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 내 시선이 닿는 곳에만 있어 줘2021.12.03.
내가 본인의 이름을 부르자 타라의 표정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그 모습을 보고서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역시 내가 자기랑 같이 가 주길 바랐던 거구나.’
아무래도 본인의 직접적 고용주인 나에게서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가 있는 것 같았다. 그사이 그녀가 붙잡아 주겠다는 듯이 손을 내밀었고, 나는 곧장 그 손을 꼬옥 붙잡았다. 다만, 그녀의 정령에 올라타기 위하여 잡은 것은 아니었다.
“어제 타라와 함께 하늘을 누빌 때, 정말로 즐거웠어요.”
그녀는 내가 하는 말을 멍한 표정으로 들었다. 그러다가 내 손을 똑같이 힘주어 마주 잡았다.
“저도요, 고용주님. 어제 고용주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정말로 기뻤습니다.”
“네, 참 많은 이야기가 오갔죠. 많이 웃기도 했고요. 하지만―”
“……?”
나는 곧 타라의 귓가에 다가가선, 소곤소곤 귓속말했다.
“전하께는 제가 꼭 필요해서요. 아내 의존증 때문에 저랑 오랫동안 떨어져 계시면 불안해하시거든요.”
“……? 그, 그런 의존증이 있습니까?”
“네. 뭘 하든, 어딜 가든, 저랑 붙어 있으려고 하시는…… 뭐, 대강 그런 의존증이에요.”
“아…….”
“어쨌든, 그래서 저는 전하와 함께 가야 할 것 같아요. 타라도 저처럼 타라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도와주었으면 해요.”
그 뒤 내가 시선으로 가리킨 것은 그녀의 뒤에 있던 루카스였다.
“루카스는 예르타 출신이라서 정령이 없거든요.”
무엇이 그리 미련이 남았던 걸까. 내 말을 듣고도 타라는 꼭 붙잡은 손을 쉬이 놓아주지 않았다. 하지만 나와 루카스를 번갈아 본 끝에―
“고용주님을 직접 편하게 모셔다 드리고 싶었는데…… 어쩔 수 없죠, 그렇게 결정하셨다면.”
그녀가 나를 놓아주었다. 나는 내 결정에 순순히 따라 준 그녀를 향해 살풋, 미소 지어 주었다.
“그럼 이따 광산에서 만나요.”
“네, 곧 따라가겠습니다.”
그렇게 나는 에드의 곁으로, 타라는 루카스의 곁으로 갔다. 에드는 기다렸다는 듯이 냉큼 나를 들어 올려서 본인의 정령에 태웠다. 그러곤 타라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넬 틈조차 주지 않곤, 서둘러 제 정령을 출발시켜 버렸다. * * * 타라는 우두커니 서서 떠나는 레냐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에드의 정령은 야속할 정도로 빨라서, 그 위에 올라탄 레냐도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무언지 모를 아쉬움이 가슴 기저에 눌어붙어 갈 즘이었다.
“이 정령, 안 물죠?”
루카스가 로나 앞에 서서 그녀를 관찰하며 물었다. 타라는 아쉬움을 잠시 접어 두곤 루카스에게 답했다.
“음…… 물지는 않고, 주로 발톱으로 찢어 버리는 편이죠.”
“…….”
“너무 걱정하진 마세요. 저랑 같이 있으면 얌전하니까.”
그리 말했어도 루카스는 로나를 경계하면서 그녀의 등 쪽으로 다가갔다.
“그럼 먼저 간 사람들은 그만 쳐다보고 우리도 슬슬 갑시다. 누가 보면 실연당한 줄 알겠네요.”
“실, 실연? 전 그냥 고용주님의 편의를 위해 권했…….”
“뭐, 그럼 실연 아닌 셈 치죠.”
루카스의 찜찜한 대꾸를 듣고 타라가 다시 한번 반박하려 했다. 그러기 전, 그가 그녀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아까 타라가 레냐에게 손 내밀었듯, 그렇게.
“손잡아 줄 사람 안 필요해요? 방금 실연당해서 속상할 것 같은데.”
“……!”
평소의 타라였다면 따끔하게 한마디 해 줬을 터였다. 레냐가 자신 대신 에드를 택해서 진심으로 섭섭한 상황에, 자꾸 실연 운운하며 농담을 해 대니까. 하지만 루카스의 옅은 미소를 보자 그럴 생각이 사라졌다.
‘살짝만 웃어도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지네.’
퍽 의외의 모습에 놀란 까닭에 그녀는 얼결에 그의 손을 붙잡았다. 그는 그녀가 로나의 등에 올라타기 쉽도록 손을 단단히 붙잡아 주곤, 그 자신도 그녀의 뒤에 올라탔다.
‘생각보다 배려심 있는 사람이구나.’
방금의 부드러운 미소가, 그리고 마주 잡았던 손의 감촉이 그녀로 하여금 생소한 기분을 품게 만들었다. 실연 어쩌구 하면서 농담한 것도 지금 생각해 보니 자신의 기분을 풀어 주려고 했던 게 아닌가, 싶었다. 실제로 그 농담을 듣고 났더니 레냐에게 느꼈던 묘한 섭섭함이 흐려졌으니까. 타라는 잠깐 머뭇거리다가 입술을 열었다.
“저…… 어제 일은 정말로 죄송합니다.”
“흠?”
“방 안에서 물벼락이랑 이것저것 맞게 한 거요.”
“아아, 그거라면 됐습니다, 이제. 어제 충분히 사과했잖아요. 그때 맞은 분변 냄새도 이젠 말끔하게 사라졌고.”
“…….”
타라는 뜨끔해하며, 말없이 로나를 출발시켰다.
‘본인은 냄새가 사라진 줄 아는구나…….’
어제 분변 벼락을 맞은 상태로 오랫동안 못 씻었던 탓일까? 아직 루카스에겐 미미하게 냄새가 남아 있었다. 루카스 본인은 그 냄새가 코에 익어서 못 맡는 듯 보였다. 그를 위해 그녀는 이 사실을 일단 함구하기로 했다.
“어쨌든, 오늘은 절대 방해 안 되게끔 잘하겠습니다. 제가 평소엔 좀 덤벙대도, 활 솜씨는 진짜로 자신 있거든요.”
웬만하면 자랑을 잘 안 하는 편임에도 ‘진짜로’ 자신 있다고 한 건, 본인이 남들보다 월등한 실력자라는 걸 타라 본인도 자각하고 있어서였다. 신의 눈을 가졌노라고 칭송받았던 실력을 이번 기회에 드러내 주기로 했다. 그 자신만만한 대답에 루카스는 깃털처럼 가벼운 웃음을 흘렸다.
“그래요?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이시스의 단서를 잡으려면 이번 마족을 반드시 생포해야만 하거든요.”
“네, 저만 믿으세요. 그리고 일 끝나고 수도로 돌아가면 향긋한 비누도 선물해 드릴게요.”
“……갑자기 비누요? 잠깐, 설마 저한테서 아직도 냄새납니까……?”
“아뇨, 그런 건 아니고, 그냥 드리고 싶어서요.”
타라는 어색한 웃음으로 대화를 어물쩍 마무리 지었다. 상대에게 진실을 숨겨야만 하는 이런 난감한 상황에서는 생각 없는 웃음이야말로 최고의 회피 수단인 까닭이었다. * * * 타라와 루카스가 오기 전, 한발 앞서 광산에 도착한 우리는 그 근처를 살폈다. 역시나 오늘도 마족은 코빼기조차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어딘가에 꼭꼭 숨어 있는 듯하니, 마력을 감지할 수 있는 루카스가 나서야만 찾아낼 수 있을 듯했다. 그래서 어서 그들이 도착하길 기다리고 있던 때-
“고용주님!”
때맞춰 도착한 타라가 로나를 근처에 착륙시켰다. 그리고 그 뒤, 나는 조금 놀라운 모습을 보게 되었다.
‘손을 잡아 주네……?’
루카스가 먼저 내려서 손을 내밀고, 타라가 그 손을 또 순순히 붙잡고서 그를 따라 내린 것이었다. 사실 그녀가 로나의 등에서 내려설 때 그런 식으로 도움을 받을 필요는 전혀 없을 터였다. 나와 달리 신체 능력이 좋은 그녀였으니까. 그런데도 루카스의 손을 거절하지 않았다는 것은 그 의미가 분명했다.
‘드디어 둘이 친해진 거야……?!’
적어도 서로를 향한 둘의 호감도가 마이너스에서 플러스로 바뀌었다는 신호로 볼 수 있었다. 나는 환호성을 내지르고 싶은 것을 간신히 참으며 둘에게 다가갔다.
“타라! 루카스! 마침 잘 왔어요. 지금 마족이 어딘가에 숨은 것 같은데, 자세한 위치를 찾을 수가 없어서 곤란하던 차였거든요.”
“그런 거라면 제가 찾아보죠.”
그리 말하며 루카스가 곧 눈을 감았다. 그는 본인의 그 예리한 감각을 이용하여 마족을 찾는 듯하더니…… 갑자기 에드를 노려보았다. 에드는 이번에도 전에 미리 준비해 두었던 마족의 기운이 담긴 이빨을 꺼내어 흔들었고, 루카스는 다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이번에야말로 손가락을 들어서 한 방향을 가리켰다.
“저쪽, 인부들이 파 놓은 광맥 안쪽에서 마족의 기운이 느껴집니다. 그런데 들어가기 전에…… 그 이빨 좀 버릴 수 없습니까? 거기서 나오는 강력한 마력 때문에 다른 마력을 감지하기가 힘듭니다만.”
“난 이게 있어야 마음이 놓인다니까.”
에드는 루카스의 타박을 이번에도 그런 식으로 대충 흘려 넘겼다. 루카스는 “그런 거 다 미신이래도…….”라고 중얼거렸지만, 다행히 자신이 느낀 그 마력이 에드에게서 흘러나왔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은 하지 않는 듯했다.
“그럼 둘은 밖에 있겠습니까? 저랑 타라 씨가 마족을 처리하는 동안요.”
루카스의 그 말대로 원래 마족을 처리하는 건 루카스와 용병인 타라의 일이었다. 나는 그저 고용주로서 안전한 곳에 멀찌감치 떨어져서 타라의 실력을 지켜보기로 했었지만―
“아뇨, 저도 갈래요.”
내가 그렇게 밝히자마자 즉시 에드로부터 우려의 말이 흘러나왔다.
“부인도요? 위험할 텐데요.”
“제 생각엔 다 같이 움직이는 게 그나마 덜 위험할 것 같아서요. 둘만 안에 들어갔다가 큰일이 생기기라도 하면 도와줄 수가 없잖아요. 반대로 둘이 없는 사이 전하와 제가 위험해질 수도 있고요.”
고작 타라와 루카스, 단둘만 마족이 있을 어두컴컴한 광맥 안으로 보내려니 걱정스러웠다. 타라의 실력이 좋은 건 익히 알지만, 아직 눈으로 직접 본 건 아니었으니까. 그렇다고 에드를 딸려 보내자니 그럼 혼자 남은 내가 위험해질 수 있었다. 아마 야생 곰만 만나더라도 끔찍한 꼴을 당할 터였다.
“다 같이 가는 게 가장 좋을 거예요.”
다시 한번 그렇게 못 박자, 에드가 고민하듯 제 턱을 문질렀다.
“그렇게 저곳에 들어가고 싶어요?”
“네, 안 그럼 계속 걱정될 것 같아서…….”
“흐음, 그렇게나 가고 싶다면 어쩔 수 없죠. 다만―”
그가 곧이어 진지하게 낮아진 목소리로 경고했다.
“약속해요, 항상 제 시선이 닿는 곳에 머물고 절대로 먼저 앞서 나가지 않겠다고. 할 수 있죠?”
그가 주의를 주지 않아도 물론 나는 조심할 생각이었다. 단검조차 제대로 쥐어 본 적 없는 처지인데 어떻게 앞서가겠는가. 그토록 당연한 것인데도 에드가 구태여 내게 주의를 주는 것은, 아마 그만큼 나를 걱정하는 마음이 크기 때문일 터였다.
“그건 당연하죠. 모두를 곤란하게 만드는 돌발 행동은 절대로 안 할 거예요.”
내 명확한 대답에 비로소 안심한 듯,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나를 제 품에 파묻기라도 할 기세로 끌어안고서는 타라와 루카스에게 말했다.
“가지.”
그 말을 시작으로 우리는 광산의 안쪽으로 들어섰다. 마족이 있는 곳을 찾아낼 수 있는 건 루카스뿐이었기에, 그가 앞장서서 길을 안내했다. 그는 터널 안쪽으로 깊이, 점점 더 깊이 우리를 이끌어 갔다.
‘당장 뭐가 튀어나올지 모르는데 너무 빠르게 가는 거 아닐까……? 좀 무서운데…….’
그런 걱정이 될 즘, 드디어 좁은 터널이 끝나고 넓게 트인 공간이 나왔다. 루카스의 걸음도 거기서 멈추었다.
“흠……. 이 근처에서 가장 선명하게 마력이 느껴지긴 합니다.”
“확실해? 마족은 물론이고 쥐새끼 한 마리 없어 보이는데.”
에드의 그 말대로 그곳은 텅 비어 있기만 했다. 인부들이 광산을 캐다가 두고 간 폐기물들 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정말로 아무것도 없구나. 남아 있는 소울스톤도 하나도 없어. 인부들이 다 캐 간 걸까?’
전에 결혼을 성사시키고자 마족 토벌에 나섰던 에드가 우연히 상등품 소울스톤을 주웠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번엔 그런 행운을 발견할 수 없을 듯했다. 소울스톤 가격이 치솟을 대로 치솟아서, 인부들이 도망치는 와중에도 손톱만 한 것까지 싹싹 긁어 갔을 터였다. 나는 다소 실망한 채로 다른 이들처럼 주위를 살폈다. 그러던 중, 문득 눈에 들어온 것이 있었다.
“혹시 저기일까요? 물이 고여 있는 곳이요.”
나는 쭉 잡고 있던 에드의 손을 놓고서 걸음을 움직였다. 분명 이곳에 오기 전까진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그 순간엔 두렵지 않았다.
‘뭘까…….’
무언가 이상함을 느끼면서도 나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고, 기어코 고여있는 물 앞까지 가게 되었다.
‘왜 여기에 이런 연못만 한 웅덩이가 있지? 지하수가 고인 건가……?’
물의 정체는 불명확하나, 어쨌든 상당히 맑은 물이었다. 바닥까지 훤히 들여다보일 정도로. 혹시 그 아래에 마족이 숨어 있을지도 모른단 생각으로 들여다보던 중이었다.
“……!”
반짝. 어두컴컴한 웅덩이 밑바닥에서 무언가가 아름답게 빛을 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