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 조정에서 살아남는 법 159화>
Chapter 36. 올해의 사원(1)
[신입사원 '이은호.' 세 번째 OJT 평가 등급은…….]
솔직히 예상했다.
[S입니다.]
[미션 보상 2포인트, 복지 포인트 5천 점을 획득했습니다.]
[미션 보상을 확인하세요!]
평가 등급 S.
감사국 때도 받았으니, 그보다 더한 실적을 낸 이번엔 어련히 잘 챙겨 주겠지 하고 생각했던 것도 같다.
하지만…….
[축하합니다!]
[신입사원 이은호, 영업국 공식 '올해의 사원'으로 선정되었습니다!]
이건 진짜 몰랐다고.
'올해의 사원이라면 사수가 주야장천 호들갑 떨던 건데.'
['올해의 사원' 기록을 뛰어넘었다고!]
내가 영업국 올해의 사원이라고?
애초에 '영업국' 소속도 아닌데?
이건 또 무슨 상황인가 싶어 황당해하는 찰나.
끼익-
육중한 연회장 문이 열리고.
"저 사람들은 누구야?"
"직원들인가?"
모든 생존자들의 이목이 쏠렸다.
"어?"
연회장 문을 열고 성큼성큼 걸어 들어오는 건 정장 차림의 남녀 셋.
여느 회사의 중역처럼 묵직한 외모의 중년 남자.
고등학생 정도 됐을까 싶은 똘망똘망한 눈빛의 여자.
그리고 나머지 둘에 비해 맹해 보이는 익숙한 얼굴까지.
"어? 저기 사수님 아니십니까?"
"그러네! 왜 오셨지?"
영업국 사수가 이쪽을 가리킴과 동시에, 세 직원이 곧장 내 쪽으로 다가와 섰다.
그리고.
[반갑네, 은호 군.]
셋 중 가운데 선 중년 남자가 악수를 건넸다.
"절 아십니까?"
[아무렴! 센터에 은호 군을 모르는 사람도 있으려고?]
"예?"
[그래, 입사하자마자 유명인이 된 기분이 어떤가?]
그러니까.
"이제 생각해 봐야겠습니다. 처음 듣는 소리라."
유명인이고 무명인이고 간에 모르는 얘기라고.
그리 돌려 말하자 사내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고객들이 왜 자네에게 푹 빠졌는지 알겠구만 그래.]
[그만. 소개부터 할게요.]
알 수 없는 소리만 하는 사내에게 미간을 좁히자, 옆에 있던 여자가 끼어들었다.
[반가워요, 이은호 씨. 고객 만족센터 전략기획실에서 나왔습니다.]
잘은 몰라도 '전략'이나 '기획'자가 들어가면 해당 조직의 의사 결정을 맡는 상위 부서일 텐데.
센터에서 제일 바빠야 마땅할 이들이 직접 찾아왔다는 건.
'높으신 분들 보시기에 내가 영입 대상이거나, 견제 대상이거나. 둘 중 하나겠지.'
둘 다일지도 모르고.
그리 판단하고 가만 지켜보자 여자가 가져온 서류철 속에서 무언가를 건넸다.
딱딱한 남색 표지 속에 자리 잡은 상장을.
[센터장님께서 직접 갖다 드리라 명령하셔서요.]
─────┫임명장┣─────
ㆍ성명 : 이은호
ㆍ직급 : 사원
ㆍ소속 : 영업국 고객 만족센터
25팀(임시)
위 직원은 올해 가장 우수한
영업 실적을 기록한바,
고객 만족센터 '올해의 사원'으로
임명함.
영업국 고객 만족센터장 (인)
───────────────
'하?'
그리고.
[거기 '올해의 사원' 전용 사택 출입증이 꽂혀 있죠? 활성화시키면 즉시 사택 정문으로 이동하실 거예요.]
"사택이 따로 있습니까?"
[그럼요. 저희 영업국은 소속 직원분들이 오직 업무에만 신경 쓰실 수 있도록 최대한의 편의를 제공해 드려요. 특히 '올해의 사원' 전용 사택은 그중 최고로 유명하답니다.]
나도 모르게 놀라 묻자, 뿌듯한 얼굴로 대답하는 여자.
여자의 시선을 따라간 끝에 위치한 건, 상장 표지에 꽂혀 있는 카드였다.
신용카드 정도 크기의 새까만 카드.
▣ '올해의 사원' 사택 출입증
- 영업국에서 '올해의 사원'을 위해 특별히 제공하는 사택 출입증.
활성화시킬 경우 사택으로 이동하는 '문'이 나타난다.
- 횟수 제한 : 없음
흑요석처럼 윤기가 흐르는 카드는 테두리에 금박 장식까지 되어 있어 더욱 화려했다.
무엇보다 카드 양면 가득 각인된 황금빛 열쇠가 새까만 배경과 대조되어 보석보다 아름다웠고.
'왜 그렇게 난리 피웠는지 대충 알겠네.'
보나 마나 이 출입증이 인도할 사택 또한 화려하기 짝이 없겠지.
궁금한 마음에 곧장 확인해 봐야겠다 생각하는 순간.
[상금은 바로 지급되셨을 거예요. 확인해 보시겠어요?]
여자의 말이 끝나자마자 메시지가 나타났다.
[축하합니다!]
['올해의 사원' 인센티브로 복지 포인트 10만 점이 지급되었습니다.]
'관사에 인센티브까지?'
이틀짜리 교육의 보상치고는 과하다.
역시 실적 대비 보상이 확실한 영업 조직이라 그런가.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이미 OJT 때 판매한 금액의 10%를 수수료로 챙겼는데.
거기다 추가로 또 챙겨 주다니.
'이득을 많이 봤어.'
갑작스런 상황에 당황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사양할 건 아니니까.
"감사합니다."
[그럼…… 여기 수령하셨다는 사인 부탁드립니다.]
"예."
파앗-
직원의 손짓에 나타난 서명란에 이름 석 자를 썼다.
그러자 들려오는 경쾌한 메시지.
— 띠링!
[축하합니다!]
[새로운 칭호, '올해의 사원'을 획득합니다.]
[칭호 효과를 확인하시겠습니까?]
"확인."
[인지도가 급상승합니다.]
[사내 시설을 제한 없이 이용할 수 있습니다.]
[영업국 지원하에 모든 아이템을 최대 50% 할인가로 구입할 수 있습니다.]
[단, 다른 할인 혜택과 중복 적용은 불가합니다.]
[칭호 효과는 새로운 '올해의 사원'이 선정될 때까지 유지됩니다.]
최대 50% 할인에 사내 시설 이용 권한이라니.
미션 몇 개를 해결하고 받는 보상보다도 더 큰 효과다.
당장 매일 먹는 식사부터 상점 이용까지, 복지 포인트가 쓰이지 않는 곳이 없으니까.
게다가.
— 띠링!
['올해의 사원' 칭호가 '다단계 사업자' 칭호와 반응합니다.]
['올해의 사원' 칭호 효과를 '하부 영업사원'에게 적용할 수 있습니다.]
이 엄청난 혜택을 공유하는 방법까지 나타났고.
'!!'
이번 OJT 때 얻은 실적이 2백5십만 점.
대부분 내 아이디어이긴 했지만, 웨이나 지은 씨, 재혁이도 같이 고생해서 얻어 낸 성과다.
그렇지 않아도 조원들 무기나 장비 따위를 강화할 때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잘됐네. 일행들도 같이 업그레이드 시킬 수 있어.'
하부 영업사원으로 지정하기만 하면 알아서 할인받을 테니.
그렇게 쏟아진 알림을 하나씩 뜯어 보며 정리하고 있자니, 뿌듯한 얼굴로 쳐다보던 사수가 말을 걸어왔다.
[어때? 교육생 최초로 선발된 기분이?]
"고맙긴 한데…… 솔직히 당황스럽네요."
[그치? 윗분들도 다 그랬어. 솔직히 나도 농담인 줄 알았다니까?]
모두 그런 반응이었을 거다.
'올해의 사원' 제도는 영업사원들의 사기를 높이고 열심히 일할 동기를 부여하기 위함일 터.
외부인, 그것도 갓 입사한 햇병아리에게 주기에는 너무 큰 혜택이다.
그렇기에 평범한 조직이었다면 택하지 않았을 악수지만.
"자극이 필요했던 겁니까?"
[응?]
내 말에 반응한 건 사수가 아닌 옆에 있던 중년 남자.
[무슨 의미지, 은호 군?]
흥미롭다는 듯 눈을 빛내며 묻기에 답했다.
"보통 이런 건 직원들을 독려하기 위함일 텐데, 외부인을 선발했다는 건 둘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둘 중 하나라니?]
"첫째. '올해의 사원'이라는 게 생각보다 대단치 않은 자리였거나, 둘째. 내부 직원 중 누굴 선발하더라도 자극이 안 되는 상황이거나."
[둘 중 후자로 판단했다?]
"예. 혜택이 좋으니까요."
그러자 웃음기를 머금고 어깨를 으쓱하는 남자.
[은호 군이 너무 뛰어나서일 수도 있지 않나. 보고 배우라는 본보기로 삼고 싶었을 수도.]
"……그 가능성은 뺐습니다."
[왜지?]
"전 직원이 이틀짜리 햇병아리를 보고 배워야 하는 상황이라면 너무 심각하지 않습니까."
무덤덤한 얼굴로 말하자 사내가 너털웃음을 지었다.
[……역시 내가 사람을 제대로 봤군.]
알 수 없는 혼잣말에 흐뭇한 미소까지 띤 걸 보면 내 대답이 꽤 만족스러운 모양이다.
더 이상의 설명은 없었으나, 그리 보였다.
[아무튼 아까 인사도 못 하고 사라진 게 마음에 걸려서 같이 왔어. 잘했지, 형님 병아리?]
"아아, 아까 이거 때문에 뛰어간 겁니까?"
[그치. 형님 말이야, 원래 인사국 소속인데 우리 팀으로 임시 등록하느라.]
"그래서 제 소속이 고객 만족센터로 돼 있었나 보네요."
[형님이 이해해. 외부인에게 상을 줄 명분이 필요했거든.]
미션이 끝나자마자 지상으로 돌아가는 '문'만 겨우 안내하곤 쏜살같이 사라져 버린 사수.
무슨 문제라도 생긴 건가 싶었는데, 이런 문제였다면 다행이다.
그리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이자 사수가 생글생글 웃으며 말을 더했다.
[이 기회에 진짜 우리 팀으로 오면 더 좋고.]
"사양하겠습니다."
[1초도 안 걸려, 어떻게? 너무한 거 아냐?]
"사무실이 더러워서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하자, 서둘러 손사래 치며 말하는 사수.
[아! 그건 걱정 안 해도 돼.]
사수가 뿌듯한 얼굴로 입을 뗐다.
[덕분에 사무실 옮기게 됐거든.]
"아, 그렇습니까?"
[어어. 언제든 놀러 와. 커피 마시러 와도 되고.]
"예, 뭐."
[혹시 필요한 일 있으면 말해. 내가 할 수 있는 거라면 뭐든 도와줄게.]
글쎄.
게으름 부리는 모습만 이틀 내내 봤기에 그닥 기대되진 않는데.
그리 생각하며 눈을 가늘게 뜨자, 속삭이듯 한마디를 덧붙였다.
[사무실도 그렇고…… 재수 없는 자식 코를 납작하게 해 줬잖아. 속 시원하다는 놈들이 한둘이 아냐.]
"적이 많았나 보군요."
[그렇대도? 아무튼 말만 해. 형님 병아리 부탁이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돕는다니까?]
평소의 능글맞음을 지우고 말하는 걸로 보아 어지간히도 고마웠나 보다.
그래서.
"꼭 기억했다가 써먹겠습니다."
[그래그래!]
고개를 끄덕여 대화를 끝마쳤다.
받을 건 다 받았다 싶었거니와, 아까부터 생존자들의 이목이 집중된 탓에 부담스럽기도 했고.
"그럼……."
다 끝난 거면 가도 되겠냐 물으려는 찰나.
[얘기 끝나셨죠?]
앳된 여직원이 생긋 웃으며 손을 휘 내저었다.
[그럼, 바로 인터뷰 진행할게요.]
어?
"인터뷰도 있습니까?"
[아아, 네. '올해의 사원'만 해도 엄청난 건데, 심지어 이은호 씨는 교육생 신분으로 받아 낸 거니까요. 영업국 전체에 우수 사례로 전파될 거랍니다.]
"……예?"
[네! 사내 게시판에도 올라가고 책자로도 만들어서 배포할 거예요. 아마 이번 신입사원 교육 자료에도 포함될 거고…… 아, 내일부터 고객 만족센터 로비에도 초대형 액자에 걸릴 테니까 구경하러 오셔도 좋겠네요.]
"……잠깐만요."
그러니까.
"제 영업 전략을 우수 사례로 전파한다고요?"
[네!]
"게시판, 책자, 교육 자료에 초대형 액자까지?"
[아, 원하시면 강연도 모집해 드릴 수 있어요!]
내 '다단계 영업 전략'을?
"……괜찮으시겠습니까?"
어처구니없어 재차 묻자 『질문지 목록 - 이은호』라 적힌 서류까지 꺼내든 직원이 방긋 웃으며 말했다.
[물론이죠! 도대체 얼마나 훌륭한 전략을 썼길래 이은호 씨처럼 우수한 실적을 낸 거냐고 다들 난리인걸요? 인맥 없이 성공한 최초의 영업사원이라고 모두 관심이 자자해요!]
"하?"
[은호 씨를 벤치마킹해서 공식 영업 전략으로 삼겠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고요. 대박이에요, 이은호 씨!]
"벤치마킹…… 이요?"
……후회할 텐데?
* * *
PM 9:20.
가볍게 생각했던 인터뷰는 프로필 사진 촬영에, 사인까지 몇 장 하고 나서야 끝났다.
그리고.
"먼저 가시지 그러셨습니까."
연회장 구석에서 기다리던 일행들에게 돌아갔다.
가서 쉬라는 데도 의리가 아니라며 부득불 남아 자리를 지킨 사람들.
"청년! 포즈 잡는 게 기가 막히던디? 촬영 좀 해 봤나 벼?"
"와, 진짜 장난 아닌데요? 아저씨, 혹시 모델 같은 거 했었어요?"
"하하…… 그럴 리가."
사실 의리 때문이 아니라 그냥 촬영 구경이 신기해서 남아 있었던 걸지도 모르겠다만.
어쨌든.
"이거 드세요, 은호 씨. 다행히 식당에서 도시락을 팔더라고요."
"아, 감사합니다."
지은 씨가 챙겨 준 저녁이 고맙다.
퇴근 시간이 지나고도 한참 지난 탓에 식당도 문을 닫은 지 오래.
아까부터 허기진 탓에 힘이 하나도 없었으니까.
그렇게 대나무로 만든 원통형 도시락 하나를 받아 들자 곧장 물어 오는 재혁이.
"형님! 아까 마지막 방송, 들으셨습니까?"
"어, 대충."
아까 분명 인터뷰 중간에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었다.
분명…….
[신입사원 '이은호.' 베네핏 205p가 지급되었습니다.]
내가 받은 부서 선택 베네핏과.
[마지막 OJT 미션 종료 후 부서 선택이 진행될 예정입니다.]
[베네핏 점수에 근거해 지망 부서를 제출하며, 최종 베네핏은 영업 실적과 관리 실적을 합산해 결정됩니다.]
관리 실적의 존재까지.
"아무래도 관리 실적이라는 건 관리국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마지막 OJT 부서, 관리국이라는 거지?"
순간, 일행들 사이에 적막이 감돌았다.
"……예."
무거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재혁이.
"하……."
누군가의 무거운 한숨이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관리국.
그 끔찍한 부서에서 지금껏 어떤 일을 해 왔는지 알기 때문이리라.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마지막 OJT 미션은 분명 녹록지 않을 거다.
하지만.
"준비를 좀 해 보죠."
어떤 미션이 나올진 모르지만…….
"뭐가 나와도 문제없도록."
지금까지도 그래 왔으니까.
당장 무슨 일이 닥칠지 한 치 앞도 못 보는 상태로 지금껏 살아남았으니까.
"……좋아요!"
"같은 생각입니다, 형님!"
"근디 무슨 준비를 한댜?"
준비할 건 많지.
머리부터 발끝까지.
우선…….
"조용한 곳 가서 얘기할까요?"
"잉? 어디?"
"사택을 받았거든요."
여진이가 '사택?' 하며 고개를 갸웃하자 옆에 있던 예지 씨가 설명했다.
"회사에서 주는 집이야."
그러자 눈을 동그랗게 뜨는 여진이와 솔아.
"아저씨, 여기 집도 있어요?"
"그러게."
집 있는 남자네, 나.
어쨌든.
"잘 됐습니다. 어차피 칭호 사라지기 전에 본전 뽑으려고 했으니까."
"예? 아까 받은 그 칭호, 사라질 수도 있는 겁니까?"
"어. 새로운 '올해의 사원'이 선정될 때까지 유지된다고 했어."
열심히 움직여야지.
본전을 뽑다 못해 사골까지 뽑아서 우려먹으려면.
"다들 모아 둔 돈은 좀 있으시죠?"
"어어. 난 5만 점 좀 넘어."
"앗, 전 4만 점이요."
대부분 영업 실적 상위권에 지금껏 평가도 나쁘지 않게 받아 왔다.
딱히 엄한 곳에 포인트를 낭비하지도 않았고.
그러니 율이와 몇몇을 제외하면, 다들 모자람 없이 두둑이 챙겼을 터.
"그 정도면 충분할 겁니다. 할인 혜택도 있으니까."
그렇다면.
"업그레이드할 시간입니다."
해 보자고.
Fle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