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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신의 비호를 받으며 (73/102)

73. 신의 비호를 받으며2021.12.10.

지독히 어두웠던 그곳에서 문득 불꽃이 피어나 주위를 밝게 물들였다. 화염의 꽃이 만개하는 듯한 그 모습은 아름다웠고, 그만큼 비현실적이었다. 까닭에 제 눈으로 직접 보면서도 타라는 믿을 수 없었다.

16567325558408.jpg‘……꿈인가?’

그리 생각한 것도 잠시일 뿐. 곧 열기 섞인 바람이 불어오자 그녀는 이 모든 것이 현실에서의 일임을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는 동안 불꽃이 마족을 중심으로 모여들었다. 덕분에 일순간 그것의 몸통이 훤히 비쳐 보이게 되었다.

16567325558408.jpg‘보인다! 지금이야……!!’

시야에 들어온 네 개의 광석을 본 타라가 화살통에서 화살을 네 개 꺼내 들었다. 아까는 너무 어두워서 시도하지 못했으나, 이번엔 불꽃이 온 사방을 환하게 비추고 있으니 가능할 듯했다. 그녀는 그 화살 네 개를 한꺼번에 활에 메기고서, 활시위를 당겼다. ―피잉!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날아간 네 개의 화살이 이번에도 바람의 힘을 받아 더욱 정확하고 날카로워졌다. 그렇게 쏘아진 화살은 그대로 마족의 몸을 통과했고―

16567325558408.jpg‘명중했다!’

타라 자신이 예상한 대로 마족의 몸속에 있는 네 개의 광석에 적중했다. 하나의 핵과 세 개의 가짜 핵……. 그 전부가 부서지자 비로소 마족이 단말마를 내지르며 몸을 뒤틀었다.

16567325558426.jpg―키아아아아악!

그 최후의 몸부림이 끝나자, 마침내 물로 이루어진 몸통이 바닥에 흩어져 버렸다. 그리고 그 끝에 남은 것은 그저 팔뚝만 한 크기의, 작은 뱀이었다. 그것, 마족의 본체가 도망치기 직전 다시 불길이 일어나서 그 주위를 에워쌌다. 작아진 마족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그 안에서 몸을 비틀어 댔다.

1656732555843.jpg“이 자그마한 게 그 마족…….”

일행이 모여들고 레냐가 가장 먼저 그리 입을 열었다. 옆에 있던 에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16567325558434.jpg“핵이 부서져서 약해졌네요. 이 상태로 심문하면 되겠죠.”

그리 말하고서 에드가 마족의 심문을 시작하려던 때, 타라가 나섰다.

16567325558408.jpg“잠깐만요. 그전에, 아까 그 엄청난 불꽃은 뭐였습니까? 그것 덕분에 간신히 살아났는데.”

1656732555843.jpg“아, 그건 제 정령 삐약이가 한 거예요.”

16567325558408.jpg“고용주님의 정령이요……?”

타라의 물음에 레냐가 고개를 끄덕여 긍정했다.

1656732555843.jpg“아까 연못……이었던 구덩이를 들여다보다가 그 밑바닥에서 반짝이는 걸 봐서요.”

16567325558408.jpg“반짝이는 거라면 혹시…….”

1656732555843.jpg“네, 왠지 익숙한 빛이다 싶어서 생각해 보니까 떠오르더라고요. 전에 전하로부터 선물받았던 소울스톤이 똑같은 빛깔로 반짝였던 게.”

16567325558408.jpg“……!”

거기까지 들은 타라가 눈빛을 빛내며 물었다.

16567325558408.jpg“즉, 광부들이 회수 못 한 소울스톤을 우연히 발견하신 겁니까?”

1656732555843.jpg“맞아요. 그것도 꽤 커다란 상등품이라, 급히 삐약이를 성장시켰죠. 삐약이가 불의 힘을 가진 걸 대강 알고 있었거든요.”

전부터 삐약이의 날개에서 꽃잎처럼 흩날리던 불씨를 떠올리며 레냐는 이어서 말했다.

1656732555843.jpg“소울스톤으로 더 성장시키면 여길 환하게 밝힐 만큼의 불꽃을 피워 낼 수도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16567325558408.jpg“아아, 그런 거였군요……. 어쨌든 정말로 굉장했습니다. 불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순간에 그 불꽃이 딱 맞춰 피어나서, 전 정말로 신이 제 기도를 들어주신 줄 알았어요.”

어느덧 레냐를 보는 타라의 눈빛이 한결 더 초롱초롱해져 있었다.

16567325558408.jpg“그날 고용주님의 제안을 받아들이길 정말로 잘했다고 매 순간 생각합니다.”

1656732555843.jpg“아앗……. 그렇게 말씀해 주시면 너무 부끄러운데…….”

레냐가 제 뺨을 붉히며 고개를 내젓던 그때, 지금껏 조용했던 루카스가 입을 열었다.

16567325574597.jpg“그런데 듣다 보니 의아한 게 있습니다. 방금 여기서 발견한 소울스톤을 사용했다고 말씀하셨는데, 혹시 정화 작업도 직접 한 겁니까? 마족 때문에 잔뜩 오염돼 있었을 텐데요?”

1656732555843.jpg“……? 네, 급한 상황이다 보니 제 성력으로 직접 정화해 봤어요. 마력 정화는 처음이라 조금 헤맸지만요.”

16567325574597.jpg“…….”

마치 ‘오늘은 쿠키가 좀 맛있게 구워졌네요―’ 따위의 말이라도 하듯 여상스러운 레냐였다. 덕분에 루카스는 혼란스러워졌다.

16567325574597.jpg‘겸손을 떠는 건가? 아니면…… 본인이 무슨 일을 한 건지 정말로 모르나?’

성력으로 상처를 치료할 수 있는 자는 그래도 꽤 있었다. 그러나 그 힘으로 마력을 정화할 수 있는 자는 극히 드물었다. 그건 단순히 성력을 지닌 걸 넘어서 더욱 특별한 재능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었으니까. 루카스 또한 그게 가능하기까지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였었다. 그러니 성력을 다루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레냐가 정말로 직접 소울스톤을 정화한 거라면…….

16567325574597.jpg‘특별하게 신의 비호를 받고 있다고밖엔 설명이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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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정작 그녀 자신은 아무것도 모르는 듯했고, 오히려 그녀가 한 일의 가치를 아는 건 에드 쪽으로 보였다. 그는 마치 본인이 그런 일을 해내기라도 한 것처럼 자랑스럽고 뿌듯한 얼굴이었다. 보아하니 또 팔불출 같은 말을 하려고 입이 근질거리는 듯하여, 루카스가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

16567325574597.jpg“여하튼 알겠습니다. 이제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죠.”

그가 검끝으로 작아진 마족을 톡톡, 건드렸다. 에드도 고개를 끄덕이곤, 그것을 향해 물었다.

16567325558434.jpg“이시스는 어디에 있나.”

16567325558426.jpg―살려…… 줘……. 나는 단지…… 명령을 받고 어쩔 수 없이…… 움직였을 뿐…… 죄가 없다…….

이시스의 위치를 묻는 에드에게 마족은 영 관계없는 대답을 했다. 그 모습을 본 에드와 루카스가 재차 시선을 교환했다. 곧 루카스는 성력을 불어넣어 옅게 빛나는 검 끝으로 마족의 작아진 핵을 톡 건드렸다. 그 뒤 괴롭다는 듯 발버둥 치는 마족에게 에드가 다시 물었다.

16567325558434.jpg“이시스는?”

여전히 빛나고 있는 루카스의 검을 힐끔대며, 마족이 대꾸했다.

16567325558426.jpg―황성에…….

16567325558434.jpg“정확히 황성 어디? 그리고 어떤 모습으로 숨어 있지? 변장했나?”

16567325558426.jpg―황성의 뒤편…… 발길이 드문 창고에……. 본인이 만든 인형에 깃들어서…… 불완전한 모습으로 목숨을…… 이어 가고 있다…….

에드는 잠깐 고민하다가 재차 질문했다.

16567325558434.jpg“하지만 어떻게? 불완전한 모습이라면 사람들의 눈에 띌 텐데?”

16567325558426.jpg―황태자를 조종해서…… 다른 이들은 그 창고에…… 접근하지 못하게끔…… 막았…….

16567325558434.jpg“그렇군.”

16567325558426.jpg―다 말했으니…… 나는 살려 줘…….

16567325558434.jpg“그럼 이 광산에 흩뿌려진 마력을 거둬들여라.”

에드의 명령에 따라 마족이 순순히 힘을 거둬들였다. 그러곤 당장이라도 도망칠 것처럼 몸을 뒤틀었다.

16567325558426.jpg―시키는 대로 다 했다……. 이제 나를 보내…….

마족의 말이 이어지던 중, 에드가 발을 들어 올렸다. 그러곤 부서져서 작아진 마족의 핵을 밟았다. 파직.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핵은 가루처럼 작은 조각들로 변하게 되었다. 간신히 형태를 이루고 있던 마족의 몸통도 평범한 물이 되어 바닥에 흩어졌다.

1656732555843.jpg“……?”

그 모습을 눈앞에서 지켜본 레냐는 한순간 멍해졌다. 마족이긴 하지만 어차피 무력해져 있던 상황……. 그런 중에 정보도 고분고분 다 뱉었으니, 그를 살려 줄 줄 알았던 까닭이었다. 그녀는 놀라서 굳은 몸짓으로 천천히 에드 쪽을 보았다.

1656732555843.jpg“방, 방금 보내 달라고 하지 않았나요?”

16567325558434.jpg“괴로우니 빨리 보내 달라는 의미였을 겁니다. 저승으로요.”

1656732555843.jpg“……?”

그의 대답을 듣고서 레냐는 더욱 멍해지게 되었다. 그때 옆에서 지켜보던 루카스가 레냐를 향해 고개를 내저었다.

16567325574597.jpg“동정심을 품을 만한 대상이 아닙니다. 이 광산을 장악하기 위해 죄 없는 사람들을 수없이 죽였을 테니까요. 그런 위험한 존재를 그냥 살려 두면 이 근방의 사람들도 덩달아 위험해질 겁니다.”

1656732555843.jpg“그런가요……?”

16567325574597.jpg“예, 그래서 신학교에 입학하면 가장 먼저 그걸 배우게 되죠. 마족에겐 어떤 자비도 베풀면 안 된다는 거.”

그 뒤 검을 검집에 집어넣는 루카스의 모습이 더할 나위 없이 단호했다. 그 단호함을 보며 레냐는 제 결정이 옳았음을 재차 확신하게 되었다.

1656732555843.jpg‘역시, 루카스 앞에서 마법을 자제하라고 하길 잘했어. 에드가 괜히 마법을 쓰다가 마족 혼혈이란 걸 들키기라도 하면…… 분명 좋지 않은 상황으로 번졌을 거야.’

마족을 향한 증오심을 철저히 교육받은 루카스에게 에드의 정체를 들키는 일은 상상조차 하기 싫었다. 지금은 평온해 보이는 둘이지만 원작에선 숙적이었음을, 그녀는 머릿속에 더욱 확실하게 되새겨 넣었다. * * *

16567325630373.jpg“아아악!!”

제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이시스가 비명을 내질렀다. 분명 방금까지만 해도 그의 마음은 평온했었다. 거쳐도 발길 드문 창고로 옮겼고, 그곳에서 들킬 걱정 없이 고열량 식량을 제공받으며 순조로이 힘을 회복하고 있었다. 그랬는데―

16567325630373.jpg‘얼마 전에 소환해 둔 마족의 기운이 사라졌어. 분명 에이드리언 그 자식 짓이겠지. 힘들게 소환했건만…….’

이시스는 마족을 제거한 것이 에드일 것이라고 확신했다. 지금쯤 그는 자신을 찾아내서 죽이고자 혈안이 돼 있을 것이므로.

16567325630373.jpg‘망할.’

이시스가 이를 빠득, 갈아 내며 제 손을 살펴보았다. 기묘한 형태였던 손도 발도, 지금은 제법 사람의 형상으로 돌아와 있었다. 닐스가 가져오는 영양가 높은 식량을 꾸준히 섭취한 덕분이었다. 다만 그렇다 해도 아직 밖으로 나돌아다니기엔 무리가 있었다.

16567325630373.jpg‘서둘러야 해……!’

초조해진 이시스는 창고 구석에서 실 끊어진 마리오네트처럼 축 늘어진 채로 의자에 앉아 있던 닐스에게 다가갔다. 그러곤 닐스의 턱 밑을 받쳐 들어, 그와 시선을 맞추었다.

16567325630373.jpg“방금 에이드리언 그 자식이 내 수족 중 하나를 없앴다. 마족을 해치우면서 영웅 행세라도 하고 싶은 모양이야.”

이시스의 세뇌 마법 탓에 멍하니 초점이 나가 있던 닐스의 눈동자가 그 순간 흔들렸다.

16567325647243.jpg“영……웅……?”

16567325630373.jpg“그래, 영웅. 그 소울스톤 광산의 소유자는 그 자식한테 눈물을 흘리며 감사하겠지. 광산에 숨어 있던 마족을 해치워 줬으니……. 그렇게 제 속셈을 숨기고 영웅 행세를 하면서 추종자들을 확보해 나가려는 거야.”

거기까지 말하고서 이시스는 목소리를 은밀히 낮추었다. 닐스를 움직일 마법의 주문을 속삭이기 위해.

16567325630373.jpg“그럼 또 모르지, 그 힘으로 계승 서열을 뒤집고 녀석이 다음번 황제가 될지도…….”

16567325647243.jpg“……!!”

그 순간, 인형처럼 아무런 표정이 없던 닐스의 얼굴이 사납게 일그러졌다. 초점이 나가 있던 눈동자에도 선명한 노기가 피어올랐다. 그는 빠득빠득 이를 갈며, 손톱을 부러트릴 기세로 의자 팔걸이를 쥐어뜯었다.

16567325647243.jpg“에이드리언…… 그 사생아 자식이 감히 황위를 노려……? 내 것을 또 빼앗는다고……? 그건 안 돼…… 그건……. 당장 그 자식을 죽여 버려야…….”

16567325630373.jpg“그래, 그러니까 네게 심어 둔 그걸 어서 성장시키라고. 그게 다 자라나면 손가락 까딱 안 하고도 놈을 죽일 수 있을 테니.”

그리 말하며 이시스는 닐스의 가슴팍 쪽을 응시했다. 정확히는 심장이 있는 쪽을.

16567325630373.jpg‘잘 성장하고 있군. 조금만 더 기다리면 되겠어.’

닐스의 심장 안에 심어 둔 물건이 그의 피와 살을 머금으며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고 있었다. 벌써 강력한 마력을 드러내는 그것을 보며, 이시스는 비로소 흐뭇한 미소를 입가에 떠올렸다. * * * 마족을 퇴치하고 밖으로 나오자 또 다른 고민거리가 레냐를 기다리고 있었다.

1656732555843.jpg‘돌아갈 땐 타라랑 같이 가는 게 좋으려나?’

에드와 함께 블랙을 타고 이곳에 오면서도 내심 타라가 걸렸었다. 고용주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에 태워 주겠노라고 권했을 텐데 거절당했으니, 분명 섭섭했을 터였다. 그래서 타라에게 그 이야기를 꺼내려던 때―

16567325558408.jpg“남자 둘이 한 정령에 타고 가면 역시 좀 좁겠죠?”

타라가 먼저 그리 말했다. 그러곤 루카스의 앞으로 걸어갔다. 루카스의 금빛 눈동자에 제 모습이 오롯이 담길 만큼 가까워졌을 즘에야 그녀의 걸음이 멈췄다.

16567325558408.jpg“같이 가요, 저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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