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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에드 강아지 (80/102)

80. 에드 강아지2022.01.04.

1656732694325.jpg“……뭐, 뭐라고?”

황후의 낯빛이 곧바로 창백해졌다. 고귀하신 황후 당신께서 자존심도 내려놓고 건넨 부탁을 내가 이토록 단호하게 거절할 줄은 모르셨나 보다. 우스운 일이다. 그녀를 거절하는 건 내게 있어서 생각해 볼 필요도 없이 당연한 일이건만.

16567326943255.jpg‘당신은 지금까지 에드를 수도 없이 죽이려고 들었잖아. 그런데 당신이 죽을 처지가 되니까 이제 와서 두렵다고?’

남을 미워할 땐 당신도 미움받을 각오를 했어야지. 남을 괴롭힐 땐 당신도 괴롭힘당할 각오를 했어야지. 그리고 남을 죽이려 했을 땐…….

16567326943255.jpg‘당신도 죽을 각오를 했어야지.’

나는 그녀의 이중적인 태도에 분노와 역함을 느끼며 입을 열었다.

16567326943255.jpg“안타까운 사정은 잘 알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도와드릴 수 있는 부분은 없을 것 같네요.”

1656732694325.jpg“너……!! 지금 내가 한 말을 제대로 듣긴 한 거니? 네가 날 외면해서 내가 목숨을 잃기라도 하면 결국 너도 살인에 동조한 게 되는 거야! 네 외면이 나를 죽인 것이야!!”

16567326943255.jpg“살인이 나쁜 건가요?”

1656732694325.jpg“……뭐?”

16567326943255.jpg“만약 나쁜 거라면, 과거엔 왜 그러셨어요?”

그녀의 시선이 당혹감으로 흔들리는 게 보였다. 마찬가지로 잘게 떨리던 입술이 더듬더듬 말을 뱉어냈다.

1656732694325.jpg“내, 내가 언제……. 난 살면서 누구도 해치려고 해 본 적이 없다.”

16567326943255.jpg“…….”

1656732694325.jpg“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통 모르겠구나.”

모르는 척하기로 했나 보다. 과거에 그녀는 ‘은밀하게’ 에드를 노렸었고,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았었으니까. 이번에도 똑같이 잡아떼면 될 줄 알았겠지. 하지만 원작의 내용을 알고 있던 데다가, 에드의 꿈속에서 그의 험난했던 과거를 보기까지 한 내게는 통하지 않는 거짓말이다. 나는 그 허튼 거짓말을 무시하기로 했다.

16567326943255.jpg“당신의 분노는 이해해요. 황제 폐하를 향한 배신감에 고통스러우셨겠죠. 그 배신의 증거물이나 다름없는 에드 전하를 향한 감정도…… 이해할 수 있어요.”

1656732694325.jpg“…….”

16567326943255.jpg“하지만 모든 건 황제 폐하의 선택이었을 뿐, 에드 전하께는 죄가 없다는 걸 아시잖아요.”

1656732694325.jpg“…….”

16567326943255.jpg“전하께선 그 무엇도 선택하신 적이 없어요. 폐하의 아들로 태어나서 고통받길 선택하신 적이 없어요. 그저 폐하의 선택으로 인해 태어났을 뿐인데도…… 그런데도 사생아라 불리며 차별당하는 모욕을 견디셔야 했죠.”

1656732694325.jpg“…….”

16567326943255.jpg“그러니까, 거기에 더한 고통을 얹어 주실 필요까진 없었잖아요.”

세상의 모든 소리가 사라진 것처럼 짙은 침묵이 이어졌다. 여전히 그녀의 눈동자는 떨리는 중이었다. 그것이 제 죄를 들킨 당혹감에서 비롯된 떨림인지― 아니면 분노에서 비롯된 떨림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이제야 찾아든 죄책감으로 인한 떨림인지…… 나로선 알 수 없었다. 그렇기에 황후에게 말했다.

16567326943255.jpg“저는 도와드릴 수 없어요. 만약 정말로 도움이 필요하시다면, 제가 아닌 에드 전하께 직접 부탁해 보세요.”

1656732694325.jpg“……누, 누구한테 부탁하라고?!”

16567326943255.jpg“당신의 행동으로 고통받은 건 그분이니까요. 당신이 그분께 마음을 다해 진심으로 사죄하고, 그 사죄를 그분께서 받아들인다면 저도 그 선택에 따라 아버지께 연락을 드려 볼 테니까요.”

마치 대단한 모욕이라도 당한 것처럼 얼굴을 붉히는 그녀에게 나는 다시금 상기시켜 주었다. 그녀의 죄를.

16567326943255.jpg“당신 탓에 어릴 적부터 배신의 고통과 죽음의 공포를 겪어 온 사람이에요. 고작 사죄의 말 한마디로 용서받을 수 있다면 싸게 먹히는 게 아닐까요?”

1656732694325.jpg“…….”

16567326943255.jpg“물론 그것도 용서를 받을 수 있을 때의 이야기지만…….”

질식할 것만 같은 침묵이 공간을 채웠다. 그녀는 여전히 얼굴을 붉힌 채로 바들바들 떨기만 했다. 주체할 수 없는 노기와 모멸감을 견뎌내는 듯한 모습이었다. 한참을 침묵만 삼키던 그녀가 마침내 움직이더니, 나를 지나쳐서 객실 밖으로 나가려 했다. 마지막으로 이 말만 남긴 채.

1656732694325.jpg“직접 겪어 본 일이 아니면 쉽게들 말하지. 내가 느낀 감정을 넌 이해 못 해. 네가 내 입장이었더라도 똑같이 행동했을 거다.”

누구라도 자신처럼 행동했을 거다. 그러니 나는 죄가 없다……. 이것이 결국 그녀의 대답이었다. 나는 그 말을 듣고서 생각해 보았다. 만약 에드가 나를 두고 다른 여자를 만나서, 그녀가 낳은 아이를 데려왔다면 내가 어떻게 행동했을지.

16567326943255.jpg‘나도 지독히 원망했을 거야. 죄 없는 아이 말고, 나를 배신한 에드를.’

에드를 사랑했던 만큼 거대한 원망이 밀려들 것이다. 하지만 그 원망과 분노가 향하는 방향은 어디까지나 죄 없는 아이가 아닌, 나를 직접 배신한 에드에게 향하겠지.

16567326943255.jpg“…….”

역시, 나는 아무리 노력해 봐도 그녀의 행동을 용납할 수가 없었다. * * *

16567326982815.jpg“부인!”

아까 내가 잠들어 있었던 그 객실 근처를 얼쩡거리던 에드가 나를 발견하자마자 달려왔다. 그러곤 곧바로 내 상태를 살폈다. 얼굴부터 손끝까지 상처 하나 없이 무사하다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그가 입을 열었다.

16567326982815.jpg“지금까지 어디서 뭘 하고 있던 거예요? 한참 찾았잖아.”

16567326943255.jpg“그냥…….”

황후와 만난 걸 솔직하게 말해야 할지를 두고 나는 잠깐 고민에 빠졌다. 고민은 짧게 끝났다.

16567326943255.jpg“그냥 걱정돼서 전하를 찾아다니고 있었어요. 그보다 이시스는 어떻게 됐어요?”

16567326982815.jpg“이미 일찌감치 도망쳤더라고요.”

16567326943255.jpg“아아…….”

아쉬운 소식이었다. 하지만 마냥 그리 아쉬워하고만 있을 순 없었다. 신경 쓰이는 문제가 또 하나 있었으니까.

16567326943255.jpg“그보다, 아까 닐스를 봤는데 되게 이상했어요. 이시스가 무언가 수작을 부린 게 확실한 것 같아요. 어쩌면 황제의 죽음은…… 단순한 사고가 아니었을지도 몰라요.”

닐스가 황제를 죽였다는 걸 황후에게서 확실히 들었지만, 그걸 에드에게 말하려면 황후를 만난 것까지 말해야 한다. 그건 정말로 내키지 않는 일이었다.

16567326943255.jpg‘황후 얘긴 끝까지 하지 말아야지. 어차피 그 여자는 사죄할 생각도 없어 보였어. 그런 얘길 에드에게 전해 주면…… 분명 두고두고 불쾌해할 거야.’

그러니 어쩔 수 없이 에드가 스스로 닐스를 범인으로 추리할 수 있게끔 적당히 유도해 주려 했다. 그랬는데―

16567326982815.jpg“……닐스를 봤다고요?”

내 말을 들은 그가 황제의 죽음 말고 영 엉뚱한 데에다가 초점을 맞췄다. 갑자기 표정을 심각하게 굳히는 그에게 나는 어리둥절해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16567326943255.jpg“네? 아, 네.”

16567326982815.jpg“……그놈하고 이야기했어요?”

16567326943255.jpg“아뇨, 그냥 멀리서만 설핏 본 거예요.”

그제야 그가 안심했다는 듯이 긴 한숨을 내쉬었다.

16567326982815.jpg“위험하게……. 큰일 날 뻔했잖아요.”

16567326943255.jpg“큰일이요?”

16567326982815.jpg“저도 아까 마주쳐서 잠깐 몇 마디 나눴었거든요, 그놈하고. 불쾌하고 위험한 기운을 풍겼어요. 아마, 이시스로부터 마법으로 위험한 시술을 받은 거겠죠.”

16567326943255.jpg“시술이라면…….”

16567326982815.jpg“심장에 뭔가를 심은 것 같았어요. 더 자세한 건 천천히 알아봐야겠지만.”

16567326943255.jpg“아아…….”

16567326982815.jpg“어쨌든 마주치지 않았다니 다행입니다.”

다행이라고 말하는 그의 입가에는 순백색의 미소가 드리워져 있었다. 그 미소가 너무 깨끗해서…… 그래서 오히려 마음이 아팠다. 내가 무사했다는 것 하나로도 이렇게 맑게 웃을 수 있는 사람이다. 나보다는 닐스와 정면으로 마주친 본인이 더 위험했을 텐데도, 나는 마주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여기는 사람이었다.

16567326943255.jpg‘이렇게 따뜻한 사람인데…….’

이런 에드가, 원작에서는 어릴 적부터 끝없는 배신을 맛보며 완전한 악역으로 자라났었다. 황제와 황후 때문에. 해맑은 에드의 미소 위로 아까 본 황후의 노기 서린 얼굴이 겹쳐 떠올라서 가슴께가 욱신거렸다.

16567326982815.jpg“잠깐.”

치미는 슬픔을 꾹 삼키고 있는데 에드가 내게로 가까이 다가왔다. 가까이에서 보게 된 그의 얼굴은 이런 날에도 근사해서, 내 심장을 간지럽혔다. 그사이 그가 검지로 내 눈가를 부드러이 훔쳐 냈다. 울먹이고 있던 차라, 그의 손가락에 촉촉하게 물기가 묻어 나왔다.

16567326982815.jpg“이거, 눈물 맞죠?”

그가 울고 있는 나를 위로하려고 물어본 줄 알았다. 그래서 괜찮으니 신경 쓰지 말라고 말하려고 했는데, 갑자기 그의 입가에 아까보다도 더 환한 미소가 번졌다.

16567326982815.jpg“제가 이겼네요, 내기.”

16567326943255.jpg“……!!”

그 말을 듣고 나서야 떠올랐다. 황성에 오기 전에 우리가 했던 ‘내기’가.

16567326982815.jpg“내기 하나만 할까요? 누가 더 먼저 울게 되는지. 그리고 진 사람은 침실에서 이긴 사람의 명령에 무조건 따르는 걸로…….”

  에드가 했던 말을 떠올리면서 충격에 굳어 있는데 그의 목소리가 귓가에 속삭여졌다.

16567326982815.jpg“오늘 밤은 즐겁겠네. 부인께 뭘 시킬까요?”

16567326943255.jpg“…….”

도대체 뭘 시키려는 건지, 벌써부터 그의 입가엔 음란한(?) 미소가 만개해 있었다. 이대로 승기를 내어 주면 오늘 밤엔 죽도록 시달릴 터……. 나는 이를 악물고서 부정했다.

16567326943255.jpg“저 안 울었는데요?”

16567326982815.jpg“거짓말. 지금도 눈가가 촉촉한데.”

16567326943255.jpg“가까이 오셔서 더 자세히 보세요.”

그는 순순히 내 쪽으로 고개를 숙였다. 내가 이 순간을 위해서 주머니에 뭘 숨겨 왔는지도 모르고서.

16567326982815.jpg“가까이서 다시 봐도 역시 눈물 맞…….”

16567326943255.jpg“에잇.”

나는 주머니 속에서 양파 껍질을 마구 짓이긴 손가락으로 에드의 눈 밑을 문질렀다.

16567326982815.jpg“……?”

잠깐은 그가 상황 파악을 못 한 듯 멈춰 있었다. 그러다가 차츰 매운 기운이 올라오자…….

16567326982815.jpg“……양, 양파?!”

그가 눈을 부여잡으며 절규했다. 물론 마법으로 금방 수습하긴 했지만, 이미 그의 눈가엔 양파즙으로 인한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어쩜 내 남편은 양파즙 때문에 우는 모습조차 완벽할까. 속으로 그런 푼수 같은 생각을 하며, 나는 활짝 웃었다.

16567326943255.jpg“와, 이겼다.”

16567326982815.jpg“아뇨, 이건 누가 봐도 반……!”

16567326943255.jpg“반칙은 아니죠. 때리는 것만 아니면 괜찮다고 했잖아요.”

그는 분한 듯 이를 악물었지만 반박하지는 못했다. 내가 조금…… 아주아주 조금 비겁한 수를 쓰긴 했어도 어쨌든 반칙은 안 했으니까.

16567326943255.jpg“그럼, 전하께선 강아지랑 고양이 중에 뭘 더 좋아하세요?”

16567326982815.jpg“강아지랑 고양이?”

16567326943255.jpg“네. 가는 길에 동물 귀 모양 머리띠 살 건데, 특별히 그 정도는 고르게 해 드릴게요. 오늘 직접 머리에 쓰실 물건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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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67326982815.jpg“……그런 걸 저한테 씌운다고요……? 세상에…….”

16567326943255.jpg“충격받은 척하지 마세요. 전하께서 이겼으면 저한테 더 심한 거 시키려고 했으면서……. 그보다 대답 빨리요. 안 말하면 제가 아무렇게나 골라 버려요?”

그가 부끄럽다는 듯이 새빨개진 얼굴로 이를 악물었다. 하지만 약속은 지켜져야 하는 법. 마지못해 그의 입술이 살그머니 열렸다.

16567326982815.jpg“강아지…….”

16567326943255.jpg“그래, 이제 집에 가자, 멍멍아. 내일부터 장례식 치르느라 바빠질 테니까……. 아니, 오늘 밤부터 당장 바빠질 테니까 빨리 돌아가야지.”

16567326982815.jpg“……멍.”

그가 매우 침울한 표정을 한 번 짖고는 아까처럼 마법을 사용했다. 다만 이번엔 꿈속으로가 아닌, 우리가 아까 타고 온 마차로 이동하게 되었다. 대기하고 있던 마부가 황자궁으로 마차를 몰아갔고, 멍멍이와의 길었던 산책은 그렇게 끝맺어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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