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구조조정에서 살아남는 법-127화 (125/317)

<구조 조정에서 살아남는 법 127화>

Chapter 29. 공성전(2)

"명심해라."

쑨밍이 입을 열었다.

일렬로 선 무사들과 차례로 눈을 맞추며.

"마지막에 살아남는 건 우리다."

그들의 목표는 단 하나였다.

다시 시작될 세계의 패권을 쥘 것.

살아남고, 살아남아, '하나의 중국'을 재건할 것.

그게 그들 스물두 명의 소명이자 존재 이유였다.

당의 전폭적인 지지와 희생을 등에 업고서 여기까지 오게 만든 숭고한 목표.

그리고 그 재건의 중심이 바로 대륙의 별, 웨이였다.

"한족의 아이가 세상의 중심에 서야만 한다. 그 어린 영혼은 대륙의 별을 넘어 인류의 별이 되리라."

당에서 선별한 '새로운 세계의 제왕.'

몇몇 후보가 있었으나, 모두 죽고 웨이 하나만 남았다.

이 아이만큼은 지킨다.

세상 모두의 목숨을 바쳐서라도.

"세상을 네 발아래에 두는 거다, 웨이."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은 한국부터."

하늘에 태양이 둘일 수는 없다.

게다가 그들의 핏줄은 중국의 소수 민족이나 다름없으니 복속시키는 것이 맞다.

……지금껏 그래 왔던 것처럼.

"반동 세력은 처치하고, 나머진 우리 세력에 흡수시킨다."

쑨밍의 말에 웨이가 입을 열었다.

들릴 듯 말듯 작은 목소리로.

"……한국은 강해. 분명 반발이 심할 거야."

쑨밍이 '쯧.'하고 혀를 찼다.

결국 시키는 대로 할 거면서 늘 이렇듯 약한 소리라니.

어린 애들은 역시 어쩔 수 없나.

"이은호, 그자만 해치우면 구심점이 사라진다. 나머진 다 떨거지야."

"……."

"어차피 서양 강국과 대립하려면 하나로 뭉쳐야 돼. 잠깐이야 괴롭겠지만, 결국은 감사하게 될 거다."

단호하게 말하자 웨이도 더 이상 말대꾸는 하지 않았다.

기계처럼 손가락을 놀릴 뿐.

탁-!

그때, 웨이의 바둑판에 흑돌이 놓이자 떠오른 메시지.

[ROK 구역, 공성(攻城)을 시작합니다!]

[특명이 발동되었습니다.]

"특명?"

쑨밍이 재빨리 고개를 치들고 창을 살폈다.

【1】성문을 파괴하시오(+10p)

【2】중앙탑 최상층을 30분 이상 점령하시오(+10p)

【3】마법진을 점유하시오(+30p)

【4】수성군을 처치하시오(+5p)

【5】수성군 대표를 처치하시오(+100p)

"……처치 보상?"

"!!"

"봐라, 웨이! 집 짓기로 2천 명을 한꺼번에 없애 버리면…… 한 번에 1만 점이야!"

세상을 발아래 둘 날이 머지않았다.

그 생각에 쑨밍의 눈이 탐욕으로 번들거렸다.

"걱정 말고 수를 두거라. 너에겐 손끝 하나도 대지 못하게 해 주마."

하지만 웨이는 언제나의 무감정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과연."

좀 더 기뻐해도 될 텐데.

웨이는 그 지략에 비해 패기가 너무 부족하다.

쑨밍은 저도 모르게 혀를 또 찰 뻔한 걸 겨우 참으며 입을 열었다.

"놈의 능력이 두렵나? 투명화와 순간이동은 보기에는 신기해 보이겠지만, 실제 전투에서는……."

"순간이동?"

웨이의 표정이 묘하게 굳었다.

쑨밍은 녀석이 말을 끊고 들어온 게 의외라고 생각하면서도 긍정했다.

"그래. 어쨌든 겁먹을 것 없다. 내가 검을 들었으니."

"……."

웨이가 입을 닫고, 정렬해 있던 무사 하나가 기다리던 질문을 던졌다.

"하늘을 나는 여자도 있지 않습니까? 혹시 이쪽으로 넘어오진 않을까요?"

"오겠지. 그들이라면."

쑨밍의 시선이 반투명한 시스템창으로 향했다.

분명 그들을 공격하는 적군에게도 떠오를 '특명'으로.

"하지만 아무것도 얻어 가진 못할 거다. 우리가 여기서 막는 이상."

"예? 하지만 그럼 성문은……."

"성문은 의미가 없어. 어차피 몰래 들어올 거면 파괴하지도 못할 테니까."

부하가 "아!"하고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리고 이어진 다른 부하의 질문.

"만약 순간이동으로 바로 마법진을 차지해 버리면 어떡합니까?"

"10초를 채우기 전에 끌어낸다."

잠시 무사들과 눈을 맞춘 쑨밍이 비릿한 웃음을 띠며 말을 이었다.

"사지를 자르건 목을 치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존명!"

쑨밍의 말에 스물한 명의 무사들이 일제히 답했다.

그때.

삐───익!

삐───익!

삐───익!

중앙탑 내부가 붉은 조명으로 물들며 깜빡거렸다.

[적군의 침입이 감지되었습니다.]

"적군?"

"설마 한국? 벌써 온 건가?"

[CN 구역, 수성(守城)을 시작합니다!]

[특명이 발동되었습니다.]

【1】성문을 방어하시오(+10p)

【2】중앙탑 최상층을 30분 이상 방어하시오(+10p)

【3】마법진을 방어하시오(+30p)

【4】공성군을 처치하시오(+5p)

【5】공성군 대표를 처치하시오(+100p)

시뻘건 조명과 마찬가지로 시뻘건 창이 연신 깜빡거리자, 무사들은 긴장한 몸짓으로 저마다의 무기를 치켜들었다.

긴장감과 결연함이 뒤섞인 모습.

그런 한 명, 한 명을 둘러보며 쑨밍이 입을 열었다.

"부탁한다."

순간이동이건 시간을 멈추건 간에 모습을 드러내야 한다는 건 같다.

문제는 검강(劍氣)을 시전하는데 아주 약간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

"1초만 막아 주면 내가 처리하마."

이들이 찰나의 시간만 벌어 준다면, 제 능력으로 썰어 버릴 수 있다.

초능력자도 사지가 붙은 인간인 이상, 토막 나면 죽을 테니까.

"낯짝을 드러내자마자 목을 베어 주지."

그렇게 강한 자신감으로 마법진 위를 지키고 선 순간.

콰앙-!

갑작스런 진동에 저도 모르게 다리를 휘청거렸다.

"폭탄?!"

"저기! 반대쪽입니다!"

강한 폭발음과 함께 외벽 일부가 무너져 내렸다.

당연히 창문으로 들어올 거라 생각해 그쪽만 보고 있었는데.

"……창문을 두고 벽을 부수고 올 줄이야."

쑨밍이 이를 빠득 갈며 외쳤다.

"막아라!"

"예!"

"어디서 어떻게 들어 올지 몰라! 정신 바짝 차리고 웨이를 지켜!"

절반가량의 무사를 뻥 뚫린 외벽으로 보냈다.

그리고.

"명심해! 1초만 버티는 거다!"

"존명!"

곧장 무사들 속에 몸을 숨기고 검을 움켜쥔 순간.

"저, 저기! 창문에도……!"

쨍그랑!

아무것도 없던 하늘에서 바윗덩어리가 날아오고.

쩌어억-!

창문이 깨졌다.

쌔액!

조각난 파편이 화살처럼 날아온다.

황급히 주위를 살피자, 웨이는 발 빠른 부하 서넛이 이미 감싼 뒤.

그 모습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숨죽여 타이밍을 살피려는 찰나.

쌔앵-!

한 줄기 바람이 불었다.

양쪽으로 뚫린 벽과 창문 탓일까.

차가운 공기가 정면에서 확 몰아치는 듯한 대류.

그 마른 서늘함에 온몸의 털이 쭈뼛 서는 것을 느꼈을 때.

"!!"

쑨밍의 몸은 이미 굳어 있었다.

수많은 이들 중, 하필이면 제 목을 겨눈 검을 내려다보며.

*   *   *

"웨이는 어디 있지?"

"!!"

"집짓기인지 뭔지 당장 멈춰 줬으면 하는데."

나지막하게 말하자 중국 유일의 검사, 쑨밍이 눈을 부라렸다.

"…그걸 알려 줄 거라 생각했나?"

"아니."

그래서.

스걱-!

달아오른 파천검으로 오른쪽 어깨를 내리그었다.

순식간에 몸통과 분리되어 처량하게 떨어져 나가는 오른팔.

"……끅!"

핏발 선 흰자위.

확장된 동공.

갈 길을 잃고 분출하는 세찬 혈류.

뿜어져 나온 핏방울이 나와 원주인의 얼굴에 붉은 흔적을 남기며 쏟아졌다.

보통 사람이었다면 여기서 이미 전신이 마비되다시피 굳었겠지만.

탁!

놈은 잘린 팔을 붙들고는 왼손으로 검을 쥐었다.

평범한 사람은 눈으로 쫓기도 힘들 정도로 엄청난 속도로.

깡-!

두 자루의 검이 공중에서 맞부딪혔다.

그 순간 들려온, 생각지도 못한 메시지.

['제3의 눈,' 특수 효과 발동!]

[뛰어난 선행자의 핵심을 관찰합니다.]

[기초 검술(Lv.4)의 숙련도가 크게 상승합니다.]

[+5%]

어?

그러니까…….

'눈으로 보기만 해도 배운다는 거야?'

하아.

굳이 길게 끌 필요 없으니 최대한 빠르게 정리하고 넘어갈 생각이었는데.

이렇게 되면…….

"그냥은 못 보내겠네."

"…뭐?"

"천천히 놀아 보자고."

챙! 챙-!

[기초 검술(Lv.4)의 숙련도가 크게 상승합니다.]

[+5%]

5%의 숙련도를 선사한 두 번의 맞부딪힘 끝에 놈이 눈썹을 치켜올렸다.

"…여유롭군. 순간이동 능력을 믿어서인가? 아니면 투명화 능력?"

궁금해서 묻는 말이 아니다.

누가 봐도 시간을 끄는 질문에 대답 대신 어깨를 으쓱했다.

'대충 짐작은 간다만…….'

벌써 끝내기엔 좀 아쉬워서.

타앗!

놈과의 거리를 빠르게 좁혀 들어갔다.

우우우웅-!

평소보다 더한 진동으로 설렘 따위를 표출하는 파천검을 몸 가까이 쥐었다.

그러자 놈들의 수장은.

"막아라!"

저 대신 내 검을 맞아 줄 놈들을 들여보냈다.

"붙잡고 늘어져!"

"존명!"

오른쪽 다리를 노리고 들어온 놈을 찌르면, 다른 놈이 달려들어 같은 다리를 붙잡고 늘어진다.

푸욱!

왼쪽 팔에 매달린 놈을 베면, 다른 놈이 달려들어 같은 팔을 찢어발기려 든다.

"국가를 위해서 버텨라!"

"존명!"

계속해서.

'고기 방패냐고!'

제 목숨보다 쑨밍의 생채기가 더 귀하다는 듯이.

스스로 검로를 향해 뛰어들었다.

급소조차 가리지 않으며.

"끄아아아아악……!"

"!!"

그리하여 사망자 또한 나왔으나.

[대상자 '장위'를 처치하였습니다.]

[연수 포인트 획득(+5p)]

"다음! 빨리 막아라!"

그들은 약간의 주저함도, 지친 기색도 없었다.

급기야는 함께 온 일행들을 상대하는 무사 몇몇만을 제외하고 죄다 달려들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불나방처럼 뒤도 없이 달려드는 놈들.

"절대, 성을 빼앗겨선 안 돼! 우리 목숨은 우리 것이 아니다!"

"……그럼 누구 건데?"

티끌만큼의 거리낌도 느껴지지 않는 확신에 찬 어투.

그 힘찬 확신이 어처구니없어 묻자, 대답은 단박에 튀어나왔다.

"국가와 민족의 것이지."

"……미친놈들."

질린 얼굴로 인상을 팍 쓰자, 드디어 기다리던 말이 튀어나왔다.

"이젠 끝이다! 검강(劍氣)!"

마침내 푸르죽죽하게 달아오른 검신.

'!!'

우우우우웅-!

그와 동시에 검신을 둘러싸고, 푸른 불꽃처럼 타오르는 정체 모를 기운이 덮쳐 왔다.

'…이런 건가.'

온몸의 세포가 소리친다.

가까이 다가가면 베인다.

손이라도 집어넣었다간, 저 시린 빛에 갈가리 잘려 버리고 말 거다.

그 날 선 위협에.

두근!

심장이 뛰었다.

'저게…… 검강.'

뱀의 혀처럼 날아오는 보랏빛 연기.

사이한 기운은 어떻게든 나를 압도하려 요동쳤다.

웬만한 사람이었다면 그 기세에 숨통이 짓눌려 도망쳤겠지만.

'평범한 검격에 5%나 올랐어. 그럼 검강은…….'

타앗-!

피하는 대신 내달렸다.

파천의 업적까지 부여한 검과, 녀석이 끝도 없이 뿜어 대는 흥분과, 가슴팍을 감싸고 있는 든든한 갑주를 믿고서.

우우우웅-!

파천검이 울어 댄다.

적의 검과 맞닿아 상대를, 그리고 어쩌면 스스로를 깨트리고 파괴하고 싶다는 강렬한 감정.

그 자기 파괴적인 기세를 온전히 받아들이고.

달칵! 눌러 화염의 기둥까지 세웠다.

우우우우우우우웅-!

상대의 반월도가 요사스런 기운을 맘껏 내뿜는다.

날카롭다.

섬뜩하다.

계속 보고 있다간 몸이 검과 검강의 곡선을 따라 갈라져 버릴 것 같다.

검붉은 기운이 탑 꼭대기까지 닿을 듯 치솟는다.

그러나.

'할 수 있어!'

콰드득!

검과 검이 만났다.

비슷한 듯, 전혀 다른 길을 걷는 두 검이.

파아아아아앗-!

붉은 불길과 검붉은 검기가 뒤엉켜 치솟는다.

서로의 몸뚱이를 휘감아 올라가는 뱀처럼.

[검기의 형상을 파악합니다!]

[검의 오의(奧義)를 엿봅니다!]

[기초 검술(Lv.4)의 숙련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20%]

순식간이었다.

한쪽이 세를 떨치다가, 곧장 나머지 한쪽이 잡아먹을 듯 너울거리기까지.

[대상자 '이은호'의 신체에 강한 공격이 감지되었습니다!]

[흉갑에 각인된 방어 체계가 발동합니다!]

저릿!

검강(劍氣)의 보이지 않는 파편이 쏟아진다.

가슴팍에서부터 약한 스파크가 튀었다.

그리고.

['전격방출(電擊放出)' 발동!]

파아아아앗-!

엄청난 광량이 시야를 뒤덮자.

"끄, 끄아아아아악!"

살점 타는 냄새가 진동하더니, 놈이 죽은 바퀴벌레처럼 전신을 비틀었다.

"이게…… 무슨……!"

외팔의 검사가 무릎을 꿇었다.

"궁금한 게 있는데."

그 옆에 주저앉아 물었다.

"검강, 어떻게 얻은 거지?"

그러자 비웃듯 입꼬리를 올리는 놈.

"그걸 알려주느니… 차라리…… 죽겠다."

쿨럭!

전신에서 올라오는 연기와 함께, 그 위로 울컥 피가 쏟아졌다.

이윽고 쑨밍의 검이, 얼굴이, 눈동자가 색을 잃었다.

[대상자 '쑨밍'을 처치하였습니다!]

[기초 검술(Lv.4) 스킬의 숙련도가 급상승합니다!]

['기초 검술' 스킬 레벨이 상승합니다. (Lv.4 → Lv.5)]

[연수 포인트 획득(+5p)]

[검사(劍士) '쑨밍'의 유품을 획득합니다!]

……

이어서 후두둑 쏟아지는 아이템들 아래에서.

파앗-!

수많은 문양이 얽히고설킨 마법진이 푸른빛을 뿜었다.

딛고 선 발밑에서부터 한 붓 그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서서히, 가닥가닥 번져 가는 빛.

[대상자 '이은호.' 마법진 점유를 시도합니다.]

[카운트다운을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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