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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아내가 아프다고!? (61/102)

61. 아내가 아프다고!?2021.10.29.

킬리안이 가져온 소식은 나를 아침부터 긴장하게 만들었다.

16567323522515.jpg‘에드가 결혼 계약서를 파쇄하거나…… 수정하고 싶어 한다고……?’

그 계약서의 어떤 조항이 마음에 안 드는 건지는 구체적으로 알기 어려웠다. 혹시 3년간 잠자리를 갖지 않기로 한 조항일까? 아니면 다른 조항? 어쨌든, 이것 하나는 확실했다.

16567323522515.jpg‘절대 안 돼. 나중에 여기서 떠나야 할 때를 대비해서라도.’

훗날 이시스를 무사히 처단했을 때…… 즉, 에드를 떠나야 할 때가 분명 올 터였다. 그때 그와 탈 없이 이혼하려면 그 계약서가 꼭 필요했다. 그리고 그걸 지키기 위해 내가 지금 해야 할 일은 명확해 보였다.

16567323522515.jpg“아으윽……!! 배, 배가 갑자기……!!”

16567323522534.jpg“황자비님?!”

멀쩡하다가 갑자기 배를 부여잡고 쓰러지니 킬리안이 당황한 기색을 비쳤다. 찔리는 양심을 가까스로 외면하며 나는 아픈 연기를 이어 갔다.

16567323522515.jpg“킬, 킬리안……. 아무래도 오늘은 배가 좀 아파서…….”

16567323522534.jpg“갑, 갑자기 말씀이십니까?! 황자궁에 와 있는 그 신성 기사를 부를까요?! 당장 신성력으로 치료를 받으셔야…….”

16567323522515.jpg“아니, 그럴 필요까진 없을 것 같아……. 그냥 전하께 잘 말씀드려 줘. 결혼 계약서에 대해선 나중에 상의하자고…….”

16567323522534.jpg“알, 알겠습니다.”

꾀병임을 들키지 않게끔 나는 일부러 비틀거리며 침대에 가서 누웠다. 그때까지 나를 부축해 준 킬리안이 이불을 내 목 밑까지 덮어 주었다.

16567323522534.jpg“정말로 괜찮으신 거 맞죠……?”

16567323522515.jpg“응, 정말로 괜찮아……. 그런데 계약서같이 복잡하고 골치 아픈 이야기를 들으면 나도 모르게 긴장해서 배가 더 아픈 것 같기도 하고…….”

16567323522534.jpg“……그렇습니까?”

16567323522515.jpg“으응…….”

너무 말도 안 되는 소릴 한 것 아닌가― 싶어서 걱정도 됐지만, 이미 돌이키기는 늦었을 터. 나는 끝까지 거짓말을 밀고 나갔다.

16567323522515.jpg“어쨌든 전하께 잘 좀 말해 줘…….”

16567323522534.jpg“아아, 알겠습니다. 그럼 제가 잘 말씀드릴 테니 걱정하지 마시고 푹 쉬세요.”

16567323522515.jpg“응, 고마워…….”

나는 세상에서 가장 병약한 여자인 척하며 눈을 살포시 감았다. 대신 킬리안의 발소리에 최대한 귀를 기울였다. 뚜벅뚜벅. 그가 문을 열고 나가서 복도로 사라지는 소리를 듣곤 다시 눈을 떴다.

16567323522515.jpg‘갔나……?’

그는 완전히 떠나간 것처럼 보였다. 그제야 나는 참았던 한숨을 푹 내쉴 수 있었다.

16567323522515.jpg‘결혼 계약서, 아무래도 잘 챙겨 두는 게 좋겠다.’

에드가 그 계약서를 탐탁잖게 여긴다는 걸 안 이상, 지금까지처럼 대충 보관할 순 없었다.

16567323522515.jpg‘우연히라도 그게 에드 눈에 띄면 위험하겠어. 본인 마음대로 파쇄해 버릴지도 몰라. 그만큼 비이성적인 사람은 아니지만…… 그래도 조심해서 나쁠 건 없으니까.’

판단을 마친 나는 그 즉시 시녀 호출 종을 딸랑딸랑, 흔들었다. 그 소릴 들은 한나가 곧바로 나를 찾아왔다.

16567323535958.jpg“황자비님? 부르셨어요?”

16567323522515.jpg“응, 한나. 긴급 상황이야.”

16567323535958.jpg“긴, 긴급 상황이요……?”

나는 최대한 비장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16567323522515.jpg“전에 내가 서랍에 중요한 서류들을 넣어 놨다고 했던 거, 기억하지?”

16567323535958.jpg“물론 기억하고 있답니다. 그래서 시종들이 손 못 대게 하려고 급히 뛰어가셨던 때에도 제가 같이 있었는걸요.”

16567323522515.jpg“맞아. 그때는 보는 눈이 너무 많아서 서류를 못 챙겼거든? 그래서 아직도 창고에 놓인 그 서랍 안에 서류가 숨겨져 있고. 원래는 나중에 틈 봐서 슬쩍 가져오려 했는데―”

16567323535958.jpg“지금 가져다 드릴까요?”

눈치 빠른 한나가 거기까지만 듣고도 그리 물었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16567323522515.jpg“응. 맨 아래쪽 서랍, 가장 깊은 곳에 숨겨 놨어. 최대한 은밀하게 찾아와 줘.”

16567323535958.jpg“예, 맡겨 주세요! 그림자처럼 은밀하게 다녀오겠습니다!”

한나가 나를 따라 비장해진 표정으로 걸음을 움직였다. 나는 그런 그녀를 도로 급히 불러 세웠다.

16567323522515.jpg“아, 맞다! 무슨 무슨 서류 가져오면 되는지도 미리 말해 줄게. 서류가 두 종류라, 빼먹고 하나만 가져오면 골치 아프니까. 그 대신―”

16567323535958.jpg“……?”

16567323522515.jpg“놀라지 말고 듣겠다고 약속해.”

한나가 가져오는 중에 서류 내용을 보게 되는 건 불가피했다. 안 보이게끔 봉투에 넣어서 보관하고 있던 것도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어차피 보게 된다면 굳이 감출 필요도 없을 터였다. 놀라지 말라고 미리 경고하자, 한나는 다시금 비장하게 낯빛을 굳혔다.

16567323535958.jpg“제가 놀랄 내용의 서류인가요……? 으음, 최대한 진정하고서 듣겠습니다. 말씀해 보셔요.”

16567323522515.jpg“그럼 이제 귀 좀 빌려줘.”

나는 그녀에게 서류의 정체를 밝혔다. 결혼 계약서를 작성한 건 이미 그녀도 알고 있던 일이라 그리 놀라지 않았다. 하지만 두 번째 서류가 미리 준비해 둔 이혼 신청서라는 걸 듣고 나서는―

16567323535958.jpg“예에……?! 벌, 벌써 그런 준비를 해 두셨다고요?!”

놀라지 않겠다고 말한 게 무색하게도, 그녀는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 * * 레냐의 꾀병에 속아 넘어간 킬리안은 그 길로 에드를 찾아왔다. 그리고 보고를 올리고자,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16567323522534.jpg“저, 황자비께서…….”

16567323564069.jpg“뭐라고?! 내 아내가 어떻게 됐다고……?!”

16567323522534.jpg“……아직 ‘황자비께서’ 밖에 안 말했습니다만…….”

근래에 에드는 레냐에게 온 정신을 집중하고 있었다. 그녀가 장미 가시에 살짝 찔렸다는 소식에조차 온갖 호들갑을 떨어 댔을 정도였다. 그 결과, 킬리안이 황자비님의 ‘황’ 자만 꺼내도 ‘뭐라고?!’부터 외치는 경지에 도달하고야 말았다. 머쓱해진 에드가 제 뺨을 긁적였다.

16567323564069.jpg“아, 습관이 돼서 그만……. 침착하게 들을 테니까 말해봐. 아내한테 무슨 일이 생긴 건데?”

16567323522534.jpg“황자비께서 복통이 있으셔서 결혼 계약서에 관한 상의는 미루자고 하셨습니다.”

16567323564069.jpg“뭐라고?! 복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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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침착하게 듣겠다던 방금의 약속을 저버리고서 에드가 목소리를 높였다.

16567323564069.jpg“이건 흥분하면서 들어야 할 소식 맞잖아!!”

16567323522534.jpg“아, 아뇨……. 일단 진정하시고 끝까지 들어 주시죠…….”

당장 레냐에게 뛰어갈 것처럼 보이는 에드를 진정시킨 뒤, 킬리안이 침착하게 설명했다.

16567323522534.jpg“안 그래도 저도 걱정돼서 신성력 치료가 필요하신지 여쭸는데, 그 정도는 아니라고 말씀하셔서 말입니다.”

16567323564069.jpg“……걱정시키기 싫어서 괜찮은 척한 건 아니고?”

16567323522534.jpg“안색도 괜찮아 보이시고, 조금 쉬면 나으시지 않을까 싶습니다.”

16567323564069.jpg“흐음……. 가벼운 복통이라…….”

문득 에드의 머릿속에 무언가 떠올랐다.

16567323564069.jpg‘혹시……?’

그는 아까까지 읽고 있었던 책을 다시 서랍에서 꺼내 들었다. 가죽 재질의 책 커버에는 꽤 직관적인 제목이 보란 듯 적혀 있었다. 『사랑받는 남편이 되는 방법(기본편)』 에드는 빠르게 책을 넘겨, 엊그제 읽었던 구간을 찾아냈다. [당신의 아내가 갑자기 복통을 호소하며 힘들어한다면, 여성에게 한 달에 한 번씩 찾아오는 그 시기가 온 것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때 남편으로서 해야 할 행동은 간단하다. 옆에서 얼쩡거리며 짜증을 돋우지 말고 그냥 쉬게끔 내버려 두는 것이다.] 얼쩡거리지 말라고 적혀 있었지만 레냐와 떨어져 있는 건 내키지 않았다. 에드는 그 부분을 무시하고 다음 페이지로 넘어갔다. 다음 페이지에 역시나 내용이 더 있었다. [그래도 당신이 정 그렇게 아내의 곁에서 얼쩡거리고 싶다면, 따뜻한 음료와 달콤한 디저트를 준비하라. 한창 단 음식이 고플 그녀는 당신이 준비한 디저트를 달가워할 것이다. 또한 우울감을 호소할 땐 작고 앙증맞은 선물을 건네도 좋다. 하지만 아까도 언급했듯 가장 좋은 방법은 그냥 얼쩡거리지 않는―] 이미 원하는 정보를 얻은 에드는 거기까지만 읽고서 책을 덮었다.

16567323564069.jpg‘이거다……!!’

어느덧 그의 눈빛은 확신으로 빛나고 있었다. * * * 침실에서 기다리고 있길 한 시간째. 드디어 한나가 슬그머니 문을 열고 들어왔다. 초조했던 나는 급히 그녀에게 물었다.

16567323522515.jpg“가져왔어?”

16567323535958.jpg“네, 서랍을 싹싹 뒤져서 다 찾아오긴 했는데…… 그래도 혹시 모르니 한번 확인해 보세요.”

한나가 품에 숨겨 온 서류들을 내게 넘겼다. 쭉 살펴보니, 빼먹은 페이지는 없었다.

16567323522515.jpg“아아, 제대로 다 가져온 것 같아. 오면서 누구 만난 사람은 없지?”

16567323535958.jpg“네, 창고를 지키는 하인들 때문에 조금 고생하긴 했지만, 다행히 점심시간 되니까 식당으로 가더라고요. 그때를 틈타서 몰래 가져왔답니다.”

16567323522515.jpg“휴…… 다행이다. 이제 안심할 수 있겠어. 조심히 가져와 줘서 고마워.”

16567323535958.jpg“고맙기는요, 황자비님을 위해서라면 이 정도 일은 거뜬한걸요. 그보다 정말 놀랐답니다. 정말로 그…….”

16567323522515.jpg“이혼 신청서?”

차마 말하기를 주저하던 한나가 고개를 빠르게 끄덕였다.

16567323535958.jpg“네, 그걸 정말로 미리 준비해 두셨을 줄은 상상도 못 했거든요. 만약 이걸 에드 전하께 들켰다면…….”

16567323522515.jpg“……알아. 분명 충격받으셨겠지. 내가 뭔가 꿍꿍이를 숨기고서 결혼했다고 의심하셨을지도 모르고. 그래도…… 나로서는 이렇게 해 둘 수밖에 없었어.”

이렇게 눈에 보이게끔 문서로 만들어 두지 않으면 잊어버릴 것 같았다. 내가 언젠간 그의 곁을 떠나야만 한다는 걸. 다행히 한나는 그 이유에 대해 더 자세히는 캐묻지 않기로 한 것 같았다.

16567323535958.jpg“제가 모르는 어떤 커다란 계획을 갖고 계신 거죠?”

16567323522515.jpg“……응. 다만 지금 말해 주긴 힘들어. 나중에…… 모든 일이 다 끝나고 나면 그때 말해 줄게. 내가 왜 에드 전하와 결혼을 결심했는지, 그리고 왜 떠날 준비를 미리 해 두었는지. 그때까진…….”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 한나가 먼저 내 손을 꼭 붙잡았다.

16567323535958.jpg“네, 황자비님. 그때까지 아무것도 묻지 않고 묵묵히 따를게요. 전 항상 황자비님을 믿으니까요. 나중에 마음의 준비가 되셨을 때, 그때 천천히 말씀해 주셔도 괜찮답니다.”

16567323522515.jpg“고마워, 한나.”

우리는 신뢰를 담아 서로를 포옹했다. 다만 길게 포옹할 순 없었다. 들켜선 안 될 서류를 대놓고 손에 들고 있는 상황이었으니까.

16567323522515.jpg“그럼 이제 누가 오기 전에 이걸 안전한 곳에 숨겨야겠는데…….”

16567323535958.jpg“네, 아무도 찾을 수 없는 곳에 꼭꼭 숨겨 두셔요. 그때까지 제가 밖에서 망보고 있을게요.”

16567323522515.jpg“응, 고마워. 누가 오거든 ‘큼큼큼’ 세 번 헛기침 소릴 내서 신호를 줘. 내가 문 열어 줄 때까지 그 사람에게 아무 말이나 걸어서 시간 끌어 주면 더 좋고.”

16567323535958.jpg“제가 수다로 사람 붙잡아 놓는 데엔 탁월한 소질이 있답니다. 이번에도 이 한나에게 맡겨 주세요.”

한나는 그리 씩씩하게 말하고서 문밖으로 망을 보러 나갔다. 그 뒤 나는 침실을 쭉 훑어보았다.

16567323522515.jpg‘물건 숨기기 딱 좋은 장소 없나? 청소 담당 하녀도 모를 만한 은밀한 장소…….’

눈에 제일 먼저 보인 것은 우선 옷장이었다.

16567323522515.jpg‘옷장 위……? 아니야, 너무 식상해. 내가 뭘 숨겼다는 걸 알면 분명 옷장 위부터 손으로 훑어보겠지.’

나는 고개를 저은 뒤, 이번엔 침대로 눈을 돌렸다.

16567323522515.jpg‘침대 밑……은 더 식상하고……. 책상 서랍은 당연히 안 되고…… 으으음…….’

에드와 함께 쓰는 방이어서인지 안전해 보이는 곳이 한 군데도 없었다. 머리를 짜내고 있는데, 갑자기 밖에서 한나의 어색한 헛기침 소리가 들렸다.

16567323535958.jpg“큼큼큼!!”

헛기침 세 번, 이것은 누군가 침실 근처에 다가왔다는 신호였다.

16567323522515.jpg‘벌써 누가 왔다고?! 아직 못 숨겼는데……?!’

한나의 신호를 받은 나는 침실을 초조하게 배회했다. 그때였다. 내가 제대로 못 들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듯, 한나가 재차 커다란 목소리로 내게 신호를 보냈다.

16567323535958.jpg“어머!! 황자 전하!! 이런 곳에 어쩐 일이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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