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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내 남편이 작아졌을 때 (52/102)

52. 내 남편이 작아졌을 때2021.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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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알았다. 마족으로서 완전해지기 위한 마지막 관문 같은 게 있다는 건. 원작에서도 언급되지 않았던 거라 의심이 솟으려던 차, 펠리시가 설명을 추가했다.

16567321698111.jpg“강한 마력을 타고난 마족들도 어릴 적엔 그 힘이 겉으로 완전하게 드러나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이렇게…….”

펠리시가 잠든 에드를 눈짓으로 가리키곤 이어 말했다.

16567321698111.jpg“이렇게, 어떤 계기로 인해 긴 잠에 빠져들게 되고, 꿈속에서 각성을 위한 마지막 관문을 거치는 것이죠.”

16567321698122.jpg“관문을 꿈속에서요?”

16567321698111.jpg“예, 살면서 겪은 가장 끔찍했던 경험이 반복되는 악몽을 꾸는 겁니다. 그 악몽에서 스스로 벗어나면…… 즉, 관문을 통과하면 비로소 오롯이 각성하게 됩니다.”

16567321698122.jpg“벗어나지 못하면요?”

16567321698111.jpg“그럼 그대로 목숨을 잃습니다. 약한 개체를 도태시키기 위한 마족 특유의 생체 시스템이라 보시면 됩니다.”

16567321698122.jpg“…….”

죽음, 약한 개체, 도태……. 뼛속까지 차갑게 얼어붙는 듯한 설명이었다.

16567321698122.jpg‘원작대로면 에드는 세상이 멸망해도 혼자 살아남겠지만…… 지금 와서 원작은 의미가 없지 않나?’

내가 빙의한 시점에서 이미 에드의 운명은 원작과 크게 달라졌다. 그러니 에드가 원작에서처럼 멀쩡하게 살아남으리란 보장이 없었다. 설령 멀쩡하게 살아남는다고 해도 그때까지 끝없는 악몽을 반복해야 한다니, 끔찍한 이야기였다.

16567321698122.jpg“더 일찍 깨울 방법은 없는 걸까요?”

내 물음에 펠리시가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16567321698111.jpg“있기는 합니다만…… 추천해 드리지는 않습니다.”

16567321698122.jpg“위험한 방법인가요?”

16567321698111.jpg“아뇨, 위험해서가 아니라, 저희가 직접 나선다고 해도 상당히 어려운 일이라서요.”

16567321698122.jpg“……?”

16567321698111.jpg“에이드리언 님과 친밀한 관계에 있는 이가 꿈속에 직접 들어가서 그분을 데리고 나오는 겁니다. 그럼 더 빠르게 깨어날 수 있죠. 그런데 그 의식을 위한 준비 과정이 상당히 까탈스럽습니다. 일단 많은 시간과 비용, 기술, 인력, 기타 등등이 필요…….”

16567321698122.jpg“그것들만 갖춰 드리면 그 의식이란 걸 도와주실 수 있는 거죠? 그럼 필요한 것 전부 말해 주세요.”

16567321698111.jpg“……예?”

전문가 포스를 풍기며 설명하던 펠리시가 그리 어리바리하게 반문했다. 이어지는 그녀의 말소리도 아까보다 조금 더 빨라져 있었다.

16567321698111.jpg“그, 정말로 시도해 보실 생각입니까? 하지만 그렇게 까다롭고 어려운 데 비해 성공할 확률은 상당히 낮습니다. 기껏 공들여도 전부 허사가 될 수도 있어요. 그럼 저희는 그 책임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16567321698122.jpg“상관없어요. 책임은 전부 제가 질게요. 돈이고 시간이고, 전부 충분하니까.”

사실 그냥 충분하기만 한 수준이 아니었다. 며칠 전 닉 오빠로부터 선물 받은 그 섬에서 진주 채굴량을 보고받은 것이다. 그리고 그 채굴된 진주를 돈으로 환산해 보니―

16567321698122.jpg‘평민들이 대략 10년은 놀고먹어도 될 엄청난 돈이 한 방에 들어왔었지……. 비용 같은 건 이제 문제가 안 돼.’

나는 아까보다 더욱더 확실한 목소리로, 그들을 향해 말했다.

16567321698122.jpg“내일부터…… 아니, 오늘부터 당장 준비 시작해 주세요.”

  * * * 같은 시각. 침실 티 테이블 앞에 앉은 채, 닐스는 필사적으로 기억을 되짚고 있었다. 까맣게 가려져 있는 과거의 어느 한 구간을 떠올려 내기 위해서였다.

16567321741831.jpg‘이상해. 왜 아무것도 기억 안 나지? 그날은 취하지도 않았는데.’

갑갑해진 그는 탈모 걱정도 접어둔 채 머리카락을 꽉 움켜쥐었다.

16567321741831.jpg‘에드 녀석을 다른 곳으로 불러냈고, 레냐를 따라 미로 정원에 들어갔지. 그런데 그 뒤엔……?’

그 뒤에 그녀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혀 기억나질 않았다. 꼭 기억 위에 잉크를 엎어 부은 것처럼.

16567321741831.jpg‘꿈이라도 꿨던가? 아니면 뭐에 홀렸나?’

그러던 중, 붉은 머리를 땋아 내린 시녀가 트레이를 끌고서 그의 방에 들어왔다.

16567321698111.jpg“말씀하신 위스키와 과일을 준비해 왔습니다.”

16567321741831.jpg“어, 여기 내려놔. 그리고 나 술 마시는 동안 와서 발 좀 주물러.”

16567321698111.jpg“……예.”

일순간 시녀의 표정이 일그러졌으나, 생각에 잠겨 있던 닐스는 그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16567321741831.jpg‘어쨌든 이번 기회는 놓쳤으니 다음 기회를 노려야겠군.’

결혼식 당일에 에드의 비밀을 폭로하지 못한 건 아쉬운 일이긴 했다. 하지만 이제 레냐에게 접근할 기회쯤은 언제든 또 만들 수 있었다. 서로 친척 간이 되었으니까.

16567321741831.jpg‘본인 남편이 실은 마족 혼혈이란 걸 알면 얼마나 까무러치게 놀랄지…….’

에드에게 배신감을 느끼며 파르르 떨어 댈 모습을 상상하니 저절로 미소가 떠올랐다. 그는 조금 남은 아쉬움을 떨치고자 잔에 위스키를 부어 마셨다. 그때까지는 이상함을 느끼지 못했다. 그가 뭔가 이상하다고 느낀 건 두 번째로 잔을 비워 냈을 때였다.

16567321741831.jpg‘젠장, 몸이 약해졌나? 아직 두 잔밖에 안 마셨는데 머리가 왜 이렇게 또…….’

갑자기 밀려든 현기증에 당황한 그가 비틀거리며 의자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그조차도 쉽지 않아서 이리저리 휘청대다가, 테이블을 붙잡고서야 간신히 제대로 설 수 있었다.

16567321698111.jpg“괜찮으십니까?”

그의 발을 주무르던 시녀가 그리 물어 왔다. 닐스는 어느새 흐릿해진 눈으로 어렵사리 그녀의 모습을 살폈다.

16567321741831.jpg‘뭐야, 이거. 아까보다 키가 커진 거 같다? 그보다…… 성에 이런 시녀가 있었나……?’

성의 시녀들 얼굴은 전부 외워 두었건만, 눈앞의 이 붉은 머리 시녀는 무척이나 낯설었다. 그런데도 별다른 위화감을 느끼지 못했던 것 또한 지금 생각해 보니 이상했다. 하지만 지독한 현기증 때문에 깊게 생각할 순 없었다. 그는 멋대로 휘청거리는 다리를 힘겹게 움직여서 침대에 쓰러지듯 누웠다. 눈앞이 흐려지고, 생각이 흐려졌다. 그런 와중에 그에게 다가온 시녀는…… 왜인지 웃는 것처럼 보였다.

16567321741831.jpg‘잘못 본 건가? 하긴, 황태자가 이런 몰골인데 웃어 대는 시녀가 있을 리가…….’

―라고, 닐스는 자신이 잘못 본 것으로 여겼지만 실제로도 시녀는 웃고 있었다. 붉은 머리 시녀, 이시스는 자신이 약을 타 둔 술을 마시고서 해롱대는 황태자를 보며 슬그머니 웃었다.

16567321758887.jpg‘약발이 제대로 들고 있군.’

이시스가 굴욕감을 견디며 황성의 시녀로 위장했던 건 에드에게서 도망치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그는 황실이 숨기고 있는 어떤 물건을 노리고 있었다. 그걸 위해 마법으로 겉모습을 바꾸고, 황실 인간들에게 인지 장애를 일으키는 약을 쓰고, 그 밖에도 여러 위험한 짓을 저질렀지만 후회는 없었다. 에드가 그 물건을 얼마나 간절히 원하는지 알고 있으므로. 그걸 손에 쥐고 미끼처럼 흔든다면 그를 좀 더 수월하게 길들일 수 있을 터였다. 이시스는 자신이 먹인 약이 정말로 잘 듣고 있는지 확인하고자 황태자에게 질문을 던졌다.

16567321758887.jpg“전하께선 에이드리언 황자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16567321741831.jpg“그 자식…… 죽여 버리고 싶어…….”

약 때문에 이성이 마비된 닐스는 깊이 묻어뒀던 진심을 곧장 토해냈다. 약발이 제대로 서고 있음을 비로소 확신한 이시스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16567321758887.jpg“역시 그렇군요. 저도 그렇습니다. 그 건방진 애송이…… 일만 잘 끝나면 제가 직접 끝장을 내 드리죠.”

어차피 아무 말이나 내뱉어도 내일이면 닐스는 전부 잊을 것이었다. 그런 약이었으니까. 이시스는 어린애 다루듯 닐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속삭였다.

16567321758887.jpg“그걸 위해선 제 물음에 잘 대답해 주셔야 합니다.”

16567321741831.jpg“응…….”

16567321758887.jpg“자, 첫 번째 질문. ‘그믐달 태엽의 열쇠’라고 불리는 고대 유물을 알고 있습니까?”

닐스는 멍해진 상태에서도 입술을 움직였다.

16567321741831.jpg“엄청 중요한 물건이라고…… 아버지께서 매일 말씀하셨지……. 마족들이 가진 또 다른 유물에 그 열쇠를 꽂으면……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고…….”

16567321758887.jpg“잘 알고 있군요. 그럼 이어서 두 번째 질문. 그 물건은 지금 어디에 숨겨져 있습니까?”

16567321741831.jpg“그건…….”

잘 말하던 닐스가 갑자기 제 입술을 꽉 깨물며 대답을 거부했다. 중요한 보물이니 절대 남에게 말해선 안 된다고 철저하게 교육받은 탓일 터였다. 약을 먹은 상태에서도 무의식중에 털어놓기를 거부하고 있었다.

16567321758887.jpg“쯧.”

이시스는 귀찮다는 듯 혀를 차고는 아까 닐스가 남긴 술을 그의 입에 더 부어 넣었다. 그리고 거부하느라 찌푸려졌던 닐스의 표정이 펴졌을 즘, 재차 물었다.

16567321758887.jpg“두 번째 질문. 그 물건은 지금 어디에 숨겨져 있습니까?”

16567321741831.jpg“황성의 지하에…….”

16567321758887.jpg“세 번째 질문. 당신은 그곳에 들어갈 수 있습니까?”

16567321741831.jpg“아니. 그곳엔 황제만이…… 출입할 수 있어…….”

황제에게는 약을 먹이기가 힘들어서 황태자를 이용하려 했건만. 황태자에겐 황실 보물 창고에 접근할 권한이 없는 모양이었다. 일이 귀찮게 됐음을 느끼며 이시스는 붕대가 감긴 제 손등을 부여잡았다.

16567321758887.jpg‘황제를 노려야 하나. 그럴 시간이 없는데…….’

알렉시스를 이용해 레냐를 없애려 했을 때 그녀가 휘두른 단검에 손등을 긁혔었다. 분명 알렉시스의 몸을 통해 입은 상처인데도 왜인지 그것은 알렉시스가 아닌, 이시스 자신의 손등에 새겨져 있었다. 아마 고대의 마법이 걸린 물건이기에 가능한 일일 터였다. 언뜻 봤을 때 검의 손잡이에 고대어가 적혀 있던 게 기억났다. 여하간 이시스로서는 퍽 곤란하게 되었다. 그때 생긴 상처가 지금까지도 아물지 않고 끈질기게 그의 피를 앗아 가고 있었으니까. 문득, 그는 먼 과거를 떠올렸다. 과거에도 그를 이만큼 고생시켰던 여자가 한 명 있었다.

16567321758887.jpg‘제 어미를 닮아서 똑같이 짜증스럽군.’

과거에 골머리를 썩이게 했던 그녀, 릴리아를 떠올린 이시스는 제 이를 부러뜨릴 듯 세게 악물었다. * * * 막심 오빠가 데려온 마법사들은 무척이나 성실했다. ‘돈은 얼마를 써도 상관없으니 최대한 빨리’ 준비해 달라는 내 요구에 따라, 의식에 필요한 것들을 뚝딱 준비해 주었다. 그리고 현재, 우리는 황자궁에서 멀리 떨어진 고요한 숲에 와 있었다. 이 숲이 공기 중 마력의 농도가 높은 곳이라나? 그래서 여기서 시도해야 실패 확률이 그나마 줄어든다는 모양이었다. 달빛이 밝게 드리우는 호숫가에 마법에 필요한 재료와 에드를 나란히 눕혀 둔 채, 펠리시가 설명했다.

16567321698111.jpg“저희가 할 수 있는 준비는 전부 끝났습니다. 실패할지, 성공할지는 이제 에이드리언 님의 마음에 달려 있습니다.”

16567321698122.jpg“마음?”

16567321698111.jpg“만약 에이드리언 님께서 레냐 님께 깊은 친밀감을 느끼고 계실 경우, 쉽게 그분의 내면세계에 들어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반대의 경우에는……”

그 뒤, 펠리시는 더욱 가라앉은 목소리로 강조하여 말했다.

16567321698111.jpg“수백 번을 시도해도, 수천 번을 시도해도 끝내 허락받지 못하고 마음의 문 앞에서 튕겨 나오게 될 겁니다.”

결국 내가 아무리 애쓰고 노력해도 에드가 나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허사라는 것이었다.

16567321698122.jpg‘친밀한 이가 꿈속에 들어가야 한다고 했던 게 이래서였나…….’

그런 얘길 들으니 걱정이 밀려들었다. 이토록 어렵사리 그의 마음을 두드렸는데 그가 냉혹하게 나를 쫓아내 버린다면, 분명 상처받을 테니까. 하지만-

16567321698122.jpg“어서 시작하자.”

거부당한 내가 받을 상처보다야, 지금 에드가 겪고 있을 고통이 수백 배 더 클 것이기에 망설일 수 없었다. 곧 마법사들은 달이 가장 환하게 비치는 땅을 골라, 복잡한 마법 수식을 그렸다. 나와 에드는 그 위에 나란히 눕혀졌고, 그들은 그런 우리를 둘러싸고서 기도문을 읊듯이 무언가를 속삭였다. 처음에는 조금 신기했다. 에드가 마법으로 옷 갈아입는 건 본 적 있어도, 다수의 마법사가 모여서 이런 복잡한 마법을 거는 건 처음 봤으니까. 하지만 신기한 것도 잠시일 뿐.

16567321698122.jpg‘언제 시작되지? 혹시 벌써 실패한 거 아니야?’

지루함 속에서 그런 의심이 들었다. 그때였다.

16567321698122.jpg“……!”

잠잠하던 땅에서 스멀스멀 밝은 빛이 흘러나왔다. 그 빛은 이윽고 에드의 몸을, 그리고 내 몸을 뒤덮기 시작했다.

16567321698122.jpg“잠깐, 이거 지금…….”

지금 제대로 진행 중인 게 맞는지 묻고자 했으나, 내가 고개를 돌렸을 땐 마법사들의 모습이 사라져 있었다. 마법사들뿐만이 아니다. 내가 있던 장소 자체가 아예 다른 곳으로 바뀌어 있었다.

16567321698122.jpg‘황성 복도인 거 같은데?’

전에 황성에 방문했을 때 본 그 사치스러운 바닥재와 벽지가 이곳에 똑같이 깔려 있었다. 다만 그때 본 황성이 밝고 호사스러운 느낌이었다면, 이곳은 차갑고 어두웠다. 어디선가 흘러나오는 불안정한 마력, 그리고 미미한 피 내음이 내게 불길한 기분을 안겨 주고 있었다.

16567321698122.jpg“…….”

나는 마른침을 삼키곤 걸음을 움직였다. 복도 끝에 보이는 저 밝은 방에 가면 무언가 있을 것 같았다. 그 짧은 복도가 왜 이리 길게 느껴지는지, 나는 한참을 걸어서야 비로소 방에 들어갈 수 있었다.

16567321698122.jpg“……!!”

간신히 도착한 그곳엔 피투성이가 된 여자가, 그리고 그녀를 부여잡고서 오열하는 어린 소년이 있었다. 그의 새하얀 은빛 머리카락 덕분에 나는 그 작은 소년이 누구인지 금방 알아챘다.

16567321698122.jpg“에드? 에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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