠를 부축해서 침대에 편히 앉혀 주었다.

16567317176551.jpg“여기 가만히 있어 봐.”

16567317219383.jpg“……?”

16567317176551.jpg“조금 눈부실 수도 있으니까 눈 감고.”

이유를 말해 주지 않아도 그는 일단 내 말에 따라 눈을 감았다. 나는 그의 이마에 손을 올리고서, 성력을 쏟아부었다. 내 손에서 나온 온화한 빛이 이마를 통해서 그의 전신으로 퍼져나갔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선까지 최대한 힘을 건네주고 나서, 그의 이마로부터 손을 뗐다.

16567317176551.jpg“좀 어때?”

16567317219383.jpg“방금 뭘 한 거야? 설마…… 성력을 쓴 거야?”

16567317176551.jpg“응. 정신 차려 보니까 능력이 써지더라고. 진작 알려 줬어야 했는데 요즘 정신이 통 없어서.”

그때였다. 그가 불현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16567317176551.jpg“오빠……? 왜 그래……?”

왜 이런 중요한 걸 오빠인 자신에게 숨긴 거냐고, 순간 따지려는 줄 알았다. 하지만-

16567317219383.jpg“역시……! 역시 재능이 있을 줄 알았어!! 대단해, 레냐!!”

16567317176551.jpg“음? 알, 알았으니까 일단 도로 앉아 줘. 성력을 쓰긴 했어도 아직 무리하면 안 된단 말이야.”

따지기는커녕, 그는 내가 뭐 엄청난 일이라도 한 것처럼 열심히 기뻐했다. 물론 귀한 능력을 각성한 것이니 엄청난 일이 맞긴 했지만. 어쨌든, 그는 그리 신나 하다가 결국 회복 덜 된 몸으로 현기증을 느끼고 나서야 진정했다. 그러게 왜 앉으랄 때 말을 안 들었냐고 타박하면서도, 내심 흐뭇한 건 어쩔 수 없었다.

16567317176551.jpg‘나보다 더 기뻐하네. 이럴 줄 알았으면 삐약이 성장한 모습도 보여 줄걸.’

편지를 보내느라 삐약이를 내보낸 것이 아쉬울 따름이었다. 그래도 이미 보냈으니 어쩔 수 없는 일. 나는 그보단 쭉 궁금했던 것을 묻기로 했다.

16567317176551.jpg“그래서, 어쩌다가 쓰러진 거야? 나 떠나기 전까지만 해도 쌩쌩했잖아.”

16567317219383.jpg“아, 그게…… 요 며칠간은 일하느라 잠 안 자고 조금 무리를 했거든.”

16567317176551.jpg“잠을 안 자? 얼마나 안 잤는데?”

16567317219383.jpg“닷새인가? 그 정도.”

16567317176551.jpg“……?!”

내가 깜짝 놀라자 그는 변명이랍시고 덧붙여 말했다.

16567317219383.jpg“아예 안 잔 건 아니야. 틈틈이 시간 날 때마다 책상에 엎드려서 잤으니까.”

16567317176551.jpg“엎드려서 자는 건 제대로 자는 게 아니잖아! 닷새나 일만 하니까 당연히 쓰러지지!”

16567317219383.jpg“미안해. 그래도 어쩔 수 없었어. 네 결혼식 전까지 결혼 선물 마련해야 해서.”

16567317176551.jpg“결혼 선물이라니……?”

대체 무슨 선물을 준비하길래 무려 닷새 동안이나 잠을 안 잤단 말인가. 궁금해서 물었더니 그가 벽에 걸려 있던 그림을 가리켰다. 봄꽃이 활짝 핀, 아름다운 섬을 조감도로 그려 놓은 그림이었다. 너무나 예쁜 그림이라서 나는 그를 타박해야 한다는 것조차 잊고 말았다.

16567317176551.jpg“저 그림? 세상에……. 저걸 손수 그리느라 계속 밤을 새운 거구나……?”

16567317219383.jpg“아니. 그림으로 그려져 있는…….”

16567317176551.jpg“아니라고? ……앗! 혹시!!”

문득 머릿속에 스쳐 지나간 생각에, 그의 손을 덥석 붙잡았다.

16567317176551.jpg“저 섬에 꽃나무를 심어준 거야? 그다음 그 나무에 내 이름을 붙이고……!? 나 옛날부터 그런 거 되게 하고 싶었는데!!”

‘레냐 나무라니! 낭만적이다!’ 하고 미리 기뻐하고 있을 때였다. 그가 또다시 고갤 저었다. 그러더니 이번엔 말을 끊지 말라고 눈치를 주며, 더욱 분명하게 알려 주었다.

16567317219383.jpg“저 섬……을 네 결혼 선물로 줄 생각이야.”

16567317176551.jpg“……?”

16567317219383.jpg“그림이나 나무, 꽃이 아니라 저 섬 전체를.”

닉 오빠가 나를 위해 준비해 준 선물은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그 규모부터가 달랐다. 그제야 나는 잠깐 잊었던 사실을 새삼 떠올려 냈다.

16567317176551.jpg‘아아, 맞다. 여기 공작가였지, 참.’

이곳은 공작가고, 내 눈앞에 있는 니콜라스는 제국을 떠받치는 기둥 중 하나인 몬트 공작가의 차기 가주이다. 평범한 선물은 성에 안 찰 법도 했다. 그렇다 해도 그 규모가 상상 초월이라 경악하고 있는데, 그가 문득 물었다.

16567317219383.jpg“튤립 진주라는 거 알지? 분홍색과 금색이 섞인 아주 아름다운 진주.”

튤립 진주, 그 진주에 대해서는 원작에서 분명 본 기억이 났다. 아마 타라와 레냐가 함께 건국 기념 무도회에 가서 황후를 만나는 장면에서였을 것이다.

16567317176551.jpg‘황후가 그때 무도회에 차고 나온 목걸이가 튤립 진주로 만든 목걸이였지……?’

그 말은 즉―

16567317176551.jpg“응, 알아. 엄청 고가에 거래되는 물건이잖아. 희귀해서 구하기도 어렵고. 그런데 그거는 왜?”

16567317219383.jpg“그것 때문에 섬을 가지려면 이만한 노력이 필요한 거야. 왜냐면 그 진주, 저 섬 근방에서 서식하는 조개로부터만 채집되는 거거든.”

1656731717655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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