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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내 남편의 아픈 비밀 (48/102)

48. 내 남편의 아픈 비밀2021.09.14.

내 뒤에서 나타난 닐스를 보고 무심결에 그의 이름을 불렀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는 그것을 본인이 던진 물음, “누굴 그렇게 찾아?”에 대한 답변으로 알아들은 듯했다.

16567321031874.jpg“날 찾는다고?”

16567321031879.jpg“……아니요. 방금은 물음에 답변 드린 게 아니에요. 전 지금 에이드리언 전하를…… 제 남편을 찾고 있어요.”

16567321031874.jpg“그럼 유감인데, 그 녀석은 못 찾을걸? 내가 잠깐 다른 곳으로 불러냈거든.”

16567321031879.jpg“……?”

내 놀라는 얼굴이 재밌기라도 했을까? 그는 빙글빙글 웃으며 털어놓았다.

16567321031874.jpg“너에 대해 할 말이 있다고 하니까 금방 응하더라고. 물론 난 여기 있으니 그 녀석은 지금쯤 바람맞고 있겠지.”

16567321031879.jpg“……왜 그런 행동을 하셨죠?”

16567321031874.jpg“우리끼리 조용히 대화하고 싶어서. 그 녀석이 있으면 단둘이 대화하기가 어렵잖아.”

‘단둘이’ 대화라니. 그의 입에서 그런 소릴 들으니 이보다 더 찜찜할 수가 없었다.

16567321031879.jpg“저는 전하께 드릴 말씀이 없어요. 그리고 이런 행동…… 조금 불편합니다.”

16567321031874.jpg“이런 행동? 내가 뭘 어쨌는데?”

16567321031879.jpg“……앞으론 하실 말씀이 있다면 서신으로 전달하시거나, 혹은 황자궁에 오셔서 제가 남편과 함께 있을 때 말씀해 주세요.”

내 단호한 대답이 그의 신경을 조금 긁어 놓았나 보다. 반듯하던 그의 미소가 조금 일그러졌다.

16567321031874.jpg“에이드리언이 없으면 혼자선 아무것도 못 하나? 전에도 황성에 가자니까 혼자선 못 가겠다고, 그 녀석이 오면 같이 가겠다고 그랬었잖아.”

16567321031879.jpg“…….”

16567321031874.jpg“의존적이네.”

16567321031879.jpg“……더 하실 말씀 없다면 이만 가 보겠습니다.”

전에는 겁먹은 것처럼 보이지 않으려고 그의 말에 따라 혼자 황성에 갔었다. 그래서인지 다시금 나를 교묘한 말로 자극하여 조종해 보려는 모양이었는데, 이젠 그 수법에 넘어가 줄 생각 없었다. 이미 나는 당당히 황성에 들어가서 그들과 맞서는 것으로써 내 용기를 증명했고, 무엇보다…….

16567321031879.jpg‘내가 황실 사람들과 엮이면 엮일수록 에드는 힘들어하겠지. 더는 그렇게 상처 주기 싫어.’

에드가 황실에 가지고 있는 감정은 무척이나 깊고 어두웠었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도 훨씬 더…….

16567321031879.jpg‘닐스와 대화 중인 거 또 들키기 전에 어서 돌아가야지.’

그리 생각하며 몸을 돌렸을 때였다.

16567321031874.jpg“내가 뭐 이상한 말 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네가 궁금해할 만한 걸 알려 주고 싶었을 뿐인데.”

내 등 뒤에 대고 닐스가 그렇게 말했다. 아마도 내 걸음을 멈춰 세우고자 아무렇게나 내뱉은 말일 터. 그냥 무시하고서 계속 걸어가려 했다. 그러나―

16567321031874.jpg“마족 전쟁 때 공작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싶어 했잖아.”

16567321031879.jpg“……!!”

그의 마지막 말을 듣고 나선 도저히 더 움직일 수 없었다.

16567321031879.jpg‘어떻게 알았지? 설마……?’

나는 주먹을 꽉 움켜쥔 채로 다시 그를 돌아보았다.

16567321031879.jpg“그때 정말로 제 책상 서랍을 뒤지셨던 거군요?”

16567321031874.jpg“부정하진 않을게.”

아닐 거라고 내심 부정하고 있었건만. 정말로 닐스는 황자궁에 왔던 그날 내 책상 서랍을 자세히도 뒤져 보았던 듯했다.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 전부 알고 있었다.

16567321031874.jpg“그때 보니까 마족 전쟁에 관해 많이 조사한 흔적이 보이더라고. 특히 공작의 행적에 대해서.”

16567321031879.jpg“…….”

16567321031874.jpg“그런데 알아낸 건 없었겠지. 그 당시의 일은 목격자가 워낙 적어서 기록으로도 잘 남아 있지 않거든.”

가여운 이에게 선의라도 베푸는 듯한 투로 그가 이어서 말했다.

16567321031874.jpg“그래도 걱정 마. 나는 전쟁에 직접 나섰던 아버지한테서 들은 게 많아. 네가 궁금해하는 걸 충분히 알려 줄 수 있을 만큼. 물론 이 이야기가 네가 듣기엔 조금…… 충격적일 수도 있지만.”

나도 모르게 눈가가 찡그려졌다.

16567321031879.jpg‘충격적일 수 있다고?’

만약 그가 나를 붙잡아 두려고 없는 말을 꾸며 내고 있는 거라면, 그는 완벽하게 성공했다. 닐스가 썩 좋은 의도로써 나를 붙잡는 게 아니란 걸 알면서도 걸음을 움직일 수 없었으니까. 내 동요를 눈치챈 그는 아까보다 더 여유로운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16567321031874.jpg“그래도 들어 볼래?”

16567321031879.jpg“…….”

나는 말없이 미로 중앙에 있는 티 테이블에 가서 앉았다. 그는 역시나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자신만만하게 웃었다.

16567321031874.jpg“잘 생각했어.”

이윽고 내 맞은편에 착석한 그가 곧바로 운을 뗐다.

16567321031874.jpg“일단 네가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말해 봐. 그래야 나도 어디서부터 말해야 할지 감이 잡히니까.”

16567321031879.jpg“……예전에는 더 많은 종족이 이곳에서 함께 어우러져 살았었다고 배웠어요. 정령이나 마족, 그리고 소수지만 천족들도 있었다고…….”

16567321031874.jpg“거기까지만 알아?”

16567321031879.jpg“그렇게 균형을 맞춰 살아가다가, 각각의 세계를 잇는 통로에 균열이 생겨서 천족들이 원인을 해결하고자 잠깐 다른 세계로 떠난 틈에 마족들이 야욕을 드러냈고, 그로써…….”

16567321031874.jpg“전쟁이 발발한 거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곤, 원작에서 읽어서 아는 것들을 전부 털어놓았다.

16567321031879.jpg“그때 마족들에게 저항하고자 인간과 정령이 서로 영혼을 잇는 계약을 맺은 것, 그리고 그 힘으로 제 아버지께서 정령 기사가 되어 전쟁에서 활약하셨던 것, 하지만 어떤 결정적인 실수 때문에 초대 황제로서 추앙받지 못하셨던 것……. 여기까지가 제가 아는 전부예요.”

16567321031874.jpg“거의 다 알고 있네. 거기에 한 가지만 고쳐 주자면, 네 말처럼 공작이 단순히 ‘활약’한 건 아니었어.”

16567321031879.jpg“……?”

16567321031874.jpg“그보다는 차라리 기적을 일으킨 수준이었지.”

워낙 오래된 일이라 대강 ‘활약했다’ 수준으로만 알고 있던 내게, 그가 더 자세한 부분을 설명했다.

16567321031874.jpg“고작 열여덟밖에 안 된 나이에 전쟁터에 나와서 전세를 역전시킨 영웅이었다더라고. 당시 수십 개의 왕국으로 나뉘어 있던 제국을 하나로 통일하고, 그 수많은 제국인을 이끌어서 전세를 역전시킨, 그런 영웅.”

분열된 국가 통일에, 마족들과의 전쟁에서 전세 역전……. 이는 전형적인 영웅의 서사였다. 내가 과거에 읽은 소설 속에서 저런 업적을 세운 이들은 흔히 영웅이라 불리며, 곧 황제로 추앙되었다. 닐스의 저 말이 사실이라면 카롤라가 아버지를 그리 동경했던 것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다만 이상한 것은―

16567321031879.jpg‘아버지는 왜 그만한 업적을 세워 놓고도 척박한 북부에 자리 잡았지? 왜 황제의 횡포를 그저 견디기만 하고, 왜 본인의 대단한 업적을 자랑스러워하지도 않는 걸까……?’

내가 궁금해하던 차에 마침 닐스가 그 부분을 언급했다.

16567321031874.jpg“그대로였다면 우리 아버지 대신 황제가 됐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마족들과 그들을 섬기는 흑마법사 무리를 섬멸하려던 순간에…… 네가 말한 그 ‘결정적 실수’를 저지른 거야.”

16567321031879.jpg“실수…….”

16567321031874.jpg“그래서 막판에 그들을 끝장내지 못했고, 그때 놓친 핵심 세력이 지금까지 산발적으로 말썽을 부리고 있는 거지.”

16567321031879.jpg“……그 실수가 구체적으로 뭔지도 전하께선 아시나요?”

그는 가벼운 태도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에게서 곧 듣게 된 이야기는 그와 정반대로 무척이나 어둡고도, 무거웠다.

16567321031874.jpg“마족들을 다 몰아붙였을 때 공작의 정령이 갑자기 폭주 상태에 들어섰다더라고. 그래서 우리 편을 다 죽였다나 뭐라나…….”

16567321031879.jpg“…….”

16567321031874.jpg“공작이 황위를 아버지께 넘기고 스스로 물러난 것도 그때의 자책감 때문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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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의 곁을 지키는 그 고고한 은빛 늑대가 사람을 대량으로 학살했다는 이야기였다. 닐스가 애초에 예고했던 대로 다분히 충격적인 진실이라, 나는 어떤 말도 꺼낼 수 없었다. 그런 나를 대신하여 닐스는 말을 이어 갔다.

16567321031874.jpg“그 뒤는 아마 다 알겠지만, 천족들도 결국엔 균열을 막지 못했고 각 세계가 이어지는 통로는 무너졌어. 그때부터 마족들과 정령들 등등은 전부 인간계에서 사라졌지.”

16567321031879.jpg“…….”

16567321031874.jpg“하지만 전쟁 당시 인간과 정령이 맺은 계약은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에, 아직도 우리 제국인들은 영혼으로 맺어진 정령을 하나씩 가지고 태어나는 거야.”

16567321031879.jpg“…….”

16567321031874.jpg“어때, 내가 말한 대로 조금 놀랐지? 특히, 공작의 정령이 폭주하는 바람에 마족 잔당을 놓쳤다는 부분.”

나는 대답하지 않고 입술만 잘근 씹었다. 그러다가 한참이 지나, 한 가지 의문점이 떠올랐다.

16567321031879.jpg“전부 황제 폐하에게서 들으신 건가요?”

16567321031874.jpg“그렇지. 아버지께선 당시 전쟁터에서 공작과 함께 싸우며 그의 행적을 직접 보셨으니까, 그걸 내게 얘기해주신 거지.”

16567321031879.jpg“…….”

그의 말을 듣고 겉으로는 그냥 침묵했지만, 내 마음속에서는 이미 강한 의심이 일어나고 있었다.

16567321031879.jpg‘공작을 미워하고 질투하는 황제가 정말로 사실만을 말했을까……?’

그 상황을 직접 목격한 사람은 주위에 없었을 터였다. 인간들은 다 죽었고, 마족들과 흑마법사들은 전부 도망쳤으니까. 당시의 기록이 자세히 남아 있지 않은 것도 그래서였고. 그 말은 즉, 황제가 조금만 손을 써도 당시의 이야기를 금방 조작할 수 있다는 의미였다.

16567321031879.jpg‘분명 그게 다가 아닐 거야. 밝혀지지 않은 게 있을 거야.’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때, 잊고 있던 닐스의 목소리가 재차 들려왔다.

16567321031874.jpg“그런데 사실 난 아버지가 보신 그게 전부는 아니라고 생각해.”

16567321031879.jpg“……?!”

마치 내 머릿속을 들여다본 듯한 말이었다. 그는 그렇게 나를 놀라게 만들어 놓고서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내게 다가오는 걸 보고 나도 덩달아 자리에서 일어났고, 우리는 테이블을 사이에 뒀을 때보다 더 가깝게 마주 보게 되었다. 그 상태에서 그가 한껏 은밀하게 낮아진 목소리로 속삭여 왔다.

16567321031874.jpg“영혼으로써 맺어진 인간과 정령은 서로 닮아 간다지? 그러니 공작의 정령도 분명 공작처럼 긍지 높고 고고할 텐데…… 한순간의 폭주로 사람들을 그렇게 죽였다는 건 이상하잖아.”

내 생각보다 영리했던 걸까? 닐스는 내가 듣고 싶어 할 법한 말을 정확히 골라내서 속삭여 왔다.

16567321031874.jpg“나는 공작을 믿어. 분명 우리가 모르는 어떤 음모가 있었던 거겠지.”

16567321031879.jpg“음모……요?”

16567321031874.jpg“전쟁 당시에 왜인지 인간과 정령의 편에 선 마족이 있었다고 들었어. 정말로 이상하지? 왜 동족들을 배신하고서 우릴 도왔을까. 그게 아니면 사실…… 아군인 척하는 첩자였던 게 아닐까?”

16567321031879.jpg“…….”

16567321031874.jpg“어쩌면 그 마족이 은밀하게 마법을 걸어서 공작의 정령을 폭주시킨 걸지도 몰라.”

“있을 법한 이야기잖아?”라고 묻는 그에게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말에 동의해서가 아니었다. 그가 왜 이런 말을 하는지, 비로소 그 의도를 알아채서였다.

16567321031879.jpg‘본인 아비를 빼닮았구나. 하필이면 가장 안 좋은 부분을 닮았어.’

내가 제 의도를 간파했다는 걸 모르는 닐스는 여전히 선행이라도 베풀 듯이 말을 이어 갔다.

16567321031874.jpg“원한다면 진실을 밝혀낼 수 있게끔 도와줄게. 공작의 명예를 회복하고, 그 불명예를 뒤집어쓰게 한 마족에게 복수해야지.”

거기까지 말한 닐스는 마침내 새카만 속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리고 내 귓가에다가 속삭였다. 그가 처음부터 쭉 하고 싶었을 말을.

16567321031874.jpg“마침 내가 그 마족의 피를 이은 자를 알고 있거든.”

이때까지 닐스가 나를 붙잡고서 이런 긴 이야기를 들려준 건, 결국 방금의 그 한마디 말을 꺼내기 위해서였을 터다. 나로 하여금 그 마족을 미워하게 만들고, 종래엔 그녀의 아들까지도 미워하게 만드는 것……. 그것이 그의 최종 목적이었다. 그에게는 안된 일이지만 나는 이미 그녀에게 죄가 없다는 걸 알았다.

16567321031879.jpg“아니요. 괜찮습니다. 그 마족이 누구고, 그녀의 자식이 누구인지 전혀 궁금하지 않아요.”

16567321031874.jpg“잠깐…… 뭐라고?”

16567321031879.jpg“이만 가 보겠습니다.”

내가 정말로 돌아가려는 것처럼 걸음을 움직이자 그가 소리쳤다.

16567321031874.jpg“기다려!! 공작의 정령이 사람들을 죽였다는 걸 곧이곧대로 믿겠다고? 마족의 소행인 게 누가 봐도 분명한데 조사조차 안 해 보겠다는 말이야?!”

그의 말을 무시한 채 계속 걸음을 움직였더니, 그가 기어코 성큼성큼 와서 나를 따라잡았다.

16567321031874.jpg“이건 황태자로서 내리는 명령이다! 내 말 들어!!”

16567321031879.jpg“……!!”

내 손목을 잡아당기는 그의 손길이 몹시도 우악스러웠다. 고통에 눈가를 찌푸리고 있는 틈에 그가 결국 입을 열었다.

16567321031874.jpg“그 마족이 낳은 자식은―”

그 뒤 내 귓가에 기어코 속삭여진 비밀. 그것은 역시나 에드를 한평생 괴롭혀 온, 그의 출생에 관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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