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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머릿속에 야한 것만 들었구나! (54/102)

54. 머릿속에 야한 것만 들었구나!2021.10.05.

내가 본인의 아내라는 걸 증명해 보라니. 혼인 증명서라도 가져오라는 의미였을까? 고민 끝에 나는 에드를 향해 직접 물었다.

1656732204346.jpg“……어떻게 증명해?”

16567322043465.jpg“쉬운 방법이 있잖아.”

그가 제 입가에 띤 오만한 미소를 지우지 않은 채로 이어서 말했다.

16567322043465.jpg“진짜 내 아내라면 내게 아내로서 즐거움을 주는 일쯤은 할 수 있겠지, 안 그래?”

1656732204346.jpg“…….”

성인인 에드가 특유의 위험천만한 미소를 지으며 이런 말을 했다면 나도 동요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지금의 그는 그저 객기 넘치는 소년일 뿐. 나는 인생의 선배로서 미성년자에게 가르침을 주라는 내 안의 유교 영혼의 속삭임에 따라, 그에게 손을 뻗었다. 그리고 건방지게 씰룩거리는 그의 뺨을 꽈악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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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67322043465.jpg“아악!! 뭐 하는 거야!!”

1656732204346.jpg“뭐? 즐거움을 줘? 벌써 머릿속에 야한 생각만 가득해서는…….”

16567322043465.jpg“아프니까 놔!!”

1656732204346.jpg“너 사교계 기초 예절부터 다시 배워야겠다. 다른 레이디 앞에서 그딴 말 하면 순식간에 매장당해. 알아? 나중엔 평판이 아주 땅바닥에 처박혀서 청혼하는 족족 다 거절당할걸?”

16567322043465.jpg“…….”

그가 내게 꼬집혀 붉어진 뺨을 부여잡으며 나를 찌릿 째려보았다.

16567322043465.jpg“다른 레이디 앞에서 보일 예절을 뭐하러 배워. 어차피 댁이랑 결혼하게 된다며.”

1656732204346.jpg“아니, 그렇긴 한데…….”

16567322043465.jpg“역시 다 거짓말이었던 거지?”

1656732204346.jpg“……그게 아니라……. 하, 됐고, 지금은 일단 꿈속에서 벗어나자. 내가 도와줄게.”

그 뒤 그를 향해 손을 내밀었으나, 그는 그 손을 가만히 바라보기만 했다. 어쩌면 그대로 뿌리치고서 가버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어릴 적에는 내 손을 깨물고 도망치기도 했었으니까. 그러나 지금의 에드는―

16567322043465.jpg“누가 누굴 도와줘. 항상 도중에 사라져 버린 주제에.”

오히려 나를 구속하듯이 내 손목을 꽉 틀어쥐었다. 이제 좀 컸다, 이거다. 이래서는 설득하기가 힘들겠구나, 싶어서 나도 모르게 한숨이 흘렀다.

1656732204346.jpg“전에 중간에 떠났던 건 다 사정이 있었어. 무엇보다 네가 먼저 날 거부했었잖아.”

16567322043465.jpg“시끄러워. 어쨌든 이번엔 당신 정체가 뭔지 밝혀내기 전까지 안 놓칠 테니까 그런 줄 알아.”

1656732204346.jpg“…….”

그 말이 사실임을 증명하듯 그가 아까보다 더욱 세게 내 손목을 붙잡았다. 그러곤 동굴 벽에 기대어 앉아 있던 나를 일으켜 세웠다.

16567322043465.jpg“따라와. 여기서 조금만 더 가면 내 별장이 나오거든. 거기로 가면 안전하니까.”

1656732204346.jpg“……별장? 잠깐…… 혹시 조그만 강가 옆에 있는?”

16567322043465.jpg“……? 맞아. 그건 또 어떻게 알았지?”

1656732204346.jpg“거기 가면 안 돼!!”

방금까지만 해도 나는 내가 에드의 과거 중에서도 어느 시점쯤에 와 있는지 정확히 모르고 있었다. 그러다가 ‘별장’ 얘기를 듣고 나서야 비로소 잊고 있었던 원작 내용이 번뜩 떠올랐다. 원작에 따르면 에드는 열여섯 살 되던 해에 숲에서 암살 시도를 당하고, 그 뒤―

1656732204346.jpg“별장에 가면 황후가 숨겨 둔 자객으로부터 다시 공격당할 거야! 넌 거기서 거의 죽기 직전까지 다칠 거고!”

16567322043465.jpg“……뭐? 무슨 소리야. 그 장소를 아는 건 오직…….”

1656732204346.jpg“오직 너랑 네 시종뿐이었겠지. 그 시종이 네 정보를 황후에게 팔았어.”

16567322043465.jpg“…….”

이후 자객에게 당한 에드는 시종이 자신을 배신했단 걸 알고 그를 잔혹하게 벌한다. 그 뒤 황후에게 매수되지 않을 만큼 충직한 이를 찾아 헤매다가 킬리안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킬리안과 만났으니 결론적으론 잘된 거지만, 그 사건으로 인해 에드의 마음속엔 깊은 상처가 새겨졌다. 지금 그가 이 일을 꿈으로 꾸고 있는 것도 그 상처가 꽤 깊어서일 것이고.

1656732204346.jpg‘생각해 보면 악역이 될 만도 했지. 이런 어린 나이에 수도 없이 배신당하고, 암살당할 뻔하고…….’

마음이 아물 틈도 없이 계속해서 상처받았으니 얼마나 아팠을까. 가여움을 느끼며 그를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16567322043465.jpg“너…….”

그가 문득 나를 부르더니, 내 손을 꼬옥 붙잡았다. 그러곤 나긋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16567322043465.jpg“잠꼬대 그만하고 따라오기나 해.”

1656732204346.jpg“…….”

한창 애틋한 마음을 느끼고 있었건만, 그는 말 한마디로 그 감성을 와장창 깨트려 버렸다. 그걸로도 모자라서 기어코 나를 별장 방향으로 이끌어 갔다.

16567322043465.jpg“자객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별장에 가서 일단 치료사부터 만나 보자. 망상이 심각한 수준인 거 같은데.”

1656732204346.jpg“가긴 뭘 가! 거기 가면 죽는다니까?!”

16567322043465.jpg“알았으니까 일단 치료사부터 만나.”

1656732204346.jpg“싫어!!”

온 힘을 다해서 버티는 나를 그가 귀찮다는 듯 노려보았다. 그러곤 이윽고 내 몸 전체를 훌쩍 들어 올렸다. 나는 곧 그의 어깨에 짐 포대처럼 얹히게 되었다.

1656732204346.jpg“내려놔!!”

열여섯 살밖에 안 된 주제에 힘이 꽤 세서, 그리 들렸더니 쉽게 빠져나갈 수가 없었다. 그렇게 어깨 위에서 3분가량 발버둥 쳤을까? 도망칠 수 없다는 결론에 다다른 나는 그냥 한숨을 푹 내쉬었다.

1656732204346.jpg“후……. 알았어. 그럼 별장에 도착해서 네 방에 들어갈 때 나도 같이 들어갈게.”

16567322043465.jpg“되게 이상한 요구를 하네.”

1656732204346.jpg“그래도 되지? 안 된다고 하면 또 발버둥 칠 거야. 그럼 도착할 때까지 상당히 고생할걸?”

16567322043465.jpg“……알았어. 들여보내 줄 테니까 좀 얌전히 있어.”

그리 어려운 요구도 아니었기에 그는 흔쾌히 허락했다. 그 뒤에는 말없이 걷기만 했고, 별장에 도착해서 나를 내려 주었다. 아까 내가 자객이 있을 거라고 경고해 주긴 했으나 완전히 헛소리로 치부한 듯했다. 그는 별다른 경계도 하지 않고서 별장 2층에 있는 자신의 방으로 올라갔다. 내가 잔뜩 긴장한 채로 뒤를 따라가자 그가 나를 힐끔 돌아보았다.

16567322043465.jpg“정말로 들어가려고?”

1656732204346.jpg“응. 널 지켜줘야 하니까.”

16567322043465.jpg“아직도 잠꼬대를…… 뭐, 따라와도 상관은 없는데 나 안에서 샤워하고 옷 갈아입을 거야.”

1656732204346.jpg“그래.”

나는 흔쾌히 그러라고 대답했다. 어차피 그는 샤워도, 환복도 못 할 것이니까. 왜냐하면 그곳엔…….

16567322043465.jpg“다 왔어. 여기가 내 방이야.”

1656732204346.jpg“잠깐만.”

어느새 방에 도착하여 그가 문을 열려는 순간, 내가 먼저 그의 손을 붙잡아 막았다.

1656732204346.jpg“나부터 들어갈게.”

16567322043465.jpg“……?”

그는 조금 의아해하는 듯하다가, 뒤로 물러났다. 어디까지 하나 보자― 라는 심정인 듯 입가엔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그 틈에 나는 문을 열었다. 황후가 보낸 자객이 숨어 있을, 그의 방에 들어가기 위해서.

1656732204346.jpg‘원작에 따르면 황후가 사냥터에 있던 에드에게 자객을 보냈었지. 에드는 자객을 피해 자신의 별장으로 갔고. 그 별장을 아는 건 에드 본인과 그가 믿는 시종뿐이기에 완전히 안심한 채로 별장 침실에 들어서지만…….’

그 믿었던 시종으로부터 정보를 산 황후의 자객이 옷장에서 튀어나와 그를 노린다. 그것이 원작의 구체적인 내용이었다. 그러니, 그를 이 악몽에서 구원하기 위해 내가 해야 할 일은 명확했다. ―달칵 먼저 방 안에 들어온 내가 안에서 문을 잠가 버리자 곧이어 에드가 외쳤다.

16567322043465.jpg“잠깐, 뭐 하는 거야!! 문 열어!!”

1656732204346.jpg“미안해. 그건 좀 힘들어. 넌 여기 들어오면 분명 다칠 거거든. 몸도, 마음도. 그러니까…… 안 열어 줘.”

16567322043465.jpg“바보 같은 소리 그만하고 어서 열어!! 어차피 2층이라 창문으로 도망치지도 못할 거잖아!!”

내가 방문을 잠가 놓고 창문으로 도망치려는 줄 알았나 보다. 그가 제법 필사적인 태도로 문고리를 잡고 흔들었다. 하지만 아마 문을 부수지는 못할 터였다. 에드 자신도 이 별장을 피신용으로 만들었기에 이곳의 문고리와 문짝은 하나같이 엄청 튼튼했다. 그러는 사이 역시나, 소란을 들은 자객이 옷장에서 슬금슬금 기어 나왔다. 그는 자신의 표적인 에드 대신 웬 낯선 여자가 있는 걸 보고 잠깐 당황한 눈치였으나, 살인 프로답게도 곧장 정신을 차리곤 나를 살폈다.

16567322111297.jpg“이건 또 뭐야……. 황자가 데려온 매춘부인가.”

1656732204346.jpg“…….”

아무리 꿈속이라지만 이런 식의 오해는 사양이라 고개를 내저었다.

1656732204346.jpg“며칠 전에 결혼한 아내인데…….”

그는 이번에도 조금 당황한 눈치였다가 결국 암살용 단검을 뽑아 들곤 내게로 다가왔다. 그러든 말든 나는 눈을 꾹 감았다.

1656732204346.jpg‘괜찮아. 어차피 전부 꿈속에서 일어나는 일이야.’

이렇게 된 이상 기꺼이 이 상황을 즐기기로 했다. 꿈속에서 찔린다고 해도 실제로 다치진 않을 터. 조금 색다른 경험을 해 보는 것뿐이라고 생각하면 될 듯했다.

1656732204346.jpg‘그냥 살짝 아프고 말겠지. 대신 에드를 나쁜 기억에서 구해 줄 수 있었으니까…… 그거면 된 거야.’

에드는 제대로 도망친 듯했다. 문고리를 잡고 흔들어 대는 소리가 더 들리지 않는 것을 보니. 그러는 사이 자객이 제 흉측하고 커다란 손을 내 목으로 뻗어 왔다.

1656732204346.jpg“……!!”

16567322111297.jpg“황자가 도망쳤으니 일단 네 목이라도 따 가야겠다. 너무 원망은 마라.”

그에게 목을 잡히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내가 큰 고통은 못 느끼리라 믿었다. 원래 꿈속에선 어떻게 다쳐도 아프지 않은 법이었으니까. 그런데-

1656732204346.jpg‘더럽게 아프네!!’

……두꺼운 손에 틀어 잡힌 목이 너무나 아팠다. 자연적인 꿈이 아니라서인지 통각은 생생하게 살아 있는 듯했다.

1656732204346.jpg‘생각해 보니 에드한테 물렸을 때도 통증은 느껴졌었지……? 하아…….’

그 와중에 턱 밑쪽으로 싸늘하고 날카로운 감촉이 느껴졌다. 동맥을 자른 뒤 그대로 목을 따려는 모양이었다.

1656732204346.jpg‘제발 빨리 끝나라……. 근데 에드는 잘 도망쳤나? 그리고 나는…… 아마 곧바로 다른 장소로 가게 되나?’

제발 그랬으면 했다. 다른 장소로 가는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내가 고통을 느끼는 시간도 길어질 테니까. 나는 주먹을 꽉 말아쥐었다. 그리고 곧 다가올 고통에 대비하고 있던 때였다. ―쨍그랑!! 뭔가가 깨지는 요란한 소리에 놀라서 감았던 눈이 도로 번쩍 뜨였다. 소리가 들려온 방향에서 보인 것은 산산이 조각난 유리창…… 그리고 그것을 깨트린 장본인으로 보이는 에드의 모습이었다.

1656732204346.jpg“에, 에드…….”

차라리 빨리 고통이 끝났으면 했는데, 에드는 그렇게 두기 싫었나 보다. 굳게 잠긴 문 대신 2층 창문을 깨고 들어온 그가 그대로 본인의 무기인 창을 자객에게 휘둘렀다. 훈련받은 자객인지라 한 번에 찔려 주진 않았다. 다만 에드의 일격으로 옆구리를 크게 다쳤고, 그 상태로 피하다가 결국 구석으로 몰리게 되었다.

16567322111297.jpg“잠, 잠깐……!! 나는 그저 사주를 받았을 뿐이……!!”

자객이 제 목숨을 구걸하려 들기도 전, 에드의 창이 자객의 몸을 한 번에 꿰뚫었다.

16567322111297.jpg“컥!! 쿨럭……!!”

자객이 피 기침을 토해내며 몸을 바르작댔다. 그리고 그 후엔 두 번 다신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

16567322043465.jpg“헉, 헉…….”

졸지에 사람을 죽이고 그 피를 뒤집어쓴 에드가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그는 제 얼굴에 튄 피를 닦아 내지도 않은 채, 나를 돌아보았다. 피가 잔뜩 튀어 있었음에도 에드의 얼굴이 무섭지는 않았다. 위태로이 떨리는 눈동자와 입술이 여전히 그냥 가엾기만 할 뿐이었다. 툭― 시체에서 도로 뽑아낸 창을 카펫 위에 그냥 떨군 채, 그가 내게로 천천히 다가왔다. 이미 일어설 수 없는 상태였던 나는 그가 오기를 기다렸다. 내 앞에 와서 몸을 굽혀 줄 때까지 쭉 기다렸다가, 비로소 입을 열었다.

1656732204346.jpg“처음으로 성공했어……. 첫 번째에도, 두 번째에도 네가 당하는 걸 그냥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는데…….”

16567322043465.jpg“이게 성공? 대체 뭐가 성공이라는 건데? 지금 네 꼴이나 똑바로 봐!!”

내 꼴이 조금 안 좋긴 했다. 에드가 들어오기 직전 암살자의 단검에 베이는 바람에 피가 줄줄 흘러넘치고 있었으니까. 잘린 동맥을 어느 정도 성력으로 막기는 했지만, 그사이에 벌써 상당량의 피가 흘러나가 버렸다. 생명이 사그라지는 감각이 소름 끼칠 만큼 선명하게 느껴졌다.

1656732204346.jpg“진짜로…… 진짜로 죽는 게 아니야. 현실이 아니…….”

말하는 것조차 힘에 부쳐, 도중에 숨을 헐떡였다가 간신히 뒷말을 이었다.

1656732204346.jpg“현실이 아니라서, 그냥 다른 곳으로 가게 될 뿐이야.”

그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처럼 입술을 달싹였다. 그러다 간신히 골라낸 듯 보이는 그의 한마디가, 나를 더욱 아프게 만들었다.

16567322043465.jpg“그럼 가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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