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 네가 죽는 미래2022.01.21.
“미래에 태어날 우리 아이……?”
나는 에드의 말을 그리 멍하니 따라 읊다가, 곧 진심으로 설레게 되었다. 만약 정말로 그런 걸 볼 수 있다면 그야말로 행운이 아닌가.
“네, 보여 주세요!”
내 대답을 들은 에드는 곧바로 거울에 마력을 불어넣었다. 에드의 마력이 거울로 흡수되는 것이 내게도 얼핏 느껴졌다. 거울은 그야말로 밑 빠진 독처럼 마력을 쑥쑥 흡수했고, 그러다가 어느 순간 은은하게 빛을 발했다.
‘앗, 작동한다!’
다행히도 에드는 거울을 작동시키기 충분한 마력을 보유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점점 밝아지던 거울이 눈부실 정도로 환하게 번쩍이다가, 어느 순간부터 옅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그 시점에서 에드가 알려 주었다.
“마력은 충분히 넣었어요. 지금 보면 될 거예요.”
나는 잔뜩 설레는 마음을 품고서 거울을 응시했다. 그래, 그때까지만 해도 분명 설렘을 품고 있었다. 왜냐면 현재의 나는 행복했고, 미래 또한 이대로 쭉 행복하리라는 근거 없는 믿음을 갖고 있었으니까. 소설 빙의로 인생이 한순간 뒤바뀌는 경험도 해 본 주제에, 까맣게 잊어버린 것이다. 삶은 정말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기도 한다는 걸. 영원할 것 같던 행복도 물거품처럼 하룻밤 사이에 사라져 버릴 수 있다는 걸.
“아, 아니야…… 이건…….”
“부인? 왜 그래요?”
거울을 통해서 미래를 볼 수 있는 건 한 사람뿐인가 보다. 에드는 내가 무엇을 보고 있는지 모르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내 반응이 의아한 듯했지만, 나는 그에게 대답해 줄 수 없었다. 어떻게 대답할 수 있을까. 내가 검을 들고서 그의 심장을 찌르고 있다고 말이다.
‘아니야, 이건 미래를 보여 주는 거울 같은 게 아니야. 내가 에드를 찌른다고……? 무슨 말도 안 되는…….’
이것은 미래가 아닐 것이다. 이시스가 이상한 마법을 걸어 둔 물건일 뿐. 나는 그렇게 세뇌라도 하듯이 속으로 되뇌었다. 그러면서도 거울 속에서 벌어지는 충격적인 모습에서 눈을 떼지는 못했다. 일단 거울 속의 나는 웬 단검을 가지고 있었고, 그걸 에드의 심장에 박아 넣고 있었다. 무척이나 비통한 얼굴로. 그리고 에드는―
‘뭔가 달라. 내가 알던 에드가 맞나……?’
그 말대로, 무언가 달랐다. 물론 거울 속 내 모습도 지금의 나와 달리 조금 수척해진 모습이긴 했다. 하지만 에드는 그런 걸 넘어서, 무언가 근본적으로 다른 사람인 듯 느껴졌다. 버려진 사막처럼 쓸쓸하면서도 건조한 분위기, 꼭 수천 년을 살아온 사람처럼 말라붙은 눈빛, 무엇보다도…… 그의 귓가에는 상처가 있었다. 대체 뭐지? 의아함을 느낀 순간이었다.
“……!!”
거울 속의 에드가 이쪽을 바라보았다. 정확히 나를 보는 게 느껴졌다. 그는 단검에 찔린 채로 입술을 움직여서 내게 무언가 말했다.
‘보면 안 돼.’
입술의 모양으로 보건대 아마 그렇게 말한 것도 같았다. 그런 메시지를 남긴 그는 이윽고 이쪽을 향해 손을 들어 올렸고, 마력을 방출했다. ―쩌저적! 거울에 금이 가더니 그대로 깨져 버렸다. 파편이 내 쪽으로 튄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많이 놀라지는 않았다. 오히려 놀란 건 에드 쪽인 듯했다.
“부인! 괜찮아요?!”
나는 괜찮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제대로 대답해 줄 여유가 없었다. 머릿속에서 방금 거울로 본 장면이 끊임없이 재생되고 있었으니까.
‘내가 뭘 본 거지? ……뭔진 몰라도 어쨌든 미래는 확실히 아닐 거야. 에드의 분위기가 지금이랑 너무 달랐어.’
나는 손톱이 손바닥에 파고들어 아플 만큼 주먹을 꽉 움켜쥐면서 되뇌었다.
‘그래, 분명 아닐 거야…….’
아닐 것이다. 아니어야 했다. 만약 운명이 그렇게 흘러간다고 하더라도 내가 직접 바꿔 놓을 생각이었다.
“쯧, 불어넣은 마력을 감당 못 하고 깨진 것 같네요.”
“……그런가요?”
“네. 거울에서 마력이 한순간 치솟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폭발하듯이. 한계치를 넘었나 봅니다.”
에드는 그리 믿는 듯했다. 하지만 나는―
‘정말로 그런 걸까?’
에드의 말을 순순히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거울 안에서 에드가 내 쪽으로 손을 뻗으며 마력을 방출하는 걸 똑똑히 본 것이다. 실은 거울이 깨진 것은 ‘거울 속 에드’의 마력으로 인해 발생한 일은 아니었을까? 그 ‘거울 속 에드’의 마력이 자신의 것과 흡사해서 ‘현실 에드’가 착각한 거라면……? 아니, 다 떠나서 나는 더 근본적인 의문을 먼저 해결해야만 했다.
“그런데 전하, 이 거울로 본 장면이 정말로 미래일까요?”
“……?”
“실은 미래를 보여 주는 게 아니라…… 음…… 제가 가장 두려워하는 가상의 일을 보여 주거나, 그런 도구 아닐까요?”
“……? 두려움을 느낄 만한 걸 봤어요?”
그는 내 질문의 의도를 예리하게 눈치채곤 역으로 캐물어 왔다. 당연하지만 내가 당신을 살해하는 걸 봤노라고 말할 수 없었던 나는 거짓말을 지어냈다.
“……도박장에서 아주아주 큰돈을 잃고 있더라고요. 이런 게 제 미래면 곤란하니까, 그래서 여쭌 거예요.”
내 대답을 들은 에드가 “도박이요?” 하고 되묻더니 이내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나는 그의 웃음이 그치기를 기다렸다가 물었다.
“어, 어느 부분이 웃기신 거예요?”
“그게, 정말 생각도 못 한 미래라서요. 부인이 도박이라니……. 뭐로 잃었어요? 포커? 경마?”
“……경마요. 그런데 제가 본 게 진짜로 미래의 제 모습인 거예요?”
“네, 그 부분은 확실해요. 거울에 새겨져 있던 마법 수식만 보면요. 그래도 너무 걱정하진 마세요. 잃은 돈은 다시 채우면 되니까.”
그는 여전히 이 상황이 재밌는지 “제일 빠른 말이 몇 번 말인지는 못 봤어요?” 하면서 농을 건넸다. 물론 나는 그를 따라서 웃을 수가 없었다.
‘정말로 그게 내 미래라고? 내가 정말로 에드를 찌른다고……?’
현기증이 일어나는 기분이었다. 그런 중에도 필사적인 부정은 계속되었다.
‘아니지, 어쩌면 찔린 사람이 에드가 아닐 수도 있어. 지금의 에드랑은 묘하게 달라 보였으니까. 무엇보다 귀에 있던 그 상처…….’
그 상처가 신경 쓰였다. 현재의 에드는 성력 없이도 본인의 상처쯤은 거뜬히 치료할 수 있는 능력자다. 그렇다면 몸에 생긴 상처를 그냥 놔둘 리가 없을 텐데, 거울 속 에드의 귓가엔 찢긴 상처가 나 있었다. 꼭 원작의 에드처럼.
‘아니면 에드가 이 거울의 수식을 잘못 이해한 걸 수도 있고. 내일 파편을 주워 가서 아힌에게도 보여 줘야겠다.’
어차피 내일은 아힌에게 들어야 할 이야기가 많았다. 그 참에 거울에 대해서도 슬쩍 물어보리라. 나는 그런 계획을 세우며 초조한 마음을 간신히 잠재웠다. * * * 간신히 마음을 달랬다곤 해도 역시 어젯밤엔 잠이 오질 않았다. 새벽까지 심란하게 뒤척이다가, 나는 아침 일찍 아힌에게 찾아갔다. 물론 에드에게는 내가 혼자서 아힌을 상대하겠다고 말해 둔 상태였다. 아힌에게 거울에 대해서도 물어볼 생각이었는데, 옆에 에드가 있으면 깊게 물어보기 어려웠으니까. 아힌은 한나가 끓여다 준 값비싼 홍차를 우아한 자세로 음미하며 내게 물었다.
“그럼 이제 들어 볼까? 내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도움을 주길 바라는지.”
“그전에 잠깐만요. 이것 좀 봐 주세요.”
나는 본론에 들어가기에 앞서, 깨진 거울 조각을 그에게 내밀었다. 마법 수식이 적혀 있던 테두리 부분이었다.
“특수한 기능을 가진 마법 도구의 한 부분인데, 거기 새겨진 수식 좀 봐 주세요. 혹시 어떤 마법이 걸려 있었는지 알 수 있을까요?”
“흐음, 보자…….”
그는 제법 전문가다운 태도로 거울에 적힌 수식을 살피더니, 말했다.
“미래를 보여 주는 마법이었겠구나. 이 수식대로라면 효율성이 좀 떨어지겠다만.”
“안 돼……!!”
“음?”
차라리 에드가 수식을 잘못 해석한 것이길 바랐다. 그 거울이 미래를 보여 주는 게 아니길 바랐건만, 아힌마저도 내가 본 그것이 ‘미래’라고 말하고 있었다. 나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아힌에게 물었다.
“정말로 확실해요?”
“당연히 확실하지. 내가 이래 봬도 한때 대현자라고까지 불렸었는데, 마법 수식 해석 하나 제대로 못 할까. 새로운 수식을 만들어 내는 거라면 몰라도, 남이 만들어 놓은 수식을 보고 해석하는 건 그리 어려운 작업도 아니야.”
“…….”
“잘못 봤을 가능성은 없다. 이건 분명 미래를 보여 주는 도구였을 테지.”
나는 초조하게 손톱을 물어뜯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제가 그 거울 속에서 좀 안 좋은 걸 봤거든요. 제가 어떤 소중한 사람을, 음…… 때리는 모습을요.”
“오오?”
“근데 거울 속에 나온 그 소중한 사람이 실은 진짜 본인이 아니라, 그냥 닮은 사람이라거나…… 그럴 가능성도 있는 거죠? 정말로 때리고 싶지 않은 사람인데…….”
“글쎄? 소중한 사람이라면 네가 미래를 보자마자 한눈에 알았을 것 아니냐. 닮은 사람인지, 아니면 진짜 본인인지.”
정곡이라서 할 말이 없어졌다. 초조한 기색으로 침묵하는 나를 보며 아힌이 툭, 희망적인 말을 던졌다.
“뭐, 너무 걱정하진 말아라. 그 미래가 정 두렵다면, 네가 피하면 그만이니까.”
“……? 피할 수 있어요?”
“그래, 미래라는 건 언제든 바뀔 수 있다. 네가 이미 그 미래를 봤으니, 이제 그걸 피하고자 노력하기만 하면 돼.”
“아아…….”
“아까 소중한 사람을 때리고 싶지 않다고 했지? 그럼 일단 그 사람과 부딪힐 일을 웬만하면 만들지 마라.”
생각해 보니 이미 나는 원작의 정보를 가지고서 많은 운명을 바꿔 왔다. 아힌의 말마따나 이번에도 노력한다면 불행을 피해 갈 수 있을 터였다.
‘단검 같은 건 평생 손에 쥐지 말아야지.’
그렇게 노력한다면 언제가 될지 모를 그 미래에 내가 단검으로 에드의 가슴을 찌를 일은 없을 터였다.
“조언 감사해요. 덕분에 마음이 편해졌어요. 그럼 이제 본론으로 돌아가 볼까요?”
“그래, 말해 봐라. 뭘 바라는지.”
나는 바싹 마른 입가를 찻물로 적신 뒤, 말했다.
“이시스에 대해 아는 걸 전부 알려 주세요. 그의 목적, 그의 과거, 그리고…… 그의 약점까지도요.”
“…….”
내 요구에 그는 침묵했다. 꽤 긴 침묵이 이어졌음에도 차분히 기다렸다. 아힌에게 있어서 이시스는 오래 돌봐 온 사랑스러운 제자일 터. 그런 제자를 죽이려 드는 이들에게 제자의 약점을 노출하는 것은 분명 그에게 힘든 일일 테니까.
“……그걸 다 말해 주면 릴리아와 만날 자리를 마련해 주는 거겠지?”
“네. 물론이에요. 어머니가 계신 곳까지 제가 직접 모셔다 드릴게요. 우선 이시스의 목적부터 차례로 말씀해 주세요.”
내가 확실한 어투로 대꾸하자 그도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시스와 손잡은 녀석들은 대부분 착각하고 있지. 그 애가 그믐달 태엽을 노리고 있다고…….”
“태엽?”
“간단하게 말하면, 사용자를 과거로 회귀시켜 주는 고대의 유물이다. 이시스는 그게 아주 멋진 물건인 것처럼 말하고 다니는데, 사실은 미끼일 뿐이야.”
그가 단호한 어투로 이어서 설명했다.
“그 애가 진짜로 바라는 건 이쪽 세계를 마계와 연결하고, 마계의 식민지로 만드는 것뿐이니까. 하지만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에 협력해 줄 인간이 몇이나 있겠느냐.”
“네. 그렇죠…….”
“그래서 ‘회귀시켜 주는 고대의 유물’이라는 달콤한 미끼를 흔들어 가며 쓸 만한 인재들을 꾀어내는 거란다. 그게 마계에 있다고 말하면 다들 눈을 까뒤집고서 통로를 열려고 하니까 말이다.”
‘회귀’라니. 이는 ‘영생’과 더불어서 인간의 오랜 염원 중 하나였다. 과거로 회귀하여 저평가된 주식 같은 걸 사다가 부자 되는 꿈을 안 꿔 본 사람은 없을 터였다. 이시스가 사람들의 그런 염원을 이용해 노동력을 착취하고 있다는 부분은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해가 안 돼요. 그럼 이시스 본인은 왜 그 태엽을 노리지 않죠? 마계로 이어지는 통로 따위보다 훨씬 대단하게 들리는데.”
내 물음을 들은 아힌이 입가에 기묘한 미소를 머금었다.
“그래, 그렇게 대단한 물건처럼 느껴지겠지. 하지만 이걸 알아야 한다. 끝맺은 극을 그리워하며 장막을 들춰 봤자 배우들은 이미 무대에서 떠나고 없다는 걸.”
“……?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세요.”
“그러니까, 그 물건으로 일단 시간을 되돌릴 수는 있다. 온 세상의 시간이 뒤로 돌아가지. 단 한 명, 그 물건을 사용한 사용자의 시간을 제외하고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