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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동생 약혼녀 건드리면 왜 안 돼? (43/102)

43. 동생 약혼녀 건드리면 왜 안 돼?2021.08.27.

황자궁 시녀들로부터 듣게 된 소식은 역시나 절망적이었다. 킬리안을 초조하게 만든 그 불청객, 황태자가 마침내 지루함을 못 참고 움직였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레냐의 방을 향해서.

16567320271497.jpg“안 돼!!”

킬리안이 그리 비명 지르는 와중에도 시녀들은 발을 동동 구르며 불길한 소식들을 쏟아 냈다.

16567320271504.jpg“숙녀의 방에 함부로 들어가서는 ‘절대로’ 안 된다고 말리고 또 말려도 도통 듣지를 않으십니다!”

16567320271504.jpg“그냥 무작정 들이닥치고 계세요! 동생이 고른 여자가 사치스럽고 경박한 여자일지도 모르니 확인해 봐야겠다는 말만 계속 반복하시면서요!”

16567320271504.jpg“에드 전하께서 이 일을 아시면 궁을 뒤집어엎으실 정도로 분개하실 텐데…… 어째야 하죠?!”

킬리안은 눈앞이 하얗게 변하는 기분을 느끼며 비틀거렸다.

16567320271497.jpg‘전하께서 오시기 전까지 어떻게든 얌전히 붙잡아 놓으려고 했건만……!’

황태자가 불쑥 찾아와서는 레냐를 보여 달라고 난동부릴 때부터 킬리안은 다짐했었다. 이시스를 쫓느라 바쁜 에드 대신 자신이 어떻게든 저 막무가내 황태자를 막아 보겠노라고. 하지만 황제와 황후의 사이에서 태어난 외동아들이자, 유력한 황위 계승자로서 모두의 섬김을 받으며 자라난 황태자는 킬리안이 생각했던 것보다도 훨씬 더 막무가내였다. 게다가―

16567320271497.jpg‘아가씨 침실에 그렇게까지 들어가겠다고 우기는 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상해. 그 음흉한 황족 일가가 또 이상한 흉계라도 꾸미고 있는 건……?’

황태자 본인은 그저 ‘확인’해 보고 싶을 뿐이라고 말하긴 했다. 동생이 고른 여자의 성품이 괜찮은지 확인해 봐야겠는데, 레냐 본인이 현재 없으니 아쉬운 대로 그녀의 방이라도 한번 검사해 봐야겠다고……. 물론 그것도 상당히 끔찍한 소리긴 했지만, 어쩐지 그게 다가 아닌 듯하여 킬리안은 불안했다. 어쨌든 상대가 황족인지라 무력을 쓸 수도 없는 상황. 킬리안으로서는 에드가 연락을 받고서 최대한 빨리 달려오길 기도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그때, 이번엔 시종 하나가 벌컥 들어와서 알렸다.

16567320271504.jpg“킬리안 님! 큰일입니다!”

16567320271497.jpg“또……?! 이번엔 뭐냐!”

16567320271504.jpg“한 시간 안으로 황자궁에 도착할 것 같다고, 레냐 아가씨로부터 서신이 왔습니다!”

  * * * 북부에서 수도로 돌아오는 길은 체감상 수도에서 북부로 가는 길보다 훨씬 짧게 느껴졌다. 아마 많은 이가 곁에서 도움을 준 덕분일 터였다. 루카스, 닉 오빠, 알렉시스와 카롤라…… 그리고 아직 아버지라 부르긴 좀 어색하지만, 어쨌든 아버지까지도 팔을 걷어붙이고서 도와준 덕분에.

1656732027154.jpg“결혼식 날까지 나랑 니콜라스도 수도에 있는 별장에서 지내기로 했다. 황자궁이랑 거의 같은 방향이니 혼자 가지 말고 조금 기다렸다가 우리랑 같이 올라가라.”

  그는 그렇게 말하곤 시종들을 시켜서 내 짐 챙기는 걸 돕게끔 했다. 그뿐 아니라 공작가 소속의 기사들, 시종들, 그리고 공작가에서 소유한 특수한 마차 등등을 이동에 동원했다. 덕분에 나는 비행 가능한 정령 네 마리가 끄는 그 특수한 마차 안에서 편안히 잠들어 있기만 해도 됐다. 잠에서 깨어났을 땐 어느새 벌써 수도에 있는 별장에 도착해 있었다. 그리고 현재, 나는 다시 플라잉(?) 마차를 타고 혼자 황자궁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16567320284909.jpg‘에드는 지금쯤 궁에 도착했으려나? 이시스는 어떻게 됐는지부터 바로 물어봐야겠다. 아니면 그 전에 목욕이나 좀 하고 싶은데…… 물은 준비됐을까?’

아까 별장에 도착했을 때, 삐약이에게 부탁하여 황자궁으로 서신을 보냈었다. 수도에 도착했으니 대략 한 시간이면 황자궁에 닿을 것 같노라고 알리기 위해서였다. 별장과 황자궁이 가까운 만큼 서신은 진작에 전달됐을 터. 지금쯤이면 한나가 따뜻한 목욕물을 한창 욕조에 채우고 있을 듯했다.

16567320284909.jpg‘아아…… 긴 여정이었어. 빨리 쉬고 싶다…….’

그리 생각하며 기지개를 쭉 켜고 있을 때 마차에서 ‘덜컹’ 소리가 났다. 그러곤 곧 문이 열리더니, 공작가 마부가 알려 왔다.

16567320271504.jpg“황자궁에 도착했습니다.”

16567320284909.jpg“벌써?”

그래도 넉넉잡아 한 시간 정도는 걸릴 줄 알았는데, 30분 만에 도착해 버렸다. 문을 열어 보니 정말로 마차는 땅에 착륙해 있었다. 워낙 부드럽게 하강해서 내려오는 줄도 몰랐건만…….

16567320284909.jpg‘예상보다 30분이나 더 일찍 도착했네. 목욕물 아직 준비 안 됐겠다.’

나는 그런 한가로운 생각을 하며 마차를 공작가 별장으로 돌려보냈다. 그사이 황자궁의 시종들 몇몇과 한나가 달려와서 나를 마중해 주었다.

16567320284933.jpg“아가씨!”

16567320284909.jpg“한나!”

오랜만에 보는 한나가 반가워서 포옹하려 했는데, 그녀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다소 초조하고 당황스러워 보였다고 해야 할까?

16567320284909.jpg‘왜 저런 표정이지? 혹시 내가 너무 일찍 도착해서……?’

고민하고 있던 차, 마침 다가온 그녀로부터 이상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16567320284933.jpg“아가씨, 지금 말고 나중에 들어가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16567320284909.jpg“……? 무슨 소리야? 무슨 일 있어?”

16567320284933.jpg“혹시 전에 닐스 황태자 전하를 뵌 적 있으시던가요?”

닐스 폰 베르크, 에드의 이복형제인 그를 본 건 원작에서 뿐이었다. 거칠고, 충동적이며, 무례한…… 현실에선 절대 마주치고 싶지 않은 타입의 등장인물이었던 게 떠올랐다. 어쨌든 실제로 본 적은 없는지라 고개를 내저었다.

16567320284909.jpg“아니, 뵌 적 없어. 내가 원체 북부에서 잘 안 나갔었잖아.”

16567320284933.jpg“그럼 앞으로도 최대한 피하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아주 무례한 분이세요. 아가씨를 만나야겠다고 난동 부리다가, 지금은 아가씨 방을 구경해야겠다고 또 막무가내로 고집을 부리고 계시거든요. 그러니 마주치지 말고 저랑 잠시 다른 곳에 있다 올까요?”

16567320284909.jpg“잠깐만, 내 방을 본다고? 내 허락도 없이 내 개인적인 생활공간을 본다는 거야?”

한나는 생각하기도 싫다는 듯 눈을 꾹 감고는 대답했다.

16567320284933.jpg“……네, 아가씨의 장신구랑 옷장을 뒤져 볼 생각인가 봐요. 다 달라붙어 말려 봤지만 듣지도 않고, 사치스러운 여자인 아닌지 확인해 봐야 한다며 그리 막무가내로…….”

16567320284909.jpg“뭐?!”

황당하면 말도 잘 안 나온다는 게 이런 건가 싶었다.

16567320284909.jpg‘본인이 무슨 자격으로 나를 평가하겠다는 거야? 사치스러우면 어쩔 건데? 우리 결혼을 반대하기라도 하겠다는 거야, 뭐야?’

수없이 많은 생각이 동시다발적으로 떠올랐으나, 결국 내 입으로 흘러나온 건 단 한마디였다.

16567320284909.jpg“……그 사람, 지금 어디 있어?”

16567320284933.jpg“그레이트홀에서 아가씨 침실로 올라가는 계단에 있을 거예요. 거기서 시종들에게 비키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 아가씨? 가지 마세요!! 그냥 저랑 피해 계세요!!”

한나는 내가 그런 인간과 마주치는 걸 걱정하는 눈치였지만, 나는 피하기 싫었기에 그녀의 외침을 뒤로하고 계속 걸어갔다. 감히 나를 본인이 ‘평가’해 보겠다는 그 오만함을, 그리고 남의 방에 허락도 없이 침입하려 드는 그 무례함을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무엇보다―

16567320284909.jpg‘옷장에 속옷 같은 것도 있는데 거길 뒤져 본다고? 이거 완전히 미친놈 아니야?!’

내 사적인 물건들을 그런 인간에게 보이는 건, 정말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인 것이다. * * * 황자궁의 시종들이 퍽 집요하게 닐스의 앞을 막아섰지만, 그들을 뿌리치는 것 자체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황족의 권위를 들이밀며 뒷일을 책임질 수 있느냐고 윽박지르면 힘없는 자들은 결국 따르게 되어 있었으니까. 그런 식으로 레냐의 침실에 들어오는 데 성공한 닐스가 쭉 주위를 둘러보았다.

16567320311699.jpg‘여기가 그 여자 방……? 별것도 없어 보이는데 아버지께선 왜 그리 경계를 하시는지…….’

그는 이곳에 오기 전, 아버지로부터 받은 명령을 떠올렸다.

16567320271504.jpg“지금 황자의 궁으로 가라. 동생의 약혼녀를 만나 보고자 왔다고 하면 별 의심 없이 들여보내 줄 거다. 거기서 그 여자…… 레냐 폰 몬트를 만나거든 황성으로 데려오고, 못 만날 경우엔 어떤 여자인지라도 알아 와라. 가능한 한 은밀하게, 그리고 자세하게.”

  언제나 그렇긴 했지만, 이번엔 아버지의 얼굴 위로 유독 어두운 근심의 그림자가 내려앉아 있었다. 그래서 무슨 이유로 그런 명령을 내리느냐고 물었고, 아버지는 대답했다.

16567320271504.jpg“알잖느냐. 나는 그쪽 집안 것들을 믿지 않아. 일이 이렇게 됐으니 결혼은 허락했지만 혹시 모를 일이다. 마테우스…… 그자가 제 딸을 이용해서 무언가 꾸미는 것일지도.”

  아버지가 몬트 공작과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 자세한 내막은 닐스도 잘 몰랐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점은, 아버지의 공작을 향한 집착이 다분히 편집증적이라는 것이었다. 그는 항상 공작을 주시하고, 경계하고, 압박하며…… 때론 질투했다. 어쨌든 그런 아버지는 이번에도 공작을 의식하여, 닐스에게 ‘은밀히’ 공작 영애를 조사해 올 것을 명령했다. 레냐의 주변인들에게 대화를 걸어서 쓸 만한 정보를 캐 오라는 의미에 가까웠다. 다만 닐스는 그 의미를 파악하여 은밀하게 움직일 만큼 현명하지 못했고, 결국 ‘은밀’과는 거리가 먼 방법으로 레냐의 방에 침입하게 되었다. 물론 그에게도 변명거리는 있었다.

16567320311699.jpg‘그런데 아버지도 참…… 내가 무슨 첩자도 아니고, 황태자 신분으로 뭘 어떻게 은밀하게 조사하냐고.’

동생의 약혼녀가 사치스러운지 확인하겠다는 거짓 핑계라도 대서 의심을 피하는 것이 닐스의 최선이었다. 속셈을 숨기고자 그는 이번에도 괜스레 시종들에게 들으라는 듯 중얼거렸다.

16567320311699.jpg“흠흠, 크게 문제 될 만한 건 안 보이는군. 마땅한 회계지식을 갖추고 있는지도 한번 봐야겠는데……?”

그러면서 은근슬쩍 책상 서랍을 열곤, 그 안을 뒤적거렸다. 문제 될 만한 서신이나 서류가 존재한다면 아마도 그곳에 보관돼 있을 터였다. 그러나-

16567320311699.jpg‘공작이랑 주고받은 서신이 왜 이리 한 장도 안 나오지? 부녀간에 소원하다던데 이 정도였나.’

황제는 공작이 제 딸과 작당하여 흉계를 꾸밀지도 모른다며 두려워했으나, 그럴 가능성은 적어 보였다. 안부를 묻는 편지조차 안 주고받을 만큼 소원한 부녀가 어떻게 작당하고, 어떻게 흉계를 꾸미겠는가. 닐스는 그리 생각하며 헛웃음을 흘렸다.

16567320311699.jpg‘쯧, 하긴 그 사생아 자식이 멀쩡한 여자를 골랐을 리 없지. 집안에서 내다 버린 음침한 여자를 어떻게 주워 가지곤…….’

건방진 이복동생이 공작 영애와 맺어지는 게 내심 짜증스러웠기에, 속으로 그렇게 꿍얼거리고 있을 때였다.

16567320284909.jpg“황태자 전하.”

등 뒤에서 낯선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에 의문을 느낀 닐스는 하던 행위를 잠깐 멈추었다.

16567320311699.jpg‘시녀들은 전부 밖에 있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의아한 점은 그것뿐이 아니었다. 황태자인 자신을 막으러 왔다면 보통의 시녀가 아닌, 시녀장 정도 되는 자가 왔어야 했다. 그런데 등 뒤에서 들린 목소리는 시녀장치고는 상당히 젊었다. 또한, 얼핏 들어도 마음이 들뜰 만큼 청명하고 아름다웠다.

16567320311699.jpg‘설마……?’

그는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고, 제 뒤에 선 여자를 정면으로 마주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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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67320284909.jpg“…….”

그의 짐작대로 그를 부른 건 시녀가 아니었다. 북부에서 쥐 죽은 듯 조용히 지낸 까닭에 누구도 제대로 본 적이 없다던, 레냐 폰 몬트 공작 영애…….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니 분명 못생기고 음침한 여자일 것이라고 소문이 자자했던 그녀가, 그를 부른 목소리의 주인이었다.

16567320311699.jpg‘이 여자가 정말로 그 공작 영애라고? 말도 안 돼. 그럴 리가…….’

이미 머릿속으론 제 앞에 선 여자의 정체를 충분히 짐작한 닐스였다. 다만, 그는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16567320311699.jpg‘그 자식이…… 그 사생아 자식이 이런 여자랑 결혼을 해?!’

황제의 정식 후계자인 자신과 달리 그의 동생은 그저 사생아에 불과했다. 그런데도 매번 여자들의 관심을 받는 건 닐스가 아니라, 그 사생아 동생이었다. 가까스로 꼬셔서 연회장에 데려온 여자조차 닐스 자신은 본체만체하고 에드만 힐끔거릴 때의 그 비참한 기분이란…….

16567320311699.jpg‘이건 안 되지……!!’

그가 열등감과 복수심에 집어 삼켜진 건 그야말로 순식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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