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구조조정에서 살아남는 법-265화 (263/317)

<구조 조정에서 살아남는 법 265화>

Chapter 56. 파업(3)

[대대장님.]

돌아온 수색대가 지상에 착지하며 고개를 숙였다.

[병력 상황은?]

[운영국 방어전에 조합장을 제외한 팀 전원이 출전했으며, 데리고 있던 계약직 병력도 모두 그쪽으로 이동 중입니다.]

전투를 앞두고 본진을 비우다니.

대대장은 도무지 납득되지 않는 상황에 재차 물었다.

[팀원 외 지원군도 없단 말이냐?]

[탐지 스킬로 숲을 훑었지만, 잔여 병력은 없었습니다.]

[적군에게는 은신 능력자가 있다. 병력이 숨어 있을 가능성은?]

[없다고 봅니다. 은신 능력자 하나가 다수를 숨기려면 모여 있어야 하는데, 그럴 만한 공터를 모두 수색했는데도 흔적은 없었습니다.]

물론 수색대가 숲 전역을 샅샅이 뒤지진 못했을 거다.

하나 그렇다 해도 결론은 같다.

소수 인원이 용케 숨었다 해도, 그게 유의미한 숫자는 아닐 테니까.

[빈집이나 다름없군.]

1만 대 1인의 대결.

지나가던 개도 웃을 만큼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려 하고 있었다.

[방심한 게 틀림없습니다. 그러니 빠르게 성을 공략하는 편이 낫지 않겠습니까?]

대군(大軍)에게 병법은 필요 없다는 말이 있다.

10배의 병력을 갖고 있다면 포위만 해도 이긴다는 게 정설인데, 지금은 무려 1만 배의 차이.

수색대장의 말은 일리가 있었으나, 그럼에도 대대장은 침음을 흘렸다.

[필시 무슨 꿍꿍이가 있을 것이다.]

[아무리 꿍꿍이가 있어도…….]

[그만. 회장님께서 당신의 적이라 규정한 상대다.]

그리고 수색대장의 말에 일갈했다.

[회장님께서 혈혈단신으로 우리 모두를 상대한들 승산이 있다 보나?]

[그건…… 아닙니다.]

이은호 하나를 잡아 오라며 대대 하나를 통째로 보내셨다.

무려 회장님께서 인정한 상대라는 뜻.

그러니 하찮은 범인의 잣대로 판단해선 안 될 것이다.

[명심하겠습니다.]

그들의 목표는 간단했다.

이은호를 제압하는 것.

그게 불가하다면 사살해 목을 가져올 것.

[하나 그리 마음 졸일 건 없다.]

아무리 강자여도 한순간에 1만을 상대하기란 불가능하니까.

[인해전술로 할 수 있는 건 모두 사용한다.]

놈이 무슨 수를 쓰건, 약간의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진격한다. 그리하여 결국에는 이기리라.

[놈은 각개격파를 하려 할 것이다.]

[각개격파 말입니까?]

소수의 병력으로 다수를 상대하는 법.

그건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며 교란전을 펼침으로써 수적 열위를 최소화하는 것이므로.

[중대장들, 듣고 있나?]

— 예!

[숲 전역을 포위하고 서서히 좁혀간다.]

— 알겠습니다!

운영국으로 이동시키는 와중에 저 혼자 성에 남은 놈이다.

혼자서라도 성을 지키겠단 의지.

그러나 오만에 가득 찬 선택.

오만방자한 적을 상대로 해야 할 건 하나다.

틈조차 주지 않는 확실한 승리.

[통곡의 성의 방어막부터 깨트린다! 1중대, 마나건(Managun) 발사! 2중대는 유도폭탄! 3중대는 강기(罡氣)로 일점 사격하라!]

— 1중대! 명 받들겠습니다!

— 2중대! 명 받들겠습니다!

— 3중대! 명 받들겠습니다!

스크린 너머의 중대장 셋이 신속한 목례 후 사라졌다.

그리고 잠시 후.

파앗─!

붉은 선이 성을 감싼 돔을 강타했다.

『99.99%』

세찬 기세가 무색하게 그대로 튕겨 나왔지만, 끝은 아니었다.

팟! 팟! 파아아아아아앗-!

쏘고, 또 쏜다.

피에 물든 거미줄처럼 서서히 늘어가는 붉은 선들.

『94.12%』

돔이 흔들린다.

【목표물 조준】

【발사】

유도폭탄이 제 머리를 강대한 돔에 처박으며 터진다.

흔들리는 지축.

『90.05%』

돔에 금이 아로새겨진다.

[돌격!!]

폭발이 가라앉자마자 수십의 인영이 뛰쳐나간다.

흑빛에 가까운 검강이 그림자처럼 넘실거리며 쇄도하는 순간.

【숲의 파수꾼이 깨어납니다.】

숲이 일어났다.

— 주인의 뜻대로!

산천초록이 진동한다.

고요하던 숲이 영혼까지 압박하는 존재감을 뿜어낸다.

— 주인의 뜻대로!

거대한 고목이 몸집을 불린다.

웅크려 있던 거인이 깨어나듯 몸을 일으킨다.

— 주인의 뜻대로!

손처럼 뻗은 가지가 구름까지 닿을 만큼 자란다.

손바닥처럼 펼쳐진 잎사귀들이 딱딱하게 굳어 간다.

그러고는 손바닥을 쭉 뻗어 막듯이 폭격을 튕겨 내는 고목.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예상했다.

이미 숲의 파수꾼들은 이곳의 명물.

회장님께서 이들에게서 숲을 빼앗고 회장실로 불러들인 이유가 여기 있었을 것이다.

[3중대는 물러난다! 1, 2중대는 멈추지 마라!]

— 예!

— 알겠습니다!

[4, 5, 6중대, 준비!]

— 부디 명령을!

그래서 준비한 게 4중대였다.

정확하게는 '학살의 염제(炎帝)'라 불리는 중대장.

[지금이다!]

— 겁화의 장벽!

타오르는 불꽃이 뻗어 나간다.

위로, 그리고 양옆으로.

일직선으로 뻗어 나가나 싶던 장벽은 파수꾼들을 넓게 감싸며 원을 그렸다.

[5중대! 풍압을!]

— 예!

화염 장벽에 풀무질하듯 산소를 불어 넣고, 뒤에서 등을 떠밀듯 성 쪽으로 밀어 보낸다.

다가오는 불길의 압박에 파수꾼들이 타들어 가는 잎사귀를 붙잡고 포효했다.

이 정도로도 압박은 충분했을 터이나, 대대장은 공세를 멈추지 않았다.

[6중대! 스윕(Sweep)!]

보이지 않는 손길에 의해 땅이 깎인다.

불길이 향하는 곳, 그 앞의 땅이 미끄러운 빙판처럼 닦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점차 이동속도를 더해 가는 장벽.

— 크워어어어어……!

파수꾼이 포효한다.

[소각!]

파수꾼들의 잎사귀가, 가지가, 몸통이 타오른다.

시커먼 연기가 하늘까지 타고 올라가 낮을 밤으로 만들었다.

— 숲을…… 지킨다……!

파수꾼들이 땅을 뒤엎고 몸으로 덮었으나, 불길은 점점 거세졌다.

단순한 화력이 아니었다.

장벽 안에 존재하는 생명을 모두 불태우는 순간까지 꺼지지 않는다는 사기적인 능력.

불길이 숲의 파수꾼을 완전히 집어삼키면, 기다리던 공격조가 저 지독한 방어돔을 찢어 버릴 것이다.

[먹힙니다! 대대장님!]

적군을 감싸 줄 숲이라는 지형을 역으로 이용한 전략이었다.

숲이 가로막으면 태워 버린다.

함정이 있다면 부숴 가며 넘는다.

철저하게.

[전군, 진격 준비.]

— 예!

— 알겠습니다!

순리대로 풀리고 있다.

그리 판단한 대대장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가려는 찰나.

우우우우웅- 철컥!

성벽 사이사이에 가려져 있던 포탑이 일제히 머리를 들었다.

[!!]

[포탄입니다!]

[대대장님!]

하지만 예상 범위 내의 위기다.

대대장의 입꼬리가 마저 올라갔다.

[7중대!]

— 예!

[지금이다!]

— 7중대! 일렬로!

스크린 너머의 장군의 외침에 중대 전체가 움직였다.

일사불란한 움직임이 만들어 낸 일렬횡대.

— 고대의 파편이여!

그들을 향해 중대장이 손을 뻗었다.

— 너의 주인이 감히 명하노니…….

검은 불이 타오르는 동공. 온몸에서 피어오르는 매캐한 연기. 흘러나와 발밑에 쌓이는 잿더미.

[방어하라!]

부릅뜬 눈길과 내뻗은 손길의 끝에 나타나는 용린(龍鱗).

철컥!

잿빛 용의 비늘이 하나둘 세워진다.

빈틈없이 늘어선 기백 명의 병사들의 전신을 방패처럼 가리며 빼곡히 채워진다.

철커어어어어어억!

하나하나의 비늘이 일렬로 늘어서고, 또 위로 쌓인다.

병사 하나가 고작 주변의 몇몇을 감싸 안는 수준이 아니었다.

순식간에 만들어진 철옹성.

'온다!'

콰아아앙-

곧이어 들려오는 격발음이 공기를 찢는다.

직경이 몇 미터는 될 법한 포탄 십 수 개가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든다.

쌔애애애액-

세차게 날아든 포탄은 화염장벽을 그대로 넘었다.

하나. 둘. 셋.

열 개가 넘는 포탄이 잿빛 방벽 위로 떨어졌다.

그러나.

[7중대! 버텨 내야 한다!]

— 목숨 걸고 버틴다! 실시!

그들이 그렇게 비장한 얼굴로 버텨 낸 건 폭발…… 이 아니라.

푸화아아아아앗-

물 폭탄 세례였다.

[……?!]

이 폭탄도. 저 폭탄도.

안에 든 건 폭발을 일으키는 화약재가 아닌 물이었다.

그것도 진짜 물.

— 아악!

— 무, 물 폭탄?!

용의 비늘이 젖었다.

비늘 사이사이로 스며든 폭탄 세례에 7중대는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되었다.

근처에 모여 있던 다른 중대원들도 흘러나온 물길에 바지자락이 흥건하게 젖었고.

— 대대장님! 타격이 전혀 없습니다!

— 독성도 없고…… 진짜 그냥 물입니다!

아무런 타격도, 의미도 없는 공격.

[불을 끄려는 속셈일까요?]

[그럼 왜 화염장벽이 아니라 방어막에 날린단 말이냐?]

대대장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된 부하에게서 시선을 거두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이냐? 이은호!'

*   *   *

【Warning!】

【Warning!】

【Warning!】

화르르르륵-!

숲이 불탄다.

물 폭탄이 아니라 폭우가 쏟아져도 약해질까 말까한 화마(火魔).

"물러나라."

[숲의 파수꾼들이 패배의 원통함에 울부짖습니다.]

아무리 단단하고 강해도 본체가 나무인 녀석들이다.

적들이 당연히 화염 공격을 준비했으리라 생각했다.

비서실장, 아니 미라보의 도움으로 화염계 광역 공격에 특화된 염제인지 염전인지 하는 놈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고.

"뭘 울부짖기까지 해? 돌아가서 쉬어."

하지만 괜찮다.

내가 노린 건 불이 아니라 그 불을 만들고 유지하는 놈들이니까.

"이제 너희 차례다."

[!!]

[드디어!]

쌍둥이들이 날아오른다.

[끼얏-!]

[간다!]

새처럼 빙글빙글 돌며 날아가는 탓에 새하얀 바가지머리가 깃털처럼 휘날린다.

쌔애애애액-

신궁(神弓)의 화살처럼 쏘아져 나가는 녀석들.

[저쪽?]

[난 이쪽!]

[한 번에?]

[한 번에!]

새타니들의 실력은 싸워 봐서 안다.

엄청난 기동력으로 기습에 능하고, 땅에 발을 딛고 있는 한, 빙결 마법 때문에 바로 막아 내긴 불가능에 가깝다.

저렇게 다닥다닥 몰려 있으면 더 당해 내기 힘들 거고.

'둘만 보내도 되긴 하겠지만…….'

여기에 녀석들의 친구까지 더해 주면 금상첨화다.

"아이스 골렘 소환."

[설국(雪國)의 왕이 출현합니다.]

적군이 흐려진다.

적은 그대로였으나 그 앞을 가로막은 공간이 투명한 벽에 가로막힌 듯 흐려진다.

쿠우우우우웅-!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건물만 한 골렘.

[특수 효과, '서리 장막' 발동!]

['서리 송곳' 발동!]

['만년설의 백용불포(百溶不逋)' 활성화!]

화염 장벽에 홧홧하던 대기가 순식간에 냉각된다. 나조차 감당하기 힘든 냉기.

[꺄륵!]

[시원해!]

[좋아!]

[간다!]

쌍둥이 귀신은 그 극저온을 연료 삼아 로켓처럼 치솟았다가, 한 바퀴를 돌아 지상으로 향했다.

그리고.

콰드드드드득-!

지면을 타고 뻗어 나가는 얼음.

[!!]

[이…… 이러려고 물 폭탄을……!]

폭탄 세례에 사방에 널려 있던 수분이 얼어붙는다.

[다, 다리가……! 움직일 수 없습니다!]

[멈춰! 물러나면 무너진다!]

[전군 대형 유지! 다시 말한다, 대형유지!]

적군은 동요했다.

[빙결(氷結)이다!]

[얼음 내성자들은 앞으로!]

그러나 아직 무너지진 않았다.

비서실장이 말한 '무능력의 지휘관'이 지략을 발휘한 것일 터.

"제법이네."

근데 말이지.

우리가 이 정도로 끝낼 리 없잖아?

[받아!]

[받아라!]

[빙결!!]

['혹한의 폭풍' 활성화!]

쌍둥이의 빙결(氷結).

그리고 아이스 골렘의 폭풍이 만난다.

화아아아아아앗-!

서리와 눈보라를 품은 엄청난 냉기의 폭풍.

쌍둥이의 비늘이, 땅 대신 휘몰아치는 폭풍을 박차고 오른다.

[꺄하하하하하하!]

[엄청 빨라!]

[흔들려!!]

[재밌어!!]

공기가 얼어붙는다.

바람이 얼어붙는다.

넘실대던 화염장벽이 얼어붙는다.

'!!'

얼음으로 빚은 파도.

휘몰아치던 폭풍이 사라지고 남은 건 빙산뿐이었다.

콰드드드드드득-!

불의 장벽은 얼음벽이 되었고, 우리가 아닌 그들을 막아섰다.

송곳 같은 고드름이 침입자들을 향해 찌를 듯 빼곡한 빙산.

[……이게…….]

[…….]

적군은 말을 잃었다.

펄럭-

그 틈에 날개를 펴고 날아올랐다.

얼어붙은 적군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첨탑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저, 저기!]

[이은호! 이은호가 나타났습니다!]

그러자 가까이 있던 병사들의 눈이 커다래진다.

[손에 뭘 쥐고 있는데……!]

[파악하라!]

아아.

"한 놈, 한 놈 찾아다니면서 싸워 주기엔 내가 너무 바빠서."

[?!]

그래서 오늘은 검 대신 이걸 들었지.

▣ 복원된 파르바타스트라

- 고대 신이 사용했다고 알려진 스태프.

시전자의 기운을 담아야 마땅하나, 그 위험성이 커 자연의 기운을 충전하는 방식으로 개조되었다.

인사국의 침입자들에게서 빼앗은 신급 무기.

- 활성화할 경우 원하는 위치에 철암(鐵巖)을 떨어뜨린다.

사막 요새를 무너뜨릴 정도로 거대한 철의 바위를 유성처럼 불러오는 스태프를.

[7중대! 용리…….]

"낙하(落下)."

쿠과과과과과광─!

하늘이 어두워진다. 구름보다 거대한 철암이 가차 없이 떨어진다. 종잇장처럼 바스러지는 잿빛 비늘의 집합.

[끄아아아아아아악!]

[버텨!]

[모, 못 버팁니다!]

[대형이 무너지면 끝이다! 9중대! 힐을!]

죽은 자는 말이 없었으나 어중간하게 산 자들은 달랐다.

냉기에 가라앉은 숲을 들끓는 물처럼 데우는 비명.

[전원 정신 차려! 적은 한 놈이다!]

그 와중에도 지휘관은 용을 썼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아참."

- 최대 충전 가능 횟수 : 10회

"이거 일회용 아닌데."

[……!]

한 놈당 공격 한 번, 뭐 이런 룰이 정해져 있는 건 아니잖아?

"낙하(落下)."

쿠과과과과과광─!

하늘이 또다시 어두워지고, 적군의 얼굴에도 그늘이 드리웠다.

쿠과과과과과광─!

골렘은 돌아가고, 쌍둥이들은 돌아온 지 오래.

만들어진 빙산은 박살이 나며 무너졌다. 어떻게든 버텨보겠다며 머무르던 적군과 함께.

쿠과과과과과광─!

혼비백산하여 도망치는 놈들이 하나둘 늘어나고.

더 이상의 지휘도, 비명도 사라져갈 때 즈음.

펄럭-

"회장에게 전해."

패잔병들의 머리 위로 떠 올라 말했다.

"다 으깨지는 꼴 보고 싶지 않으면 직접 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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