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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그 남자에게 가지 마 (66/102)

66. 그 남자에게 가지 마2021.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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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67324320609.jpg“…….”

타라는 비로소 만나게 된 레냐를 조용히 관찰했다. 얼마 전 2황자비가 됐다던 그녀, 레냐는 확실히 소문만큼이나 고아하게 아름다웠다. 찻잔을 든 자세는 빈틈이 없었고, 찻잔 손잡이를 쥔 손가락은 희고 길었다. 태생부터 고귀하여 궂은일 따윈 모르고 살아온 이들이 다들 그러하듯이. 다만-

16567324320609.jpg‘기품 있는 흑막 같은 사람이네.’

들어오면서 본 황자궁의 어두침침한 이미지 때문이었을까? 그냥 앉아 있을 뿐인데도, 레냐에게서는 그림자 속 흑막 같은 느낌이 물씬 풍겨 오고 있었다. 방심해선 안 된다고 생각하며 타라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타라가 그런 오해에 빠져 있을 때, 레냐는 다른 의미로 타라를 오해하고 있었다.

16567324320617.jpg‘왜 멍하니 서 있기만 하지? 혹시 에드가 준비해 준 디저트가 위협적이라서……?’

요즘 베이킹에 취미가 붙은 에드가 자꾸 뭘 만들어 대는 탓에, 지금도 레냐의 앞엔 위협적인 모양의 디저트가 잔뜩 차려져 있었다. 레냐 자신에겐 익숙한 모양새지만, 타라에겐 다소 충격적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16567324320617.jpg“기다리고 있었어요, 타라. 앞에 차려진 디저트는 신경 쓰지 말고 편히 앉으세요. 이렇게 보여도 독은 안 들었답니다.”

16567324320609.jpg“감, 감사합니다…….”

레냐가 살갑게 웃어 보였다. 방금의 말 때문에 타라가 오히려 더 긴장했다는 사실은 모른 채.

16567324320617.jpg“그래서, 여기까지 와 주셨다는 건 저의 제안을 받아들일 의향이 있다는 의미일까요?”

16567324320609.jpg“예, 우선은요. 그런데…… 어떻게 아셨죠?”

16567324320617.jpg“……?”

16567324320609.jpg“제가 무예에 심취해 있다는 건 남들에게 알린 적 없거든요. 그런데 갑자기 저를 ‘용병’으로 고용하고 싶다고 하셔서, 조금 놀랐습니다.”

16567324320617.jpg“아아, 그거 말씀이죠?”

레냐는 찻잔으로 입가를 가린 채 은밀히 웃었다.

16567324320617.jpg‘모를 수가 없지. 다른 것도 아니고 이 세계의 주인공씩이나 되는 사람의 뒷배경을.’

원작에서 가장 많이 묘사된 캐릭터는 당연하지만 주인공인 타라였다. 그 탓에 레냐도 타라에 대해선 사소한 것까지 전부 꿰뚫고 있었다.

16567324320617.jpg‘아마 지금쯤 계모로부터 결혼 압박을 받고 있을 거야. 그걸 피해 도망치듯 온 전쟁터에서 빼어난 실력으로 활약하다가 훗날 제국의 영웅이 된다…… 분명 이게 원작 속 타라의 행적이었어.’

물론 지금은 전쟁이 일어나지 않고 있었다. 원래라면 그 전쟁의 시발점이 돼야 했을 에드가 레냐의 개입으로 인해 결혼 생활에 열중하게 되었으므로. 그래도 어쨌든 원작 속 인물들의 주된 활동 무대는 그곳 전쟁터였고, 레냐와 타라도 거기서 첫 인연을 맺었었다.

16567324320609.jpg“처음 뵙겠습니다, 레이디 몬트. 저는 슈베어트 백작가의 장녀인 타라 폰 슈베어트입니다.”

16567324320617.jpg“…….”

16567324320609.jpg“쓸쓸하던 차에 제 또래의 분을 발견해서 얼마나 안심했는지 몰라요.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16567324320617.jpg“…….”

  원작의 레냐는 그렇게 타라의 말에 대꾸조차 안 하며 그녀를 피하기만 했었다. 자신과 너무 다른 타라가 부담스러웠으니까. 그러나 타라는 오히려 그 ‘다름’ 때문에 레냐에게 더욱 이끌렸다. 자신과 달리 우아하고 귀족적이며 아름다운…… 타라에게 레냐는 그런 사람이었다. 물론 레냐도 처음에만 타라를 밀어냈을 뿐 나중엔 제 마음을 열어 주었다. 딴판으로 다른 그들이지만, 그런 둘 사이에도 ‘가족 문제’라는 공통점이 있었던 것이다. 전쟁이 발발하는 와중에 같이 고민도 나누고, 연회에도 함께 참석하는 등 둘은 제법 가깝게 지냈다. 단, 레냐가 전쟁터에서 에드를 만나기 전까지만.

16567324320609.jpg“그만둬, 레냐.”

16567324320617.jpg“뭘 그만둬?”

16567324320609.jpg“더는 그 남자에게 미련 갖지 말라는 뜻이야.”

16567324320617.jpg“……어디서 들었어?”

16567324320609.jpg“지금 그게 중요해? 너 어떻게…… 어떻게 이 세계를 통째로 마족들의 식민지로 만들려는 정신 나간 놈한테 마음을 줄 수가 있어? 그 자식은 널 그냥 이용할 생각뿐이라고!!”

16567324320617.jpg“……네가 뭘 알아. 그 사람과 제대로 대화해 보지도 않았으면서.”

16567324320609.jpg“……!!”

16567324320617.jpg“괴로운 경험들 때문에 방황하고 있지만 본심은 그리 나쁜 사람이 아니야. 내가 그를 바꿔 놓을 수 있어.”

  레냐가 에드와 내통하고 있다는 걸 알아채고도, 타라는 그 사실을 남들에게 알리지 않았다. 레냐를 따로 불러내서 설득만 건넸을 뿐. 그러나 그런 애타는 설득조차 에드를 위하는 레냐의 마음은 꺾지 못했다. 에드는 그런 레냐를 이용해 타라의 거처를 파악한 뒤, 암살자를 보내려 했지만…….

16567324320617.jpg‘그래도 레냐가 타라의 거처만큼은 알려 주지 않았었지. 독약을 마시고 죽는 그 순간까지.’

그 결과 타라는 루카스와 힘을 합쳐서 에드의 세력에 저항할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에드의 수하였던 이시스도 몇 번이고 죽을 위기에 처했었다. 그건 즉, 루카스와 타라의 조합이 이시스를 잡는 데 제법 효과적이라는 의미였다.

16567324320617.jpg“그 빼어난 무예 실력이 쉬이 감춰질 리 있나요. 저는 다 알 방법이 있답니다.”

레냐는 책 빙의자의 특권으로서 알아낸 지식을 이번에도 그런 식으로 두루뭉술하게 설명했다. 타라의 낯빛이 아까보다 더욱 굳어졌다.

16567324320609.jpg“혹, 혹시 제국 정보 길드의 수장이신 막시밀리안 공이 그 정보의 제공자인가요?”

16567324320617.jpg“예? 아, 예…… 뭐, 그렇죠?”

오빠가 가져다준 정보라고 둘러댈 생각은 못 했건만. 마침 타라가 알아서 추측해 주니, 레냐도 얼결에 그렇다고 해 버렸다. 그 대답이 타라에게 크나큰 오해를 불러일으키리라곤 여전히 생각 못 한 채로.

16567324320609.jpg‘역시 내 생각대로야. 이 여자는…… 이 여자는 그림자 속에 은밀히 숨어서 제국을 쥐락펴락하는 흑막인 거야……!’

악당의 은신처 그 자체로 보이는 황자궁의 인테리어. 악당의 하수인처럼 생긴 집사. 악당이나 먹을 법한 모양새의 디저트. 그리고 악당의 필수 소양인 빼어난 정보력……. 그 모든 요소들이 눈앞에 있는 여자의 정체를 알려 주고 있었다.

16567324320609.jpg‘이런 위험한 인물이 굳이 나를 고용하려는 이유가 뭐지? 어쨌든 방심해선 안 돼.’

타라는 떨리는 손끝을 감추고자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16567324320609.jpg“그래서, 제가 어떤 일을 하면 됩니까? 특정 인물 호위? 근방 도적단 토벌? 혹은…… 숙적 제거?”

16567324320617.jpg“네, 뭐…… 굳이 꼽자면 세 번째로 말씀해 주신 그 임무와 비슷한 임무를 수행해 주셨으면 해요.”

16567324320609.jpg“숙, 숙적 제거요……?!”

그냥 해 본 말이었건만, 레냐가 진짜로 숙적을 제거해 달라고 하니 타라는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이 여자랑 얽히면 위험해! -라는 판단하에, 그녀는 황급히 손을 내저었다.

16567324320609.jpg“아뇨, 전 그런 위험한 임무는 맡을 수 없…….”

16567324320617.jpg“요즘 소울스톤 광맥이 마족들의 습격을 받고 있다는 소식, 들어 보셨을 거예요. 그리고 저는 그런 짓을 하는 범인이 누군지 알고 있어요.”

16567324320609.jpg“……!!”

곧 레냐가 돌돌 말려있던 초상화를 한 장 꺼내서 보여 주었다. 초상화 속 인물은 붉은 머리카락에, 묘하게 중성적인 생김새를 가진 자였다.

16567324320617.jpg“이시스라는 사람이에요. 인간으로서 지녀야 할 기본적인 윤리 의식마저 저버린, 추악한 흑마법사죠. 이자를 당장 막지 않으면 제국은 장차 끔찍한 재앙을 맞이하게 될 거예요.”

16567324320609.jpg“아……?”

16567324320617.jpg“이 사람을 제거하는 일에 힘을 보태 주었으면 해요.”

타라의 머릿속이 잠시 멍해졌다.

16567324320609.jpg‘어떻게 된 거지? 생각보다 건전하게 들리는데……?’

숙적 제거라기에 정치적으로 적대 관계에 있는, 죄 없고 정의로운 귀족을 암살해 달라는 말인 줄 알았다. 그런데 지금 들어 보니 그보다는 더 의로운 일인 것처럼 느껴졌다.

16567324320609.jpg‘흑막이 아니었던 건가? 하지만 지금 거짓말을 하는 거라면?’

거짓말일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지만, 어쨌든 구미가 당기는 일이기는 했다. 용병이 되어서 마냥 고용주의 이득을 위해 싸우는 것보단 좀 더 의로운 일을 하고픈 참이었으니까.

16567324320609.jpg“음…… 이자에 대해 더 알아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마법사라면 저 혼자서 상대하기는 조금 벅찰 것 같은데…….”

16567324320617.jpg“아, 그 부분은 걱정하지 마세요. 마침 타라와 함께 행동해 줄 사람이 있거든요.”

레냐의 표정이 활짝 피었다. 혼자서 이시스를 쫓으면 위험하니 용병을 붙여 준다는 말로 이미 루카스는 설득해 둔 상황. 이제 타라는 또 어떻게 설득할까? -하고 고민하던 차에 타라가 먼저 그런 말을 꺼내주니 달가웠다. 레냐의 계획을 모르는 타라는 다소 의아한 마음으로 물었다.

16567324320609.jpg“아, 그렇습니까? 어떤 사람이죠?”

16567324320617.jpg“예르타에서 오신 분인데, 아주아주 잘생기고, 차분하고, 성격 좋고, 믿음직한 분이시랍니다.”

16567324320609.jpg“아뇨, 저는 특기와 실력에 관해서 여쭌 건데…….”

16567324320617.jpg“물론 실력도 무척 빼어난 기사님이랍니다. 아마 타라도 그를 보면 한눈에 반……하는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분명 호감이 생길 거예요. 기대되죠?”

16567324320609.jpg“예, 뭐…….”

타라는 그리 어설프게 대꾸했고, 레냐는 그런 그녀 앞에서 기대감에 눈을 부드러이 접어 웃었다.

16567324320617.jpg“그럼 더 기다릴 필요 없이, 지금 당장 만나게 해 드릴게요.”

16567324320609.jpg“……?”

타라가 제대로 묻기도 전, 레냐는 킬리안을 불러들여 무언가 속삭였다. 알겠다고 대답하고서 나간 킬리안은 곧 두 명의 남자와 함께 돌아왔다. 한 명은 새하얀 은백발을 한 남자. 그리고 다른 한쪽은 새카만 흑발의 남자.

16567324320609.jpg“……!”

그들이 들어선 순간 타라의 머릿속이 곧장 새하얗게 변했다. 루카스 때문이 아니었다. 그의 옆에 있는 에드를 보자마자 왜인지 지독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16567324320609.jpg‘저 남자는…….’

분명 처음 보는 남자건만. 어째서 이토록 분노가 치미는지는 타라 자신도 알 수 없었다. 그 분노를 참아 내고자 그녀가 주먹을 꽉 쥐고 있던 때였다. 레냐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타라에게 그 둘을 소개했다.

16567324320617.jpg“신성 기사 제복을 입고 계신 분이 제가 말씀드렸던 그분이에요.”

16567324320609.jpg“아아…… 그런데 그 옆의 분은…….”

16567324320617.jpg“앗, 타라는 황실 연회에 항상 불참했었으니 오늘 처음 뵀겠네요. 저분은 에이드리언 2황자 전하세요. 제 남편으로서 누구보다 저를 든든하게 지지해 주시는 분이랍니다.”

16567324320609.jpg“……남편이라고요?”

타라가 차마 제 감정을 감추지 못한 채로 그리 물었다. 그러나 레냐는 그 목소리에 담긴 미미한 분노를 느끼지 못했다. 루카스와 함께 들어온 에드가 제게 오라는 듯 두 팔을 벌리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는 평소처럼 에드에게 다가가고자 걸음을 움직였고, 당황스러운 일은 그 순간 발생했다.

16567324320609.jpg“안 돼.”

문득 그렇게 말한 타라가 레냐의 손목을 꽉 움켜쥐었다. 붙들린 레냐의 손목이 부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힘을 가득 불어넣은 손가락으로.

16567324320617.jpg“타, 타라……? 갑자기 무슨 일…….”

당황해하며 타라를 돌아보았던 레냐는 제 말을 차마 끝맺지 못했다. 타라가 당장 울 것만 같은 얼굴로 레냐 자신을 응시하고 있었다. 모두가 당황한 가운데, 타라는 천천히 고개를 내저었다.

16567324320609.jpg“안…… 돼요. 가면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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