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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잠자는 숲속의 황자님 (51/102)

51. 잠자는 숲속의 황자님2021.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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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드가 깨어나면 하고 싶은 말들이 정말로 많았지만, 그중에서도 나는 우선 기쁘다고 말하고 싶었다. 많이 걱정했는데 이제라도 네가 눈을 떠서 정말로 기쁘다고……. 그러나 입을 열기도 전에 듣게 된 막심 오빠의 목소리가 내 정신을 번쩍 들게 했다.

16567321540495.jpg“에드처럼 보여? 우리가 닮았던가?”

그제야 나는 아직 흐리던 눈을 똑바로 뜨고서 날 안아 든 이의 얼굴을 자세히 살폈다. 그는 에드가 아니었다.

16567321540501.jpg“막심 오빠였구나…….”

16567321540495.jpg“와, 엄청 실망한 목소리네. 살짝 상처받을 거 같은데?”

16567321540501.jpg“아니, 실망한 거 아니야. 그런데 에드는…….”

16567321540495.jpg“아직 안 깨어났지. 네가 그 옆에서 불편하게 엎드려 자고 있길래 지금 침대로 옮겨 주던 중이었고.”

16567321540501.jpg“아아…….”

실망감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했건만, 아무래도 실패였나 보다. 막심 오빠가 나를 빤히 보다가 툭 말했다.

16567321540495.jpg“2황자를 정말 많이 아끼고 사랑하나 보네. 옆에서 온종일 보살피더니, 방금도 눈뜨자마자 황자부터 찾았잖아.”

루카스도 비슷한 말을 했던 것 같은데 막심 오빠마저 이렇게 말하다니. 남들 눈엔 내가 에드에게 홀딱 넘어간 것처럼 보이는 걸까? 정말로 그런 거라면 조금 위험했다. 어쩌면 나는, 나도 모르는 새 원작 속 레냐의 길을 똑같이 걷고 있던 걸지도 몰랐다. 내 그런 불안함을 모르는 막심 오빠는 싱글 웃었다.

16567321540495.jpg“다행이다. 네가 이렇게 좋아하는 거 보니까 나쁜 놈은 아닌가 봐.”

나쁜 놈. 원작에서의 에드를 이만큼 더 정확히 표현한 말은 없을 테지만―

16567321540501.jpg“응, 좋은 사람이야.”

원작에서 말고 내 눈으로 직접 본 에드는, 나쁘지 않았다. 그냥 가엾고 안타까워서 자꾸만 마음이 가는 사람일 뿐. 그러는 사이 내 침실에 도착한 막심 오빠가 나를 침대 위에 조심스럽게 내려 주었다.

16567321540495.jpg“휴, 다 왔다. 근데 어째 넌 어릴 적보다 더 가벼워진 거 같냐. 어릴 때도 몇 번 옮겨 줬던 거 기억나는데, 그땐 더 무거웠거든.”

16567321540501.jpg“오빠가 더 힘이 세진 걸 거야. 내가 어릴 적보다 가벼워졌을 리는 없잖아.”

16567321540495.jpg“아아, 그런가?”

내 싱거운 말에도 그는 곧잘 싱글거리며 웃었다. 그런 그를 보고 있으려니, 왜인지 그립고도 익숙한 기분이 밀려들었다. 어릴 적에 잃어버린 동화책을 우연히 찾아서 펼쳐 봤을 때의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이상한 일이네― 그렇게 의아해하는 중에도 그는 여전히 해맑게 추억을 풀어놓고 있었다.

16567321540495.jpg“듣고 보니 그렇네. 어릴 땐 내 팔뚝이 무슨 마른 나뭇가지 같았잖아. 닉 형은 그때도 꽤 튼튼했던 것 같은데 말이지.”

16567321540501.jpg“닉 오빠는 검술이고 공부고 일이고 항상 열심히 했으니까 몸도 당연히 더 튼튼했지. 오빠는 놀기만 했고.”

16567321540495.jpg“……넌 어떻게 옛날에 했던 잔소리를 토씨 하나 안 틀리고 똑같이 하냐. 이런 데서까지 기억력 좋을 필요는 없는데.”

16567321540501.jpg“오빠가 항상 잔소리하게 만들어서 입에 붙어 버렸잖아. 이러다가 내가 잔소리만 하는 심술궂은 할머니로 늙으면 어쩔 거야?”

16567321540495.jpg“뭘 어째. 그냥 심술쟁이 레냐 할망구로 불리게 되는 거지.”

16567321540501.jpg“뭐?!”

못된 소릴 하는 그를 한껏 째려보다가, 얼마 안 지나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에 전염된 듯 오빠 또한 이어서 웃음을 터트렸다. 요즘은 계속 힘들었기 때문에 정말로 오래간만이었다. 이렇게 배를 부여잡고서 웃는 건.

16567321540501.jpg‘왜 이러지? 왜 이렇게 자꾸 익숙하고, 따뜻하고, 그리고…… 그리운 기분이 들까.’

레냐에 빙의한 입장이라 막심 ‘오빠’라고 부르고는 있었지만, 따져 보면 내게 그는 그냥 낯선 남자에 불과했다. 이런 기분이 들 만한 상대가 절대 아니었다. 그가 옛 추억을 공유하려 할 때도 두루뭉술하게 흘려 넘겼어야 했다. 그건 원작 레냐와의 추억이지 나와의 추억이 아니니까. 그런데 무의식중에 나는 그의 말을 받아 주었고, 지금은 이렇게 함께 웃고 있었다. 닉 오빠랑 같이 셋이서 놀았던 기억이 흐릿하게 떠오르는 기분마저 들었다.

16567321540495.jpg“레냐.”

갑자기 들려온 막심 오빠의 진지한 음성에 정신이 들었다. 그는 어느새 웃음기가 깨끗하게 사라진 시선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16567321540495.jpg“옛날에 그 일 기억나? 우리 둘이 놀다가 실수로 어머니께서 아끼시던 꽃을 꺾어 버려서, 아버지께서 크게 화내셨던 일.”

그런 자세한 일까지는 기억이 안 나서 그냥 듣고만 있자 그가 말을 이어 갔다.

16567321540495.jpg“근데 그때 하필 온실 흙이 젖어 있어 가지고, 두 사람 분 발자국이 찍혀 버렸었잖아. 나 혼자서 했다고 해도 아버지는 안 믿으시고 공범이 누구냐고 계속 다그치셨었지. 그래도 난 끝까지 네 얘기 안 했어. 엄청 무서웠는데, 그래도 너만은 지켜줘야 한단 생각이 들더라고. 그러니까 레냐.”

그가 커다란 손으로 내 손을 위로하듯 꼭 붙잡았다.

16567321540495.jpg“이번에도 믿고서 얘기해도 돼. 아무한테도 말 안 할게.”

16567321540501.jpg“얘기하다니, 뭘…….”

16567321540495.jpg“에이드리언 2황자, 그냥 평범한 사람이 아닌 거지?”

16567321540501.jpg“……!”

조금 놀랐다. 그건 황실에서도 극소수만 알고 있을 만한 비밀이었으니까. 하지만 왜인지 생각했던 것처럼 초조하지 않았다. 어차피 다 알고 있는 듯하고, 혹여 그냥 찔러 본 것일 뿐이래도 막심 오빠의 앞에서라면 전부 털어놓아도 될 것 같은……, 그런 근거 없는 확신이 섰다.

16567321540501.jpg“……어떻게 알았어? 그것도 오빠 길드를 통해서 알아낸 거야?”

16567321540495.jpg“응.”

16567321540501.jpg“여기 온 것도 그럼 빚쟁이들 때문이 아니라 내가 걱정돼서……?”

그가 조금 미안한 기색을 드러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16567321540495.jpg“동생이 결혼한다는데 그냥 손 놓고 있을 순 없잖아. 당연히 걱정돼서 황자에 관해 이것저것 알아봤지. 그러다가 그의 출생에 대해서도 알아보게 됐고…….”

16567321540501.jpg“모친에 대해서까지 알게 됐다는 거구나.”

간단히 말하면, 에드의 뒷조사를 했다는 것이다. 내게 말하지 않고 멋대로 그런 행동을 한 게 조금 껄끄럽기도 했다. 하지만 그 부분을 짚기 전에 나는 쭉 걱정해 오던 걸 먼저 물었다.

16567321540501.jpg“빚은 정말로 없는 거지?”

16567321540495.jpg“그건 그냥 적당히 갖다 붙인 핑계였어.”

16567321540501.jpg“핑계였구나……. 휴, 다행이다. 진짜 빚진 줄 알았어.”

16567321540495.jpg“미안. 근데 걱정돼서 왔다고 솔직하게 말하면 안 들여보낼 줄 거 같더라고? 넌 옛날부터 자존심이 은근히 세서 뭐든 혼자 해결하려 했잖아. 이번에도 부부간 일이니까 신경 쓰지 말라고 말했겠지.”

16567321540501.jpg“으음, 부정은 못 하겠네. 그렇게 말했을 거 같아.”

16567321540495.jpg“거 봐.”

그는 실풋 웃고는 다시 아까처럼 진지한 얼굴로 돌아왔다.

16567321540495.jpg“내가 아버지나 닉 형처럼 네게 돈을 팍팍 쏟아붓진 못해도, 대신 그 둘은 못 하는 나만의 방법으로 널 도울 수는 있어.”

아마 수면 깊은 곳에서 흐르는 비밀스러운 정보력을 이용하여 돕겠다는 의미일 터였다 그 대단한 능력을 나를 위해 써 주겠다고 말하면서도 왜인지 그는 오히려 내게 부탁이라도 하듯이 설득했다.

16567321540495.jpg“혼자 끙끙 앓지 마. 너는 내 동생이고, 나는 네 오빠야. 내 앞에선 전부 털어놔도 괜찮아.”

16567321540501.jpg“…….”

16567321540495.jpg“그런 다음 네가 어릴 적에 곧잘 했던 그 말…… 그 말 한마디만 하면 돼. 그럼 기꺼이 네 짐을 같이 들어 줄 테니까.”

아버지와 닉 오빠가 공작령으로 돌아가 버린 뒤 홀로 얼어붙어 가던 마음이 조금씩 녹아내렸다. 혼자가 됐다고 여겼는데 아니었구나. 그러한 안도감 덕에 굳어 있던 내 입술도 마침내 움직여서, 어릴 적 레냐가 그에게 곧잘 했을 ‘그 말’을 뱉어냈다.

16567321540501.jpg“나 좀 도와줄래?”

  * * * 낯익은 복도가 앞에 보였다. 복도는 추웠고, 어두웠으며, 옅은 피 냄새가 퍼져 있었다. 에드는 가만히 선 채로 그 복도의 끄트머리에 있는 밝은 방을 응시했다.

16567321596781.jpg“…….”

저 방으로 가면 무언가 끔찍한 걸 보게 될 거 같은데, 그게 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사실 기억나지 않는 게 그것뿐은 아니다. 자신이 왜 이곳에 서 있는지― 왜 어린아이처럼 작아져 있는지― 이곳이 현실이긴 한 건지― 무엇 하나 그는 기억나지 않았다. 지금 그가 알 수 있는 건 저 끄트머리 방에서 무언가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뿐. 다른 방법이 없기에 그는 그곳을 향해 걸음을 천천히 움직였다.

16567321596781.jpg“…….”

나아갈수록 피 냄새가 짙어지고 있었다. 그에 따라 아까부터 심장을 조여 오던 불길한 예감도 점차 짙어졌다. 하지만 그의 야속한 두 다리는 계속 움직였고, 그는 이윽고 방 앞에 서게 되었다. 조금 열려 있던 문을 밀자 녹슨 경첩이 거슬리는 소릴 냈다. 끼익― 그렇게 열린 문 너머에 펼쳐진 붉은빛을 본 순간 그는 제대로 된 말을 뱉을 수도 없었다.

16567321596781.jpg“아…… 아아…….”

은백발의 젊은 여자가 시체처럼 바닥에 늘어져 있었다. 그녀의 새하얀 살결에는 온통 피 칠갑이 되어 있고, 항상 입고 있던 새하얀 드레스도 마찬가지였다. 온통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정신을 잃을 듯한 현기증을 느끼며, 에드가 절규하듯 그녀를 불렀다.

16567321596781.jpg“어머니!!”

어린아이의 작은 손으로 어찌할 바 모르고 그녀의 상처를 막으려 했다. 그럴수록 피가 더욱 넘쳐흐르는데도, 그는 필사적으로 제 어머니를 살리려 애썼다. 사실 이렇게 된 이상 이미 그녀가 살아날 방법은 없다는 걸 너무나 잘 알지만 그럼에도 멈추지 못했다. 아직 숨이 붙어 있던 그녀, 네텔라가 그런 에드의 손을 붙잡아 그 무의미한 시도를 강제로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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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끊어질 것처럼 위태로운 목소리로 그녀는 사과했다. 그리고 변명했다.

16567321596794.jpg“너무나 외로웠어……. 내 가족들, 친구들…… 모두 마계로 사라지고, 이곳엔 나 하나뿐이어서…….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나는…….”

16567321596781.jpg“어머니 곁에는 제가 있잖아요!”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인간의 편에 서지 말 것을― 그 후회를 에드가 급하게 끊었다. 그리고 가느다란 희망이라도 불어넣고자 나오지 않는 목소리를 억지로 짜냈다.

16567321596781.jpg“조금만 기다리시면 제가 다시 마계로 갈 수 있게 해 드릴게요! 가족들도 다시 만날 수 있어요! 그러니까 제발…… 제발 가지 마세요. 이곳에 저를 혼자 두지 마세요…… 제발…….”

이 작은 몸이 좀 더 자라나면 당신의 바람대로 마계로 통하는 문을 다시 열어 주겠노라고― 그런 불가능에 가까운 약속까지 해가며 어머니에게 매달렸다. 하지만 어린아이의 허세는 어른에겐 통하지 않는 법이었다.

16567321596781.jpg“어머……니……? 어머니!!”

그렇게 에드는 뼈를 파고드는 겨울날의 추위, 짙은 피 냄새, 그리고 차갑게 식어 버린 모친의 시신이 있는 그곳에서 절규했다. 속에 무겁게 들어찬 눈물을 전부 짜내어, 끝내 말라비틀어진 흐느낌만 나올 때까지. * * * 도움을 청한 바로 다음 날. 막심 오빠는 나를 도와줄 전문가라며 세 명의 사람을 황자궁으로 불러왔다. 묘하게 음침한 분위기를 풍기는 이들이었는데, 그들의 소개를 듣고 나서 비로소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16567321596794.jpg“황자비님을 뵙습니다. 소인을 ‘펠리시’라고 불러 주십시오.”

16567321596794.jpg“저는 게르트입니다.”

16567321596794.jpg“빈젠트입니다. 저희는 마탑에서 마법과 흑마법, 그리고 마족을 연구하는 자들로…… 막시밀리안 님의 부름을 받고서 이렇게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가만히 있어도 흘러나오는 그 음침함은 불법적으로 흑마법을 연구하는 마법사들 특유의 분위기였다. 그들의 소개를 들은 직후 나는 옆에 서 있던 오빠에게 조용히 물었다.

16567321540501.jpg“마탑에 있는 사람들을 데려온 거야?”

16567321540495.jpg“응, 마족에 관해 제일 잘 아는 인간들은 다 거기 모여 있으니까.”

16567321540501.jpg“……그런데 어떻게?”

16567321540495.jpg“어려울 건 없지. 애초에 마법사이기 전에 우리 길드원인 애들이거든. 거기서 일반 마법사인 척하면서 내게 정보를 전달해 주는 거지. 황성이나 신전에도 이런 식으로 길드원들이 숨어 지내면서 나한테 정보를 주는 거야.”

16567321540501.jpg“……황성에도?!”

16567321540495.jpg“응, 어디에든 있어.”

생각도 못 한 엄청난 이야기라 나는 오히려 조금 불안해졌다.

16567321540501.jpg“믿어도 되는 사람들인 거 맞지?”

16567321540495.jpg“물론. 내가 보증할게.”

자신만만한 태도였다. 내 오빠이자 제국 최대 규모인 정보 길드의 길드장인 그를 믿어 보기로 했다.

16567321540501.jpg“……따라오세요.”

나는 그 세 명의 마법사들을 에드에게 데려갔다. 그리고 그를 살펴볼 수 있도록 허락했다. 그들은 잠든 에드의 몸 상태와 마력의 상태 등등을 꼼꼼하게 체크했다. 그렇게 한참이고 살핀 끝에, 자신을 펠리시라고 소개했던 여자 마법사가 비로소 입을 열었다.

16567321596794.jpg“확실하지 않습니다만 저희가 보기에는…… 마족으로서 완전해지기 위한 마지막 관문을 거치고 계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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