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1. 너를 희생시킨 것이 뭐든 간에 (91/102)

91. 너를 희생시킨 것이 뭐든 간에2022.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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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멜레오 후작, 휘튼 백작이 동시에 눈가를 일그러트렸다. 그냥 무시하고 넘어가려고 했던 2황자비가 지금 감히 그들에게 묻고 있었다. 본래의 목적인 ‘통로’를 처리할 방안은 생각해 뒀느냐고. 한창 기세를 잡고 있던 후작과 백작은 당연히도 그 등장이 탐탁지 않았다.

1656732876713.jpg‘건방진 것이…….’

입지가 불안정하던 2황자를 실질적인 권력자던 몬트 공작과 연결해 준 ‘연결고리’. 그들이 생각하는 레냐의 위치는 그뿐이었다. 한껏 흥분 상태였던 후작은 정략혼 도구에 불과한 그녀에게 제 주제를 알려 주고 싶어졌다.

1656732876713.jpg“2황자 전하께서는 안 보이시는군요.”

그가 대뜸 2황자를 찾았다. 레냐에게 인사조차 건네지 않은 채로. 이곳에 와서 발언권을 가질 수 있는 건 2황자뿐, 황자비인 네가 아니라는 노골적 비아냥이었다. 레냐는 그에 차분한 어투로 대꾸했다.

16567328767142.jpg“전하께선 오지 않으세요. 그리고 몬트 공작께서도 마찬가지죠. 불참하실 거예요.”

1656732876713.jpg“……!!”

차후 제국을 실질적으로 지탱해야 할 젊은 차기 황제와 공작이 참석하지 않는다. 레냐의 그 발언은 회담처에 가득했던 불안감을 일순간에 증식시켰다. 그녀는 그 소란이 들리지 않는 것처럼 차분한 태도로 공석에 자리 잡고 앉았다. 그에 당황한 것은 후작이었다.

1656732876713.jpg“잠, 잠깐, 그 자리는……!”

원탁의 정가운데 자리. 둘러앉은 귀족들을 한눈에 볼 수 있게끔 마련된 상석. 레냐가 고른 자리는 원래라면 2황자나 몬트 공작이 앉았어야 할 자리였다. 후작과 마찬가지로 당황한 백작이 말을 더듬거리며 물었다.

1656732876713.jpg“2황자 전하와 몬, 몬트 공작 각하께서 불참하신다고 하셨습니까?”

16567328767142.jpg“네. 제가 황가와 공작가, 그 두 가문의 대표로서 이곳에 왔으니까요.”

16567328767177.jpg“……!!”

그녀가 도착해서 쏟아 낸 모든 발언이 귀족들의 혼을 빼놓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특히나 후작은 정신을 차리기가 힘들었다.

1656732876713.jpg‘이게 대체……. 2황자는 제 아내 하나 제대로 간수 못 하나……? 아니, 그전에 몬트 공작은 딸 교육을 대체 얼마나 엉망으로 시켰기에 이런……!!’

그곳 회담처는 그에게 다 차려진 만찬처럼 보였었다. 그 만찬을 새파랗게 어린 황자비가 갑자기 난입하여 빼앗으려 드니 노기에 속이 터져 나가는 기분이었다.

1656732876713.jpg“아니, 황자 전하와 공작 각하께서 불참하신다니요!! 말이나 됩니까? 이토록 중요한 자리에 대리를 보낸다는 것이!!”

16567328767142.jpg“후작.”

당장 뭐라도 부술 것처럼 목청을 높이던 후작을 레냐가 가만히 불렀다. 실핏줄이 터질 듯 불거진 후작의 눈과 고요하게 가라앉은 레냐의 눈이 허공에서 맞부딪쳤다.

16567328767142.jpg“이해를 못 하시는군요. 저는 그들의 대리로 온 게 아니에요.”

1656732876713.jpg“……!”

16567328767142.jpg“제가 그 두 가문의 직접적인 대표자입니다. 그리고―”

후작을 응시하며 차분히 말을 이어 가던 레냐가 불현듯 ‘짝’ 소리 나게 손뼉을 부딪쳤다.

16567328767142.jpg“감정적이고 난폭한 언행으로 회의의 진행을 방해하는 분란 종자를 무력으로 제지할 권한이 있는 유일한 사람이기도 하죠.”

곧 있자 문이 벌컥 열리더니, 레냐의 손뼉 소리를 신호 삼아 들이닥친 기사들이 후작을 제압했다. 후작의 고개는 기사들의 손에 붙들린 채로 순식간에 테이블 위에 처박히게 되었다.

1656732876713.jpg“놔! 놔라!! 내가 지금 누군 줄 아느……!!”

1656732876713.jpg“언성을 낮추십시오. 황자비 전하께 불온한 언행을 보이는 자는 제국법에 따라 즉결 처형하겠습니다.”

1656732876713.jpg“즉, 즉결 처형……?!”

기사의 말을 듣고서야 후작은 그들의 차림새를 다시 급하게 살폈다. 기사가 어깨에 걸친 푸른색 망토는 분명 몬트 공작가의 상징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회담처로 쏟아져 들어온 기사 중 절반은 은빛 자수가 새겨진 흰 망토를 걸친, 2황자의 기사들이었다. 그리고 그 두 가문의 기사들이 레냐의 말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는 것은 그 의미가 분명했다.

1656732876713.jpg‘뭣 모르고서 날뛰던 게 아니었던 건가? 정말로 저 여자에게 가문 기사들을 부릴 힘이 있다고?’

그쯤 되니 후작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곳 회담에서…… 아니, 어쩌면 앞으로 있을 모든 회담에서도 가장 강력한 발언권을 가진 것은 그녀였다. 노기로 달궈졌던 머리가 두려움 앞에서 비로소 식었고, 후작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명확하게 파악했다.

1656732876713.jpg“부디 무례를 용서해 주십시오, 황자비 전하!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신다면 두 번 다시 분란을 일으키지 않겠습니다!”

후작이 제 죄를 인정하자 레냐의 시선이 이번엔 휘튼 백작에게로 향했다. 후작에게는 은근히 이를 드러냈던 백작이지만, 이번엔 깊이 고개를 숙였다.

1656732876713.jpg“인사가 늦어서 죄송합니다, 전하. 휘튼 백작입니다. 저 또한 불필요한 화젯거리로 회담의 주제를 흐린 것을 마음 깊이 반성하는 바입니다.”

비로소 레냐가 손을 들어서 기사들을 내보냈다. 상황이 정리되었음을 깨달은 귀족들은 각자에게 주어진 자리에 얌전히 착석했다. 한 치의 흐트러짐조차 없는, 곧은 자세들이었다. * * * 잠잠해진 귀족들을 최대한 싸늘한 눈길로 훑어보는 동시에, 나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16567328767142.jpg‘역시 이러고 있을 줄 알았지.’

이곳에 모인 귀족 중 30% 정도는 전 황제의 말 한마디에 발바닥이라도 핥을 듯 충성스레 굴던 작자들이었다. 그랬던 만큼 그들의 마음엔 에드와 몬트 공작가를 향한 멸시가 깊이 뿌리박혀 있었다. 특히나 소란스레 굴던 저 후작…… 저자가 누군지 생각해 보다가, 나는 까맣게 잊었던 원작 내용의 일부를 뒤늦게 떠올릴 수 있었다. 저 작자는 원작에서 황제에게 이렇게 조언한 전적이 있는 자였다.

1656732876713.jpg“예르타 신성국의 수치라고 불리는 여자가 있습니다. 그녀를 공작의 반려로 짝지으십시오.”

1656732876713.jpg“그리하시면 공작이 제국의 다른 위세 좋은 가문 여자를 처로 들이지 못하니, 처가를 등에 업고 설치는 걸 미연에 방지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1656732876713.jpg“게다가 수치라고는 해도 어쨌든 명망 높은 가문의 여자가 아닙니까. 폐하께서도 면이 서실 것이며, 공작 또한 드러내 놓고 항의하지 못하겠지요.”

  그리고 황제는 저 간사한 작자의 조언에 따라서 내 어머니인 릴리아를 아버지와 이어 주었다. 이 세계를 활자로 접했을 땐 그저 스치듯 읽은 뒤 까맣게 잊어버렸던, 엑스트라들의 뒷얘기. 그러나 이젠 내 탄생의 비화가 되어버린 이야기이다.

16567328767142.jpg‘결론적으론 어머니랑 아버지랑 서로 사랑하셨으니까 잘된 일이긴 한데…… 그와 별개로 저 음험한 인간은 위험해. 여기서 어설프게 굴었다간 훗날 에드와 내게 해가 될지도 몰라.’

에드와 함께 왔다면 더욱 좋았겠지만, 지금 그는 마탑에서 이시스처럼 위험한 사상을 가진 마족 추종자들을 찾아다가 정리하는 중이었다. 그대로 내버려 두면 그중 간이 부은 몇몇이 마계의 통로를 더 넓히고자 수를 쓸 수 있는 긴급 상황이었으니까. 그런 고로 별수 없이 역할을 분담해야만 하는 상황. 즉―

16567328767142.jpg‘어떻게든 나 혼자서 정리해 봐야지.’

누군가에게 기대겠다는 생각은 접어야 했다. 나는 최대한 감정을 배제한 눈길로 귀족들을 하나하나 응시했다.

16567328767142.jpg“정확히 사흘 뒤입니다.”

맥락 없이 뱉은 말에 귀족들이 어리둥절하게 내 쪽을 보았다. 이목을 집중시키는 데엔 성공했으니, 곧이어서 상황의 심각성을 최대한 쉬운 말씨로 알려 주었다.

16567328767142.jpg“사흘 뒤면 통로가 지금의 수만 배로 확장되고, 위험한 마족들이 하나둘씩 쏟아져 나오겠죠.”

꼭 대리석 조각처럼 새하얗게 질려 버린 그들의 얼굴을 보면서 나는 담담하게 고했다.

16567328767142.jpg“소울스톤 광산에만 머물던 그 마족들이 수도의 한복판으로 쏟아져 나와, 거리를 나돌아 다니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이는 그들을 겁주기 위해 지어낸 과장이 아니었다. 마계로 이어지는 통로에 관하여 잘 아는 에드도, 그리고 아힌도 공통으로 말했었다. 통로를 열린 채로 그냥 두면 점점 더 그 크기를 늘려 갈 것이라고. 그래서 이번 통로가 위험한 것이었다. 기존에 에드와 이시스가 합심하여 열었던 통로들은 마족 한 마리가 나오고 나면 곧바로 닫히는 일회성 통로였던 데 반해, 림피크로 인해 열린 이 통로는 그 원흉인 림피크가 파괴되기 전까진 닫히지 않는다. 그러니 지금 순간에도 그것은 꾸준히 크기를 키워 나가는 중이었다. 나는 귀족들이 상황의 심각성을 파악하고 공포에 젖어 가길 차분하게 기다렸다.

1656732876713.jpg“그 괴물 같은 것들이 거리로……?”

1656732876713.jpg“잠, 잠깐! 그럼 황성과 인접한 우리 영지는……!!”

1656732876713.jpg“그전에 황자비 전하께선 그 정보를 어디서, 어떻게 입수하신 겁니까?”

누군가 마지막으로 던진 그 물음에 나는 이번에도 사실대로 대꾸했다.

16567328767142.jpg“아힌 윌러드 티렐. 그가 이 사태의 원흉인 림피크 씨앗에 관해 자세히 적은 편지를 제게 남겨 두었더군요.”

그들은 아힌의 이름을 듣고도 놀라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긴 세월 은둔했던 현자를 기억하는 이들이 이곳엔 없던 탓이다. 아니, 정확히는 없다고 생각했다.

1656732876713.jpg“아힌? 혹시 먼 과거에 대현자라 불렸던 그 사람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휘튼 백작이 놀란 기색으로 아힌의 이름을 되뇌었다. 아무래도 마법 쪽에 어느 정도 조예가 있었던 듯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아힌이 내게 적어 준 편지를, 그리고 함께 동봉돼 있던 카드를 테이블 위에 증거품으로 꺼내 놓았다. 편지에는 아힌이 제시한 림피크 해결책과 함께, 그가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내용이 함께 적혀 있었다. 이시스가 어머니께 저주를 걸었던 것, 그리고 그런 이시스를 아힌이 길렀다는 것…… 그 모든 것이 공개된 셈이었다.

16567328767142.jpg‘그래, 이렇게 하는 게 맞는 거겠지.’

만약 이 편지를 숨겼다면 아힌의 죄는 그대로 묻혔을 터다. 하지만 그는 마지막 순간 자신의 죄를 내게 오롯이 밝히고 참회했다. 더 숨기지 않겠노라고, 스스로 결정을 내렸다. 그러니 지금 와서 내가 멋대로 그의 죄를 숨겨 준다면, 그거야말로 그의 그 결심을 짓밟는 행위가 아닌가. 그러한 긴 고민 끝에 내놓은 그 편지는 곧장 커다란 파장으로 이어졌다.

1656732876713.jpg“선대 공작 부인께서 저주에……!!”

1656732876713.jpg“세상에, 이게 대체 무슨…….”

역시나 다들 어머니에 관한 이야기에 가장 관심을 두었다. 그런 중에 휘튼 백작은 내가 공개한 카드를 이리저리 훑어보더니, 곧 탄식했다.

1656732876713.jpg“이 카드…… 이건 분명 아힌의 물건이 맞는 것 같습니다. 그가 마법을 담은 카드를 자주 이용했다고 들었어요. 카드 귀퉁이에 적힌 이 사인도 분명 진짜입니다. 무엇보다 최근에 만들어진 물건처럼 보이고요.”

그가 알아서 감정까지 해 주니, 이제 귀족들은 내 말에 완전히 수긍하는 듯한 눈치였다. 성녀의 운명을 타고났음에도 이시스 탓에 실패작이라 불렸던 어머니……. 그런 어머니의 딸인 내 앞에서 감히 ‘이 편지는 가짜다’라고 주장할 수 있는 이는 적어도 여기에 없었다.

16567328767142.jpg‘다들 협조할 준비가 된 것 같네.’

모두가 입을 다물어 조용해진 분위기 속에서, 비로소 나는 본론을 꺼내 들 수 있었다.

16567328767142.jpg“이 편지에 적힌 대로, 우리는 림피크를 불태울 불꽃을 준비해야 합니다. 오직 정령의 힘으로만 구현할 수 있다는 그 검은색 불꽃을요.”

  * * * 긴 회의가 끝나고 황자궁에 돌아왔을 때는 이미 해가 저물어 있었다. 나는 지친 몸을 부부 침실로 이끌고 와선, 치유의 물약을 잔뜩 만들기 시작했다. 이 또한 곧 있을 혼란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 작업이었다.

16567328858739.jpg“부인, 언제 왔어요?”

막 마탑에서 돌아온 에드가 허공에서 불쑥 나타났다. 그는 마법 실력이 향상된 뒤로 블랙을 타지 않고 지금처럼 마법으로 이리저리 이동하곤 했다.

16567328767142.jpg“온 지 얼마 안 됐어요. 한 30분 전쯤에요.”

16567328858739.jpg“그럼 쉬지 않고…….”

에드는 내가 만들어 내고 있는 치유의 물약을 흘깃 살폈다. 그러곤 다른 질문을 던졌다.

16567328858739.jpg“회담은 어땠어요?”

16567328767142.jpg“좀 못된 사람들이 있긴 했는데, 잘 끝냈어요. 아힌이 주고 간 카드 덕에 다들 제 말을 믿는 분위기였고…… 무엇보다 아힌 말대로면 그 림피크를 없앨 수 있는 건 저뿐이니까요. 그걸 안 이상 제게 함부로 무례하게 굴 순 없었겠죠.”

그랬다. 아힌이 내게 남겨 둔 편지에는 림피크를 검은색 불길로 불태워야 하며, 이 검은 불길을 다룰 수 있는 것은 단 세 마리의 정령들뿐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중 두 정령은 ‘7월 늪지대의 검은 용’, 그리고 ‘2월 설산의 하얀 사자’였다. 그리고 알아본바, 이 두 마리의 정령은 각각 10년 전, 17년 전에 그 반려 인간이 사망하면서 이 세계에서 종적을 감춘 상태였다. 이제 남은 건 세 번째 정령인 ‘6월의 붉은 불사조’뿐이었는데, 그 정령은 찾을 필요도 없이 너무도 가까이에 있었다.

16567328767142.jpg‘삐약이의 정식 명칭이 그렇게 멋들어질 줄이야.’

아힌이 편지에 상세히 담아 둔 정보 덕분에 삐약이의 정식 명칭을 알게 된 나는 처음으로 미안함을 느꼈다. 아무리 애칭이라지만 불사조에게 ‘삐약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다니. 여하간 상황을 정리하려면 삐약이가 검은색 불길을 만들어야만 하는 상황…… 지금 내가 하는 모든 일은 그때까지 시간을 벌기 위한 것이었다.

16567328767142.jpg“…….”

나는 치유의 물약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에드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내가 아힌의 편지 내용을 그에게만은 필사적으로 숨겼기에 그는 아직 제대로 모르고 있었다. 아힌이 내게 어떤 역할을 맡기고 떠났는지, 내가 삐약이와 함께 그 검은색 불길을 만들기 위해 어떤 희생을 치러야 하는지도……. 만약 그걸 알게 되면 에드는 내 일을 방해하려 들 터다. 그러니 귀족들도 잘 입막음해 두고, 나 스스로도 내 계획을 철저히 그에게 비밀로 해야만 했지만―

16567328767142.jpg“하나만 여쭐게요.”

어깨를 감싸 오는 에드의 따뜻한 포옹 속에서 그만 마음이 무뎌지고 말았다. 말해 보라는 듯 나를 응시하는 에드에게 나는 숨겨야 할 진실을 한 조각 드러냈다.

16567328767142.jpg“만약 제가 남들을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약간의 희생을 치러야 할 상황이 오면―”

16567328858739.jpg“전부 없애 버리려고요.”

16567328767142.jpg“네……?”

그의 입가엔 여전히 자상한 미소가 걸려 있었지만, 그의 눈동자는 조금도 웃고 있지 않았다. 잘 벼려진 칼날같이 단호한 눈빛으로 그가 제 말을 되새겼다.

16567328858739.jpg“부인이 희생을 결심하게끔 만든 게 뭐든 간에, 전부 없애서 무로 되돌린다는 의미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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