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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부인? 정말 그냥 자려고요? (60/102)

60. 부인? 정말 그냥 자려고요?2021.10.26.

에드가 오해의 늪에 빠져 괴롭게 허우적대고 있을 때. 그런 에드를 보며, 레냐 역시도 똑같이 오해의 늪에 잠겨갔다.

16567323374634.jpg‘아니, 저렇게 대놓고 섭섭한 티 낼 일이라고? 잘 어울리는 사람들끼리 맺어주는 게 뭐 어때서. 원래 살던 곳과 전혀 다른 문화권에서 산다는 게 확실히 쉬운 일이 아니긴 하네…….’

그저 루카스를 타라와 이어주고 싶었을 뿐이건만. 고작 그런 일에 울적해하는 에드를 보며, 레냐는 새삼 문화의 벽을 실감했다. 그가 엉뚱한 오해를 하고 있다곤 상상도 못 한 채였다.

16567323374634.jpg‘그런데 제삼자가 어울리는 두 사람을 연인으로 맺어주는 장면은 분명 원작에도 심심찮게 나왔던 것 같단 말이지……? 그럼 그 행동 자체엔 별문제가 없다는 뜻인데…….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시점에 그런 일을 한 게 잘못된 거……?’

-라고, 에드가 분노하는 이유를 완전하게 헛짚은 레냐가 조심스레 물었다.

16567323374634.jpg“그럼 결혼 후 언제부터 가능할까요?”

16567323374648.jpg“……!!”

16567323374634.jpg“6개월 정도 지난 뒤부터는 괜찮은 거죠?”

여전히 오해의 늪에 잠겨 있던 에드는 이번에야말로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남편에게 6개월 이후부터는 다른 남자와 만나도 되느냐고 이토록 당당하게 물어 올 줄은 상상도 못 한 까닭에. 그는 얼어붙은 입술을 힘겹게 움직여 가며 되물었다.

16567323374648.jpg“6개월 뒤부터는…… 괜찮냐고?”

16567323374634.jpg“네, 설마 그때부터도 안 되나요?”

16567323374648.jpg“…….”

문득 밀려드는 현기증에 휘청거리며 그가 이마를 짚었다. 머릿속에서 수백 가지 생각이 떠오르고 있었다. 어떻게 이렇게 당당히 말을 하지? 내가 보수적인 건가? 이러는 게 요즘 유행인가? 당최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여하간 그가 해야 할 말은 정해져 있었다.

16567323374648.jpg‘어쨌든 결혼한 이상 이런 행동은 용납 못 해……!’

그녀가 에드 자신을 썩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는 건 이제 확실히 알 것 같았다. 그렇다 하더라도 법적으로 아내인 그녀가 다른 남자랑 애정을 나누는 건 두고 볼 수 없었다.

16567323374648.jpg“레냐, 차라리 내 어디가 마음에 안 드는지 말해 줘. 그럼 내가 고칠…….”

16567323374634.jpg“어쨌든 정말로 죄송해요. 전 전혀 몰랐거든요. 새 신부가 다른 연인들을 맺어주는 게 그렇게까지 잘못된 일인 줄은…….”

16567323374648.jpg“……?”

‘말해 주면 내가 고칠 테니까’라고, 말하려던 순간에 딱 맞춰서 레냐 또한 입을 열었다. 그녀의 대답이 뭔가 이상함을 깨달은 그는 하던 말도 잊고서 그녀에게 되물었다.

16567323374648.jpg“잠깐, 다른 연인들을 맺어준다고?”

16567323374634.jpg“……? 네, 루카스한테 짝을 찾아 주는 거요. 방금 안 된다고 말씀하셨잖아요. 저는 그게 금기된 일인 줄 정말로 아예 몰랐다는 의미예요.”

16567323374648.jpg“…….”

16567323374634.jpg“고의가 아니고 몰라서 그런 거니까 너무 기분 나쁘게 받아들이지 말아 주세요.”

그제야 비로소 에드는 깨달았다. 자신이 레냐의 말을 완전하게 오해하고 있었음을.

16567323374648.jpg‘다른 여잘 소개해 주려는 거였나? 레냐 본인이 만나려는 게 아니라……?’

에드에게는 다소 충격적인 반전이었다. 애초에 그는 지금껏 레냐에게 친구가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고, 그런 그녀가 루카스에게 여자를 소개해 줄 수 있으리란 생각 또한 못 하고 있었기에. 여하간 레냐의 대답을 듣고서 그는 자신이 오해했음을 확실히 파악했다. 단, 이때까지 실컷 난리를 쳐 놓고 이제 와서 오해였다고 고백하기엔…… 조금 민망했다.

16567323374648.jpg“음…… 뭐…… 6개월 뒤부터는 괜찮…… 아니, 일주일 뒤부터도 괜찮습니다. 부인 마음대로 하셔도.”

16567323374634.jpg“네? 정말요? 안 되는 것 아니었어요?”

16567323374648.jpg“……괜찮아요, 그 정도 지나서는.”

자신이 오해했다는 걸 죽을 때까지 감추기로 한 그는 시선을 피하며 대충 그리 둘러댔다. 마찬가지로 오해의 대상이었던 루카스에게도, 아까보다 누그러진 어투로 말했다.

16567323374648.jpg“그리고 원래 오기로 한 사제 대신 온 거라고 들었는데…… 갑자기 이렇게 상의 없이 사람을 교체한 건 당황스럽지만 이력은 괜찮다고 들어서, 일단 지켜보지.”

갑자기 한순간 만에 진정한 에드를 레냐는 의아하다는 듯 살폈다. 그런 레냐와 달리, 루카스는 에드가 갑자기 왜 진정했는지 대강 알 것만 같았다.

16567323402385.jpg‘아까 우리 얘기를 언뜻 듣고 오해했나.’

레냐가 했던 말이 조금 오해의 소지가 있기는 했다. 다만 레냐의 그 한마디에 분노했다가, 흥분했다가, 절망했다가, 안심하는 에드도 루카스의 눈에는 퍽 특이해 보였다.

16567323402385.jpg‘결혼하면 저렇게 되는 건가…….’

분명 처음 봤을 땐 꽤나 날카롭고 지적인 분위기의 남자였건만. 왜인지 결혼식 날 기절했다가 일어난 이후 묘하게 팔불출처럼 변해 버렸다. 물론 그렇게 날카로웠을 때랑 비교하면 지금이 훨씬 더 행복해 보이긴 하지만. 그러는 사이에도 에드는 상황을 재빠르게 수습하고 있었다.

16567323374648.jpg“흠흠, 모쪼록 너무 무리하지는 말고, 배우다가 힘들어지면 저한테 오세요. 제가 언제든 달콤한 디저트와 홍차로 달래 드릴 테니까.”

그 뒤 에드의 입술이 레냐의 이마에 살며시 닿았다가 떨어졌다. 마치 레냐와의 관계를 과시라도 하듯, 몹시도 다정한 입맞춤이었다. 그리고 그토록 다정한 애정 행각을 바로 눈앞에서 본 루카스는―

16567323402385.jpg“…….”

‘누군가를 만나더라도 저렇게 변하진 말아야지’ 하고, 조용히 마음속으로 다짐을 굳힐 뿐이었다. * * * 에드가 한바탕 휩쓸고 간 이후부터는 나도 오롯이 배움에 집중했다. 루카스가 말하길 기사에서 은퇴한 뒤엔 신학교에서 후학을 가르치는 일에 전념할 거라 했는데, 좋은 판단이었다. 그는 교육에 소질이 있었고, 덕분에 나는 첫 수업 만에 많은 부분을 습득할 수 있었다. 그렇게 정해진 수업 시간이 끝난 뒤엔 서로 갈 길을 가게 되었다. 루카스는 이시스의 단서를 찾기 위해 밖으로, 그리고 나는 에드가 기다리고 있을 침실로…….

16567323374648.jpg“첫 수업은 어땠어요? 괜찮았어요?”

침실에 붙어 있는 욕실에서 몸을 씻고 오자 에드가 그리 물었다. 그는 이미 다 씻고 얇은 수면용 셔츠를 걸친 채 침대에 누워 있었다. 나는 그의 손에 들린 위스키 잔을 힐끔 보다가 대답했다.

16567323374634.jpg“좋았어요. 설명도 체계적으로 잘해 주시고, 꼼꼼하시고, 마음에 들어요.”

16567323374648.jpg“아아, 잘됐다. 안 맞을까 봐 걱정했는데.”

16567323374634.jpg“전 괜찮았어요. 그보다 그건…….”

내가 말끝을 흐리며 술잔을 가리키자, 그는 별거 아니라는 듯이 어깨를 으쓱했다.

16567323374648.jpg“자기 전에 한 잔만 마시려고요. 술기운으로 깊게 잠들지 않으면 자꾸 악몽을 꿔서.”

16567323374634.jpg“……악몽이요? 혹시 전에 꿨던 그런 꿈들?”

16567323374648.jpg“아뇨. 예전엔 그런 꿈도 많이 꿨는데, 요즘은 과거보다는 미래에 관한 꿈을 꾸는 편이죠. 미래에 겪게 될지도 모르는 아주 두려운 일들, 예컨대…….”

그가 목소리를 음울하게 낮추며 내 쪽을 보았다.

16567323374648.jpg“부인을 잃는다든가.”

16567323374634.jpg“…….”

16567323374648.jpg“그게 요즘 가장 자주 꾸는 악몽이에요.”

나를 잃는 걸 두고 그는 ‘아주 두려운 일’이라고 했다. 그런 그에게 무어라 대꾸해야 할지 알 수 없어서, 그저 애꿎은 술잔만 지그시 노려보았다.

16567323374634.jpg“……그런 꿈 때문에 술을 드시는 거예요? 건강에 안 좋지 않을까요?”

16567323374648.jpg“선택권이 없어서요, 저한텐. 너무 괴로운 꿈이라서 술기운이 돌아야 푹 잘 수 있거든요.”

16567323374634.jpg“…….”

16567323374648.jpg“아아, 정 걱정되면 부인께서 저를 도와줄 방법이 하나 있기는 하겠네요.”

그가 오묘한 미소로 입가를 물들였다. 그러곤 그곳으로 오라는 듯, 제 옆자리를 손으로 두드렸다.

16567323374648.jpg“잠들 때까지 이 불쌍한 남편을 꼭 끌어안아 주는 거죠. 설마 부인 품에서 잠든 중에도 부인을 잃는 꿈을 꾸진 않을 테니까.”

16567323374634.jpg“…….”

나는 한차례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입 안에서 줄곧 맴돌기만 하던 물음을 꺼내 놓기 위해서.

16567323374634.jpg“그런데…… 제가 떠나는 꿈이 그렇게나 괴로운 꿈인가요? 악몽이라 불릴 만큼?”

16567323374648.jpg“……? 당연하죠. 그건 상상도 하기 싫은 일이니까.”

16567323374634.jpg“…….”

16567323374648.jpg“진심도 아니면서 왜 가식 떠냐고 예전처럼 따질 생각 말아요. 이미 말했지만 전 부인께 진심이 된 지 오래거든요.”

내 물음을 원천 봉쇄해 버릴 줄이야. 이젠 그에게 사람 마음 가지고 장난 그만 치라고 따질 수도 없게 되었다. 거짓일까? 진심일까? 만약 진심이라면…… 그의 곁에 남아도 되는 걸까? 생각이 복잡한 가운데, 아까부터 나를 가만히 바라보던 그가 쓴웃음을 흘렸다.

16567323374648.jpg“이렇게 말해도 안 올 줄은 몰랐는데…….”

그는 나를 위해 들춰 두었던 이불을 도로 덮었다. 그러곤 보기에도 독해 보이는 술을 또 글라스 가득 따랐다. 그것이 그의 입가에 닿기 직전―

16567323374634.jpg“그만 마시세요. 악몽 안 꾸게 도와줄게요.”

내가 먼저 손을 뻗어서 그의 잔을 부드럽게 빼앗았다. 그런 다음 그의 침대로 가서 이불 속으로 파고들었다. 나는 얇은 슬립 차림이었고, 그도 헐렁한 수면용 셔츠와 바지만 걸친 상태……. 옷감이 말려 올라가며 우리의 맨살이 이불 속에서 맞닿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샤워를 마친 지 얼마 안 되어 아직 촉촉한 살결이 내 맨다리를 통해 고스란히 느껴졌다. 또한 그의 몸이 단단하게 굳어진 것도, 나는 뚜렷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 상태에서 나는 그의 머리가 품에 파묻힐 만큼 꼬옥 끌어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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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67323374634.jpg“이제 됐죠?”

16567323374648.jpg“…….”

대답이 없었다. 그는 꼭 그대로 시간이 멈춘 것처럼 몸 전체를 딱딱하게 굳힌 채, 가만히 숨죽이고만 있었다. 어쩌면 너무 갑작스러웠던 걸지도 몰랐다. 놀란 마음을 달래 주고자, 나는 촉촉하게 물기가 남아 있는 그의 머리카락을 천천히 쓰다듬어 주었다. 그제야 그도 내 품에 파묻힌 상태에서 제 입술을 움직였다.

16567323374648.jpg“이런 상황에서 참는 건…… 후……. 남자로서 너무 괴로운데…….”

16567323374634.jpg“…….”

16567323374648.jpg“부인?”

그가 내 몸을 흔들며 나를 불렀지만 답할 수 없었다. 사실 아까 루카스에게서 성력 운용법을 배우느라 몇 시간 내리 명상했던 것이다.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나 피로도가 상당한 상태였고, 덕분에 내 정신은 이미 꿈나라 입구에 들어서고 있었다. “부인? 정말 그냥 자려고요? 부인!” 하고 애타게 나를 부르는 에드의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어느 순간 수마에 삼켜지고 말았다.   * * * 아침에 눈을 떴을 땐 왜인지 다른 날보다도 훨씬 개운했다. 어제 조금 빨리 잠들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에드를 품에 안고 잠들어서 비교적 추위를 덜 느껴서? 어쨌거나 몸의 컨디션은 최상이었다. 다만 마음속에선 아주 자그마한 걱정거리 하나가 나를 신경 쓰이게 만들고 있었다.

16567323374634.jpg‘생각해 보니까 어제 너무 무방비했던 거 같기도 하고……?’

어젠 너무 피곤했고, 에드가 독한 술을 들이켜는 게 안타까워서 다소 충동적으로 움직이고 말았다. 하지만 맨정신이 된 지금 생각해 보니 나도 참 무신경했구나 싶었다. 살결이 그대로 느껴지는 얇은 옷을 입고서 끌어안고 있었으니, 에드로서는 곤혹스러웠을 터였다.

16567323374634.jpg‘아무리 가여워도 이 이상 가까워지면 정말로 안 돼. 그게 결국엔 서로에게 독이 될 테니까…….’

악몽 때문에 잠들기 힘들면 잠드는 걸 도와주는 따뜻한 차 한 잔이라도 마시게 하면 될 터. 다음번엔 오늘처럼 끌어안지 말고 수면에 좋은 차를 권해줘야겠다고 생각 중이던 때였다.

16567323443767.jpg“황자비님? 기상하셨습니까?”

킬리안의 목소리였다. 나는 슬립 위에 대충 외투를 걸치고서 그를 맞이했다.

16567323374634.jpg“응, 들어와. 무슨 일이야?”

16567323443767.jpg“전하께서 지금 당장 상의고픈 일이 있다고 하시는데, 괜찮으십니까?”

16567323374634.jpg“괜찮지, 물론. 그런데 상의할 일이라는 건…….”

슬그머니 묻는 말에, 킬리안은 문득 진지한 얼굴이 되었다.

16567323443767.jpg“결혼 계약서에 대해서입니다.”

16567323374634.jpg“……?!”

16567323443767.jpg“전하께선 기존 계약서를 파쇄하거나, 수정하거나, 혹은…… 거기에 추가 약정을 새로 작성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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