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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내가 의처증이라고? (58/102)

58. 내가 의처증이라고?2021.10.19.

16567323034439.jpg“과묵한 남자요?”

에드가 던진 물음이 퍽 이상해서 나는 그렇게 되물었다. 잘못 들은 게 아니었는지 그가 곧장 대답했다.

16567323034444.jpg“네. 말수 적고, 차분하고, 다소 무뚝뚝한…….”

16567323034439.jpg“……아뇨, 싫어요.”

말수 적고 무뚝뚝한 남자라니? 내 취향에 정확히 반대되는 타입이 아닌가. 누운 상태에서 고개를 절레절레 젓자, 그가 이번엔 또 다른 질문을 던졌다.

16567323034444.jpg“흐음, 그럼 혹시 야성적인 산적 같은 타입을……? 수염은 덥수룩하고, 덩치는 곰 같고, 맥주를 마시다가 수염에 거품이 잔뜩 묻으면 손등으로 대충 슥― 닦아서 그대로 옷에 문지르는, 그런 사람?”

16567323034439.jpg“묘사가 굉장히 구체적이네요. 덕분에 제가 그런 남자를 별로 안 좋아한다는 걸 구체적으로 알게 된 것 같아요.”

16567323034444.jpg“그럼 대체 어떤 남자가 좋은 겁니까?”

그는 어느새 침대에서 반쯤 일어난 상태로 내 쪽을 보고 있었다. 퍽 몰입하는 듯한 그의 모습에 나는 슬그머니 물었다.

16567323034439.jpg“제가 좋아하는 남자는 왜요?”

16567323034444.jpg“그걸 알아야 제가 부인 취향에 맞는 남자가 될 수 있으니까요.”

16567323034439.jpg“……!”

비로소 나도 몸을 반쯤 일으키고서 그를 마주 보았다.

16567323034439.jpg“제 취향대로 변하신다고요?”

16567323034444.jpg“예, 지금 제가 부인 취향에 맞는 남자가 아니라는 건 확실히 알 것 같거든요.”

16567323034439.jpg“…….”

16567323034444.jpg“가까워지려고 하면 할수록, 부인은 계속 도망만 치는 느낌이 드니까.”

내가 거리를 두려고 하는 걸 다 느끼고 있었나 보다. 나름 조심조심 밀어냈던 건데도. 그는 장난스러운 어투로 곧이어 불평했다.

16567323034444.jpg“섭섭합니다. 저도 나름 미혼일 땐 영애들한테 인기 많았는데.”

16567323034439.jpg“……알아요. 어디에 계시건 항상 돋보이셨죠. 처음 공작성에 오셨을 때도 시녀들이고 하녀들이고 다들 전하 얘기만 했을 정도로…….”

16567323034444.jpg“그런데도 저를 이렇게 냉대한다는 건, 역시 부인의 취향이 유독 특이하다는 의미겠죠? 뭐, 상관없긴 해요. 저는 어떤 취향이든 전부 맞춰줄 수 있…….”

16567323034439.jpg“왜 제게 그렇게까지 하세요?”

나는 도중에 그의 말을 끊어 내며 불쑥 물었다. 그야 조금, 그에게 화가 났으니까.

16567323034439.jpg“전하께선 제게 진심이 아니시잖아요. 진심이셨던 적…… 그런 적 없잖아요.”

내게 조금이라도 애정을 품고 있느냐는 물음에조차, 그는 대답 못 했었다. 나를 조금도 사랑하지 않노라고 대답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이젠 나를 위해 본인을 바꾸기까지 하겠단다. 그저 농간으로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16567323034444.jpg“…….”

그에 에드는 침묵으로 대답했다. 다소 긴 시간이 지나서야 침묵이 깨졌다. 그가 툭 던진 물음으로 인해서.

16567323034444.jpg“부인, 대체 언제 적 얘길 하는 겁니까?”

16567323034439.jpg“……?”

16567323034444.jpg“부인께서 긴 잠에 빠진 저를 데리러 왔을 때, 전 이미 마음을 정했어요. 당신께 진심이 되기로.”

차분하고 무덤덤한 목소리가 다시 이어졌다.

16567323034444.jpg“그러니 난생처음으로 디저트를 만들어 바치고, 부인의 작은 반응 하나에 전전긍긍하고, 안절부절못하고, 허둥대고, 애처롭게 구는 겁니다. 모르겠어요?”

16567323034439.jpg“…….”

그의 말을 듣고 고민해 보았으나, 역시 답은 나오지 않았다. 이 남자가 진심인지, 아니면 또 나를 이용해 먹으려고 준비 중인 건지……. 나로서는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솔직하게 답했다.

16567323034439.jpg“모르겠어요.”

16567323034444.jpg“…….”

16567323034439.jpg“디저트를 만들어 주신 것도, 그냥 감사의 의미인 줄 알았어요. 제가 전하를 악몽에서 구해드린 건 일단 맞으니까.”

그는 이내 복잡한 심경이 느껴지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16567323034444.jpg“이런 질문 실례일지도 모르지만…… 혹시 과거에 나쁜 놈한테 데인 경험이라도 있는 겁니까? 상처받은 적이 있어서 이렇게나 저를 못 믿는 건가, 싶어서요.”

16567323034439.jpg“으음…… 사실 있어요.”

16567323034444.jpg“……있다고요?”

16567323034439.jpg“네, 제가 본인을 좋아하는 걸 알고 그 감정을 마구 이용하던 사람이었죠.”

나는 그에게 향해 있던 내 몸을 도로 침대에 똑바로 눕혔다. 그다음 눈을 감곤, 원작에 등장했던 에드의 모습을 떠올렸다.

16567323034439.jpg“언젠간 변할 줄 알았는데, 헤어지는 그날까지 계속 나쁜 놈이었어요. 제게 가끔 친절했던 것도 다 저를 이용하기 위해서였고요. 아마 그때 받은 상처가 아직 남아 있나 봐요.”

16567323034444.jpg“……그거, 누굽니까? 당장 말해 봐요.”

16567323034439.jpg“…….”

16567323034444.jpg“농담이 아니에요. 부인께 감히 그런 상처를 준 놈을 가만둘 수 없군요.”

에드가 당장에라도 그 나쁜 놈을 찾아내겠다는 듯 노기를 드러냈다. 그게 본인이라는 건 상상조차 못 한 채로. 어쨌든 이 희한한 상황을 마주하고 있으려니 나도 모르게 가벼운 웃음이 터져 나왔다. 현실의 에드에게 원작의 에드 흉을 보게 될 줄은 정말로 몰랐다.

16567323034439.jpg“아마 못 하실 거예요. 혼내 주려고 하면…… 아마 도리어 혼날걸요?”

16567323034444.jpg“아뇨, 그런 일은 절대…….”

16567323034439.jpg“전하께서 혼내 주실 수가 없는 상대예요.”

자기 자신을 어떻게 혼낼 수 있을까. 본인 얼굴에 직접 주먹이라도 날리지 않는 한 그건 어려울 터다. 그러니 나는 그 나쁜 놈의 정체를 끝까지 숨기기로 했다.

16567323034439.jpg“그냥 제가 그 사람에게서 최대한 멀리 도망치는 수밖에 없겠죠. 그게 아픈 과거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일 거예요. 그러니까…… 안녕히 주무세요.”

16567323034444.jpg“예……. 부인도…….”

그의 대답을 듣곤 일찌감치 잠들고자 눈을 감았다. 그러나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날은 유독 잠이 오질 않았다. * * *

16567323034444.jpg‘그 빌어먹을 자식이 대체 누굴까.’

레냐가 아직 자고 있을 시각. 먼저 일어난 에드는 집무실에서 고민에 잠겨 있었다. 그녀가 어젯밤에 들려준 ‘상처를 주고 떠난 과거의 남자’ 이야기를 속에 담아 뒀던 까닭이었다. 그의 머릿속에서 힘없는 레냐의 목소리가 반복되어 들렸다.

16567323034439.jpg“제가 본인을 좋아하는 걸 알고 그 감정을 마구 이용하던 사람이었죠. 언젠간 변할 줄 알았는데, 헤어지는 그날까지 계속 나쁜 놈이었어요.”

  그녀에게 연인이 있었다는 것 자체는 크게 충격적이지 않았다. 이미 약혼한 귀족 영애, 영식들도 다들 공공연하게 자유연애를 즐기고 있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으니까. 다만, 그 남자가 레냐에게 상처를 주고 떠났다는 것이 영 거슬렸다. 그를 찾아내서 혼내 주겠다고 한 것도 마냥 빈말은 아니었다.

16567323034444.jpg‘설마 루카스 뮈스켈, 그 자식인가?’

에드 자신이 잠깐 레냐의 곁에 없었을 때 루카스가 수작을 부린 게 아닌가― 싶었다. 제가 보기엔 영 별로였지만, 어쨌든 여자들은 그런 얼굴을 좋아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에드가 루카스의 반반한 얼굴을 떠올려 보고 있던 때, 킬리안이 집무실 문을 노크했다.

16567323090976.jpg“저를 찾으셨다고 들었습니다.”

16567323034444.jpg“어, 들어와.”

곧 문을 열고 들어온 킬리안에게 에드가 곧장 용건부터 말했다.

16567323034444.jpg“급히 조사해 줬으면 하는 게 있어서.”

16567323090976.jpg“황자비님에 대해서요?”

16567323034444.jpg“……? 잘 아는군. 내가 미리 말했던가?”

16567323090976.jpg“아뇨. 전하께서 정신을 차리신 뒤로 계속 황자비님 이야기만 하시니까요.”

‘내가 레냐 얘기를 그렇게 많이 했던가?’ 하는 마음에 조금 민망해진 에드가 뺨을 긁적였다.

16567323034444.jpg“여하간 과거에 내 아내를 괴롭힌 놈이 있다는 모양인데, 조용히 알아 오도록 해. 그 루카스 뮈스켈 놈이 수상하니까 그 녀석 뒤도 캐 보도록 하고.”

16567323090976.jpg“윽. 과, 과거 조사입니까…….”

16567323034444.jpg“왜, 안 내키나?”

에드의 뾰족한 물음에 킬리안이 고개를 내저었다.

16567323090976.jpg“아뇨, 제가 안 내키는 게 아니라, 아마 황자비께서 질색하시지 않을까요? 본인 과거를 캐냈다는 걸 알면.”

16567323034444.jpg“흐음…… 근데 좋은 의도로 조사한 거잖아? 난 괜찮을 거 같은데.”

16567323090976.jpg“그 부분은 황자비님의 의견도 들어 봐야 할 것 같습니다만…….”

무엇이 문제인지 모르겠다는 듯 구는 에드를 보며 킬리안은 문득 불안해졌다.

16567323090976.jpg‘어째 집착증으로 발전할 기미가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에드 특유의 그 빈틈없는 완벽함으로 집착하기 시작하면 레냐는 이겨내지 못할 터였다. 그의 품에 영영 갇혀서 자유를 그리워하는 신세가 될지도 몰랐다. 거미줄에 걸린 가련한 나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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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67323034444.jpg“…….”

레냐의 암울한 미래를 상상해 본 킬리안이 다시 입을 열었다.

16567323090976.jpg“모쪼록 기억하셔야 할 점은, 유부녀들이 남편을 떠나는 결정적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의처증’이라는 점입니다.”

16567323034444.jpg“……내가 의처증이라고?”

16567323090976.jpg“아뇨, 그냥 통계의 이야기를 했을 뿐입니다. 다른 의미는 없습니다…….”

자꾸만 눈을 피하는 킬리안을 에드가 사납게 노려보았다.

16567323034444.jpg“쯧, 부인한테 질척거리면서 집착할 생각은 없어. 그냥 부인을 괴롭힌 놈에게 죗값을 치르게 해 주려는 것뿐이야. 분명 얼굴 좀 잘난 것 가지고 설쳐 대는 한심한 자식이겠지.”

16567323090976.jpg“…….”

16567323034444.jpg“부인 앞에선 잘 보일 생각으로 착한 척했겠지만 속은 분명 새카만 자식이었을 거야.”

거기까지 듣자 킬리안은 입이 간지러워 죽을 지경이 되었다. 에드가 말한 ‘레냐 앞에선 착한 척하지만 속은 새카만 인간’을 그도 한 명 알고 있어서였다. 심지어 지금 바로 근처에 있기도 했다. 더 정확히는, 그의 바로 눈앞에. 킬리안이 현재 무슨 생각으로 자신을 보고 있는지 모르는 에드는 그저 찻물만 삼켜 댔다.

16567323034444.jpg“어쨌든 알아보도록 하고, 그리고 부인 방에서 못 쓰게 된 가구가 뭐랬더라? 옷장이랑…….”

16567323090976.jpg“옷장과 서랍이 젖어 망가졌습니다. 지금은 창고에 보관 중이죠.”

16567323034444.jpg“그럼 그 두 개는 버린 다음 새 걸 주문하도록 해. 돈은 얼마를 더 얹어 줘도 상관없으니까 무조건 황실에서 쓰는 것보다 더 좋은 물건으로.”

16567323090976.jpg“예. 알겠습니다. 그런데 젖은 서랍을 버리는 건 조금 미뤄야 할 것 같습니다.”

16567323034444.jpg“……?”

16567323090976.jpg“황자비께서 본인이 직접 그 안에 든 물건들을 꺼내서 정리할 테니, 그때까지 손대지 말라고 하셨거든요.”

의아함을 느낀 에드가 눈가를 살며시 구겼다.

16567323034444.jpg“시녀들에게 시키지 않고 본인이 직접? 왜지……?”

16567323090976.jpg“글쎄요. 아마 남들이 보지 않았으면 하는 물건을 넣어 두신 것 아닐까요?”

16567323034444.jpg“남들에게 감추고 싶은 물건이라…….”

에드가 말끝을 애매하게 흐리며 생각에 잠겼다. 무언가 은밀한 일을 꾸밀 때의 버릇이었다. 킬리안이 큼큼, 목을 가다듬어서 에드의 주의를 끌었다.

16567323090976.jpg“그리고 전에 황자비께 붙여 드릴 신관을 찾아보라고 하셨던 거 말이죠, 조건에 부합한 사람을 찾느라 조금 늦어졌습니다만, 다행히 무사히 찾아냈습니다. 현재 이쪽으로 오고 있다고 합니다.”

16567323034444.jpg“……남자인가?”

16567323090976.jpg“아뇨, 여성분이라고 합니다.”

16567323034444.jpg“그렇군. 도착하면 말하도록 하고, 이제 가서 쉬어도 좋아.”

16567323090976.jpg“예, 전하.”

모든 보고를 마친 킬리안이 비로소 걸음을 돌렸다. 하지만 그는 곧장 나가는 대신 문 앞에서 잠깐 멈추었다. 마지막 충고를 남기기 위하여.

16567323090976.jpg“이건 혹시나 해서 말씀드리는 거지만…… 부디 황자비님의 서랍을 뒤져 보실 생각은 말아 주십시오.”

16567323034444.jpg“뭐?! 아니, 누가 그런 생각을 한다고. 난 그런 몰상식한 인간이 아니야.”

16567323090976.jpg“그렇군요, 제가 괜한 걱정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럼 이만.”

킬리안은 사죄의 의미로 고개를 숙인 뒤 이번에야말로 집무실을 나갔다. 에드는 그런 킬리안의 뒷모습을 보고 씩씩댔다. 자신을 그런 상식적이지 않은 인간으로 본 것에 분개하듯이.

16567323034444.jpg‘그래, 서랍을 뒤질 순 없지. 그랬다간 부인도 나를 구질구질한 남자로 여기게 될 테니.’

절대 안 될 일이야, 라고 생각하며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킬리안이 떠나고서 속이 조금 가라앉자―

16567323034444.jpg‘……서랍 안을 실수로 보게 되면…… 그것도 죄인가?’

이미 혼란하던 그의 마음속에, 또 다른 번뇌가 슬그머니 떠오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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