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 악당도 언젠간 아버지가 됩니다2021.11.12.
‘뭐지……. 내가 잘못 들었나……?’
에드의 말을 듣고 나는 잠깐 귀를 의심했다. 그러나 정작 나를 놀라게 한 장본인인 에드는 아무렇지도 않게 통보인지 설득인지 모를 말을 이어가기만 했다.
“그자식은 우리와 우리 아이의 앞길에 방해가 될 테니까요. 안전을 위해서라도 미리미리 제거해 두는 게 좋겠죠.”
“아아…….”
“상황에 따라선 황제나 황후를 먼저 제거하게 될 수도 있는데…… 어쨌든 너무 걱정하진 마세요.”
그가 암살 모의(?) 중인 사람답지 않은 다정한 키스를 내 이마 위에 남겼다.
“그들은 나를 죽이려다 몇 번이고 실패했지만, 전 그러지 않을 자신 있거든요.”
가까이에서 들여다본 그의 눈동자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정말로 제게 거슬리는 이들을 싹 다 암살할 계획인 듯했다.
“어때요, 제 계획?”
“아…… 음…….”
나는 자연스레 윤리적 딜레마에 빠져들었다. 일단 살인은 나쁘다고 하는 게 옳을 터다. 그러나 그전에 그들이 먼저 에드를 죽이고자 시도했으니, 에드가 우리의 안전을 위해 그들을 암살하는 건 정당방위가 아닐까 싶었다. 어제 이시스를 죽였노라고 고백했을 때, 그의 행위를 비난하지 않았던 것도 그래서였고……. 긴 고민 끝에 나는 어정쩡하게 대답했다.
“좋은 계획 같아요, 너무 위험해질 일만 하지 않는다면요.”
“무모한 짓은 안 할 겁니다. 절대.”
그가 원작에서처럼 마계로 통하는 문을 열 계획인지도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 부분은 차마 묻지 못했다. 그것까지 말하면 분명 깜짝 놀라며, 대체 어떻게 거기까지 알았느냐고 캐물을 테니까. 그때였다, 킬리안의 노크 소리가 들려온 것은.
“전하, 보고 드릴 일이 있습니다. 중요한 일입니다.”
‘중요한’ 일이라니. 들어와서 말해 보라고 하고 싶어도, 그러기엔 우리 둘의 차림새가 썩 정숙하지 못했다. 고민 끝에 나는 에드에게 슬그머니 물었다.
“옷 입을까요?”
“아뇨, 그냥 쉬세요. 내가 나가서 듣고 올 테니까.”
마침 움직이기 귀찮았던 차라 그의 말이 달가웠다. 나는 다시 이불 속에 폭 파묻혔고, 에드는 간단히 셔츠와 바지를 걸친 채 문밖으로 나갔다. 에드가 킬리안과 대화를 마치고서 돌아온 건 제법 긴 시간이 지나서였다.
“후…….”
“무슨 일이었어요?”
“별건 아니고, 그냥 쥐새끼 한 마리가 계속 신경을 긁어 대서요. 쥐약을 그렇게나 쳤는데도 왜 안 죽는지…….”
그가 무슨 소릴 하는지 이해한 나는 침대에서 몸을 반쯤 일으켰다.
“……이시스가 살아 있어요?”
“예, 아무래도……. 새로운 소울스톤 광맥이 또 마력으로 오염됐다는데, 그런 짓을 할 수 있는 건 저를 제외하면 그 녀석밖에 없거든요.”
아무래도 이시스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도 훨씬 더 목숨줄이 질긴 모양이었다. 이러다가 정말로 이 세계가 난장판이 되는 건 아닌지- 그런 불안감에 마음이 떨리던 차에 에드가 나를 안심시켰다.
“걱정할 필요는 없어요. 목숨은 어떻게 건진 모양이지만, 아마 멀쩡한 꼴은 아닐 테니까. 녀석의 본체가 죽은 건 분명 확인했습니다.”
“그럼 무슨 수를 쓴 걸까요?”
“아마 흑마법으로 영혼을 다른 육신에 옮겼거나…… 뭐, 그런 비슷한 방법으로 목숨줄을 비참하게 이어 가고 있겠죠.”
“아아…….”
“어쨌든 많이 약해졌을 테니 금방 다시 찾아내서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끝을-”
“앗, 잠깐만요. 제게 좋은 방법이 있어요.”
흐음? 하고 호기심을 드러내는 그를 향해 나는 자신만만하게 고갤 끄덕였다.
“이 방법이라면 비교적 손쉽게 이시스를 잡을 수 있을 거예요. 다만…… 언뜻 들으면 조금 엉뚱하다고 생각될 수도 있어요. 헛소리 취급하지 않겠다고 약속해 주세요.”
“제가 부인 말을 어떻게 헛소리 취급하겠어요.”
어느 때보다 진지하게 나를 봐 주는 그의 모습에 용기가 생겼다. 나는 그와 마찬가지로 진지하게 눈을 힘주어 뜨고서 밝혔다. 내 그 거창한 계획의 첫 단계를.
“우선, 루카스에게 여자 친구를 만들어 줘야 해요.”
“……?”
* * * 닐스의 침실을 청소하고자 온 청소 하녀가 문 앞에서 우뚝 멈췄다.
‘무슨 냄새지?’
기묘한 비린내가 닐스의 침실 안쪽에서 풍겨 오고 있었다. 생선 냄새 같기도 하고, 언뜻 맡으면 피 냄새 같기도 했다.
‘사냥터에서 잡은 짐승이라도 손질하셨나? 하지만 밖에서 안 하시고 굳이 침실에서……?’
어쨌든 방에 뭔가 있는 건 확실해 보이는 상황. 그녀는 청소 도구가 담긴 트레이를 뒤적거려 마른걸레를 몇 개 더 꺼냈다. 그리고 들어가려던 때―
“이봐, 너.”
어느샌가 나타난 닐스가 하녀의 손목을 붙잡아 막았다.
“……!”
그 순간 하녀는 기묘한 위화감에 몸을 떨었다. 닐스의 눈빛이 어딘지 모르게 평소와 달랐다. 다소 경박한 구석이 있기는 했어도 눈빛만은 항상 생기 넘치던 닐스건만. 지금의 그는 마치 영혼 없이 빈 껍데기만 남은 듯 공허한 시선으로 그녀를 보고 있었다. 그것뿐이 아니었다.
‘손에 뭘 들고 계신 거지……?’
그의 손엔 제법 묵직해 보이는 천 주머니가 들려 있었다. 주머니에서 핏물이 흥건하게 스며 나오고 있는데도 닐스는 전혀 신경 쓰는 기색이 아니었다. 여러모로 이상했던 까닭에 하녀는 얼어붙었고, 그사이 닐스가 날 선 말투로 타박했다.
“오늘부터는 내 방에 누구도 들어오지 말라고 전했을 텐데? 시녀장한테서 전달 못 받았나?”
“죄, 죄송합니다, 전하……. 제가 오늘 조금 늦게 일어나서 시녀장님께 이야기를 들을 틈도 없이 달려오는 바람에…….”
“쯧, 한심하긴.”
놀란 하녀가 멍하니 서 있자 닐스의 눈가가 아까보다 더욱 일그러졌다.
“뭘 얼쩡거리고 서 있는 거야. 이제라도 들었으면 어서 꺼져.”
“죄, 죄송합니다!”
하녀는 급히 청소 도구를 챙겨 들고서 자리를 떠났다. 닐스가 주머니에 무엇을 담아 왔는지는 차마 묻지 못한 채로.
“…….”
닐스는 말없이 하녀가 사라진 방향을 노려보다가, 천천히 침실 문을 열고 들어섰다. 그리고 멍해진 눈으로 침실의 한쪽 구석을 응시했다. 그곳엔 인간과 뱀을 섞어 만든 듯 기괴한 존재가 웅크리고 있었다. 그 기괴한 존재, 이시스가 닐스를 보곤 천천히 입술을 움직였다.
“음식은…….”
“가져왔어.”
닐스는 곧 이시스의 앞에 가져온 주머니를 턱 내려놓았다. 그 안엔 갓 도축하여 핏기가 흥건한 토끼 고기가 담겨 있었고, 이시스는 뱀들이 그러하듯 그 고기를 입 안에 통째로 넣어 삼켰다.
“…….”
닐스는 이상하다는 생각조차 못 한 채, 조용히 그 모습을 지켜보기만 했다. 이시스의 세뇌 마법에 걸린 까닭이었다. 그사이 마지막 토끼 고기까지 전부 삼킨 이시스가 이를 빠드득, 갈았다.
‘그 빌어먹을 자식 때문에 내가 이런 꼴이…….’
에드가 이시스를 찾아왔을 때, 그는 죽음을 직감했다. 역시나 예상대로 에드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그를 죽이려 들었고, 이시스는 그 바로 직전 마법을 썼다. 제 영혼을 다른 육신으로 옮기는 마법을. 다만 산 사람의 몸을 빼앗는 건 아직 그에겐 불가능한 일이라, 차선책으로 선택한 것이 지금의 육신이었다.
“젠장.”
욕설을 내뱉으며 그가 제 몸을 내려다보았다. 과거에 재미로 인간과 뱀을 뒤섞어서 만들어 두었던 생체 인형에 깃들어서 목숨을 연명하게 될 줄이야. 당장 혀를 깨물어 죽고 싶은 기분이었다.
“닐스.”
마법에 걸린 닐스는 이시스의 부름을 듣고서 이번에도 순순히 다가왔다. 전에 시녀로 있을 때부터 꾸준히 그의 정신을 조작해 왔기에 지금은 꽤 쓸만한 수족이 되어 주고 있었다. 역시 미리 손을 써 놓길 잘했다고 생각하며 이시스가 툭 명령했다.
“좀 더 영양가가 많은 고기를 가져와라.”
“영양가가…… 많은 고기……?”
“그래. 고작 토끼 몇 마리로는 턱도 없어. 앞으로 기력 소진할 일이 많으니까.”
가뜩이나 제대로 된 육신도 아니라서 상태가 안 좋은데, 에드에게 복수할 생각으로 마족을 소환하여 소울스톤 광산에 풀어 놓기까지 했다. 토끼 고기로 간신히 버티곤 있지만, 제대로 회복하여 에드를 공격하려면 더 나은 식량이 필요했다. 예컨대―
“네 녀석이 황태자로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고기가 있잖나. 그걸 가져와라.”
닐스는 그것이 무슨 고기인지 잠깐 고민하는가 싶더니, 곧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이시스가 지시한 그것을 구하고자 움직였다. 고기를 찾으러 나가는 닐스의 뒷모습을 보며 이시스가 흐뭇하게 미소 지었다.
‘에이드리언 그 자식과 같은 핏줄이라서인지 아주 돌대가린 아니군. 제법 쓸모가 있어. 가능하면 좀 더 제대로 이용하고 싶은데…….’
어렵사리 황태자에게 접근하는 데 성공했으니 알뜰하게 이용하고자 했다. 그 방법을 두고 고민하던 이시스의 눈빛에 문득 이채가 서렸다. 최후의 순간에 사용하기 위해 수백 년간 아껴 두었던 어떤 물건이 때마침 떠오른 까닭에.
‘그걸 쓸까……?’
* * * 이시스가 황성에 숨어들고 닷새가 지났을 무렵의 어느 오후. 황자궁의 정문 앞에 우두커니 멈춰 선 여자가 있었다. 밀색 머리카락을 높게 올려묶은 그녀는 ‘타라 폰 슈베어트’. 슈베어트 백작가의 장녀인 자였다. 어떤 일에도 동요하지 않을 듯 보이는 날카로운 눈매와 달리, 그녀의 주홍빛 눈동자는 하염없이 떨려 오고 있었다.
‘여기가 황자궁이라고?’
충격에 젖어서 우두커니 서 있는 사이 그녀의 머릿속엔 이곳으로 오기까지의 일들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그녀를 내쫓고 싶어 하던 계모로부터 결혼 압박을 받았던 일……. 그 압박을 못 버티고 밖으로 나돌다가 익명으로 용병 활동을 하게 되었던 일……. 타고난 실력을 인정받아 용병으로서 명성을 얻게 되었던 일……. 그리고, 그런 그녀의 삶을 다시 한차례 크게 바꿔 놓을 서신을 집사가 가져왔던 일까지.
“아가씨, 서신이 왔습니다.”
“또야? 무슨 광고성 우편도 아니고……. 일일이 확인하기 힘드니까 집사가 알아서 거절해줘.”
“아니요, 이번엔 티 파티 초대장이 아닙니다. 이건 황자비께서 보내신 서신으로, 아가씨를 용병으로서 고용하고 싶으시다는군요.”
“……?!”
결혼 얘기만 지겹게 오가는 사교 파티에 질릴 대로 질린 타라였다. 그런데 용병으로 고용하겠다니. 게다가 아름답고도 부유하기로 유명한 2 황자비가 고용주라니……. 타라는 홀린 것처럼 서신에 적힌 황자궁 주소로 찾아왔다. 다만, 정작 궁 정문 앞에 도착하고 나선 당혹감에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무슨 악당 소굴 같은데……?’
꼭 은밀한 정치적 뒷공작으로 제국을 쥐락펴락하는 흑막의 은신처 같은 궁이었다. 하지만 망설임도 잠시였을 뿐.
‘……들어갈까.’
결국엔 그 음침한 궁에 걸음을 들여놓게 되었다. 자신을 결혼 적령기의 여자가 아닌 존재로 대우해 주는 이의 부름을 쉽게 무시할 수 없었다.
“어떤 일로 방문하셨습니까?”
들어서자마자 새카맣게 차려입은 집사가 정중히 물어 왔다. 그의 알록달록한 넥타이가 퍽 독특하다고 생각하며, 타라는 황자비의 서신을 꺼내 들었다.
“이걸 받고 왔습니다만…….”
“아아, 이쪽으로 오시죠. 안 그래도 황자비께서 당신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집사는 그녀를 응접실까지 안내해 주곤, 그림자처럼 스스슥― 사라져 버렸다. 어째 집사마저도 꼭 악당의 하수인 같다고 생각하며 타라는 응접실에 들어섰다. 그리고 그곳에는―
“……!!”
꽃잎처럼 신비로운 분홍빛 머리카락을 아름답게 늘어트린 여자가 차를 음미하고 있었다. 디저트인지 뭔지 모를, 흉악하기 짝이 없는 모양새의 음식들을 앞에 둔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