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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악역에게도 사춘기 시절은 있었습니다 (53/102)

53. 악역에게도 사춘기 시절은 있었습니다2021.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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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드가 붙들고 있던 여자는 이미 가망이 없어 보였다. 그렇기에 탈진할 것처럼 울고 있는 에드를 먼저 내 쪽으로 끌어당기려 했다. 그랬는데-

1656732187148.jpg“누구야!! 나한테 손대지 마!!”

내가 그의 어깨를 붙잡기가 무섭게 그가 내 손을 뿌리쳤다. 대체 저 작은 몸 어디에 그런 힘을 숨겨 놓았던 걸까? 그에게 뿌리쳐진 손등이 멍들 것처럼 욱신거렸다. 그사이 그가 다시 사납게 경고했다.

1656732187148.jpg“나랑 어머니에게서 떨어져!!”

그 순간 나는 견딜 수가 없었다. 눈물이 가득 맺힌 눈으로 애써 나를 위협하는 모습이 정말로 가엾고도 가여워서.

16567321871488.jpg“……여기서 같이 나가자.”

1656732187148.jpg“가까이 오지 마.”

16567321871488.jpg“넌 꿈을 꾸고 있는 거야. 이건 전부 과거의 기억일 뿐이야. 그분은 이미…… 이미 떠나셨어.”

1656732187148.jpg“아니야!!”

설득해서 데리고 나가려 해도 에드는 끝까지 버텼다. 그의 팔을 잡고 일으켜 세우려고도 해 봤지만, 소용없었다.

1656732187148.jpg“나랑 어머니를 내버려 둬!! 제발…… 제발 우리를 좀 내버려 두란 말이야!!”

그가 그리 울부짖은 순간 갑작스레 주위가 허물어졌다. 흥건하게 핏물이 고였던 바닥도 무너졌고, 벽과 천장 또한 꼭 녹아내리듯이 사라졌다. 오열하던 에드의 작은 뒷모습마저 어둠에 묻혀서 사라져 버렸다.

16567321871488.jpg‘갑자기 왜 이러지? 설마…… 설마 벌써 실패한 거야……?!’

이렇게 허무하게 실패라니? 믿을 수 없어서 급히 주위를 살폈다. 다행히 에드는 나를 내쫓지 않기로 한 모양이었다, 적어도 지금은. 어둠이 가시고 다시 주위가 밝아졌을 때 낭패감으로 젖은 마법사들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즉, 나는 여전히 에드의 기억 속에 있었다. 곧이어서 들려온 어린 에드의 목소리가 내게 그 사실을 더욱 확실히 일깨워 주었다.

1656732187148.jpg“독약……? 유모…… 어째서 이런 짓을…….”

그 목소리의 근원지 쪽으로 고갤 돌리니 에드의 모습이 보였다. 아까보다는 좀 더 성장한 모습이나, 그래도 아직 작았다. 그토록 작고 앙상한 아이가 바닥에 엎어진 채로 숨을 헐떡이며 유모를 찾고 있었다. 그러나 그 유모로 보이는 여자는―

1656732187148.jpg“죄송해요, 전하. 하지만 황후 마마께서 전하의 죽음을 바라고 계시니, 저로서도 어쩔 수 없었답니다.”

―따위의 말을 하며, 죽어 가는 에드를 그저 싸늘하게 내려다보고만 있었다. 이 부분은 원작에서도 본 기억이 났다. 황후의 사주를 받은 유모가 에드에게 독이 든 음식을 내준 상황인 듯했다. 원작 덕분에 나는 제법 빠르게 상황을 판단할 수 있었고, 상황을 판단하자마자 몸이 먼저 움직였다.

1656732187148.jpg“저를 너무 원망하지 마세요. 이 불행의 원인은 전하의 몸에 흐르는 그 사악한 마족의…… 꺄악!! 당신 뭐야!!”

그 아동 학대범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내가 먼저 그녀의 옷 뒷덜미를 낚아챘다. 한 번도 타인을 이렇게 다뤄본 적 없는 나인데, 어디서 이런 용기와 힘이 나왔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어쨌든 나는 한 손으로도 어렵지 않게 그 여자를 끌고 가, 문밖으로 내동댕이쳤다.

1656732187148.jpg“당신, 누군진 몰라도 나한테 이런 짓을 하면 황후 폐하께서 가만두지 않……!!”

이번에도 그녀의 말이 이어지던 도중에 ‘쾅!’ 문을 닫아 버렸다. 헛소릴 들어 줄 만한 시간은 없었으니까. 그렇게 그녀를 대충 내보내고서 에드에게 다가가자 그가 휘둥그레진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러다가 곧 독에 절은 몸을 움직여서 멀어지려 했다. 위험한 인물로 판단한 모양이라, 나도 최대한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에게 권했다.

16567321871488.jpg“이쪽으로 와. 치료해 줄게.”

독을 마신 상태로 빠르게 도망치진 못했기에 나는 곧 그를 붙잡을 수 있었다. 그 뒤엔 그가 도망치지 못하게끔 꽉 끌어안고서 성력을 불어넣었다. 처음엔 발버둥을 치더니, 어느 순간부턴 내 온기와 성력을 가만히 받아들였다. 몸이 어느 정도 안정되었을 즘이었다. 그가 입을 연 것은.

1656732187148.jpg“당신, 누구야?”

역시나 그는 나를 기억 못 하고 있었다. 성인일 때의 기억을 잃고서 이 불행한 과거에 갇혀 버린 것이었다. 그런 그에게 내 정체를 구구절절 설명했다간 말이 길어질 터. 간략하게 답했다.

16567321871488.jpg“널 구하러 온 사람이야.”

1656732187148.jpg“유모로부터?”

16567321871488.jpg“아니. 저 여자는 어차피 네게 아무런 위협도 못 돼. 이미 옛날에 죽었거든. 황후가 제 죄상이 드러나기 전에 저 여자에게 모든 죄를 뒤집어씌워서 사형시켜 버렸어.”

1656732187148.jpg“……무슨 소리야? 그럼 방금 내 앞에 있던 저 사람은 누구야?”

나는 이 모든 걸 진짜라고 믿고서 혼란에 빠진 그를 꽉 끌어안았다. 그리고 진실을 속삭였다.

16567321871488.jpg“저건 그냥 허상이야.”

1656732187148.jpg“……?”

16567321871488.jpg“이 공간도, 저 여자도 전부 네 기억에서 비롯된 허상일 뿐이야. 넌 지금 꿈을 꾸고 있어.”

1656732187148.jpg“…….”

16567321871488.jpg“나랑 같이 여기서 나가자. 나가면 내가…… 내가 두 번 다신 이런 일 겪지 않게끔 평생토록 지켜줄게.”

어쩌면 지킬 수 없는 약속일지도 몰랐다. 원작의 레냐처럼 되지 않고자 언젠간 그의 곁을 떠날 계획이었으니까. 그런데도 나는 순간 그에게 ‘평생’을 약속하고야 말았다. 앙상한 몸으로 떨고 있는 아이에게 차마 언젠간 떠날 거라는 말 따윈 할 수가 없었다. 그는 흔들리는 은회색 눈동자로 나를 살피다가, 입술을 움직였다.

1656732187148.jpg“……거짓말.”

순간 머릿속을 들킨 줄 알았다. 다행이라 해야 할지, 그는 평생 지켜 줄 거란 그 거짓말을 지적한 게 아니었다.

1656732187148.jpg“똑바로 말해. 당신, 황후가 보낸 자객이잖아!”

16567321871488.jpg“아니, 아니야. 황후가 보낸 자객은 방금 그 여자고, 나는…….”

1656732187148.jpg“안 속아!! 날 죽이려는 거야!! 어머니가 마족이어서, 내가 그 어머니의 피를 이어서……!!”

세상으로부터 여러 차례 배신당한 어린아이는 쉽게 남을 믿지 않았다. 나를 적으로 판단한 그가 곧이어 내 손가락을 힘껏 깨물었다.

16567321871488.jpg“읏……!”

손가락에서 퍼지는 통증에 놀라 잠깐 힘을 뺀 사이, 에드가 내 품을 벗어났다. 아까와 달리 내 성력으로 몸을 회복한 차라 움직임이 재빨랐다.

16567321871488.jpg“기다려!! 에드!!”

나 또한 급히 일어나서 그의 뒤를 따라 달렸다. 그는 이미 문밖으로 나가 복도를 내달리고 있었고, 나는 그 뒤에 대고 외쳤다.

16567321871488.jpg“오해하지 마!! 난 네가 마족의 혼혈이든 뭐든 신경 안 써!! 그러니까 잠깐……!!”

쫓아가려고 힘을 내면 낼수록 오히려 그는 멀어졌다. 꼭 뭔가에 쫓기는 꿈을 꿨을 때처럼 두 다리가 점점 무거워지고 있었다. 게다가―

16567321871488.jpg‘또 주위가 바뀌고 있어……!’

아까처럼 바닥이 허물어지고 벽이 까맣게 녹아내리는 게 보였다. 온 사방이 어둠에 덮여 버리기 전, 나는 마지막으로 소리쳤다.

16567321871488.jpg“에드!!”

도망치기만 하던 그가 그제야 나를 돌아보았고, 나는 그 찰나를 틈타서 그에게 약속했다. 이번엔 지킬 수 있을 만한 약속을.

16567321871488.jpg“곧 구해 줄게! 조금만…… 조금만 더 기다……!!”

말을 잇던 도중 마침내 그 두 번째 공간도 어둠에 잠겨서 사라졌다. 이번에야말로 그의 마음속에서 쫓겨나는 게 아닐까- 싶었지만 다행히 그러진 않았다. 나는 이번에도 마법사들이 있는 숲이 아닌, 그의 기억의 한 시점으로 옮겨졌다.

16567321871488.jpg‘사냥터……인가.’

이번 장소는 햇볕이 따스하게 드리워지는 어느 숲이었는데, 저 멀리 황성이 보이는 걸로 보아 황성 옆에 붙어 있는 사냥터인 듯했다. 이번에도 분명 에드가 곁에 있을 것이기에 나는 두리번대며 그를 찾았다. 그때― ―피잉! 활시위 튕기는 소리가 소름 끼칠 정도로 가깝게 들려왔다. 꼭 내 근처에서 나를 노리고서 쏘기라도 한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도 나를 노리고서 쏜 것이 맞았다. 어디선가 날아온 화살이 내 바로 뒤에 있던 나무에 박힌 것이다. 아마 그대로 서 있었다면 화살에 꿰뚫린 건 저 나무가 아니라 나였을 터. 누군가 억센 손으로 나를 끌어당겨 준 덕분에 꼬챙이 신세를 피할 수 있었다.

16567321871488.jpg“에드!”

16567321937995.jpg“쉿!”

나를 수풀로 끌어당겨 숨긴 에드가 내 입을 틀어막았다. 아까와 달리 지금의 그는 어린아이가 아니었다. 대략 10대 중후반쯤 되었을까? 현실에서보다야 어린 모습이었지만 제법 덩치가 커져 있어서, 그의 손도 내 입을 거뜬히 틀어막을 정도는 되었다.

16567321937995.jpg“조용히 해. 암살자들에게 노려지고 있어.”

16567321871488.jpg“암살자?”

내가 그의 손을 치우고서 조용히 묻자 그가 손끝으로 먼 동쪽을 가리켰다. 과연, 그곳에 우중충한 풀색 옷을 입은 남자가 손에 화살을 들고서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나는 마른침을 삼키며 그에게 물었다.

16567321871488.jpg“황후가 보낸 거야?”

16567321937995.jpg“그렇겠지. 아니면 닐스거나.”

그의 무덤덤한 말투에 가슴 한켠이 쓰렸다. 암살자가 본인을 노리고 있노라고 이토록 무덤덤하게 말할 수 있게 되기까지 이와 비슷한 일을 얼마나 많이 겪었을까 싶어서. 그리 서글픔에 잠겨 있던 나를 그가 갑작스레 본인의 품으로 당겨서 안았다.

16567321937995.jpg“나한테 최대한 붙어. 그리고 조용히 따라와.”

어디로 피해야 할지 아는 눈치라 조용히 그를 따라갔다. 그렇게 조심하며 10분 정도 움직이자 작은 동굴이 하나 나왔고, 우리는 그 안으로 몸을 숨겼다.

16567321871488.jpg“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런 곳에 숨었으니 이제 화살 맞을 일은 없겠구나― 싶어서였다. 대신 에드가 화살보다 더 날카로운 시선으로 나를 보고 있다는 걸 알아채기까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16567321871488.jpg‘엄청나게 쳐다보네…….’

그 부담스러운 시선을 고개 돌려 피하기도 전에 문득, 그가 내게로 다가왔다. 그러곤 본인의 두 팔로 동굴 벽을 짚어서 나를 가두었다. 시선을 피하는 것조차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이.

16567321937995.jpg“그래, 이 맹한 얼굴…… 확실히 기억나.”

16567321871488.jpg“맹한 얼굴……?”

이번에도 내 어디가 맹해 보이냐고 반박할 틈은 없었다. 그전에 그가 곧장 내 턱을 들어 올려, 자신을 보게 만들었기 때문에.

16567321937995.jpg“분명 7년 전에도 나를 찾아왔었어. 맞지?”

에드가 말하는 7년 전은, 아마도 유모가 그를 독살하려 들었던 그때를 말하는 듯했다.

16567321871488.jpg“응, 기억하고 있었구나.”

현실을 기억하진 못해도 이 꿈속에서 벌어진 일들은 전부 기억하는 모양이었다. 그는 어릴 적에 보여 주었던 경계심 가득한 시선을 이번에도 똑같이 보내오고 있었다.

16567321937995.jpg“당신, 정말 누구야?”

16567321871488.jpg“전에도 말했지만 널 구해 주려고 온 사람이야.”

16567321937995.jpg“…….”

16567321871488.jpg“거기에 더해서 미래에 너랑 결혼할 사람이기도 하고.”

내 말에 거짓은 없건만. 그는 헛소리라도 들은 것처럼 코웃음을 흘렸다.

16567321937995.jpg“난 당신처럼 맹해 보이는 여자랑 결혼 안 해.”

조금 전에도 맹하다고 그러더니, 또다. 아마도 눈에 힘을 풀고 다녀서 그리 보였던 걸까? 나는 힘주어서 바짝 눈을 치켜뜨곤 그를 응시했다.

16567321871488.jpg“지금은 어때? 지금도 맹해 보여?”

16567321937995.jpg“응. 맹한 데다가 성격도 고약해 보여.”

16567321871488.jpg“…….”

실망스런 대답이었다. 나는 한껏 치켜떴던 눈에서 도로 힘을 풀었다.

16567321871488.jpg‘사춘기 때의 에드는 이랬구나. 까칠하고, 못됐고, 말 안 듣고…….’

현실에서의 에드…… 즉, 성인 에드는 가식적이긴 했어도 나름 젠틀했었다. 발톱을 노련하게 감출 줄 안다고 해야 할까? 그러나 아직 청소년인 에드는 제 마음속 가시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데다가, 묘하게 더 위태로워 보였다. 말투가 훨씬 까칠한 건 물론 말할 필요도 없었다.

16567321937995.jpg“어쨌든 빨리 진짜 정체나 말해. 왜 나를 따라다녀? 황후가 내 목숨을 노리는 건 어떻게 알고 있고, 무엇보다…… 어떻게 예전부터 하나도 안 늙은 건데?”

16567321871488.jpg“계속 그렇게 캐물어도 내가 할 말은 똑같아. 나는 널 구해 주려고 온 네 미래의 아내야. 내가 안 늙는 건 여기가 현실이 아니라 네 꿈속이어서고.”

16567321937995.jpg“하…….”

한숨을 내쉬며 나를 노려보던 그가 문득 위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 미소만은 그가 어른일 때 지은 것과 놀랍도록 똑같았다.

16567321937995.jpg“그래, 그럼 증명해 봐. 네가 내 아내라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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