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 조정에서 살아남는 법 102화>
Chapter 23. 신입사원 이은호(2)
지난번, 가장 많은 후원금을 받아 렌즈를 얻었던 미션.
그때도 이렇게 시상식이라는 걸 했었다.
분명 애드벌룬 같은 스크린이 하늘에 떠서, 용산구 전역에 내 얼굴을 알렸었지.
'그땐 그게 유난스럽다고 생각했었는데…….'
아니었네.
지역구 행사라고 소박하게 진행한 거였네.
'몰랐지, 나는.'
파앗-!
상을 주겠다고 대낮에 무려 '태양 빛'을 꺼트릴 줄은.
"바, 밤이 됐어?!"
"뭐야! 안 보여!"
갑작스레 찾아온 어둠.
경악한 사람들의 비명 소리가 들려온다.
그리고 그 가운데로.
파앗-!
눈부신 핀 조명이 떨어졌다.
연극 무대에서 관객을 지우고 주인공을 비추듯, 거대한 단상과 나만을 비추는 불빛.
단상까지 이어지는 빛 길이 발치서부터 깔렸다.
"허…… 역시 청년이었구먼!"
"근데 이상하다? 십만 명 중에 1등이라는데, 왜 하나도 안 놀랍지?"
어둠 속에서 경비 아저씨의 탄식과 이예지의 갸웃거림이 귓가로 전해진다.
"십만이 아니라 백만이었어도 저 새끼지. 저 자식 말고 누가 받겠어?"
"잘 다녀오십시오, 형님! 자랑스럽습니다!"
욕쟁이와 재혁이도 뿌듯한 목소리로 한마디씩을 거들었고.
그렇게 나머지 일행들을 등지고 단상으로 향했다.
저벅.
내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었던 걸까.
뒤를 돌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들려오는 웅성거림이 소란스럽다.
"저 새끼가 이은호라고?! 말도 안 돼……!"
"오, 오빠! 하나도 안 우락부락하잖아! 어쩐지 아까 검 쓸 때부터 달라 보이더라니……."
"뭐? 지금 저 새끼 편드는 거야?"
하아.
뒤통수가 따갑다 못해 얼얼하네.
"내 포인트 다 뺏어 가 놓고 저런 사람한테 진 거야?"
"내가 언제 뺏어 갔어? 말조심 안 해?"
"맞잖아!"
"거 조용히 좀 안 합니까?"
그 소란에 누군가 관심 없다고, 나가서 떠들라며 타박하자.
"나 좀 보자. 이리 와."
이를 악문 한마디를 끝으로 명승태는 사라졌다.
"저 사람이……."
"그럼 도대체……."
"어떤 능력……."
생전 이렇게 많은 군중의 시선을 받은 건 처음이다.
남들 시선 따위 크게 신경 쓰는 편은 아니었으나, 그 시선이 십만에 달하는 규모라면 다르다.
[대상자 이은호, 서둘러 주세요!]
십만 개의 눈이 내 걸음걸이에 달라붙는다.
그 시선이 너무 무거워서 발이 잔디밭 속으로 푹푹 가라앉는 기분.
하지만.
저벅.
나무토막 같던 다리로도 뛰었던 나다.
이 정도 무게로는 멈출 수 없지.
[대상자 이은호, 서둘러 주…….]
"갑니다."
어둠 한가운데, 쏟아지는 조명 속 주인공이 되어 걸었다.
사각, 사각, 사각.
한마디 남기고는 풀밭을 지나.
스륵!
단상까지 이어진 붉은 카펫을 밟았다.
푹신한 카펫이 고개를 바짝 들어야 겨우 보이는 단상 위까지 주욱 깔려 있어, 마치 하늘까지 이어진 계단을 보는 기분이다.
나만을 위한 레드카펫을 걸어가고 있자니, 각종 번역 투의 대화들이 귀에 꽂힌다.
"아앗! 저분이 최강자님이신가요?!"
"멋있어-!"
애교 섞인 여자들이나.
"오- 저 동양인 꽤……!"
"……그치?"
"학생인가? 어려 보이는데 대단……."
풍성한 중저음의 감탄사 따위를 추임새 삼아 계단을 올랐다.
탁!
올라서자 보인 건 거구의 사내.
그리고 그 뒤로 오와 열을 맞춰 착석한 사람들이었다.
강당에서 훈화 말씀을 하는 교장 선생님과, 그 뒤에 앉은 교사들 같은 풍경.
다만 차이점이 있다면.
철컥! 끼기긱! 깡-!
교사들이 죄다 무시무시한 무기를 하나씩 꿰차고 앉아 있다는 점이려나.
어쨌든.
'백 명은 족히 넘겠어.'
수많은 얼굴 중 아는 얼굴도 눈에 띈다.
"!!"
관리자 하로나.
익숙한 양 갈래머리를 가지런히 하고 앉아 있는 모습에, 이상하지만 안심이 됐다.
나름 협상도 했고 몇 번 대화도 했다고 친밀감 따윌 느끼는 걸까.
[이번 기수의 시상은 특별히 관리국장님께서 맡아 주실 예정입니다!]
[놀라셨죠? 저 세라도 처음 본답니다!]
[엄청난 사건이네요-!]
호들갑스러운 사회자의 말에 따라 거구의 사내 앞에 섰다.
'이 사람이 관리국장.'
사내의 커다란 그림자가 태양을 가렸다.
그래서일까.
일순, 공기가 차갑게 내려앉는 기분.
국장은 터질 듯한 정장 차림에 검은 머리를 말끔하게 넘겼다.
얼굴을 모로 가로지르는 흉터 자국이 인상적인 장수의 외양이다.
'정장보다는…….'
핏빛 갑옷이 더 어울리겠다 생각한 순간.
흡!
황급히 숨을 들이쉬고는 고개를 팍 숙였다.
의도한 건 아니었다.
나도 모르게 몸이 반으로 접혔다.
쳐다보기만 했을 뿐인데, 몸을 짓누르는 압박감이 폐부까지 스며들어서.
'!!'
엄청난 덩치에 놀란 걸까.
석상 같은 위용에 압도당한 걸지도.
숨이 막힌다.
누군가 내 뒤통수를 누르고 그리 말하는 것 같았다.
숙여라.
그리고 꿇어라.
감히 쳐다봐선 안 된다.
존재 자체만으로 전해지는 압박.
그리고.
'몸이…… 말을 안 들어!'
그 강압적인 압박감에 대한 반발심에, 겨우 고개를 들어 얼굴을 올려다본 순간.
"!!"
눈이 마주쳤다.
지하의 어둠을 담은 짐승과도 같은 눈.
까슬한 어둠이 쏟아졌다.
'허억……!'
각막을 뚫고 들어와 전신으로 쏟아지는 작열감.
공허를 들여다보는 듯한 근원적 공포.
목이 텁텁하다 못해 찢어졌다.
온몸의 수분이 빠져나가는 기분.
"커헉……!"
그리고 그때.
위압감에서 벗어나려 발끝과 손끝을 움찔거리며 발버둥 치던 그때.
'하로나!'
양 갈래 소녀와 눈이 마주쳤다.
하지만…….
[……!]
모른 척 눈을 피하는 하로나.
저, 저, 저……!
'저 치사한 꼬맹이가……!'
왠지 열이 받아 녀석을 노려봤다.
아주 잠깐, 가볍게.
그리고 그 순간.
[대상자 이은호, '부활(復活)' 특전 활성화!]
[죽음의 공포를 이겨 냈습니다. 웬만한 정신지배의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정화된 기운으로 인해 음험한 기운의 침입을 막아냅니다.]
[남은 지속 시간 : 8시간]
봇물이 터지듯 터져 나온 메시지와 함께 숨통이 트였다.
푸홧!
하아.
숨을 몰아쉬었다.
그러자 머리 위에서 들려오는 침음.
[흐음.]
국장이 가라앉은 섬처럼 묵직한 음성으로 말했다.
[대상자 이은호.]
땅보다 깊지만 드높은 하늘만큼 고고한 목소리.
[나의 기대를 계속해서 벗어나는 대상자여.]
"예."
국장이 불렀고, 그에 답했다.
[너는 늘 나의 시험을 통과하되 통과하지 못하더구나.]
"제가 통과한 시험은 무엇이고, 통과하지 못한 시험은 무엇이었습니까."
알 수 없는 말을 하기에 질문했다.
설명은 없었지만.
[뛰어나다는 건 인정한다만…… 성에 차지 않는 질서라도 따르거라. 그리하면 내 너의 풍파를 모두 막아 줄 터이니.]
"……."
[하나.]
성에 차지 않는 질서.
'회사'의 규율이자 시스템의 정도(正道)를 말하는 거겠지.
……중요한 순간마다 내가 거슬러 왔던.
[혼자 걷는 길에는 방파제가 없을 것이다.]
대답 대신 고개를 숙였다.
이번에는 자력으로.
왜냐하면 나는.
'앞으로도 내 길을 걸을 거니까.'
그러므로 지금은 숙인다.
[받거라. 너를 위한 것이니.]
* * *
[그럼 다음으로, 신입사원 대표 시상식을 진행합니다!]
세라의 선언과 함께 시상식이 시작됐다.
한데 모인 관리자들 사이에 감도는 전운.
[뭐야. 하로나, 설마 기대하는 건 아니지?]
[꺼져.]
신입사원 대표가 시사하는 바는 크다.
담당하는 대상자가 해당 기수에서 1등을 했다는 건, 곧 관리자의 실적으로 직결된다.
그래서 대부분의 관리자들은 '될성부른 떡잎'을 초장에 고르고, 거기에 화력을 집중하기 마련.
[아니, 하도 답답해서 그러지. 투자를 해도 왜 길에 굴러다니는 돌덩어리에 하냐고! 검증된 보석들을 놔두고.]
[신경 꺼 줄래?]
[내가 봤을 때 넌 너무 감성적이야. 꽃밭에 산다고 해야 하나?]
[안 닥쳐? 네 머리를 한 번 꽃밭으로 만들어 줘?]
주광(周廣), 저 말라빠진 자식이 속을 긁는 게 바로 그 부분이었다.
'될성부른 떡잎'은 보통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 않는다.
구조 조정이 시작되기 전에 이미 두각을 나타냈던 이들이 대부분.
그래서 기존 세계에서 큰 업적을 남겼던 위인이나 유명인 중에 고르는 게 보통이지만.
[그러게 왜 중중(中中)의 대상자를 픽했어? 바보같이.]
[…….]
[뭐, 하긴 5천만밖에 안 되는 구역에서 고르려니 힘들긴 했을 거야. 이해해.]
이번에 주광이 꿰찬 건 14억 인구의 CN 구역.
지구에서 가장 많은 대상자가 분포되어 있는 구역이다.
하로나가 고작 5천만인 구역에서 옥석을 골라낼 동안 주광은 무려 14억 중 고르고 또 골랐으니, 평균치가 비교될 리 없다.
압도적인 차이.
[어떻게 1등 한 번을 못 하냐?]
늘 이런 식이었다. 주광 저 얄미운 놈은.
하지만.
[그만 고집 피우고 내 밑으로 와. 내가 올라가면 실무자 한 명 필요하니까.]
[닥쳐! 이번엔 달라.]
이번엔 다르다.
하로나는 확신했다.
적성검사면 적성검사.
인성검사면 인성검사.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는 녀석이 있으니까.
신체검사 때 문제가 좀 있긴 했지만, 웬일인지 센터에서 힘을 써서 무사히 넘어갔고.
[먼저 신입사원 대표는 13지구의 입사 시험을 가장 우수한 성적으로 통과한 대상자로, 아주 공정하게 결정되었음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호명된 대상자는 즉시 단상 위로 올라와 주세요!]
[그럼, 그럼. 아주 공정하게 결정했겠지. 그러니까 결과에 승복하자고, 우리. 알겠지?]
그래서.
[13지구 신입사원 대표는…….]
두근. 두근. 두근.
하로나의 심장이 콩닥콩닥 뛰었다.
[축하합니다!]
[ROK-SEO 구역의 이은호-!]
[앞으로 나와 주세요!]
세라의 선언과 동시에 희비가 엇갈렸다.
[꺄악!!]
[어, 어떻게……!]
하로나는 짜릿함에 눈코입을 모았다 터뜨렸고.
주광의 얼굴은 싹 굳었다.
[무슨 수작을 부린 거야?! 어떻게 된 거냐고!]
그렇게, 누구보다 결과에 승복하지 못한 주광이 언성을 높인 순간.
[소란스럽군.]
누군가 주광의 어깨를 탁! 짚고.
콰득!
바스러뜨렸다.
[……!!]
주광이 소리 없이 포효했다.
아니, 소리를 질렀으나 막혔다.
어깨에 걸친 두터운 손의 주인이 막아 버린 거다.
소리의 감옥에.
[처, 처장님!]
하로나는 떨었다.
거대한 그림자를 드리우며 나타난 건 관리국 처장, 극량(極量).
권력의 뒤안길에 밀려났다곤 하나, 그래도 한때 관리국을 제패했던 분.
심기를 건드려선 안 된다.
더 이상의 소란은 위험하다.
[죄, 죄송합니다.]
그리고, 겨우 정신을 차리고 단상을 쳐다봤을 때.
[뭐, 뭐야?! 국장님께서 왜……!]
끔찍한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오직 이은호만을 향해 쏘아 보낸 국장의 살기.
일명 '보이지 않는 손'이라 불리는 특수 능력이, 갓 입사한 신입의 머리 위로 쏟아지고 있었다.
큰일이다.
뭔가 잘못된 걸까.
하로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외쳤다.
[인간의 몸으로 버틸 수 있는 압박이 아닙니다! 말려야……!]
[보아라.]
하지만 말리는 처장의 시선을 따라가자, 그 끝에는.
"커헉……!"
피 같은 숨을 내뱉는 이은호가 있었다.
[……버텼어?!]
털썩!
저도 모르게 벌떡 일어섰던 하로나가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말도 안 된다.
국장의 '보이지 않는 손'은 본인보다 격이 낮은 이들에게는 그야말로 무적의 능력.
그녀조차 버티긴 힘들진 데…….
[설마…… 나보다…….]
강해진 건가?
설마, 그럴 리가…….
말도 안 되는, 아니 말은커녕 말의 티끌의 티끌도 안 되는 생각이었으나 그녀는 진지했다.
그 정도의 충격이었기 때문에.
온몸에 힘이 빠지는 듯한 기분을 느낀 순간.
[!]
눈이 마주쳤다.
그 와중에 관객석에 시선을 돌릴 여력이 남았다니!
그것도 저런 눈빛으로……!
흠칫!
[……!]
그렇게 말도 잊고 당황한 하로나는 자신도 모르게 눈을 피해 버렸다.
그러자 자그마한 어깨를 두드리는 두꺼운 손.
[진정하거라.]
[……흉한 꼴을 보여 드렸습니다.]
겨우 정신을 차린 하로나가 아랫입술을 깨물고 말했다.
그러자 이해한다는 얼굴로 고개를 젓는 처장.
하지만 여태 담담했던 처장조차도.
[저건……!]
국장이 건넨 상자 속의 물건을 보자마자 입을 떡 벌렸다.
다른 모든 관리자들이 그러했듯이.
[설마…….]
[마, 말도 안 돼!]
[국장님께서 왜……!]
고풍스러운 상자 안에 든 건 작은 스노우볼이었다.
눈 대신 고요한 사막이 들어 있는.
[저건 분명…… 모래의 늪이야!]
국장의 고유 능력인 모래 지옥.
그를 소환하는 아티팩트임에 분명하다.
이렇게만 봐서는 일회용인지 다회용인지 알 순 없지만…….
[국장님께서 직접 권능을 나눠 주시다니……!]
권능을 담는 것도, 그걸 남에게 주는 것도 지난 몇백 년간 일어나지 않았던 일.
그야말로 특혜요, 국장의 기대가 남다르다는 것을 보여 주는 증거였다.
그런데! 어째서!
[쟨 왜 저렇게 시큰둥해?!]
저 감흥 없는 얼굴이라니!
[저, 저, 저…… 진짜!]
그렇게 하로나가 분통 터진다는 듯 가슴을 탕탕 치는 동안.
[역시…….]
옆에 선 사내는 덤덤한 이은호를 응시하며 눈을 빛내다가…….
스윽.
자리를 떴다.
[어디 가십니까, 처장님?]
[잠시 내려갔다 오지.]
[예? 아직 행사가 끝나지 않았는데…….]
서둘러 다가온 수행원이 물었으나, 대답은 듣지 못했다.
[어딜 가신대?]
[몰라.]
그저 형형하게 반짝이는 눈빛과.
육중한 체구에 걸맞지 않게 서두르는 걸음으로 보아…….
무언가 재밌는 일을 하러 가시나 보다- 짐작만 할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