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 당신의 눈앞에서 떨어질 생각은 없었지만2021.12.28.
‘여기가 이시스가 있는 곳……? 무슨 썩은 내가 이렇게…….’
창고에 들어서자마자 에드는 눈가를 찡그렸다. 이시스가 숨어 있으리라 예상되는 그곳, ‘황성 뒤편의 잡동사니를 넣어 둔 창고’에서는 상당한 악취가 풍기고 있었다. 또한 안으로 들어설 때마다 ‘찰박찰박’ 소리가 났다. 바닥에 흥건하게 고인 핏물 탓이었다. 역시 레냐를 안 데려오길 잘했다고 생각하며 그는 더욱 깊은 곳까지 들어섰고, 거기서 악취의 원인을 발견할 수 있었다.
‘썩은 고깃덩이?’
전에 심문한 마족이 실토했었다. 이시스는 그 자신이 만든 인형에 깃들어서 명줄을 이어 가고 있노라고. 과거 연구랍시고 죄 없는 생명을 마법으로 합성해서 만든 생체 인형을 말한 것이었을 터다. 다만 에드가 알기로 그 인형은 육신으로 쓰기에는 불완전한 하자품이었다. 그러니 제대로 움직이려면 많은 에너지…… 즉, 영양가가 풍부한 음식이 필요했을 것이고, 그 영양가 풍부한 음식이란…….
‘역시 인간의 사체였나.’
에드는 이시스가 먹고 남긴 고깃덩이 속에서 사람의 두개골을 발견하곤 눈가를 일그러트렸다. 불완전한 육체를 쓸 만하게 움직이기 위해서 꽤 많은 이를 잡아다가 섭취한 것 같았다. 여기서 더 희생자가 나오기 전에 이시스를 잡아야 할 터다. 그러나 창고에는 이시스의 흔적들만 남아 있을 뿐, 정작 중요한 그가 없었다.
“하…….”
그가 남긴 음식……의 부패가 상당히 진행된 것으로 보아, 이미 오래전에 낌새를 느끼고서 도망친 듯했다. 어쩌면 광산에서 물뱀을 토벌한 날 이미 도망쳤을 가능성도 있었다. 그 마족이 자신의 은신처를 전부 말해 버릴 것까지 예상하고서.
‘내 잘못이야. 내가 너무 여유를 떨었어.’
그가 황성에 있다는 걸 안 즉시 황성으로 갔다면 늦지 않았을 터. 그런데 레냐와 황자궁으로 돌아와서 이래저래 즐거운 나날을 보내느라 조금 늦고 말았다. 방금도 그녀에게 입맞춤을 두 번이나 하면서 시간을 끌다 온 참이었고.
‘이시스를 잡을 때까지 즐거운 신혼 생활을 미뤄 두긴 싫은데…… 어쩔까.’
그가 그렇게 열심히 고민하며 이시스의 흔적을 뒤적거리고 있을 때였다.
“여기서 뭘 찾겠다고 기웃거려, 이 사생아 자식아.”
뜬금없이 들려온 욕설에, 에드는 출입구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방금 온 듯한 닐스가 입구에서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초상난 집 가면 그 집 창고나 기웃거리라고, 네 비천한 어미가 그렇게 가르쳤냐?”
안 그래도 이시스 때문에 머리가 지끈거리던 차였다. 거기에 더해진 닐스의 시비는 에드의 짜증을 돋우기 충분했다.
“남 가정교육 운운할 시간에 네 어미 품행이나 신경 써. 시체 태우자마자 무도회장으로 즐기러 가려고 벌써부터 빨간 구두 챙겨 신었던데.”
“……뭐, 뭐?”
“짜증 나게 되묻긴……. 남 가정교육 운운할 시간에 네 어미 품행이나 신경 쓰라 했다. 지금 보니 꽉 막힌 네놈 귓구멍 청소하는 게 더 급선무로 보이긴 하다만.”
언제나 그랬듯 이번에도 먼저 이성을 잃은 것은 닐스였다. 그는 참지 못하고 에드에게 달려들어 멱살을 잡아챘고, 에드는 그런 닐스를 여상스레 멸시하며 내려다보았다. 닐스가 사생아라 부르건 뭐라 하건, 이젠 관심 없었다. 단지 하루살이가 윙윙대는 하찮은 소리 정도로만 들릴 뿐이었다. 다만, 오늘은 조금 다른 이유로 신경이 거슬렸다.
‘이 기운은 뭐지?’
가까이 다가온 닐스에게서 기묘한 기운이 느껴졌다. 한 번도 접해 본 적 없는 생소한 기운이라, 무어라고 콕 집어서 표현하기가 어려웠다. 그런데도 정작 그 당사자인 닐스는 에드를 모욕 주기에만 열을 올리고 있었다.
“나는 황태자고, 내 아버지는 제국의 황제이며, 내 어머니는 제국의 황후다!! 고작 사생아에 불과한 네놈이 그 더러운 주둥이로 함부로 모욕할 존재가 아니란 말이다!!”
“아빠 직업 자랑하면서 으스댈 나이는 지나지 않았나? 그리고 그렇게 자랑스러워하는 네 아비라는 놈도 지금은 관짝 안에 드러누워 있잖아?”
“닥쳐!! 깐죽거리지 마!!”
“쯧, 시끄러워.”
시간이 많지 않았다. 에드는 닐스와의 말장난을 관두곤 구속 마법을 사용했다. 곧 땅에서 튀어나온 넝쿨들이 닐스의 팔다리를 빈틈없이 휘어 감아 구속했다.
“이시스를 본 적 있지.”
“……!”
“그놈이 어디로 갔는지 말해.”
물뱀으로부터 듣길 이시스는 황태자, 즉 닐스를 조종해서 은신하고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닐스는 이시스의 꾐에 넘어갔거나, 혹은 강제로 세뇌를 당한 상태일 터였다. 역시나 이시스의 이름을 듣자마자 닐스의 표정이 굳었다. 하지만 반항적인 눈빛을 보니 혀를 도려내겠다고 협박해도 말하지 않을 기세였다.
“뭐, 말 안 해도 상관없어. 알 방법은 많으니까.”
마법을 쓰면 닐스의 머릿속을 들여다보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에드는 코웃음을 흘리며 닐스의 머리 쪽으로 손을 뻗었다. 그대로 마법을 쓰려고 했으나―
“……!”
닐스의 머리에 손이 닿기도 전, ‘파지직!’ 스파크가 튀어 올랐다. 또한 무언가 보이지 않는 힘이 그의 손을 뒤로 밀어냈다. 마법이 걸리지 않은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대로 튕겨 나왔어.’
마법을 배운 적도 없는 닐스가 스스로 마법에 대한 저항력을 발휘했을 리는 없었다. 필시 아까부터 그에게서 느껴지던 기묘한 기운과 연관이 있을 터다. 에드는 그 기묘한 기운이 가장 강하게 느껴지는 닐스의 가슴 쪽을 확인하고자 그의 셔츠를 뜯어냈다. 그리고…….
“……!”
드러난 닐스의 가슴팍 위로 보이는 그것, 아마도 심장에까지 뿌리를 내리고 있을 그 ‘기괴한 것’ 앞에서 에드의 입술은 그대로 굳어 버렸다. 그런 에드를 본 닐스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놀랐냐? 멍청한 자식.”
“……말해, 이시스한테 뭘 당한 거야.”
“당한 게 아니고 내가 직접 심어 달라고 부탁한 거다. 이걸 심장에 품고 있으면 네 한심한 잔재주보다도 더 대단한 걸 할 수 있다고 들었거든. 지금 보여 줄까?”
그 순간 공기가 한차례 일렁이며, 공간이 어긋나는 듯한 감각이 몸을 휘감았다. 이는 에드에게도 익숙한 감각이었다. 과거에 공간을 뒤틀어서 마계로 통하는 통로를 열었을 때도 똑같은 걸 느꼈었으니까. ―캬아악! 역시나 한순간 마계로의 통로가 열렸던 듯, 아무것도 없던 구석에서 자그마한 거미 형태의 마족들이 기어 나왔다. 크기는 작았지만 바닥이 까맣게 뒤덮일 정도로 그 수가 많았다.
‘마족?’
그사이 그것들이 바퀴벌레처럼 빠르게 기어 와서 기어코 옷자락을 타고 올라왔다. 더러운 것을 싫어하는 에드로서는 더 참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화르륵 그가 앞뒤 재지 않고 시전한 화염 마법이 주위의 모든 것을 휩쓸었다. 작은 거미들, 이시스의 흔적이 남았을지도 모르는 그 공간, 심지어는 넝쿨에 묶여 있던 닐스마저도 그 불길에 삼켜졌다. 그렇게 모든 것을 다 태워 버린 뒤 아차 싶어서 불길을 줄였을 땐, 이미 닐스는 어딘가로 사라진 후였다. * * *
‘나는 할 수 있다……. 나는 할 수 있다…….’
속으로 그렇게 주문을 외면서 슬그머니 눈을 떠 보았다. 그러나―
‘으으…… 아직도 꿈속이잖아!!’
여전히 나는 에드가 마법으로 만들어 둔 꿈속, 심심하기 짝이 없는 들판에 있었다. 벌써 열 번째였다. 꿈에서 깨어나서 현실로 돌아가고자 시도했다가 실패한 것이. 혼자서 뺨을 때려도 보고, 달려도 보고, 명상도 해 봤으나 도무지 이 악몽 같은 꿈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대체 왜 안 깨지? 꿈이란 걸 이미 알고 있는데도 이렇게까지 안 깰 수가 있나……?’
그때 옆에서 내 노력을 지켜보던 꿈속의 에드, 즉 허상의 에드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그냥 포기하래도……. 꿈속에 ‘마법으로’ 가둔 거라 어지간한 방법으론 벗어날 수 없어요. 여기서 얌전히 있으면 곧 현실의 제가 와서 깨워 줄 테니까, 그때까지 우리 즐거운 얘기나 할까요?”
“흠, 이번엔 숨을 참아 볼까? 그럼 숨 막혀서 깰지도……?”
“아앗……. 듣는 척도 안 해 주시다니…….”
꿈속 에드가 상처받은 표정을 지어 보였지만 무시했다. 지금 이 상황에서 진짜로 상처받은 사람은 나였으니까.
‘꼭 여길 자력으로 탈출해서 에드한테 보여주는 거야. 내가 본인 생각처럼 그렇게 무능력한 인간이 아니라는 걸.’
그가 나를 끌어안고서 내게 감정적으로 기댔을 땐 진심으로 뿌듯했었다. 내가 그에게 있어서 불필요한 짐 덩어리가 아니라는 걸 인정받은 것만 같아서. 그랬는데, 정작 중요한 순간엔 나를 이렇게 멋대로 가둬 버린 것이다. 마족을 퇴치할 때 타라가 대단하다고 말해줘서 나름 어깨에 힘이 들어가 있었건만, 에드 덕분에 다시 자신감이 수직으로 하강해버렸다.
‘우울하게 풀 죽어 있을 시간이 없어.’
다시 그렇게 정신을 다잡은 나는 현재 상황에 집중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곳에서 획기적인 탈출법을 떠올리긴 조금 어려웠다. 아무런 자극도 없이 마냥 평화롭기만 한 곳에서 어떻게 창의적인 생각이 솟아날 수 있을까.
‘자극…….’
문득 무언가를 떠올린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고 보니까 이 세계, 밋밋할 정도로 평화롭기만 하네. 즐거운 놀거리 같은 건 당연히 없고, 심지어는 땅도 들판만 끝없이 쭉 이어져 있고……. 에드는 왜 굳이 나를 이런 곳에 가뒀지?’
이곳에 즐길 거리가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내가 이렇게까지 나갈 궁리에 몰입하진 않았을지도 몰랐다. 그런데도 에드는 굳이 이런 평화롭기만 한 꽃밭에 나를 가둬 두었다. 그 이유는 아마도…….
“저 그럼 그냥 얌전히 있을게요.”
“……흠?”
꿈속 에드가 내 말을 듣고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반색을 드러냈다.
“아아, 잘 생각했어요. 가끔은 그렇게 상황에 순응하고 현실을 즐기는 자세가 필요하죠.”
“대신 저쪽에 무지개가 뜬 들판 너머로 저랑 같이 산책하러 가요. 지루하니까.”
“산책이라……. 지루하다면야, 뭐.”
에드는 예상대로 나를 먼 곳에 데려가기 위해 블랙을 소환했다. 그러곤 나와 함께 본인도 블랙에 올라탔다. 나는 은밀히 미소 지으며 때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리고 마침내 블랙이 하늘 높이 떠올랐을 때, 행동에 들어섰다.
‘미안해, 블랙. 어차피 꿈속일 뿐이니까 현실 블랙은 전혀 아프지 않겠지만, 어쨌든.’
그리 마음속으로 사과를 건네고서 나는 블랙의 깃털 세 개를 한 번에 뽑았다. ―뚜둑. 단단히 박혀 있던 깃털이 그렇게 아픈 소릴 내며 뽑혀 나왔고, 블랙은― ―히이이잉!! 말 그대로 온몸을 뒤흔들면서 제 고통을 표현했다.
“……?! 블랙! 진정해!!”
에드가 뒤늦게 진정시키려고 노력했지만, 블랙의 고통 표현은 멈추지 않았다. 블랙이 항의하듯 이리저리 몸을 뒤틀다가 상체를 크게 들어 올렸고, 덕분에 나를 붙들고 있던 에드의 팔이 살짝 헐거워졌다. 나는 그 틈을 타서 재빨리 그의 품으로부터 빠져나왔다. 허공으로 몸을 날리기 위하여.
“……?!”
상황을 파악한 에드가 나를 향해 손을 뻗었지만 소용없었다. 이미 나는 그의 팔이 닿는 범위를 넘어 추락하고 있었다.
“레냐!!”
절망감으로 젖어 가는 에드의 얼굴, 그리고 필사적으로 나를 부르는 에드의 목소리……. 그 모든 것이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빠르게 멀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