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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나 싫어하는 거 아니었어……? (47/102)

47. 나 싫어하는 거 아니었어……?2021.09.10.

나를 그토록 피해 다녔던 에드다. 그리 꼴 보기도 싫어하던 여자와 입을 맞추게 됐으니, 얼마나 곤혹스러울까 싶었다.

16567320897174.jpg‘괜히 괴롭히지 말아야지.’

나를 싫어하는 남자와 키스하는 건 나 역시도 원치 않는 일. 그러니 그가 끔찍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밀쳐 내기 전에 내 쪽에서 먼저 떨어지고자 했다. 그랬지만…….

16567320897174.jpg“……?”

그는 자신을 밀어내는 내 손을 곧바로 붙들어 내려 버리곤, 오히려 본인이 먼저 나를 단단하게 끌어안아 왔다. 내 허리춤에 얽힌 그의 팔뚝을 나로서는 도저히 풀어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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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 붙들린 상태로 아까보다 더욱 농밀해진 그의 입맞춤을 받아내며, 내 머릿속엔 단 한 가지 의문점만이 떠올랐다.

16567320897174.jpg‘왜……?’

그는 분명 나를 꺼렸고, 우린 며칠간 제대로 눈조차 마주치지 않았었다. 그런데 지금의 우리는 눈 마주치는 걸 넘어서 더 비밀스럽고도 민감한 부위를 이토록 얽어 대고 있지 않은가. 응당 나로서는 당황스러웠고, 동시에 헷갈렸다. 나를 밀어내던 어제까지의 에드, 그리고 나를 통째로 집어삼킬 것처럼 구는 지금의 에드……. 그 둘 중 어느 것이 진짜 그인지 알아차릴 수 없었으니까. 그렇게 혼란함으로 가득했던 입맞춤의 시간이 어느덧 끝났다. 그는 반쯤 풀린 눈으로 나를 보다가, 문득 내 입술을 제 엄지로 닦아 주었다.

16567320897194.jpg“미안.”

대체 어느 부분이 미안하다는 건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지나치게 색정적으로 입술을 맞댄 것? 아니면 지금까지 나를 외면한 것? 뭐 어찌 됐든, 내가 건넬 대답은 하나뿐이었다.

16567320897174.jpg“괜찮아요. 신경 안 써요.”

16567320897194.jpg“…….”

그냥 언제나처럼 적당한 대답을 적당히 들려줬을 뿐인데, 그의 시선이 조금 흔들렸다. 전에 그를 밀쳐 냈을 때와 왠지 비슷한 눈빛이라 조금 마음이 쓰였다. 하지만 곧 들려온 우렁찬 박수 소리 탓에 내 생각은 더 깊어지지 못했다.

16567320897206.jpg“와아아아!”

외침과 환호, 그리고 축복을 빌어 주는 기도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부부라는 이름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 * * 식을 마친 뒤에는 곧바로 피로연이 이어졌다. 나는 웨딩드레스 대신 좀 더 가벼운 파티용 드레스로 갈아입고서 피로연 장소인 황성의 제1 정원으로 나갔다.

16567320897174.jpg‘좋아. 다 잘 준비돼 있네.’

테이블은 내가 고른 코랄 빛깔의 꽃과 리본으로 화려하게 장식돼 있었다. 사람의 머리 높이를 훌쩍 넘어서는 거대한 케이크도, 금박을 입힌 샴페인 잔들도 전부 제대로 준비돼 있었다. 돈은 얼마든 써도 좋으니 최대한 호화롭게 꾸미라는 아버지 말에 따라 여기저기 돈 칠을 한 결과였다. 이런 최고급 물품들을 준비하면서 ‘정말 이렇게 천문학적인 돈을 써도 되나?’ 하는 걱정도 조금 있었지만, 지금 보니 이러길 잘했구나 싶었다. 제국에서도 내로라하는 귀족들이 온갖 보석으로 치장한 드레스를 입고서 참석해 온 것이다.

16567320897217.jpg“황자비님의 빼어난 안목이 돋보이는 피로연이네요!”

16567320897217.jpg“무엇 하나 빠짐없이 훌륭하고 멋져요!”

16567320897217.jpg“어쩜 이렇게 아름다울까요? 정말로 제가 꿈꿔 오던 그대로의 결혼식이에요!”

눈이 웬만큼 고급화됐을 귀부인들도 피로연장에 들어서자마자 그런 칭찬들을 건넸다. 돈 아껴 가며 대충 꾸몄으면 저 귀부인들 앞에서 체면이 제대로 구겨졌을 터……. 아버지 말대로 돈을 치덕치덕 발라 댄 건 잘한 선택이었다. 어쨌든 에드와 나는 만면에 미소를 띤 채로 그 반짝이는 사람들 사이를 활보하고 다녔다. 비록 결혼식을 준비하며 조금 삐걱거린 감이 없잖아 있었지만, 남들 앞에서만은 완벽한 부부를 연기해야 했으니까. 그리고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그 모든 살인적인 일정을 소화해 내고 나서 나는―

16567320897174.jpg‘와, 죽겠다……. 구두 벗고 싶어……. 옷 갈아입고 싶어……. 왜 다들 안 가는 거야……. 제발 가주세요…….’

그런 생각을 하며, 피로연장 구석에 마련된 의자에 주저앉게 되었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그쯤 되니 사람들의 관심도 내게서 조금 멀어져서, 비로소 가족들과 제대로 대화다운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1656732091044.jpg“힘들지? 결혼이란 게 원래 그런 거다.”

닉 오빠와 함께 다가온 아버지가 그런 모호한 말을 건넸다. 온몸이 무거웠던 나는 고개를 들지도 못하고 대충 입만 뻐끔거렸다. 그는 내 그런 모습을 말없이 보다가, 내 눈앞으로 웬 작은 상자 하나를 불쑥 내밀었다.

1656732091044.jpg“그런 의미에서 이거, 받아라.”

16567320897174.jpg“……?”

1656732091044.jpg“니콜라스가 준 것처럼 뭐 엄청 대단한 선물은 아니지만, 나도 하나 챙겨 왔다.”

그가 선물을…… 그것도 이렇게 앙증맞은 리본으로 포장된 선물을 가져왔을 줄이야.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곧장 상자를 열어 보았다. 딱 반지 케이스 크기의 상자라고 생각했는데 역시나, 안에는 꽤나 고가품으로 보이는 반지가 들어 있었다.

16567320897174.jpg‘예쁘다…….’

반지의 링 부분은 나뭇잎 모양으로 섬세하게 세공되어 있었다. 그 중심에는 꼭 오팔처럼 다양한 빛깔을 드러내는 보석이 박혀 있었는데, 왜인지는 몰라도 달의 파편처럼 자체적으로 은은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여하간 예술 작품이나 다름없게 느껴지는 물건이라, 나는 한동안 그걸 보기만 했다.

16567320897174.jpg“이건…….”

1656732091044.jpg“릴리아가 남긴 물건이다.”

16567320897174.jpg“……!”

1656732091044.jpg“테레니아 가문에 대대손손 전해져 내려오던 가보 같은 거라더군. 성력을 안정시켜 준다나? 그래서 릴리아도 눈 감기 전에 내게 신신당부했었다. 이 반지를 반드시 네게 전해 주라고.”

그러니 빨리 끼워 보라는 그의 재촉에, 나는 그것을 손가락에 밀어 넣었다.

16567320897174.jpg‘신기하네. 정말로 성력이 안정되고 있어…….’

아버지 말대로 그냥 예쁘게 반짝이기만 하는 반지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평소엔 파도처럼 불안정하게 몰아치던 성력이 그걸 끼우자마자 호수처럼 잔잔해졌다. 강하지만 거칠어서 다루기 어려웠던 힘을 이 반지가 가라앉혀 주니, 앞으로는 같은 양의 성력을 가지고도 효율적으로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듯했다. 즉, 예전처럼 조금만 힘을 써도 금방 지쳐서 나가떨어지지 않게 된다는 의미였다. 아버지는 반지가 내 손가락에 잘 맞는지 확인한 뒤 이어서 말했다.

1656732091044.jpg“결혼 축하한다. 그리고, 신혼 생활 보내느라 정신없더라도 이거 하나만큼은 절대 잊지 마라. 넌 여전히 내 딸이자, 네 오빠들의 동생이란 거.”

아버지의 말이 끝나자, 옆에서 순서를 기다리고 있던 닉 오빠도 입을 열었다.

16567320923808.jpg“그래, 레냐. 힘든 일 생기더라도 혼자서 삭일 필요 없어. 부르면 언제든지 달려갈 수 있도록 항상 준비하고 있을 테니까.”

닉 오빠마저 그렇게 말해 주니 또 눈가가 시려 왔다. 나는 울먹임을 간신히 꿀꺽 삼켜 내곤, 그들에게 고맙다고 말하려 했다. 그랬는데―

16567320923819.jpg“그래. 닉 형 말이 맞아. 나도 네게 무슨 일 생기면 발 벗고 도울게.”

16567320897174.jpg“……?”

나는 머릿속으로 물음표를 띄우곤, 방금 내게 말한 낯선 남자를 바라보았다. 빨간 머리에, 푸른색 눈동자를 가진 남자였다. 아까부터 우리 옆에 너무 가깝게 서 있는 게 의아하긴 했지만 피곤해서 그냥 무시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내게 말을 붙여 온 것이다.

16567320897174.jpg‘……누구지? 되게 자연스럽게 말 붙이네? 누가 보면 우리 가족인 줄 알겠…… 잠깐, 가족?’

어머니를 닮은 빨간 머리의 남자. 그리고 닉 오빠를 ‘닉 형’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 이 두 가지 조건을 충족하는 인물은 한 명뿐이라는 걸 떠올린 나는 그 이름을 천천히 불러 보았다.

16567320897174.jpg“혹시…… 막시밀리안 오빠?”

16567320923819.jpg“오, 레냐! 내 이름 아직 안 까먹고 있었구나?!”

막시밀리안……. 즉, 레냐의 둘째 오빠인 막심이 해바라기처럼 웃어 보였다. 다만 아직 어리둥절했던 나는 똑같이 그리 웃어 줄 수가 없었다.

16567320897174.jpg“정말로 막심 오빠야?!”

16567320923819.jpg“당연하지!! 이렇게 잘생긴 빨간 머리가 나 말고 또 있어?”

16567320897174.jpg“아니, 그런데 오빤 분명…….”

16567320923819.jpg“응. 길드 활동하느라 좀 바빴는데, 너 결혼한다는 얘기 듣고 급하게 온 거야.”

16567320897174.jpg“아아…….”

원작에서 막심은 레냐가 아직 어렸던 시절에 집을 나간 걸로 나와 있었다. 한마디로, 엊그제 본 것처럼 막 친근한 척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였다. 빙의자로서 그의 얼굴을 처음 보는 나로서는 그나마 다행인 점이었다. 다만 막심은 오랜만에 보는 동생이 떨떠름한 표정만 지으니 섭섭한 기색이었다.

16567320923819.jpg“나 기억하는 거…… 맞지……? 반응이 영 싱겁네. 전에 오빠가 집 나갈 땐 가지 말라고 울고불고 매달려 놓고.”

16567320897174.jpg“아니, 그냥 좀 놀라서 그래. 이렇게 갑자기 만나게 될 줄 몰랐어.”

16567320923819.jpg“하긴, 내가 좀 갑자기 나타나긴 했지.”

그는 그렇게 당연하기 짝이 없는 소릴 하면서 “하하” 웃었는데, 좋게 말하면 해맑아 보였다. 나쁘게 말하면 별생각이랄 게 없어 보였고.

16567320897174.jpg‘국가 기밀급의 정보들까지도 취급하는 대단한 정보 길드의 길드장이랬는데……. 내가 원작을 잘못 읽었나? 아무리 봐도 안 그래 보이네.’

그런 대단한 사람이라기에는 영 허술해 보이는 모습이라 어리둥절하던 때였다. 그가 아까보다 더 해맑게 웃으면서 내 손을 꼬옥 붙잡았다.

16567320923819.jpg“어쨌든, 그래서 황자궁에서 며칠간 신세 좀 질게.”

16567320897174.jpg“그래……가 아니라, 갑자기 무슨 말이야?! 황자궁에서 지내겠다고? 이렇게 결혼식 바로 당일에 나타나 놓고 갑자기……?!”

그러자 막심이 이번엔 웃음을 지우고서 눈가를 촉촉하게 적셨다.

16567320923819.jpg“실은…… 오빠가 그동안 돌아다니면서 이런저런 일들이 많았어……. 그래서 지금 빈털터리가 됐거든. 당장 잘 곳이 없을 정도야.”

16567320897174.jpg“……오빠가 빈털터리? 그게 말이 돼? 그보다 잘 곳이 없으면 수도에 있는 별장에서 지내면 되지 않을까?”

16567320923819.jpg“빚쟁이들이 그 근처에서 눈에 불을 켜고 날 찾아다니고 있거든……. 거기로는 못 돌아가.”

16567320897174.jpg“…….”

나로서는 도저히 감당이 안 돼서, 아버지와 닉 오빠에게 도움을 청하는 시선을 보냈다. 닉 오빠는 왜인지 시선을 피해 버렸다. ‘힘든 일 생기더라도 혼자서 삭일 필요 없어. 부르면 언제든지 달려갈 수 있도록 항상 준비하고 있을 테니까.’라고 방금 말한 사람답지 않게. 그리고 아버지는…….

1656732091044.jpg“도와줘라, 동생으로서.”

그런 답 없는 말만을 내게 들려주었다. 그쯤 되니 나도 마음이 조금씩 흔들리게 되었다.

16567320897174.jpg‘그냥 재워 줄까? 그 넓은 황자궁에서 사람 한 명 재워 주는 게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고…… 무엇보다 결혼식 하느라 공작가에서 끌어다 쓴 돈이 엄청나니까.’

집안의 돈을 그렇게 펑펑 써 놓고 친오빠의 어려움은 무시한다? 생각해 보니 너무 염치없는 짓 같기도 했다. 그런 여러 고민을 끝마치고서,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16567320897174.jpg“일단 알겠어. 그래도 남편하고 상의는 해 봐야 할 거 같아. 신혼 첫날부터 가족을 덜컥 데려오면 좀 감시받는다고 느낄 수도 있으니까.”

16567320923819.jpg“그래, 저기 앉아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얼렁 물어보고 와.”

16567320897174.jpg“……응…….”

나는 그길로 곧장 에드를 찾고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16567320897174.jpg‘갑자기 이렇게 되니까 정신이 하나도 없네. 와중에 에드도 어딨는지 아까부터 안 보이고.’

둘째 오빠 말로는 당장 잠잘 곳도 없다고 했으니 오늘 안에는 물어봐야 할 터였다. 그러나 시선을 이리저리 돌려 봐도 에드의 모습은 왜인지 보이지 않았다. 혹시 미로 정원에 있어서 안 보이는 건가 싶어서, 그곳에도 들어가 보았다. 그렇게 쭉 걷고 걸어, 미로의 깊은 중심부까지 들어왔을 때였다. 문득 내 뒤에서 거슬리는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16567320966037.jpg“누굴 그렇게 찾아?”

이렇게 사람이 없는 곳에서만은 절대 듣고 싶지 않았던 목소리건만……. 나는 입술을 잘근 깨물고는, 나를 부른 이를 향하여 천천히 몸을 돌렸다.

16567320897174.jpg“닐스 태자 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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