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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그냥 가만히 앉아만 있으세요 (69/102)

69. 그냥 가만히 앉아만 있으세요2021.11.26.

요컨대 에드의 말은 ‘두 청춘이 함께 고난을 헤쳐가다 보면 자연스레 정이 들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그러니 어서 타라와 루카스를 고난 속에 밀어 넣자는 에드를 보며, 나는 이렇게 묻고픈 심정이었다.

16567324779976.jpg‘사탄을 실직시키고 싶으신 건가요……?’

  하지만 결국엔 그의 부도덕함을 비난하지 못했다. 악독한 의견이긴 해도, 다른 방법이 없는 이 상황에선 나름 괜찮은 아이디어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나는 치열한 고민을 이어 가다가 끝내 에드에게 이렇게 묻고 말았다.

16567324779976.jpg“둘을 고난에 빠트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6567324779987.jpg“마침 그쪽 광산 옆에 제가 소유한 별장이 하나 있습니다. 옛 귀족이 피난용으로 만들어 둔 저택이라, 재밌는 함정들이 많이 설치돼 있더군요. 그걸 씁시다.”

  그 뒤 에드는 타라와 루카스에게 미안해하기는커녕, 오히려 신난 얼굴로 작전을 짜냈다.

16567324779976.jpg‘물론 이제 와서 내가 에드를 비난할 자격은 없지만…….’

이미 나는 그의 사악한 작전에 동의했고, 타라와 루카스를 여기로 끌고 왔다. 함정이 잔뜩 깔린 이 수상한 별장으로. 기왕 이렇게 됐으니 제대로 하자! -라고 마음을 다잡으며, 나는 둘에게 활짝 웃어 보였다.

16567324779976.jpg“저 복도 끝의 객실이 이 별장에서 가장 크고 깨끗한 객실이래요. 그렇죠, 전하?”

16567324779987.jpg“예, 저기서 일단 다 같이 짐을 풀도록 하죠.”

에드와 나는 서로 은밀하게 시선을 교환하며 객실 앞에 섰다. 그러곤 문을 열어 주는 척하면서, 오늘의 주인공들이 먼저 들어갈 수 있도록 비켜섰다. 둘은 별다른 의심 없이 객실에 들어갔고, 그 순간 재빠르게 에드가 열쇠로 문을 잠갔다. 철컥. 곧 있자 이상함을 느낀 타라가 안쪽에서 문을 쾅쾅, 두드렸다.

16567324780006.jpg“고용주님?! 지금 문이 잠긴 것 같은데요……?!”

16567324779976.jpg“앗, 미안해요, 타라! 오래된 저택이라 잠금장치가 말썽인가 보네요!”

내가 문 너머를 향해 그렇게 소리치자, 에드도 제 손가락에 방 열쇠를 끼워 빙글빙글 돌리면서 외쳤다.

16567324779987.jpg“열쇠 가져올 테니까 그때까지 기다리고 있도록 해! 아니면 둘이 같이 자력으로 빠져나와도 좋고! 아, 참고로 테이블 위에 식사가 준비돼 있을 테니 배고프면 일단 그거라도 먹고 있어!”

16567324780006.jpg“예에?!”

황망함으로 물든 타라의 비명을 들으며 우리는 다시 복도를 빠져나왔다. 그렇게 홀까지 나온 뒤, 나는 에드에게 물었다.

16567324779976.jpg“정말로 위험한 건 없는 거죠? 저 안에요.”

16567324779987.jpg“미리 확인해 봤는데 위험한 함정은 없었습니다. 차라리 재미용으로 만들어진 장치에 가까웠죠. 어딜 누르면 함정이 발동돼서 천장에서 물이 쏟아지거나, 인형이 튀어나와서 깜짝 놀라게 하거나…… 그런 겁니다.”

거기까지 말하고서 그는 깜박했다는 듯 의견을 덧붙였다.

16567324779987.jpg“물론 재미의 기준이란 게 사람마다 다르니 저들 입장에서는 썩 재미있지 않을지도 모르겠네요.”

16567324779976.jpg“네, 확실히…….”

천장에서 물이 쏟아진다니. 나는 객실 쪽을 바라보며 걱정을 삼켰다.

16567324779976.jpg‘그냥 조금 과격한 방 탈출 카페 같은 거겠지……? 어쨌든 부디 둘이 원작에서처럼 서로 가까워져야 할 텐데…….’

오는 길에 타라에게 했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나는 진심으로 그녀가 운명의 상대를 만나서 행복해지기를 바랐다. 내가 누린 이 따스한 감정들을 그녀도 부디 누려 보았으면 했다. 왜 이렇게 그녀에게 마음이 가는지는 나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런 간절한 마음을 품은 채로 나는 다시 에드에게 고개를 돌렸다.

16567324779976.jpg“그보다-”

16567324779987.jpg“……?”

16567324779976.jpg“둘이 친해지는 동안 우리도 해야 할 일이 있어요.”

  * * * 레냐와 에드가 어떤 일을 처리하고자 별장을 잠시 벗어났을 시점. 단둘이 남겨진 타라와 루카스 사이엔 여전히 어색한 침묵이 감돌고 있었다.

16567324794678.jpg“…….”

16567324780006.jpg“…….”

숨소리마저 크게 들릴 만큼 지독한 침묵이었다. 이대로 있으면 침묵 속에서 질식해버릴지도 모른다- 라는 생각에, 타라는 괜스레 주위를 두리번대며 화젯거릴 찾아다녔다. 그때였다. 테이블 위에 가득 차려져 있는 식사가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16567324780006.jpg“음? 잠깐만요, 이 식사…… 좀 이상하지 않아요?”

그녀가 제게 묻자 루카스도 비로소 움직여서 그녀의 곁에 섰다. 타라는 표정을 심각하게 굳힌 채로 식사를 손짓해서 가리켰다.

16567324780006.jpg“저택 관리인이 우릴 위해 준비해 둔 식사라면, 4인분이어야 하잖아요. 그런데 왜 2인분뿐이죠? 꼭 두 명이 갇힐 걸 알고 미리 2인분만 준비해 둔 것처럼…….”

그 의심스러운 정황 앞에서 타라가 떠올린 것은 에드였다. 무언가 꿍꿍이를 숨긴 것처럼 보이던 에드의 그 비열한 눈빛이 자꾸만 떠오르고 있었다. 무슨 이유인진 아직 모르겠지만, 그가 고의로 자신과 루카스를 가둔 게 아닐까 싶었다. 그때, 타라의 말을 듣고서 식사를 살펴본 루카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16567324794678.jpg“……평소에 좀 많이 드시는 편인가 봅니다?”

루카스의 그런 예상치 못한 발언에 타라는 멍해졌다.

16567324780006.jpg“예? 저요?”

16567324794678.jpg“네, 누가 봐도 4인분의 음식량인데 이걸 2인분이라고 하셔서…….”

16567324780006.jpg“…….”

타라가 이윽고 머쓱하게 뺨을 긁적였다. 자신이 남들보다 많이 먹는 편이란 걸 깜박하고 있었다. 루카스의 말을 듣고 다시 보니 식사는 일반인들의 기준에서 4인분이 맞았다.

16567324780006.jpg“흠흠, 어쨌든 좀 수상한 건 확실해요. 사실 아까부터 정령을 소환하려고 애쓰고 있거든요. 여차하면 문을 부수고 나갈 생각으로…… 근데 아무리 해봐도 소환이 안 돼요.”

16567324794678.jpg“……?”

16567324780006.jpg“혹시 마법 같은 게 걸린 걸까요?”

식사는 잘못 본 거라 쳐도 정령이 소환되지 않는다는 건 이상했다. 루카스도 이번엔 진지하게 눈을 감고서 마력을 감지해 보았다.

16567324794678.jpg“확실히, 근처에서 마력이 미미하게 느껴지는 것도 같군요. 특히 바닥 면에서.”

마력이 느껴지는 바닥 쪽을 살피고자 카펫을 들추다가, 그는 문득 움직임을 멈췄다. 그를 지켜보던 타라가 슬그머니 물었다.

16567324780006.jpg“왜 그러세요?”

16567324794678.jpg“여기 손잡이가 있습니다.”

루카스의 말을 듣고 타라도 몸을 굽히곤 바닥을 살펴보았다. 그곳엔 실제로 수상한 손잡이가 달려 있었다. 루카스가 그것을 당기자 타일 한 칸이 열리면서 숨겨져 있던 공간이 드러났다. 그는 그 안에 있던 석판을 들곤, 새겨진 글자를 읽어 보았다.

16567324794678.jpg“기온에 따라 개체 수가 달라지는 마족이 있다. 이 마족은 기온이 20도 이상일 경우엔 24시간 만에 두 배로 증식하고, 그 미만일 땐 증식하지 않는다. 20일 동안 25도의 기온이 이어지다가 다시 기온이 떨어진 상태로…… 산술 문제?”

문제를 쭉 읽어 보던 루카스가 눈가를 의심스레 좁혔다. 문제 자체는 단순히 계산 문제라 어렵지 않았지만, 이게 왜 여기 있는지가 의문이었다. 그때 타라가 다시 그 공간 안쪽을 손짓으로 가리켰다.

16567324780006.jpg“여기 버튼 네 개가 있어요! 옆에 ‘정답을 맞히면 1번 열쇠 획득’이라는 문구도 적혀 있고요.”

16567324794678.jpg“열쇠라니……. 일단 풀어 보죠”

루카스는 눈을 감고서 암산을 시작했다. 타라도 근처에 있던 펜과 종이를 가져와서 문제를 풀어 보았다. 둘의 계산은 동시에 끝났고, 먼저 입을 연 것은 루카스였다.

16567324794678.jpg“1번이군요, 답은.”

16567324780006.jpg“네? 잠깐만요, 전 2번으로 나오는데요?”

16567324794678.jpg“……?”

16567324780006.jpg“보세요.”

타라가 본인의 풀이식이 적힌 종이를 루카스에게 보여 주었다. 루카스는 그것을 쭉 훑어보다가, 한 지점을 짚었다.

16567324794678.jpg“보니까 이쪽에 계산이 잘못됐…….”

―촤아악 루카스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그가 풀이식을 확인하는 사이 타라가 2번 버튼을 눌렀고, 그 즉시 천장에서 물벼락이 쏟아졌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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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것은 저택에 설치된 트랩 중 하나로, 오답을 맞힌 자에게 내려지는 벌칙이었다. 단, 이번엔 잘못된 버튼을 누른 타라 대신, 그 공간 앞에 가깝게 서 있던 루카스가 그 벌칙의 희생양이 되었다.

16567324794678.jpg“…….”

졸지에 홀딱 젖게 된 루카스가 타라를 말없이 쳐다보았다. 원망이 가득 담긴 그 시선 앞에서 타라는 당연하지만 몹시도 곤란해졌다.

16567324780006.jpg“그…… 물이 떨어질 줄은 몰랐는데…….”

16567324794678.jpg“…….”

16567324780006.jpg“죄, 죄송합니다. 공평하게 저도 물벼락 한 번 맞을 테니까 너무 그렇게 노려보지 마세요.”

그녀는 특유의 밝은 미소를 활짝 짓곤 루카스를 밀어냈다. 그렇게 물벼락이 쏟아진 그 자리에 와선, 아까 누른 2번 버튼을 눌렀다.

16567324780006.jpg“음? 왜 아무것도 안 나오지?”

반응이 없는 2번 버튼을 연타하다가, 이번엔 3번을 눌러 보았다. ―후두두둑. 3번 버튼을 선택하자 역시나 천장에서 무언가가 쏟아졌다. 물이 아닌, 냄새가 지독한 말똥 더미가. 그리고 그 말똥 벼락을 맞게 된 것은 공교롭게도 또다시 루카스가 되었다.

16567324794678.jpg“…….”

16567324780006.jpg“그, 그게 왜 또 그쪽으로 쏟아지죠?”

16567324794678.jpg“…….”

16567324780006.jpg“아아, 물탱크랑 동물 분변을 담아 둔 탱크가 각각 다른 위치에 나뉘어 있었나 봅니다. 물탱크는 이 위에 있었고, 분변은 그쪽 머리 위에…….”

16567324794678.jpg“그냥 저쪽에 얌전히 앉아 있어 주시겠습니까? 제발 부탁 좀 드립니다.”

16567324780006.jpg“네…….”

루카스의 한껏 험악해진 눈빛을 보며 타라는 얌전히 소파에 걸터앉았다. 둘의 분위기는 처음과 같이 어색해져 있었다. 차이점이 있다면, 이번엔 그들 사이에 말똥 냄새가 은은하게 퍼지게 되었다는 점이었다. * * *

16567324779976.jpg“전하! 큰일 났어요! 루카스가 타라의 도움 없이 혼자서 이시스를 쫓겠대요!!”

아까 전, 그 둘을 방에 가두고서 나와 에드는 오염된 광산으로 순찰을 나갔었다. 마족 사냥에 나서기 전에 미리 사냥감을 봐 두기 위함이었으나, 왜인지 그것은 기다려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별수 없이 그냥 별장에 돌아왔을 땐, 루카스와 타라 또한 방을 무사히 탈출한 상태였다. 그 안에 마련된 문제와 트랩들을 해결하고서 숨겨진 탈출 열쇠를 찾아낸 것이다. 예상대로였다면 그 위기를 함께 헤쳐 나가며 둘의 관계가 돈독해졌어야 했지만…….

16567324794678.jpg“생각해 보니 제게 따로 용병을 붙여 주실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냥 마음만 감사히 받도록 하죠.”

  ―라며, 루카스가 타라로부터 독립 선언(?)을 했다. 여하튼 덕분에 나는 충격에 젖었고, 루카스의 그 입장을 방금 막 에드에게 알린 참이었다. 에드는 별장의 부부 침실에서 태평하게 누운 채로 대꾸했다.

16567324779987.jpg“그래요?”

16567324779976.jpg“네! 본인들 갇혀 있을 때 어딜 갔다 왔냐고 따지지도 않고 덜컥 저 얘기부터 하더라니까요? 타라랑 얼마나 급하게 떨어지고 싶었으면! 둘이 가까워지기는커녕 서로 감정만 상했나 봐요!”

예상과 정반대의 결과에 초조해하는 나와 달리 에드는 여전히 침착했다. 그저 슬그머니 이렇게 중얼거렸을 뿐이었다.

16567324779987.jpg“고난이 부족했나……?”

그들에게 더 큰 고난을 주고 싶어 하는 듯 보이는 에드에게 나는 고개를 내저었다.

16567324779976.jpg“아뇨! 아무래도 이 방법은 안 될 것 같아요. 다른 방법을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아요. 으음…… 어쩌죠?”

16567324779987.jpg“하지만 부인, 이쯤 되니 ‘과연 우리가 이렇게 애쓰는 게 의미가 있나?’ 싶기도 합니다.”

16567324779976.jpg“네……?”

16567324779987.jpg“만나게 해 줬는데도 아무 일도 안 생겨, 좁은 공간에 함께 가둬 놨는데도 아무 일도 안 생겨……. 이 정도면 둘이 그냥 안 맞는 것 같아서 말이죠.”

그의 말을 듣고서 나는 원작을 떠올렸다.

16567324779976.jpg“하지만 제가 알기로 그 둘은 분명…….”

16567324779987.jpg“압니다, 부인께서 그 둘이 운명의 상대라고 굳게 믿고 있다는 거. 그리고 정말로 그렇다면, 더더욱 우리는 신경 쓸 필요가 없겠죠.”

16567324779976.jpg“왜요……?”

16567324779987.jpg“그야―”

그가 문득 짓궂게 미소 짓더니,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러곤 옆에 있던 나를 번쩍 들어 올렸다. 등 뒤로 닿아 오는 푹신한 침대 매트리스의 감촉을 느끼며 감았던 눈을 떴을 땐―

16567324779987.jpg“……!”

그의 몸이 내게 밀착돼 있었다. 서로의 모든 부위를 느낄 수 있을 만큼 그리 가깝게 밀착한 채로 그가 나지막이 속삭였다.

16567324779987.jpg“억지로 이어 주지 않아도 결국엔 둘이 알아서 서로에게 이끌릴 테니까요. 지금의 우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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