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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내 아내한테 뭐 하는 거야 (67/102)

67. 내 아내한테 뭐 하는 거야2021.11.19.

황자에게 가려는 황자비의 앞을 막아섰다. 그것도 백작 영애에 불과한 타라가. 분위기는 무겁게 가라앉았고, 그 속에서 레냐는 당혹감을 애써 감추며 부탁했다.

16567324472967.jpg“타라? 알, 알겠으니까 잠깐 팔 좀 놔주세요.”

일단은 타라의 손을 풀어내고서 상황을 정리하려 했다. 지금도 타라가 화살을 쏘아 대며 단련한 제 억센 손가락으로 그녀의 팔목을 틀어쥐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부탁에도 타라는 손을 풀지 않았고, 결국엔 레냐가 우려하던 상황이 발생했다.

16567324472977.jpg“지금 내 아내에게 무슨 짓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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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큼성큼 다가온 에드가 타라의 손목을 남자의 악력으로 꽉 움켜잡았다. 그러곤 그녀의 손가락을 직접 하나하나 풀어내어 레냐를 놓게끔 했다.

16567324472977.jpg“부인, 팔목이…….”

16567324472967.jpg“전 괜찮아요. 신경 쓰지 마세요.”

괜찮다는 레냐의 대답과 달리 그녀의 팔목엔 이미 붉은 자국이 남아 있었다. 한순간 무의식적으로 레냐를 잡았던 타라도 제 탓에 생긴 그 자국을 보자 정신이 돌아왔다.

16567324472992.jpg“제, 제가 지금…….”

16567324472977.jpg“내 물음에 먼저 대답해. 지금 무슨 짓을 한 거냐고 물었다.”

정신 차린 타라가 본인의 만행에 놀라기도 전, 에드가 그녀를 다시 거칠게 몰아붙였다. 레냐를 볼 때는 부드러웠던 그의 시선이 지금은 사나운 노기로 일렁거렸다.

16567324472977.jpg“제대로 해명하는 게 좋을 거야. 나는 내 아내를 다치게 한 것들을 절대 그냥 두지 않아.”

근래에 여러 위협을 거치며 그의 신경은 잔뜩 곤두서 있었다. 갑자기 수상한 분위기를 풍기며 레냐를 붙잡은 이를 용서해 줄 만한 여유가, 지금의 그에겐 없었다. 그가 타라를 다시금 추궁하려던 때. 레냐가 그 앞을 막아섰다.

16567324472967.jpg“전하, 저는 정말로 괜찮아요.”

16567324472977.jpg“하지만…….”

16567324472967.jpg“이 정도는 순식간에 나을 수 있어요. 보세요.”

레냐는 별일 아니라는 듯이 웃곤, 성력을 끌어올렸다. 붉게 남았던 손자국이 사라진 것은 그야말로 순식간이었다. 그사이 정신을 완전하게 수습한 타라가 이번에야말로 진지하게 고개를 숙여 왔다.

16567324472992.jpg“괜, 괜찮으십니까? 놀라셨다면 진심으로 사과드리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갑자기 왜 그랬는지…….”

16567324472967.jpg“걱정하지 마세요. 아무렇지도 않으니까요.”

레냐는 성력으로 말끔하게 나은 손목을 타라의 눈앞에 보여 주었다. 비로소 타라는 안심하는 눈치였고, 그 뒤 레냐는 에드에게 팔짱을 꼈다.

16567324472967.jpg“그럼 저희는 이만 비켜 드릴 테니, 두 분께선 조용히 대화하세요. 앞으로 이시스를 잡을 때까지 손발 맞춰 움직이려면 서로를 잘 알아 두는 게 좋으니까요.”

16567324472992.jpg“예……. 배려 감사합니다.”

아직 주눅 들어 있는 타라의 인사를 들으며 레냐와 에드는 퇴장했다. 이제 응접실에 남은 것은 타라와 루카스뿐. 둘은 조용해진 가운데 서로를 응시했다.

16567324488208.jpg“…….”

16567324472992.jpg“…….”

죽 응시했다. 그렇게 계속 응시하기만 했다. 상대방이 입을 열기를 기다리면서. 누가 먼저 자신을 소개할지 피차 눈치를 보는 가운데, 타라는 콧등을 긁적였다.

16567324472992.jpg‘말이 없는 편인가.’

그리고 그런 타라를 보며, 루카스 또한 발끝을 까딱거렸다.

16567324488208.jpg‘말이 없는 편인가.’

기다리다 못한 타라가 먼저 입을 열었다.

16567324472992.jpg“반갑…….”

16567324488208.jpg“반갑습…….”

본인이 입을 연 순간 동시에 입을 연 루카스를 위해 그녀는 입을 다물었다. 문제가 있다면, 루카스 또한 배려심 넘치는 태도로 입을 다물었다는 점이었다.

16567324472992.jpg“…….”

16567324488208.jpg“…….”

또다시 침묵의 시간이 흘러갔다. 어쩌면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처럼, 그렇게. * * *

16567324472977.jpg“괜찮아요? 부인의 연약한 손목을 그렇게 우악스럽게 틀어쥐다니…….”

응접실에서 멀리 떨어진 객실에 들어오자마자 에드가 내 손목을 살폈다. 이미 다 나아서 흔적도 없건만. 다친 어린애라도 돌보듯이 자상하게 내 손목을 살피는 그였다. 덕분에 조금 부끄러워진 나는 그에게 잡힌 손목을 조심스레 빼냈다.

16567324472967.jpg“네, 전 정말로 괜찮아요.”

16567324472977.jpg“그렇다면 다행이지만……. 여하튼 별로 좋은 인상은 아니었습니다, 그 여자 용병.”

16567324472967.jpg“그냥 타라가 조금 놀랐던 것 같아요.”

16567324472977.jpg“나를 보고?”

16567324472967.jpg“으음……. 아, 아뇨. 전하를 보고 놀랐다기보단…… 낯가림이 심해서 낯선 사람들이 우르르 들어오니 놀랐던 것 아닐까요? 하하…….”

타라를 보호해 줄 겸 적당히 선의의 거짓말로 둘러대자 에드가 눈가를 좁혔다. 나는 의심 서린 그의 시선을 슬그머니 회피하며 당부했다.

16567324472967.jpg“어쨌든, 타라에게 너무 모질게 대하지 말아 주세요. 이시스를 잡으려면 타라의 도움이 꼭 필요할 거예요.”

16567324472977.jpg“부인께서 그리 말씀하시니 앞으론 조심하겠지만…… 아깐 저도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순간 무서웠거든요. 부인이 다칠까 봐.”

툭, 던져진 그의 말에 내 심장이 요동쳤다. 나를 떨리게 해놓고도 그는 자각하지 못한 것처럼 우려의 시선만 보내왔다.

16567324472977.jpg“이시스나 닐스가 부인에게 악의를 품고서 접근했던 적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때마다 마음고생을 해서 그런가 봅니다. 그냥…… 부인이 아파하는 걸 본 순간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하는 기분이었어요.”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16567324472967.jpg‘하긴, 예민해질 만도 해. 이시스 때문에 죽을 뻔하고, 닐스는 닐스대로 내게 접근해서 수작을 부렸고…….’

그의 말을 듣고 나니 충분히 이해가 갔다. 그럴 만하다고 생각했으니까. 물론 그건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한 결과였다. 그가 잘생긴 얼굴로 설레는 말을 해서 마음이 물러졌다던가…… 그런 이유로 그를 이해하게 된 건 아니었다. 아마도.

16567324472967.jpg“…….”

붉어진 얼굴을 감추려고 고갤 돌렸더니, 그가 손을 뻗었다. 그리고 내 고개를 어르고 달래듯 조심스럽게 제 쪽으로 되돌렸다. 그 부드러운 강요로 인해 다시 마주 보게 된 은회색 눈동자는, 어느덧 옅게 떨리고 있었다.

16567324472977.jpg“사실 지금도 조금 무섭습니다. 그 여자를 처음 봤을 때 이상한 거부감이 일었거든요.”

16567324472967.jpg“거, 거부감이 일 정도였나요?”

16567324472977.jpg“예, 눈매가 사나워서 괜히 그런 기분을 느낀 걸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그랬죠. 그 기분이 마치―”

그는 제 기분을 표현할 말을 고르는 듯 고민하다가, 툭 말했다.

16567324472977.jpg“지독한 악연을 만난 것 같았다고 해야 할까요?”

16567324472967.jpg“……!!”

16567324472977.jpg“이상하죠? 운명 같은 건 안 믿는 편인데도 그런 감각을 느끼다니.”

이상하다고 웃는 그를 보며 나는 복잡한 기분에 잠기게 되었다.

16567324472967.jpg‘뭐야, 원작에서 타라가 본인의 숙적 중 한 명이란 걸 느낀 건…… 아니겠지?’

그냥 우연의 일치일 가능성이 컸다. 루카스도 타라처럼 똑같이 에드의 숙적이었지만, 둘은 서로를 조금 불쾌하게 여기고 끝이었으니까. 어쨌든 나는 불안해하는 그를 꽉 끌어안아 주었다.

16567324472967.jpg“아닐 거예요. 운명이 그렇게 정해져 있다고 해도, 제가 바꿔 놓을게요.”

곧 있자 그의 두 팔도 내 몸에 감겨 왔다. 자신의 너른 품 안에 나를 파묻은 채, 그가 내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16567324472977.jpg“이젠 제 목숨을 노리는 것들에게는 화나지도 않아요. 단지 귀찮을 뿐이죠. 하지만 누군가 부인을 탐내는 기색을 드러내면 속이 뒤집히고 온몸이 뜨거워집니다. 그러니까 부디―”

단조롭게 이어지던 그의 목소리가 문득 더 낮고 은밀해졌다. 곧 뇌가 녹아내릴 것처럼 단 음성이 귓속으로 훑듯이 파고들었다.

16567324472977.jpg“하루빨리 부인의 모든 걸 소유하고 싶어요. 몸과 마음, 그리고 과거의 비밀들까지…….”

16567324472967.jpg“잠, 잠깐만요. 또 이렇게 은근슬쩍 보채시려고요?! 제 과거는 마음의 준비가 끝나면 말해 드린다고 했는데……!!”

그의 목소리에 홀려서 한순간 내 탄생 비화(?)까지 구구절절 다 불어 버릴 뻔했다.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그의 가슴팍을 밀어냈으나, 그는 순순히 밀려나 주지 않았다. 오히려 아까보다 더욱 내 허리를 꽉 끌어안으면서 농밀한 미소를 머금었다.

16567324472977.jpg“흠? 제가 지금 보채는 걸로 보였습니까? 전 단지 ‘빨리 이러이러하고 싶다―’ 하고, 제 소망을 혼잣말처럼 중얼거렸을 뿐인데요?”

16567324472967.jpg“대놓고 들으라는 듯이 제 귓가에 속삭였으면서 그게 무슨 혼잣말…… 앗!”

그에게 쏟아 내려던 말들은 목덜미에서 느껴지는 뜨거운 감각 탓에 곧장 녹아서 사라졌다. 그랬다. 그는 이번에도 내 항의를 비겁한 방법으로 막아 버린 것이다. * * * 아무도 출입하지 않는 객실에서, 우리는 지칠 때까지 열기를 나누었다. 뒤늦게 정신이 들었을 땐 벌써 반나절이 지나가 버린 상황. 나는 부랴부랴 루카스를 찾아가서 타라와 어떤 대화를 나누었는지 물었고, 그로부터 썩 달갑잖은 대답을 듣게 되었다.

16567324472967.jpg“네……? 통, 통성명만 했다고요? 둘이 같이 있는 그 긴 시간 동안요?”

  그렇게나 긴 시간을 둘이 함께 두었건만……. 그들이 한 일은 고작 서로의 이름을 들은 것뿐이었다고 했다. 둘을 그냥 붙여 두기만 해도 알아서 사랑에 빠질 거라고 믿었던 나로서는 여간 충격이 아니었다. 그리하여 늦은 밤이 된 지금, 나는 에드가 잠깐 목욕하러 간 틈을 타서 고민에 빠져 있었다.

16567324472967.jpg‘이대로는 안 돼. 뭔가를 해야겠어.’

내가 원작 내용을 틀어 놓지만 않았어도 무난하게 이어졌을 커플들이 지금은 남처럼 데면데면해져 버렸다. 그러니 그들의 관계를 원상태로 돌려놓는 것은 오롯이 내 역할일 터. 책임감에 사로잡힌 나는 그렇게 내리 고민만 이어가는 중이었다. 그사이 목욕을 마친 에드가 젖은 머리를 털며 욕실에서 나왔다.

16567324472977.jpg“음? 아직 안 자고 있었어요? 아까 힘들어하길래 금방 잠들 줄 알았는데.”

16567324472967.jpg“그게…… 사실 루카스한테 따로 물어봤거든요, 타라랑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냐고. 그런데 둘이 별다른 대화도 안 하고 서로 통성명만 간신히 했다더라고요.”

16567324472977.jpg“아아, 역시…….”

그럴 줄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이는 에드 앞에서 나는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16567324472967.jpg“이래서는 서로 협력이 힘들지 않을까요? 이시스를 뒤쫓으려면 한 명으로는 벅찰 텐데.”

16567324472977.jpg“흠……. 그런 거라면 효과가 확실한 방법이 하나 있긴 하죠.”

16567324472967.jpg“……?”

그냥 방법도 아니고 ‘효과가 확실한’ 방법이 있다니.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16567324472967.jpg“불법인가요……?”

16567324472977.jpg“따져 보면 불법이지만, 들키지 않으면 불법이 아닙니다.”

16567324472967.jpg“…….”

16567324472977.jpg“어쨌든 그게 뭐냐면―”

그는 목소리를 낮추며 그 불법인 듯 아닌 듯 애매한 방법을 내게 알려 주었다. 그러나 목소리를 낮추려는 그의 노력이 무색하게도, 나는 들은 즉시 비명처럼 큰 소리로 되묻고 말았다.

16567324472967.jpg“네에?! 정, 정말로…… 그래도 될까요?”

16567324472977.jpg“안 될 것도 없죠. 우리 짓이라는 걸 안 들키기만 하면.”

16567324472967.jpg“…….”

과거의 나였다면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을 터다. 그러나 어느샌가 그의 색에 물들어 버린 지금의 나는―

16567324472967.jpg‘괜찮은 작전 같기도 하고……?’

나쁘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제법 괜찮은 의견 같다는 생각을 쉬이 지워 버릴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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