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구조조정에서 살아남는 법-293화 (293/317)

<구조 조정에서 살아남는 법 293화>

Chapter 60. 영원의 탑(6)

[‘문’을 열어 다음 시험장으로 이동하세요!]

찾았다. 문.

“바로 가시죠.”

시험 시작 후 아직 5분도 안 지났지만, 출구를 찾았는데 더 머무를 필요는 없다.

그리 생각하며 말하자 지은 씨가 재혁이와 해골들을 향해 외쳤다.

“다들 띄울게요!”

“부탁드립니다, 누님!”

“예!”

몸이 두둥실 떠오른다.

나도, 해골들도, 온몸이 붉은빛으로 달아올라 끙끙대던 재혁이까지 바퀴에서 손을 떼고, 공중에 떠오른 순간.

쿠—웅!

동력을 잃은 수레바퀴가 움직임을 멈췄다.

“형님! 멈췄습니다!”

당연하다.

수레바퀴야, 땅속에 처박히듯 멈춰 있던 걸 억지로 돌린 것에 불과하다.

우리가 손 떼면 곧 멈출 거란 사실이야 짐작했다만.

‘문제는 저건데.’

파슷-!

하늘을 수놓았던 별들이 순식간에 기화한다.

멈춘 수레바퀴 속으로 빨려 들어가듯 사라져 버린다.

결정적으로.

“문이…….”

‘문’이 사라졌다.

“……뭡니까, 이거?”

“바퀴가 돌아가는 동안에만 열리나 봐요!”

다시금 캄캄해진 밤.

빛도, 길도 잃어버린 허공에서 지은 씨가 입을 열었다.

“그럼…….”

그러자 꿀꺽, 침을 삼킨 재혁이가 한다는 말이.

“제가 남겠습니다.”

“응? 남다니?”

“제가 모두 빠져나갈 동안 수레바퀴를 돌리고 있겠습니다.”

제가 남아 문, 그러니까 별자리들을 유지하겠다는 얘기였다.

“시간이 없지 않습니까?”

남은 시간은 4분 51초.

“그러니까 우선 빠져나가서 주식을 찾으시고…….”

“무슨 소리야?! 시험에 통과 못 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고 한 거 못 들었어? 혼자 남았다가 어떻게 될 줄 알고!”

“누님…… 어쩔 수 없지 않습니까.”

재혁이는 머쓱한 얼굴로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솔직히 저 수레바퀴, 거의 저 혼자 돌린 거 아시죠? 누가 남아야 한다면 그건 접니다.”

제 딴에는 웃음 섞인 말이었으나 아무도 웃지 않았다.

단단히 결심한 얼굴 뒤로 카운트다운은 계속되고 있었다.

「4:32」

바퀴를 굴리면 문이 열리지만, 굴러가는 동안에만 나갈 수 있다라.

‘대놓고 한 놈 버리고 가라 말하는 것 같긴 한데…….’

내가 그리 말 잘 듣는 타입은 아니라서 말이지.

“내려 주시겠습니까?”

“아, 네!”

구덩이 아래에 내려서며 입을 열었다.

“소환. 활성화.”

손바닥 위에 자리 잡자마자 사라지는 녹색 카드와 바로 옆에 나타나는 철문.

그를 보며 뒤따라온 해골들이 물었다.

“단장님!”

“돌아가십니까……?”

“아니.”

정신 교육, 똑바로 됐나 모르겠는데.

“막내 데려와야지.”

* * *

“네 후배다.”

“옛?!”

“너랑 똑같이 만들어 놔.”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 버려진 산맥은 속으로 비웃었다.

“검은 안 통할 거다. 차라리…….”

귀에 속삭이듯 말하는 놈과 달그락거리며 열심히 주억거리는 해골을 보고도 비웃었다.

‘검 말고 다른 무길 주려나 보군.’

끝까지 듣진 못했지만 멍청한 전략이다.

자신은 금강불괴를 발동하면 그만인 것을.

저 뽀얀 뼈다귀로 하면 뭘 하겠다고 저러나- 생각하며.

[후, 거기 뼈다귀 친구들? 내가 어쩌다 보니 여기까지 굴러들어 오긴 했지만서도, 누구한테 훈련받고 이럴 짬밥은 아니거든?]

뭐, 어차피 먹지도 못하는 뼈다귀들 아닌가.

배고파 뒤지겠는데 힘 뺄 이유 없으니 적당히 넘어가려 했다.

[각자도생하자고, 각자도생. 아까 그 새끼 돌아오면 내가 적당히 입 털어 줄 테니까.]

“거기 먹을 거 많아. 알아서 잡아먹고 있어.”

‘먹을 게 많다 했지.’

뭘 잡아먹을까 싶어 츄릅 입맛을 다시고 나니, 뼈다귀의 눈이 달라진 게 보였다.

“……방금 뭐라 했나.”

[입 털어 주겠다고?]

눈동자도 없는 주제에 검보라 빛 안광을 내뿜는 기세가 남다르다.

10번인지 뭔지 말고 다른 뼈다귀들도 조금씩 다가오더니, 저를 둘러싸기 시작했고.

[……왜 이래? 아마추어처럼?]

그 모습에 슬금슬금 뒷걸음질 치며 말했는데.

[훈련 빡시게 받았다고 할게! 어깨 바위 빠지고 무릎 바위 나갈 뻔했다고!]

그게 시작이었다.

“본 교관은 훈련병의 태도에 크게 실망했다.”

[교…… 뭐?]

“감히 단장님께 상스러운 욕지거리를 내뱉고! 거짓을 고할 생각을 하다니!”

무서운 기세로 달려드는 뼈다귀들.

[그래! 바위가 깨져 봐야 정신 차리지!]

앞에서 다섯, 뒤에서 다섯. 총 열 놈이다.

우선 금강불괴로 놈들의 공격을 막고, 하나씩 으스러뜨리자.

그리 생각하며 전신의 경도를 높여 가는 순간.

깡!

죄다 들고 있던 검을 버리고.

맨손, 아니, 맨손 뼈로 달려드는 놈들.

[?!]

순간 멈칫했다.

이놈들, 검사가 아니라 권투사였나?

아니면 손에 뭔 독이라도 발라 둔 건가?

[뭐가 됐든 상관없다. 와라!]

……라고 당당하게 외쳤으나.

드륵- 드르르르륵-!

제 머리 바위를, 어깨 바위를, 종아리 바위에 껴안듯 매달리더니, 트위스트 하듯 비틀어 뽑아 버리는 놈들을 보곤 당황해 버렸다.

[자, 잠깐만! 잠까아아아아안!]

몸에서 뽑혀 버린 머리 바위가 비명을 내질렀으나 소용은 없었다.

이미 씹어먹을 뼈다귀들은 제 몸보다 커다란 바위를 데굴데굴 굴려서 흩어져 버렸으니.

[이게 무슨 짓이냐 이 미친놈들악!!]

느껴진다.

흙바닥을 구르고! 먹음직스러운 벌레들을 지나! 똥 밭인지 진탕인지를 구르는 제 소중한 바위들이!

[이 미친!!]

“귀관을 위해 특별히 만들어진 맞춤 훈련이다! 정신이 좀 드는가!”

[차라리 싸워! 싸우라고오오오옥—!]

싸우라고오오오옥—! 싸우라고오오오옥—! 싸우라고오오오옥—……

메아리는 계속되었다.

바깥세상과 달라진 교육원 안의 시간이 꽤 흐를 때까지.

……한 달 뒤, 동굴 안.

[단장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빛과 소금이시며, 악을 무찌르고 회사를 다스리는…….]

으로 시작해서.

[……단장님을 위하여.]

으로 끝나는 기나긴 기도가 염불처럼 흘러나왔다.

“아주 좋군!”

[예, 좋네요.]

“1만 번의 법칙이다. 명심하도록!”

[예, 뭐.]

병신 같은 기도도 몇천 번을 외었더니 할 만하다.

기계적으로 튀어나온다고 해야 할까.

“좋아! 맘껏 먹어라!”

뭣보다, 기도만 하면 배를 채울 수 있다니!

“단장님께서 밥은 챙겨 먹이라 하셨지.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이라고.”

그래. 산맥은 솔직히 여기가 마음에 들었다.

배부르고 등 따신 데다가, 황무지의 무뢰배들처럼 귀찮게 달려드는 날파리도 없으니.

이게 얼마 만에 맛보는 여유인가.

[끄억— 맛 좋네—]

다만 딱 한 가지 불만이 있다면.

[니들…… 아니, 선배들은 왜 여기 갇혀 있는 거지?]

“갇혀 있다니. 단장님의 부름을 기다리며 수련하는 것. 그게 우리의 사명이다.”

[하! 그 새…… 아니, 단장님이 선배들 이러는 거 알아줄 거 같습니까?]

이 병신 같은 뼈다귀들이었다.

천치. 머저리. 천하의 뇌가 없는…… 아, 해골은 뇌가 없지?

아무튼 최하급 마물 주제에 어떻게 자아를 얻어서는, 단장님이니 뭐니 하며 미친 충성을 바치고 있는 멍청한 선배들.

[윗대가리들한테 우리 같은 놈들은 일회용 젓가락 같은 겁니다. 한 번 쓰고 버리면 끝이라고요, 끝.]

쓸모를 다하면 버림받을 게 뻔한 놈들이다.

그걸 누구보다 잘 알기에, 답답해 뒈질 지경이었다.

“훈련병! 그만 먹고 싶나?”

[……쩝. 아뇨.]

그래. 뼈다귀들한테 뭔 말을 하겠냐.

체념한 산맥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을 때였다.

달칵-

문이 불쑥 솟아오르고, 안에서 그놈이 나타났다.

시험인지 뭔지를 본다고.

“너는…….”

그러더니 밀웜 튀김을 열심히 뜯어 먹던 날 보고는 물었다.

“맛있냐?”

[……어? 어. 아니, 예.]

“많이 먹어라.”

감정 없는 눈빛.

싸웠던 기억은 잊은 것처럼, 마치 굶주린 돌덩이 따위는 제 상대도 안 된다는 듯 담담한 태도.

“단장님? 훈련병은 같이 안 갑니까?”

“밥 먹는 덴 개도 안 건드린다잖아. 일단 시간 없으니까, 먼저…….”

그리고 사라졌다.

[뭐야 저 새끼?]

도망칠 수도 있었다.

사실, 바로 도망쳤다가 다시 돌아왔다.

혀만 긴 단장에게 시달릴 멍청한 뼈다귀들이 조금, 아주 조금 신경이 쓰였던 탓에.

[씁, 그놈한테 팽당하면 내 부하로 삼을까.]

그 생각으로 잠시 기다리자 놈이 다시 나타났다.

“다 먹었으면 따라오지.”

[예, 뭐…….]

탐탁잖게 따라간 곳은 캄캄한 평야였다.

거대한 수레바퀴를 굴려야 한다나, 뭐라나.

[……이걸 굴리라고? 요?]

“바퀴가 구르는 동안에만 문이 나타나. 그래서 네가 필요하다.”

하. 잠깐만.

그러니까.

[내가 문을 만들어 놓는 동안 전부 빠져나간다는 건가? 요?]

“그래.”

버리고 가겠다는 거네.

……이 새끼도.

‘내 이럴 줄 알았지.’

“아이스 골렘이랑 재혁이는 이쪽에서 들어 올리고, 돌덩이랑 해골들은 반대쪽에서 끌어내린다.”

“오오! 양쪽에서 힘쓰면 더 쉽겠습니다, 형님!”

“돌덩이는 무거우니까 도움이 될 거다.”

역시 윗대가리들은 다 똑같다.

“재혁이 넌 밀다가 올라와. 지은 씨, 재혁이가 신호하면 바로 데려와 주시고요.”

“예! 알겠습니다!”

“그럴게요.”

저런 놈들에게 아랫것들은 두 종류다.

한 번 쓰고 버릴 일회용 부하와 여러 번 쓰고 버릴 다회용 부하.

“재혁이가 무사히 들어올 때까지 바퀴가 멈춰 선 안 돼. 아이스 골렘 혼자선 힘들 테니, 너희가 반대쪽에서 잡아당겨 줘야 한다.”

저 까만 놈은 다회용.

우린 일회용이라는 거지.

[……쓰벌.]

뻔한 얘기다.

그럼에도 화가 끓어오르는 건, 멍청한 뼈다귀들이 저놈에게 얼마나 충성했는지 알기 때문에.

[이러려고 데려왔냐?]

“무슨 소리야?”

[우린 여기 버리고 네놈들 빠져나가려고 데려왔냐고.]

달아오른 바위를 콰득 깨물며 으르렁거렸다.

[난 그렇다 쳐도, 저 새끼들까지 버리는 건 너무하잖…….]

“이상한 소릴 하네. 버리긴 뭘 버려.”

그러나.

“처음 받은 막낸데, 지옥까지 데려가야지.”

단장은 까딱, 턱 끝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산맥의 등 뒤.

닫히지 않은 채, 동굴과 이어져 있는 저들의 ‘문’을.

“너, 지금 어디서 나온 건지 기억 안 나냐?”

[뭐?]

“신호하면 바로 들어가. 저 문, 나 없으면 곧 사라지니까.”

[……!]

캄캄한 밤하늘.

꽃이 피듯 피어나는 별 무리 아래.

“밥 잘 챙겨 먹고 있어라.”

달그락거리는 주제에 우렁차게 답하는 해골들의 경례를 보며, 버려진 산맥은…….

제 속의 무언가가 드르륵- 하고 움직이는 걸 느꼈다.

* * *

[‘세 번째 시험’을 통과했습니다.]

별자리가 만들어낸 ‘문’을 통과하는 순간, 갑자기 공기가 변했다.

‘뭐지?’

지금까지와는 다르다. 대기의 질인지, 시간의 흐름이 달라진 건지, 정확히는 파악할 수 없었지만…….

지직-

고장 난 라디오처럼 지직거리는 소리.

[격(格)이…….]

[시험장(Ⅳ)으로…….]

지금껏 흘러나왔던 안내 방송이 뭉개지듯 흐려졌다.

“지은……?!”

지은 씨도, 재혁이도 보이지 않는다.

이거 어쩌면 안내 방송이 아니라 내 의식이 흐려진 걸지도 모르겠다. 그리 생각하는 순간, 터져 나오는 빛.

파아아아앗-

눈보다 희고 태양보다 밝은 빛에 눈을 감았다.

그러자 귓가에 실바람 같은 목소리가 불어온다.

[여명(黎明)의 혁명가여.]

“!!”

부드러운 여인의 음성.

그러나 흐리고, 나약하며, 콧바람에도 사라져 버릴 듯 위태로운 목소리.

“당신은…… 누구지?”

목소리가 답했다.

[우리는 이름을 잃은 존재. 이미 져 버린 별이란다.]

이름을 잃은…….

‘아.’

생각나는 존재가 있다.

선물을 안겨 주고, 안배에 개입했다던 ‘이름 모를 신.’

“제게 뭘 원하십니까.”

[탑의 시험을 이겨 내거라.]

탑의 시험은 이미 치르고 있다.

이번 라운드로 60%까지 올랐을 ‘격(格)의 상승’으로 짐작해 보건대, 두 번의 시험이 더 남아 있을 터.

“이겨 내면, 저는 무엇을 얻게 됩니까.”

[새 시대의 주인이 될 것이다.]

궁금한 건 많았다.

“그럼 당신은 무얼 얻게 되십니까.”

[우리는…….]

왜 나였는지. 왜 도와줬는지. 왜 ‘나는’이 아니라 ‘우리는’인지…….

그러나.

삐───익!

[시험장(Ⅳ)으로 이동합니다.]

익숙한 경고음. 이미 나왔어야 할 메시지가 뒤늦게 튀어나옴과 동시에 빛이 흐려졌다.

[……시간이 여의치 않구나.]

실낱같은 목소리가 다급하게 말을 이었다.

세상이 빛을 잃어가는 한편 목소리의 한마디, 한마디가 점점 흐려진다.

[불가살, 그자는…….]

쩌저저저저적-

그때, 새하얀 하늘에 검은 번개가 쳤다.

찢어지는 순백색의 하늘.

[……이 안에 있단다.]

“!!”

시야가 어둠으로 물든다.

횃불 따위로 밝힐 수 있는 어둠이 아니었다.

불씨 하나도 튀어 오를 수 없도록 묵직하게 짓누르는 어둠.

[명심…… 렴. 탑의 시험을 …… 내야 한다.

내 손을 붙잡듯 넘실대는 바람과 점점 흐려지던 목소리는.

[영원의 탑은…….]

그렇게 사라졌다.

파아아아아앗-

동시에, 다시 찾은 시야.

‘……허억.’

극한의 빛과 극한의 어둠을 연이어 겪었더니, 마치 몸이 냉동고와 팔팔 끓는 물에 번갈아 들어갔다 나온 기분이었다.

잠시 멍해지는 머리를 흔들며 정신을 차리고 있자니, 누군가 내 어깨를 툭툭 쳤다.

“이은호 씨? 괜찮아?”

“아, 예. 괜찮습니다.”

방금의 만남을 지은 씨와 재혁이도 겪진 않았을 거다.

굳이 걱정시킬 필요 없단 생각에 태연히 눈을 떴다.

“지은 씨는 괜찮…….”

“지은 씨?”

……떴는데.

“뭐야. 이은호 씨, 설마 꿈꿨어?”

내가 왜 사무실에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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