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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조정에서 살아남는 법-83화 (81/317)

<구조 조정에서 살아남는 법 83화>

Chapter 19. 훈련 혹은 단련(3)

사람들마다 그런 영역이 있다.

이것만큼은 절대 지고 싶지 않다.

다른 건 몰라도 이것만큼은- 하고 생각하는 그런 영역.

그걸 건드리면 발끈하고 마는 거다.

전 회사에서 만난 김 대리는 엑셀만큼은 머리가 팽팽 도는 신입에게도 지고 싶지 않아 했고.

곽 부장이 10년 동안 키워 온 서비스에 한해선, 팀장이건 임원이건 건들지 못하도록 목소리를 높였듯이.

내겐 달리기가 그랬다.

그러니까 내 말은.

['기초 체력 단련' 수업의 마지막 스테이지 미션은…….]

다른 놈에게 지고 싶지 않다는 거다.

['달리기'입니다!]

지금까지도 그러했지만, 이번엔 더더욱.

"달리기라…… 이번에도 순간 이동으로 갈 건가?"

심지어 상대가 '일반인' 따위에게 졌다는 사실을 아직까지도 분해하는 저런 놈이라면 절대로.

"정공법으로 승부해선 절대 못 이긴다는 거, 알고 있지?"

"하, 그럼 네 축구화도 정공법이었나 보지?"

"그건…… 내 몸이나 다름없어!"

박공찬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그리고 아깐 내가 바람을 막아 준 덕분에 편히 왔지 않나? 잔머리 쓴 거잖아!"

"그건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

"설마 그게 정공법이라고 말할 건 아니지? 그에 비하면 축구화는 아무것도 아니야."

그나저나 이렇게 말 많은 놈인 줄은 몰랐다.

국가대표 주장이다 보니, 나도 인터뷰 영상을 몇 번 봤었다.

그땐 분명 '고생해 준 후배들 덕분입니다.'라거나 '다음 경기도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따위의 묵직한 대답만을 남겼었는데.

'본 모습을 숨겼던 건가?'

"내가 몸 쓰는 일에서 지다니. 그것도 일반인한테…… 말도 안 되지."

아니, 어쩌면.

"유럽 리그에서도 스피드로는 안 꿀렸어. 아깐 운 좋게 이겼는지 모르겠지만…… 이번엔 절대 방심하지 않을 거다."

'절대 지고 싶지 않은 영역.'

그게 박공찬은 몸을 쓰는 모든 분야였을지도 모르겠다.

"흐아앗!"

……저런 우스꽝스러운 소리까지 내며 열심히 몸을 풀 만큼.

하아.

「승리호를 이끌 '캡틴' 박공찬, 전격 복귀!」

「박공찬, 프리미어 리거의 차원이 다른 리더십!」

'캡틴' 박공찬의 차원이 다른 리더십이 이런 건 아니었을 텐데.

"흐어어어엇!"

우습네.

세상이 망하기 전까진 내 존재조차 몰랐을 유명 인사가 날 이기겠다며 저리도 몸을 풀고 있단 사실이.

"절대…… 안 진다……!"

하긴 저 정도의 승부욕이 있으니 저 위치까지 갔겠지.

비록 프로까지 가진 못했지만, 나도 경험해 봤으니까 안다.

어떤 종목이건 타고난 사람들은 넘치게 많고, 그런 놈들도 죽도록 노력해야 살아남는 세상이라는 걸.

하지만.

"열심히 하는 건 좋은데……."

그럴수록 심장이 더 뛴다.

놈이 승부욕에 불탈수록. 더 분개하고 열을 낼수록.

"나도 철들고부턴 트랙에서 져 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

"……?!"

왜일까.

단지 추가 보상으로 주어지는 체력 스탯 때문일까.

그 때문이라면, 어째서 놈은 '완벽하게 이기고 싶다'라는 생각이 드는 걸까.

"트랙? 육상을 했나?"

"그것보단……."

흠칫 놀라 묻는 박공찬에게 일러 줬다.

"이번 미션, 네가 해 오던 달리기랑은 다를 거야."

"뭐?"

"그냥 뛰게 하진 않을 테니까."

그러자 흘러나오는 안내 방송.

[다가오는 장애물을 피해 목적지에 먼저 도달하세요!]

"!!"

역시.

뜀박질에서 이긴다고 순순히 줄 리가 없지.

"어떻게 알았……."

"준비해. 시작한다."

*   *   *

탕!

총소리가 들렸다.

출발 신호다. 본능적으로 알았다.

그리고 그건 나처럼 흰색 라인 뒤에서 대기하던 박공찬도 마찬가지.

타앗-!

웅크린 몸을 쏘아 보냈다.

상체를 일으키는 대신, 하체를 용수철처럼 튕겨서.

'!!'

몸이 가볍다.

아까 받은 체력 스탯 덕분일까.

실바람이 허벅지부터 장딴지까지를 뒤에서 밀어주는 느낌이다.

폐활량이 늘어난 건지 호흡도 가뿐하고.

그렇게 열심히 올라온 절벽 위에서, 내 생애 최고의 컨디션으로 레이스를 시작했을 때.

"……?!"

"무슨 소리지?"

수풀 너머에서 들려오는 묵직한 무언가가 구르는 소리.

드르르르르륵!

무거운 문을 밀어서 여는 것 같기도 하고, 아주 멀리서 천군만마가 달려오는 것 같기도 한 소리다.

뭘까.

이번 미션을 방해할 '장애물'은.

평범하게 허들이나 함정 따위는 아닐 테고.

'설마 마물이려나.'

그리 강하지 않은 마물이라면 큰 문제는 없을 거다.

최대한 빨리 해치우고 달리면 되니까.

'박공찬이 마물을 상대할 때 어떤 능력을 쓰는지도 궁금하고.'

[장애물이 생성되었습니다!]

그러니 뭐가 나오든 상관없…….

['꼬마 돌'을 처치하세요!]

……지가 않네.

드륵! 드르르르르륵-!

듬성듬성 심어진 나무들 사이로 거대한 돌덩이가 눈에 들어온다.

누군가 일부러 둥글게 깎은 듯, 매끈한 바윗덩어리.

게다가 엄청난 속도로 다가오고 있는지 그 크기가 기하급수적으로 커지기까지.

"돌을 처치하라고?"

"저걸 어떻게 처치하라는 거야?!"

박공찬과 처음으로 생각이 통했다.

하아.

게다가 꼬마 돌이라니.

"저 크기가 어딜 봐서 꼬마야?"

주먹만 했던 꼬마 돌은 몇 초 지나지 않아, 박공찬보다 더 커져 있었다.

그 우람한 덩치에 놀라야 할까, 아니면 성큼 다가온 저 속도에 놀라야 할까.

아니, 일단…….

드르르르르륵!

"가속!"

놀랄 틈도 없이 몸부터 피했다.

상황 파악을 하는 사이 코앞까지 들이닥친 꼬마 돌들을 피해.

달려온 꼬마 돌은 총 다섯.

그중 세 개가 나를, 두 개가 박공찬을 노리고 굴러왔다.

그래서.

타닥!

세 개의 경로를 계산해 비어 있는 방향을 찾아낸 뒤, 죽기 살기로 뛰었다.

그리고 잠시 후.

째깍-!

…… 드르르르륵!

돌덩이들이 제 속도를 되찾자.

쾅-!

동서남북 사방에서 굴러온 돌덩이가 내 근처에 있던 아름드리나무에 몸을 처박았다.

그러자 종잇장 구겨지듯 으스러지는 나무.

쩌억! 콰드드득-!

고목이 바스러졌다.

풍성한 가지는 말할 것도 없고, 양팔을 다 뻗어도 감싸 안지 못할 만큼 굵은 몸통이 꼬마 돌에게 스쳤다는 이유로 찌그러져 버렸다.

'미친.'

저기 가만히 있었으면, 머리가 터지고 온몸의 뼈가 으스러졌을 거다.

어쩌면 종잇장도 아닌 두부처럼 으깨져 버렸을지도.

쓸데없이 생생하게 떠오르는 상상이 땀방울이 되어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동안.

"X발!"

저 뒤에서 욕지거리가 들려왔다.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는 굴러오는 돌을 노려보는 박공찬.

뭔가 준비하는 티가 팍팍 나는 굳은 얼굴이다.

그래서 뛰어가려는 발걸음을 늦추고 놈을 주시하자.

데구루루르르르-!

놈이 굴러오는 꼬마 돌을 노려보며 오른쪽 다리를 뒤로 보내더니.

"슛!"

킥을 날렸다.

'설마 스킬 이름이 슛이야?'

그나마 크기가 작은 꼬마 돌, 그러니까…….

지름 약 2m가량 되는 바윗덩어리를 발로 찼다.

쿠웅-!

그러자 돌덩이와 사람 발등이 만났다고는 믿기 힘든 소리가 울려 퍼진 뒤.

"으윽!"

박공찬은 주저앉았고.

쿵!

발에 차인 꼬마 돌은 반대로 굴러가 근처에서 달려들던 돌을 쳐 버렸다.

마치 당구공처럼, 굴러오던 돌의 방향을 바꿔 버리면서.

"X발…… 다리가……!"

주저앉은 박공찬이 괴로운 숨을 뱉었다.

다리가 부러졌는지 부서진 건지 모르겠지만, 살긴 살았다.

하지만 문제는.

데구루루르르-!

부딪힌 꼬마 돌이 내 쪽으로 굴러왔다는 안타까운 사실과.

쿵! 쿵! 쿵!

그 돌이 아까 내가 피한 탓에 나무에 머리를 처박았던 세 개의 꼬마 돌에 부딪혀 버렸다는…… 더 안타까운 사실.

['꼬마 돌'을 처치하세요!]

다시금 흘러나온 안내 방송과 함께.

덜컹! 덜컹!

멈춰있던 꼬마 돌들이 고장 난 프린터처럼 덜덜거리더니…….

드르륵! 드르르르르륵-!

추진력을 되찾아 버렸다.

날 향한 추진력을.

타앗-!

머릿속에서 생각을 지우고 다리를 움직였다.

'결승선으로 간다.'

저 돌덩이들보다 빨리 도착해서, 이 이상한 장애물 달리기를 끝낸다.

"이런……!"

그러자 떨리는 목소리가 뒤통수를 때렸다.

'캡틴' 박공찬의 죄책감과 무책임함이 뒤섞인 목소리가.

"아, 알아서 피할 수 있지?"

……저 개자식.

*   *   *

드륵! 드르르르르르륵!

드르르르륵!

아스라이 보이는 결승선까지 곧장 직선으로 뛰고 싶었으나, 망할 꼬마 돌 여섯 개가 사방에서 달려들었다.

내 몸에 자석이라도 붙은 듯 달려드는 돌덩어리들.

그것들을 이리저리 피하며 달려 나가는 내내 박공찬의 외침이 들어와 꽂혔다.

"……미안하게 됐다!"

눈앞에서, 뒤통수에, 귓등에, 다시 뒤통수에.

답할 여력도 없어 무시하고 있자니 혼잣말인지 뭔지 모를 대사가 끊임없이 날아온다.

절뚝이며 걷는 둥 뛰는 둥 하는 와중에도 입은 살아 있는 모양.

"난 팀도 이끌어야 하고 기다리고 있는 후배들도 있으니 어쩔 수……."

"됐고."

그래서 말을 끊었다.

주저리주저리 변명을 들어 줄 여유도, 의지도 없어서.

대신.

"다리는 괜찮지?!"

"뭐?"

내 쪽에서 물음을 던졌다.

그러자 떨떠름하게 대답하는 박공찬.

"어? 어."

갑자기 말이 없어지더니, 잠시 후 들릴락말락 하는 소리로 중얼거렸다.

"이 상황에 내 걱정을……."

"아, 걱정돼서 물은 건 아니니까 오해하지 말고."

"……?!"

저 꼬마 돌이 만약 '석화' 스킬의 금강석만큼의 경도였다면, 저 정도 정신머리를 유지할 수 없었을 거다.

발등이고 다리가 골절되는 대신 가루가 되어 으스러졌을 테니.

그렇다면.

'가속이 아니라도 카드는 많아.'

"소환."

이윽고 기다렸다는 듯 모습을 드러낸 흑검을 쥐었다.

화염파천검.

파앗!

보주를 건드리지도 않았는데 홧홧한 열감을 내뿜는 놈이 손바닥에 달라붙었다.

내가 쥔 게 아니다.

검이 내 손을 제 몸에 둘렀다.

우웅-!

그러자 흠칫 놀라며 비명 같은 물음을 던지는 박공찬.

"설마 저 돌을 검으로 벨 생각인가?"

"맞는데."

"저걸 다?! 너무 무모해!"

"그럼 이리 와서 같이 차 주던가."

절뚝이는 다리로는 무리겠지만.

"……."

대책 없는 태클을 사양한 뒤, 검을 치켜들었다.

양팔을 쭉 뻗어 최대한 높이.

그리고 무자비하게 들이닥치는 꼬마 돌을 향해.

스걱!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그었다.

콰득!

단단한 돌덩이를 얇은 검날로 베어 내는 일.

꽉 들어찬 속을 파고드는 것도, 그걸 매끈하게 잘라 내는 것도, 쉽지 않다.

그럼에도.

스걱!

화염파천검의 예기(銳氣)에 무리 없이 잘려 나가는 꼬마 돌.

'잘렸어!'

그리고 바로 다음 순간.

드륵!

굴러오던 돌덩이가 멈췄다.

"뭐, 뭐야? 어떻게 멈춘 거지?!"

"보면 몰라?"

잘린 면이 바닥으로 간 탓에, 더 이상 둥근 구가 아니었기 때문에.

만약 꼬마 돌이 생명이 있고 체력이 있는 마물이었다면 목이라도 따야 했겠지만, 돌은 다르다.

'굴러오지만 않게 하면 되니까.'

어쨌든 작전이 먹히는 걸 봤으니.

"가속!"

시간을 멈춰 두고 남은 돌들을 모두 베었다.

스걱-!

그렇게 굴러오는 돌 여섯 개를 모두 멈춰 세우고, 다시 시작한 레이스.

그대로 방향을 바꿀 필요도, 다른 주자를 신경 쓸 필요도 없는 심플한 트랙을 빠르게 주파했다.

그리고 이내 시선의 끝에 나타난 파란색 결승 테이프.

회색 산을 배경으로 걸려 있는 노란색 플래카드가 눈에 확 띈다.

「FINISH」

다 왔다.

결승선까지 400m는 될까.

이대로 달리기만 하면 된다.

'제발 그냥 끝내자.'

그리 생각하며 결승선에 다가섰다.

남은 거리는 약 200m.

그렇게, 이제 슬슬 안심하려는 순간.

[잠들어 있던 '꼬마 돌'들이 결승 주자를 인식합니다!]

마지막 어그로가 끌려 버렸다.

그것도…….

결승선 뒤에 있던 바위산에게.

'산이 아니었어!'

말 그대로 산처럼 쌓여 있던 둥근 바위들이 쏟아져 내렸다.

그렇게 수백, 수천의 꼬마 돌이 달려온다.

데구루루르르르르르르르르-!

귀가 먹어 버릴 정도의 굉음으로, 온 세상을 울리며.

그것도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어마어마한 속도로.

당연한 얘기다.

원래 꼬마 돌의 속도에 내가 다가가는 속도까지 더해진 거니까.

이대로라면.

'결승선에서 부딪힐 거야!'

그럼 미션은 통과하지만 내 몸은 으스러지고 말 거다.

체력을 늘려 보겠다고 목숨을 내놓는 거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일단 통과부터!'

타닥!

결승선을 향해 달렸다.

날 노리고 쏟아지는 바위의 파도를 향해, 곧장 달렸다.

그리고 마침내.

타닥!

파란색 결승 테이프와 넘실대는 잿빛 파도를 보며, 스테이지 완주를 코앞에 둔 순간.

"소환!"

꺼내 들었다.

연보라에게서 얻은 비파를.

'스탯 보상이 줄어드는 체력을 메우고도 남아!'

대를 위한 소를 희생.

살을 주고 뼈를 취하는 심정으로 현을 켰다.

그러자 울려 퍼지는 메시지.

[지국천왕(持國天王)의 비파(琵琶)가 평범한 인간의 연주를 거부합니다!]

[연주자의 생명력을 갈취합니다!]

흠칫!

줄에 닿은 손끝에 찌릿 전기가 올랐다.

몸속의 물기가 빠져나가는 낯선 감각.

그 불쾌한 기분에 나도 모르게 손에든 비파를 놓치려는 찰나.

♬-!

구슬이 굴러가는 듯 맑은소리와 함께…….

[지국천왕(持國天王)의 비파(琵琶)가 대상자의 경이로운 업적, '파천(破天)'에 반응합니다!]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천왕(天王)의 유지가 하늘길에 족적을 남긴 대상자에게 호기심을 갖습니다!]

그러니까, 천왕이고 하늘길이고 내 알 바 아니긴 한데.

[지국천왕(持國天王)의 비파(琵琶)가 대상자 '이은호'의 '자격'을 재검토 중입니다!]

그 재검토라는 거…….

'빨리 좀 해 주면 안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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