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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나를 싫어하는 남자와의 결혼 (46/102)

46. 나를 싫어하는 남자와의 결혼2021.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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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냐가 떠난 이후 황제의 알현실엔 줄곧 찬물을 부은 듯한 침묵만 들어차 있었다. 말없이 차만 홀짝이다가 찻잔이 바닥을 드러냈을 즘에야 비로소 황후가 그 침묵을 깨트렸다.

16567320735112.jpg“쯧, 아주 되바라진 아이였네요.”

16567320735112.jpg“그쪽 집안의 핏줄이니 오죽하겠습니까. 내 이럴 줄 알았지요.”

황후에게 동의한다는 듯 황제도 곧장 그리 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곳에 있는 건 자신의 남편과 찻잔을 치우는 시녀뿐. 황후는 더욱 거리낌 없이 눈가를 구겼다.

16567320735112.jpg“생긴 것은 봐 줄 만하니 잘 얼러서 닐스와 이어 주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었는데…… 저래선 힘들겠어요.”

16567320735112.jpg“누누이 말했지만 그런 생각은 접는 게 좋을 겁니다. 세간에는 공작과 소원한 관계라고 알려졌어도, 또 모를 일이지요. 실상은 제 아비가 뒤에서 시키는 대로 착실하게 따르고 있는지도…….”

16567320735112.jpg“닐스가 돌아오면 바로 물어봐야겠어요. 혹시라도 황자궁에서 수상한 것을 발견하지는 않았는지.”

황제는 그런 찜찜한 여자를 가족으로 들일 순 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다만, 닐스의 짝으로 신분이 높고 아름다운 아가씨를 줄곧 찾고 있던 황후로서는 자꾸만 미련이 남았다.

16567320735112.jpg‘공작이 교육을 잘못 시켜서 되바라지긴 했어도 고작 사생아의 짝으로 지어 주긴 아까운 종자였지…….’

공작의 무용담은 황후도 들어서 잘 알고 있었다. 그녀의 남편이 황제가 될 수 있었던 것도 마족 전쟁 막바지에 ‘그 사고’가 일어났기 때문일 뿐. 그게 아니었다면 황제가 되는 건 공작이었으리란 것 또한, 다 아는 사실이었다. 제 남편이 공작을 질투하는 것도 그래서일 것이고.

16567320735112.jpg‘그 잘난 남자의 딸인 데다가 얼굴도 반반한 영애이니, 닐스와 이어 주면 필시 황실 핏줄의 질이 한 단계 높아질 거야. 교육이야 내가 어른으로서 인내심을 가지고 차차 시키면 될 일이고. 무엇보다…….’

황후가 시선을 슬쩍 옆으로 돌려, 제 곁에 앉은 황제를 살폈다.

16567320735112.jpg‘그 애가 완전하게 닐스의 짝이 되면 이 사람의 쓸데없는 불안감도 조금 잠잠해질 테니.’

공작을 향한 남편의 두려움과 질투가 내심 짜증 나던 참이었다. 그런 공작의 딸을 아예 며느리로 삼아서 완전하게 복속시키는 것이야말로 남편의 집착증을 치료하는 가장 좋은 수단이 될 수도 있었다. 그렇게 한 공간에 있는 부부가 서로 다른 생각을 하느라 바쁠 때―

16567320735112.jpg“윽……!”

찻잔을 치우던 시녀가 갑자기 손등을 부여잡으면서 주저앉았다. ‘쨍그랑―!’ 그녀가 들고 있던 잔들이 바닥에 떨어져 요란스레 깨졌고, 그 탓에 황후의 집중도 덩달아 깨지게 되었다. 황후가 깨진 찻잔 파편처럼 날카로운 시선으로 시녀를 응시했다.

16567320735112.jpg“무슨 일이니?”

16567320735112.jpg“……아무것도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그러나 아무것도 아니라는 그 말과 달리, 그녀의 손등에 감아 둔 붕대 위로 붉은 핏물이 스며 나오고 있었다. 붕대가 젖은 모양으로 보아 날카로운 것에 베인 상처인 듯했는데, 완전히 아물기 전에 손을 움직여 일해서 살이 도로 벌어진 듯했다. 여하간, 생각할 게 많은 황후로서는 짜증스러울 뿐이었다.

16567320735112.jpg“쯧, 그럼 멍하니 있지 말고 그 손등부터 좀 가리렴. 흉측하구나. 그리고 깨진 걸 치울 다른 시녀도 빨리 불러오도록 하고.”

16567320735112.jpg“예, 황후 폐하.”

시녀가 제 붉은색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황급히 자리를 벗어났다. 그녀의 뒷모습을 보면서 황후는 잠깐 의아함을 느꼈다.

16567320735112.jpg‘저 시녀가 언제부터 있었더라?’

저렇게 눈에 띄는 새빨간 머리카락을 가졌다면 응당 기억에 선명히 남아 있어야 옳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언제부터 저런 아이가 있었는지 떠오르지 않았다. 꼭 머릿속에 짙은 안개가 낀 것처럼.

16567320735112.jpg‘아니, 쓸데없는 생각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지.’

지금 중요한 것은 레냐를 어찌 구워삶을 것인가였다. 손등을 다친 그 이상한 시녀에 대해서는 이미 까맣게 잊어버린 채, 그녀는 다시 고민을 이어 갔다. * * * 황자궁에 돌아왔을 즘엔 하늘이 완전히 깜깜해져 있었다. 그럼에도 편히 쉬기는커녕 나는 걱정에 잠겨선 에드를 기다리고만 있었다. 대체 아까 황태자 귀에 대고 무슨 소릴 한 건지― 무사히 돌아올 순 있는 건지― 혹시…… 황태자와 싸움이라도 벌어진 건 아닌지― 그런 온갖 걱정들이 머릿속을 어지럽게 휘젓고 있었다. 그때, 마침내 간절한 내 마음을 느끼기라도 한 것처럼 에드가 허공을 날아서 궁에 돌아왔다. 묻고 싶은 게 많았던 나는 곧장 홀에 내려가 그를 맞이했다.

16567320765662.jpg“전하! 대체 아까 무슨 일이…….”

대체 황태자와 무슨 일이 있었냐고 당장 물어보려 했다. 그럴 수 없었던 건, 그가 여전히 우울하게 가라앉은 눈빛을 하고 있어서였다. 그 눈빛을 마주하자 나도 말문이 막혀 버렸다.

16567320765662.jpg“…….”

16567320765672.jpg“…….”

우리는 피차 침묵했고, 그사이 에드는 내 옆을 휙 스쳐서 지나갔다.

16567320765662.jpg‘뭐야, 이렇게 그냥 간다고……?’

궁에 도착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쭉, 그가 오기만을 애타게 기다렸다. 그런데 그 긴 기다림이 이렇게나 아무렇지도 않게 무시당하다니……. 곧장 그를 붙잡아 세우려 했으나, 킬리안이 그런 내 앞을 막아섰다.

16567320796735.jpg“전하께서 오늘은 누구와도 대화하고 싶지 않다고 하십니다.”

16567320765662.jpg“……내가 혼자 황성에 다녀와서? 그게 대체 왜……? 내 실수가 뭔지 구체적으로 말해줘.”

16567320796735.jpg“아니요. 이번 일은 아가씨께서 실수하신 게 아닙니다. 전하께서도 아가씨께 화를 내는 게 아니에요. 단지…….”

킬리안이 말을 채 끝맺지 못하고서 눈을 질끈 감았다. 그 머뭇거림 끝에 나온 것은 퍽 허무한 대답이었다.

16567320796735.jpg“……제가 함부로 떠들 만한 문제가 아니니 더 말씀드릴 수가 없군요. 부디 양해해 주십시오. 그리고 부디…… 전하께 진정할 시간을 주십시오.”

킬리안의 대답을 듣자마자 몸에서 힘이 쭉 빠져나갔다.

16567320765662.jpg‘내게 화난 게 아니라고? 하지만…….’

그렇다기에는 방금 에드가 나를 보는 눈빛이 너무 싸늘했다. 화나지 않았다는 사람이 어떻게 그런 차가운 눈빛을 할 수가 있을까. 그래도 지금 당장 그에게 달려가서 물어볼 수도 없는 일. 나는 일단 킬리안의 조언에 따라 에드가 먼저 마음을 열길 조용히 기다려 보기로 했다. 그렇게 기다림 속에서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났다. 그런데도 여전히 에드는 말없이 나를 피하고만 있었다. 심지어는 킬리안을 포함하여 다른 사용인들조차 죽은 듯 조용히 지내기만 해서, 나는 결혼식을 준비하다가 잠깐 쉬는 틈에 한나에게 물었다. 에드가 왜 저러고, 저러는 것이 정당한지 등등을. 내가 황성에 갔었을 때 황자궁에 남아 있었던 그녀는 내가 몰랐던 사실을 알려 주었다.

16567320796757.jpg“아마 황실을 향한 에드 전하의 감정이 정말로 정말로 나빴나 봐요. 우리가 상상했던 것보다도 훨씬 더요.”

16567320765662.jpg“……그래?”

16567320796757.jpg“네, 그때 아가씨께서 황성으로 떠나시고 30분도 안 지났을 즘에, 에드 전하께서 황자궁으로 급히 오셨었답니다. 킬리안 씨가 보낸 서신을 받자마자 곧장 오신 것 같았어요.”

그날 킬리안이 ‘에드에게 서신을 보냈으니 조금 기다렸다가 황성에 같이 가라―’고 말했던 게 떠올랐다. 황태자가 나를 만나려고 황자궁에 와 있다고만 적어 보냈을 텐데, 그 소식만 듣고도 에드는 그리 급히 달려온 것이다. 그렇게 서둘러 돌아왔건만 나는 이미 가 버린 상태였으니…… 에드의 반응이 어땠을지는 대강 알 것도 같았다. 역시나 그날의 일을 말하는 한나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16567320796757.jpg“그렇게 땅에 내리시자마자 아가씨의 행방을 물으셔서 킬리안 씨가 사실대로 대답했는데…… 휴……. 그 후에 정말로 끔찍했답니다.”

16567320765662.jpg“……어땠는데?”

16567320796757.jpg“전 살면서 사람이 그 정도로 싸늘한 기운을 풍기는 건 본 적이 없어요. 공작 각하께서 가끔 화내시는 거랑은 비교도 안 될 정도였답니다.”

16567320765662.jpg“…….”

16567320796757.jpg“말 한마디 안 하고 그냥 가만히 있기만 하는데도 핏속까지 얼어붙는 기분이 들었다고 해야 할까요?”

한숨을 푹 내쉬고서 한나가 당부했다.

16567320796757.jpg“어쨌든, 전하께선 아가씨께서 황성에 가시는 걸 정말로 정말로 싫어하시는 것 같으니까 앞으론 가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요.”

16567320765662.jpg“……응. 내 생각에도 그런 것 같아.”

에드가 나 없는 틈에 화를 냈을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직접 귀로 들으니 더 충격적이었다. 그렇다고 아직 진정하지 못했을 그에게 억지로 접근할 수도 없고, 나로서는 어서 그가 마음을 열어 주길 기다리는 것이 최선이었다. 그렇게 마음이 불안한 와중에도 시간은 계속 흘러, 결혼식 날이 결국 오고야 말았다.

16567320796757.jpg“아가씨! 드디어 결전의 날이에요! 일찍 일어나셔야 해요!”

새벽부터 들려온 한나의 그런 외침을 시작으로 그날은 정말로 온 사방이 새벽부터 시끌벅적했다. 나는 우선 욕실로 끌려갔다. 그곳에서 온갖 향료를 다 부은 듯한 물로 몸을 씻고 나왔더니, 이번엔 또 화장대로 끌려가게 되었다. 그 뒤부터는 눈에 핏줄까지 세워 가며 나를 꾸며 주는 시녀들 때문에 다시 정신이 없어졌다.

16567320735112.jpg“아가씨? 잠깐 눈 좀 감아 주시겠어요?”

16567320735112.jpg“아앗! 아직 손톱 움직이시면 안 돼요! 붙여 둔 보석 떨어져요!”

16567320735112.jpg“입술로 음파음파, 한 번만 해 주세요.”

16567320735112.jpg“화장 마를 때까지 잠깐만 눈 감고 계셔 주세요.”

16567320735112.jpg“음? 날이 더워서 꽃이 그새 시들해졌네?! 거기 너, 저쪽 선반에 보면 미리 챙겨 둔 꽃들 있을 텐데 그중에서 싱싱한 걸로 다섯 송이 정도 더 가져와 봐, 어서어서!”

16567320735112.jpg“다섯 송이요?! 네!!”

정말로, 어마어마하게 바쁘고 정신이 없었다. 거기에 황성과 공작성에서 나온 시녀들은 서로 은근하게 기 싸움을 벌이고……. 나를 찾아온 손님들은 자꾸만 말을 걸어 대고……. 내 피로도는 식을 올리기도 전부터 이미 최고치에 달해 있었다.

16567320765662.jpg‘와, 결혼식 두 번 했다간 쓰러지겠다.’

아빠랑 오빠는 제대로 보지도 못했다. 와서 뭐라뭐라 말한 것도 같은데, 그때도 정신이 너무 없었던 탓에 제대로 듣지 못했다. 그러다가 눈을 떠 보니 어느새 입장할 순간이었다.

16567320765662.jpg‘에드는…… 저 앞에 있구나. 여기선 잘 안 보이네.’

나보다 먼저 입장한 그는 이미 단상 앞에 서 있었다. 하필 햇빛이 역광을 만들어서 그의 모습이 잘 보이지는 않았다. 그런데도 내 심장은 조금씩 그 속도를 높이고 있었다. 그저 실루엣만 봐도 저토록 훤칠하고 멋진데, 가까이에서 자세히 보면 어떨까 싶은 기대감에. 그러는 사이 입장곡이 울렸고, 나는 내 앞에 펼쳐진 길을 따라 걸어가 그의 앞에 섰다.

16567320765662.jpg‘아직도 우울한가?’

내가 옆에 왔는데도 예전처럼 웃어 주지 않았다. 그래도 어쨌든 대단히 멋지다는 점만은 여전했다. 황실 전통에 따라 새하얀 예복 위에 붉은 망토를 걸친 그는 그곳에서도 가장 고고하게 반짝이는 존재였다. 은빛 머리카락은 햇빛을 받아 투명하게 빛났고, 속눈썹도 마찬가지였다. 햇빛이 내려앉으니 꼭 보석처럼 보였다. 은회색 눈동자는 그 속눈썹이 드리운 그림자에 잠겨 있었는데, 그조차도 신비롭게만 느껴졌다. 마치 세상 모든 아름다움을 모아 빚은 것만 같아서, 주례가 뭐라고 하는지도 제대로 듣기 어려웠다. 물론 에드도 나를 이따금 쳐다보기는 했다. 하지만 현재 그의 기분이 저조한 걸 생각해 보면, 아마 나처럼 이렇게 속으로 감탄하고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꾸미니까 평소보다 조금 더 낫네―’ 정도로 생각하고 있지 않을까? 여하간 감탄하는 사이 주례가 끝나서 마침내 입술을 맞댈 순간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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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67320765662.jpg“하기 싫으면 그냥 하는 척만 해도 괜찮아요. 어차피 다들 멀리 앉아 있어서 제대로 보이지도 않을 테니까.”

16567320765672.jpg“…….”

그는 내가 속삭인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말없이, 내 입술 위에 낙인찍듯 제 것을 맞대어 왔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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