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화 감정위원 (4)2021.09.13.
이수지가 엘리베이터에 타자 김도균은 재빠르게 정다영에게 눈치를 주었다. 정다영이 고개를 끄덕였고, 김도균은 시선을 끌기 위해 10명의 인플루언서 앞에 섰다.
“오늘 진행이 매끄럽지 못했던 것 사과드립니다. 하지만 방금 소란이 있었던 만큼, 라이브 방송은 꺼주시길 바라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
김도균이 고개를 조아리자 인플루언서들은 마지못해 방송을 끝낼 준비를 했다.
“아쉽지만 오늘은 여기까지 할게요.”
“조금 있다 다시 켤게요. 기다려 주세요.”
인플루언서가 라이브 방송을 끝내자 김도균은 애써 밝은 미소를 지었다.
“그럼 지금부터 작품 설명을 진행하겠습니다.”
그 말을 들은 30대 남자 인플루언서가 나섰다.
“그 전에 아까 일어났던 일을 설명해주시는 것이 맞지 않습니까?”
이미 예상한 질문이었지만 김도균은 당황한 듯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열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듣기로 쌍룡검 원고를 써준 것과 감정위원이 다 그만두었다는 이야기를 하던데, 주인탁 교수가 압력을 넣어서 그렇게 된 건가요?”
“압력을 넣어서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지, 확인은 되지 않습니다. 다만 최근 쌍룡검 원고를 써준 교수님들의 연구비가 줄고, 잘 진행되고 있었던 강의가 폐강되는 상황이 있었던 것은 맞습니다. 감정위원 6명이 그만둔 것도 맞구요. 인과관계에 대해서는 저희도 잘 파악이 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20대 여자 인플루언서가 물었다.
“그건 지금 확인해보면 되잖아요. 아까 그 직원분 어디 있어요?”
인플루언서들의 주인탁과 설전을 벌인 한지감을 찾았지만 전시장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김도균이 시선을 끄는 동안 정다영이 한지감을 데리고 계단으로 이동했기 때문이었다.
“그 남자분 어디 간 거야?”
“쥐도 새도 모르게 없어졌네.”
아쉬워하는 인플루언서들을 보면서 김도균은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 * 다영이 나를 밀치듯 운전석 안으로 밀어넣었다.
“내가 탄다니까!”
“행동이 너무 굼뜨잖아요!”
내가 운전석에 타자마자 다영은 문을 닫고 조수석에 앉았다.
“빨리 출발해요.”
“이렇게 급할 거 없거든?”
나는 구시렁거리면서도 차를 출발시켰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내 핸드폰이 울렸다. 운전중이었기에 다영이 확인했고, 보란 듯 나에게 핸드폰 액정을 보여줬다. ART TV 홍 기자에게서 온 전화였다.
“보이죠?”
“다른 것 때문에 전화한 걸 수도 있잖아.”
“100% 주인탁 때문에 온 전화거든요?”
더 이상 핸드폰 벨소리가 울리지 않더니, 잠시 후 홍 기자에게서 문자가 도착했다. 그 문자를 다영이 소리내어 읽었다.
“지감 씨, 주인탁 명예교수랑 무슨 일 있어요? 시간 될 때 전화 좀 부탁해요.”
눈을 부릅뜬 다영이 물었다.
“이래도 다른 것 때문에 연락했다고 할 거예요?”
“일말의 가능성이 있다는 거지. 미안…….”
끙. 나는 꼬리를 내렸고, 다영은 재빠르게 내 핸드폰을 꺼버렸다.
“알면 됐구요.”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다영의 핸드폰이 울렸다.
“이번에는 제 거네요.”
“누군데?”
“P일보 김 기자님이요.”
다영은 그냥 두다가 벨이 울리지 않자 바로 핸드폰을 꺼버렸다. 나는 힐긋 다영을 봤다.
“나 혼자 나와도 되는데 뭐하러 따라나왔어.”
“인플루언서 반응 보느라 정신이 팔려 있던 사람이 누구더라?”
“궁금하니까 그렇지.”
“그러다가 사람들이 달려들면 뭐라고 이야기할 건데요. 총괄님이 저에게 미리 귀띔을 해주셨으니까 망정이지.”
“챙겨줘서 고마워.”
바로 다영의 입꼬리가 씨익 올라갔다.
“알면 됐어요.”
“그런데 넌 회사 들어가 봐야 하는 거 아니야?”
“안 들어갈 건데요.”
나는 부러 더 장난스레 말했다.
“설마. 이 오빠랑 같이 있고 싶냐?”
“그 정도로 좋아하진 않거든요.”
“그럼?”
“오빠랑 나 친하니까 다 나한테 물어볼 거 아니에요.”
“거기까진 생각을 못 했네. 잘되겠지?”
“잘돼야죠. 우리 회사가 걸린 일이고, 오빠 인생이 걸린 일인데.”
“그래. 잘될 거야.”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긴장감을 감춘 채 억지로 웃었다. * 인플루언서가 돌아가자 김도균은 경매팀 전원을 회의실에 모았다. 사무실 전화, 핸드폰 할 것 없이 전화가 울려댔다. 그 소음 속에서도 김도균은 차분함을 잃고 지 팀장에게 지시를 내렸다.
“전화 울리지 않도록 조치해 주세요.”
“네.”
지 팀장이 나가자 김도균은 회의실에 있는 경매팀 직원들을 일일이 보면서 말했다.
“모두 핸드폰 꺼 주세요.”
모두 핸드폰을 끄면서 소음을 줄어들었고, 지 팀장이 조치를 취하면서 전화도 더 이상 울리지 않았다. 소음에서 고요로 전환되자 엄청난 긴장감을 만들어냈다. 그 긴장감을 김도균은 따듯한 목소리로 녹였다.
“갑작스럽게 발생된 상황에 모두 놀랐을 겁니다. 저 역시 많이 놀랐습니다. 급하게 인플루언서를 준비한 것이 독이 된 것 같아 마음이 좋지 않네요. 그리고…… 한지감 씨가 주인탁 교수에게 그런 압박을 받고 있었는지 몰랐습니다.”
안타까운 김도균의 표정은 누가 보기에도 난감한 상황을 마주한 사람이었다. 그는 마른침을 삼키며 말을 이어갔다.
“경매팀 총괄로서 마땅히 파악했어야 하는 문제인데, 마음이 무겁습니다. 다 제가 부족한 탓입니다. 한지감 씨와 접촉해서 상황을 확인한 뒤에 어떻게 대처할지 확인하도록 하겠습니다. 그 전까지는 답변을 최대한 피해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모두 작은 목소리로 대답을 하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때 장희정이 손을 들고 물었다.
“끈질긴 연락에 대해서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기자님들 중에서는 도무지 포기를 모르는 분들이 있어서요. 평소 기사를 부탁하는 입장이라, 계속 연락을 무시하기도 어려워요.”
“사실 확인 후에 연락드리겠다고 말씀하세요. 뻔한 답이지만 지금은 그편이 최선이에요.”
“알겠습니다.”
경매팀 한 사람 한 사람을 보며 김도균이 말했다.
“팀장급 이외에는 짐을 챙겨서 퇴근하시면 됩니다.”
“네.”
“예.”
팀장급을 제외한 팀원들이 우르르 나가고, 회의실에는 김도균과 세 명의 팀장들만 남았다. 이를 악문 서정선이 씩씩거렸다.
“그러니까 주인탁 교수가, 쌍룡검 소책자를 만든 지감 씨가 못마땅해서 괴롭혔다는 거죠?”
서정선의 남다른 기세에 김도균은 움찔했지만 애써 차분하게 대응했다.
“그렇게 추측이 되나, 정확하지는 않아요. 확인해 봐야 합니다. 제가 연락해서 상황을…….”
“아니요. 팀장인 제가 확인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서정선이 끼어들면 상황이 여러 가지로 복잡해지니, 어떻게든 말려야 한다.
“서 팀장님의 마음은 충분히 알아요. 하지만 회사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 처음인 만큼, 통로를 하나로 정하고 확인하는 것이 맞아요. 바로 한지감 씨에게 연락해서 상황을 확인하고 공유하겠습니다.”
기다려야 하는 것이 탐탁지 않지만, 김도균의 말이 일리가 있어 서정선은 받아들이기로 했다.
“네. 알겠습니다.”
“그럼 팀장님들도 이만 퇴근하도록 하세요.”
“예.”
“네.”
지 팀장과 이 팀장이 일어서 나가는데도 서정선은 나가지 않고 기다렸다. 할 말이 있는 모양이었다.
“서 팀장, 할 말 있어요?”
“알아서 잘하실 거라 생각하지만, 지감 씨 너무 다그치지 말아 주세요. 문제가 일어나긴 했지만…….”
“지감 씨 탓이 아니죠. 알아요. 서 팀장이 우려하는 일은 없을 거예요.”
“감사합니다.”
그제야 서정선은 희미한 미소를 짓고 회의실에서 나갔다. 서정선의 성격을 생각하면, 지금의 부탁은 당연한 것이다. 김도균과 두 명의 팀장들과 의견 충돌을 피하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팀원에게는 의견을 강제하지 않았다. 한마디로 자기가 책임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약했다. 회의실에 혼자 남은 김도균은 긴장을 풀고 푹 기대고 눈을 감았다. 피로가 몰려오는 기분이 들었다. 잠깐의 휴식을 취한 텅 빈 사무실로 나와 자신의 자리로 갔다.
“우리가 바라는 대로 되었을까?”
그는 떨리는 손으로 포털 사이트에 들어가 실시간 검색어를 확인했다. 1위는 ‘주인탁’, 2위는 ‘탑 옥션’이다. 주인탁의 이름을 클릭하니 한지감에게 소리를 지르는 장면이 편집되어 올라온 것이 보였다. 기자들은 ‘명예 교수의 갑질?’ ‘사학과 교수가 아니라 매국노?’ 같이 편집된 영상을 바탕으로 기사를 써대고 있었다.
“이대로는 좀 약한데…….”
한지감이 아닌 다른 사람의 폭로들이 쏟아져 나와야 의미가 있었다. 불을 지피긴 했지만, 활활 타오르기 위해서는 다른 폭로들이 더해져야 한다. 지금이라도 관련자들에게 전화를 돌려볼까 생각하는데, 실시간 검색어에 ‘성준섭 교수’가 무서운 기세로 올라왔다. 클릭하니 학교 게시판에 올린 성 교수의 글이 캡처되어 올라와있었다. - 대학에서 어이없는 일을 당한 저는 휴직계를 냈습니다. 멀쩡히 잘 운영되던 강의가 이유도 없이 폐강되고, 약속된 연구비가 삼분의 일로 삭감되었습니다. 그 이유를 궁금해하던 저는 우연히, 탑 옥션의 쌍룡검 원고를 쓰신 다른 교수님들도 같은 일을 당하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일에 뒤에는 주인탁 교수가 있었습니다. 빨려드는 글 솜씨는 아니었지만, 성 교수는 담담하고 정확하게 대중에게 알려야 할 정보를 써 놓았다. 댓글 반응도 뜨거웠다. - 한국대 명예교수가 식민사관을 주장하고 그 사람의 말이 통하는 것을 보면, 한국대가 식민사관의 소굴 아님? - 대박 충격적……. - 한국대가 식민사관에 앞장선다는 것을 사학과 사람들은 다 압니다. 하지만 그 세력이 너무 압도적이어서 반발하지 못합니다. 성 교수의 글이 누구 작품인지 김도균은 어렵지 않게 눈치챘다. 흐뭇한 미소를 지은 그가 한지감의 세컨 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아만다 우의 유작 때문에 이수지에게 시달릴 때 개통한 핸드폰이었다. 두 번의 통화연결음이 반복되기도 전에 한지감이 전화를 받았다.
[네. 총괄님.]
“성 교수가 올린 글, 한지감 씨 작품이죠?”
[어려운 결정을 해주신 건 교수님이니까, 제 작품이라고 하긴 그렇네요.]
“하지만 제안한 건 지감 씨잖아요.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인데, 잘했어요.”
[감사합니다.]
“내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죠?”
[그럼요.]
“그럼 내일까지 푹 쉬어요.”
[네. 총괄님도 푹 쉬십시오.]
불안한 상황이었지만, 한지감과 통화를 하는 것만으로도 든든한 기분이 들었다. * 의자에 푹 기댄 강정휘는 은은한 미소를 띠며 강민수에게 전화가 오길 기다렸다. 한지감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곧바로 연락을 취하기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액정에 강민수의 이름이 떴고, 한지감이 고꾸라진 소식을 기대하며 전화를 받았다.
“어머. 민수 씨. 무슨 일이에요?”
[오늘 이상한 일이 일어나서 연락드렸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강민수가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해하는 것이 절로 느껴졌다. 웃음이 터지는 것을 참으며 그녀는 궁금한 척 연기했다.
“무슨 일이 있었어요?”
[주인탁 교수라고 아세요?]
“아……! 사학과 교수님 말씀하시는 거죠?”
[네. 저와 같은 한국대이십니다.]
이 상황에서도 강민수의 한국대 자부심은 견고했다.
“알죠. 그런데 그분이 왜요?”
[프리뷰 전시장에서 한지감에게 난리를 쳤습니다. 쌍룡검을 말도 안 되게 신격화시킨 것을 탐탁지 않게 생각하셨거든요.]
“어머……. 어떻게 그런 일이.”
놀란 연기를 하면서 강정휘가 궁금한 것은 딱 하나였다. 자기 잘난 맛에 사는 한지감이 무릎을 꿇었을지.
[그렇게 끝났어야 하는데, 일이 이상하게 돌아갔습니다. 사실…… 오늘이 인플루언서들이 초대된 날이었거든요.]
웃음이 넘치던 강정휘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이……인플루언서요?”
[네. 타이밍이 안 좋아서 그 인플루언서들이 그 모습을 찍었어요. 심지어 SNS에 라이브로 공개되기도 했구요.]
“…….”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그녀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어렵게 잡은 기회가 이렇게 날아가 버리다니……! 아무 말이 없자 수화기 너머 강민수는 당황했다.
[대표님?]
“…….”
강민수에게 욕을 퍼붓고 싶었다. 인플루언서가 온다는 것을 미리 알았다면 기회를 이렇게 허무하게 날려버리는 일은 없었을 터였다. 하지만 지금 강민수에게 욕을 퍼붓고 나면, 탑 옥션 안에 있는 다른 사람을 새로이 포섭해야 한다. 아직 강민수는 쓸모가 있었기에 차마 그럴 수 없었다. 그녀는 간신히 화를 눌렀다.
“……그렇군요. 민수 씨 내가 좀 바빠서 다시 연락 줄게요.”
[아…… 저 드릴 말씀이…….]
강민수의 말에도 통화 종료 버튼을 누른 강정휘는 핸드폰을 던졌다.
“아아악! 아아아악!”
그럼에도 화가 풀리지 않는지 책상에 있는 물건들을 팔로 쓸어버렸다.
“병신 같은 놈. 미리 알렸으면 이런 일이 없잖아!”
주인탁과의 관계를 강민수에게 알리지 않았으니, 따지자면 잘못은 강정휘에게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잘못에 관하여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다. 화가 식지 않았지만 체력이 따라주지 않아 무너지듯 의자에 앉았다. 그녀는 심호흡을 하면서 애써 자신을 달랬다.
“괜찮아. 당장은 시끄러워도 언론은 금방 식을 거고, 주인탁 정도의 자리는 쉽게 흔들리지 않아.”
그녀는 매섭게 눈을 부릅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