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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우리 둘 다 성인이잖아 (40/102)

40. 우리 둘 다 성인이잖아2021.08.17.

나는 카롤라의 뒷말을 듣고자 잠자코 기다렸다. 계속, 쭉, 기다렸다. 그리 한참 기다려도 조용하기만 한 게 이상해서 그녀의 숙인 고개를 들어 올려 보니-

16567319783086.jpg“카롤라? 카롤라! 하던 말은 끝맺고 잠들어야죠!”

그녀의 두 눈이 이미 굳게 닫혀 있었다. 아무리 흔들어도 절대 뜨이지 않을 만큼 굳게.

16567319783086.jpg‘알렉시스가 나를 어쨌다는 거지? 아니면 그냥 의미 없는 술주정이었나? 그나저나 에드는 그럼 어딨는 걸까?’

나는 일단 근처의 하녀들을 불러서 카롤라를 방에 데려다주라고 지시했다. 나중에 내가 직접 확인해 볼 것이니 다른 영식들이 접근해도 무시하고 꼭! 방에 데려다 놓으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그 뒤 에드를 찾아다녔는데, 그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결국 사람들에게 실컷 시달리기만 하다가 연회 분위기가 식어 갈 즘 침실로 터덜터덜 돌아왔다. 그토록 찾아도 못 찾았던 에드를 발견한 건 그곳에서였다.

16567319783086.jpg“……?”

내 침실에 나보다도 먼저 와서 당당히 기다리고 있는 그를 보니 어리둥절해졌다. 혹시 방을 잘못 찾아온 건가 싶어서 주변을 살펴보았으나, 내 방이 맞았다. 당황스러워하는 나를 에드가 먼저 불렀다.

16567319783099.jpg“무슨 일이야?”

16567319783086.jpg“전하 방에 잘못 들어온 줄 알았어요. 너무 당당히 앉아 계셔서.”

16567319783099.jpg“잘못 들어온 거 아니야. 여기 네 침실 맞아.”

16567319783086.jpg“…….”

너무도 당당히 말하는 그였다. 덕분에 인지부조화가 일어났는데, 그런 나와 달리 그는 평소와 같은 태도였다.

16567319783099.jpg“왜 이렇게 늦었어? 한참 기다렸잖아.”

16567319783086.jpg“음…… 그런 질문보단 왜 제 방에 와 계시는지를 먼저 설명해 주셔야 하지 않을까요……? 그것도 이런 새벽에.”

16567319783099.jpg“칭찬받으려고.”

16567319783086.jpg“칭찬?”

그가 쥐를 열 마리쯤 잡아 온 고양이처럼 당당한 미소를 지었다. 창을 통해 희미하게 비치는 달빛과 몇 개 켜 둔 촛불의 흐릿한 빛 속에서 본 까닭일까? 평소라면 그냥 넘겼을 그의 미소가 조금…… 아주 조금, 색정적으로 느껴졌다.

16567319783086.jpg‘분위기가 다른 때랑 달라진 거 같은데…….’

그때 문득 그가 몸을 일으키더니 내게로 다가왔다. 왜인지 나는 움직일 수 없었고, 그는 순식간에 내 바로 앞에 와서 섰다.

16567319783099.jpg“네가 시킨 대로 알렉시스는 잘 타일렀어.”

16567319783086.jpg“아…….”

16567319783099.jpg“사실 난 그다지 실수에 관대한 사람이 아니거든. 그래서 조금 화날 뻔도 했는데…….”

그가 말하던 중 내 손을 붙잡았다. 그러더니 그 손바닥 안에 본인의 입술을 지그시 눌렀다. 감촉을 음미하듯 느릿하고도 집요하게.

16567319783086.jpg“……!”

16567319783099.jpg“꾹 참았어. 아내 말을 잘 듣는 남편이 되고 싶어서.”

나는 아무것도 모를 나이의 어린애가 아니었다. 제 입술을 내 피부에 대는 이런 행위가 성적인 어필이라는 것쯤은, 당연히 알았다.

16567319783086.jpg‘에드가…… 에드가 어쩐지 나를…….’

안고 싶어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냥 포옹이 아니라 더 깊은 의미로써. 이전에 내 눈물을 닦아 줬던 때랑은 비교도 안 될 만큼 노골적으로 선을 넘어오는 기분이었다. 나무토막처럼 굳어 버린 내 손바닥에 입술을 그대로 댄 채, 그가 속삭였다.

16567319783099.jpg“칭찬 안 해 줘?”

그가 말할 때마다 입술이 움직이는 게 손바닥 안에서 선연하게 느껴졌다. 간지럽고, 뜨겁고, 온몸의 촉각이 곤두서는 감각이었다. 그 정도의 자극을 받았으니 내 머릿속이 하얗게 변해 버린 건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16567319783086.jpg“으음, 칭찬이라면…….”

나는 멍해진 상태로 그가 원하는 그 칭찬이란 걸 해 주기 위해 열심히 고민했다. 물론 그 상태에서 머리가 제대로 돌아갈 리 없었고, 그 결과…….

16567319783086.jpg“이렇게요……?”

내가 본인의 은빛 머리카락을 쓰다듬자 그는 놀란 기색을 드러냈다. 오죽할까 싶었다. 나도 지금 내가 저지른 짓이 황당했으니까. 그가 원하는 대로 빨리 칭찬해 주어야 한다는 생각에 이렇게 해버리고 만 것이다. 몹시 부드러워 보이는 이 새하얀 은발을 평소에도 만져 보고 싶었기에, 그런 사심 섞인 행동이었단 것도 부정할 순 없었지만……. 어쨌든 바로 손을 떼기도 좀 뭣해서, 그렇게 머리를 쓰담쓰담하며 말을 이어 갔다.

16567319783086.jpg“참아 줘서 고마워요, 전하. 제가 칭찬하는 건 좀 서툴러서 죄송…….”

16567319783099.jpg“안 돼.”

16567319783086.jpg“네?”

16567319783099.jpg“칭찬받으려고 열심히 참았는데 기껏 쓰다듬어 주는 게…… 머리카락이야? 이런 건 애들한테나 해 줘.”

그가 제 머리카락을 쓰다듬던 내 손을 잡아 내렸다. 그러더니 그대로 나를 번쩍 들어 올려서 카우치로 향했다. 그는 자신이 바라는 것을 점점 더 명료하게 밝혀 왔다. 도저히 외면할 수가 없을 정도로. 나는 진정하고자 노력하면서 그에게 물었다.

16567319783086.jpg“머리카락을 쓰다듬어 주는 게 아니면, 대체 어디를요……?”

16567319783099.jpg“레냐……. 우리 둘 다 성인이잖아. 못 알아들은 척하면서 괴롭힐 생각 하지 마.”

모르는 척하려 했건만, 그는 내 그런 마지막 회피 수단조차 간단하게 좌절시켰다. 그러나 다른 방법을 떠올릴 만한 틈은 없었다. 그가 나를 카우치 위에 눕히며, 동시에 내 몸 위로 올라왔으니까.

16567319783086.jpg“……!”

어느새 몸이 훌쩍 가까워져 있었다. 내 위로 올라온 그의 무게감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그렇게 남성 특유의 커다란 몸 아래에 나를 두고서, 그가 이번엔 내 이곳저곳에 키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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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귓가에, 상기된 뺨에, 그리고 드러난 목덜미에…… 그 모든 예민한 곳에 그의 입술이 닿았다. 하얗게 녹아내리듯 모든 생각이 지워졌다. 내가 떠올릴 수 있는 것은 한 가지 의문점뿐이었다.

16567319783086.jpg‘어떻게 된 거지? 그보다…… 닿을 때마다 피부가 저릿저릿해. 이거, 마력 아닌가……?’

그의 태도가 평소보다 충동적으로 변했다. 동시에 그의 몸에서 마력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나는 그 두 가지가 어떤 연관성을 가지고 있으리라 판단했다. 하지만 그렇게 실낱같이 이어지던 생각도 곧이어 끊어지게 되었다.

16567319783086.jpg“……!!”

내 아랫입술을 그가 본인의 입술로 살짝 빨아들이고 있었다. 생소한 감촉에 놀라서 몸을 움찔거리자 그의 미소가 짙어졌다.

16567319783099.jpg“3년간 신체 접촉 금지 조항은 없던 걸로 하자고, 네 입으로 직접 말해 줘.”

16567319783086.jpg“아뇨, 그건…….”

16567319783099.jpg“어서.”

재촉하며 그가 다시 제 입술로 나를 괴롭혔다. 당장에라도 키스할 것처럼 내 입술 근처를 자극하면서도, 교묘하게 입술은 피해 갔다. 계속 그렇게 피하기만 하니 나로서는 답답했다. 그냥 내가 먼저 그의 얼굴을 붙들고서 입 맞추고 싶을 만큼. 그 괴롭히는 듯한 입맞춤이 계속될수록 그런 욕구는 점점 더 짙어져서-

16567319783086.jpg‘이렇게까지 됐는데 그냥…… 즐길까……?’

-하는, 약한 마음마저 들게 되었다. 그래도 끝내 그럴 수 없었던 건, 내게 그나마 마지막 이성 한 조각이 남아 있어서였다.

16567319783086.jpg‘아니야, 휘말리면 안 돼. 여기서 휘말리면 나도 원작의 레냐처럼 되는 거야!’

내가 스스로 입술을 짓이겨 씹으며 충동을 참아 내자 비로소 그의 숨결도 조금씩 가빠졌다. 그가 내 목덜미에 제 입술을 댄 채로 애원하듯 속삭였다.

16567319783099.jpg“빨리…… 너 스스로 나를 허락해 줘. 그래야 내가 너를…… 완전히 가진 게 돼…….”

그 말을 듣자 비로소 정신이 들었다. 현재 그는 조금도 진심이 아니었다. 단지 나를 완전히 소유해서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는 목적일 뿐. 그 순간 나는 있는 힘을 다해서 그의 어깨를 밀쳐 내곤 뒤로 물러났다. 물론 그래 봤자 내 팔 힘으론 그를 완전히 밀쳐 낼 순 없었지만, 그래도 분위기를 깨는 건 성공했다.

16567319783086.jpg‘진짜로 위험했어, 방금.’

하마터면 넘어갈 뻔했다. 나는 그 위기로부터 나 자신을 지켜 내고자 한껏 눈을 치켜떴다. 그는 그런 나를 놀란 시선으로 잠시나마 멍하니 살폈다. 방금까지 내 살결 위를 스치던 그 입술이 이윽고 움직이더니, 곧 깨질 듯 위태로운 미소를 지어냈다.

16567319783099.jpg“그렇게 쳐다볼 정도로…… 내가 그 정도로 싫었어?”

심장의 한구석이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것만 같았다. 정확히 내 취향을 저격하는 얼굴을 한 남자가 이토록 애처로운 눈빛을 보내오고 있었으니까. 나는 차마 그의 시선을 마주 보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16567319783086.jpg“……아니요. 싫은 거 아니에요.”

그러곤 아까 충동을 참느라 씹어 댔던 입술을 다시금 꽉 깨물었다.

16567319783086.jpg‘싫은 게 아니야. 오히려…….’

오히려 위험할 정도로 좋았다. 정신이 아득히 날아가서, 종래엔 나 스스로를 잃어버릴 것만 같았다. 그러다가 그에게 매달리고, 애원하고, 구걸하다가 비참하게 이용만 당하는 신세가 될까 봐 정말로 무서웠었다. 원작의 레냐가 그랬듯이 말이다.

16567319783086.jpg‘난 원작의 레냐처럼은 안 될 거야. 레냐처럼 네 장난감이자 도구 신세는 절대…… 절대로 안 될 거야…….’

나는 떨리는 손끝을 꽉 말아 쥐곤, 그의 선명한 은회색 빛 눈동자를 정면으로 마주했다. 언제까지고 피하기만 할 수는 없는 일. 내가 그의 장난감이 아니라 동등한 파트너라는 사실을 그에게 알려 줘야 할 때였다.

16567319783086.jpg“전하를 싫어한 적은 절대 없어요. 다만…… 이런 관계를 원했던 것도 아니에요.”

16567319783099.jpg“네가 말하는 ‘이런 관계’라는 게 구체적으로 뭔데?”

16567319783086.jpg“……말 안 해도 아시잖아요.”

16567319783099.jpg“모르겠어. 직접 알려 줘.”

어디 한번 말해 보라는 듯 그가 나를 응시했다. 그 앞에서 나는 마음을 진정시키고자 심호흡했다. 에드의 요구대로 우리의 이 애매한 관계를 소리 내어 말하려면 큰 용기가 필요했으니까.

16567319783086.jpg“제가 말한 이런 관계는…… 서로에게 마음도 없으면서 몸을 섞는 관계를 말하는 거예요.”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다만, 정략결혼으로 이어진 커플들이 다들 그러하듯 그 사실을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하지만 지금 내가, 처음으로 그 금기를 깨트리고서 말했다. 너를 사랑하지는 않노라고. 그 뒤 에드의 눈동자 위엔 무거운 그림자가 서렸고, 나는 왜인지 변명을 늘어놓게 되었다.

16567319783086.jpg“그렇게 보지 마세요. 전하께서도 저랑 같은 마음이시잖아요. 제가 황족인 전하를 선택한 것도, 전하께서 몬트 가문의 딸인 저를 선택한 것도…… 결국은 전부 마땅한 이득을 취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나요?”

16567319783099.jpg“…….”

16567319783086.jpg“그래서 정식적으로 부부 관계를 갖기까지 3년간의 기간을 두기로 한 거였잖아요. 정치적 파트너인 우리가 서로에게 감정이란 걸 품을 때까지.”

굳어서 붙어 버린 줄 알았던 그의 입술이 그제야 느리게 움직였다.

16567319783099.jpg“그래, 그랬지.”

16567319783086.jpg“제 가문의 명성과 힘은 얼마든지 이용하셔도 돼요. 애초에 그걸 위한 결혼이었으니까. 제 능력을 이용하셔도 물론 괜찮아요. 하지만…… 제 감정을 이용하려 하진 마세요. 그건 좀 잔인하잖아요.”

16567319783099.jpg“……잠깐만. 어떻게 그렇게 장담하지? 처음 결혼을 결심했을 땐 감정이 없었다고 쳐도, 지금도 그러리란 보장은 없잖아.”

16567319783086.jpg“…….”

16567319783099.jpg“네게 마음이 생겨서 널 안으려 했다면, 그것도 잔인한 짓이야?”

그가 원작의 레냐를 어떻게 대했는지 전부 아는 나로서는 씁쓸하게만 들리는 물음이었다. 물론 전에 이시스 때문에 기절했을 때, 에드가 레냐를 그리워하듯 행동하는 꿈을 꾼 적은 있었다. 하지만 그건 꿈이었다. 그에게 조금이라도 인간적인 면모가 있기를 내심 바랐기에, 내 그런 마음이 꿈의 형태로 나타났을 뿐이었다.

16567319783086.jpg“전 장담할 수 있어요. 전하께서 제게 진심이 아니시라는 거. 그리고 앞으로도 쉽게 진심이 되진 않으실 거라는 거.”

16567319783099.jpg“장담한다니, 그런 억지가 어디 있…….”

16567319783086.jpg“그렇다면 한번 증명해 보시겠어요?”

손을 뻗었다. 여전히 우린 가까이 맞닿아 있었고, 덕분에 내 두 손은 금방 그에게 닿았다. 나는 무력하게 굳어 있는 그의 얼굴을 꼭 붙잡아서 나를 똑바로 쳐다보게 만들었다.

16567319783086.jpg“제 눈을 똑바로 봐 주세요.”

마주한 그의 시선이 잘게 떨리고 있었다. 아마 내 시선도 마찬가지일 터였다. 그렇게 서로 숨김없이 눈동자를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을 때, 나는 그에게 요구했다.

16567319783086.jpg“이제 말씀해 주세요. 제게 정말로, 티끌만큼의 애정이라도 품고 계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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