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3화 소문(1) (133/226)

133화 소문(1)2021.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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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60286750441.jpg“뭐라구요?”

16560286750447.jpg“아. 들었어요? 혼잣말이었는데.”

주먹을 날리고 싶은 기분이 들었지만 꾹 참았다. 여기서 때리면 나만 이상한 사람 된다. 나는 되레 여유로운 미소를 만들어냈다.

16560286750441.jpg“강민수 씨가 개인적인 인연을 동원해서 위탁을 받길래 상관없는 줄 알았죠. 신경 쓰이면 이제라도 갤러리나 골동상에게 위탁받은 건 제외할까요? 난 상관없는데.”

16560286750447.jpg“…….”

강민수는 이를 악물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대형 갤러리와 아버지가 위탁한 미술품을 제외하고도 나는 10점 정도가 남았지만 강민수는 5점도 남지 않는다. 나는 살짝 고개를 숙이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16560286750441.jpg“까라면 까지도 못할 게, 내세울 건 학벌밖에 없지.”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기분 나쁜 혼잣말에는 기분 나쁜 혼잣말이다. 강민수가 눈을 부릅뜨고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16560286750447.jpg“이 자식이 뭐라고 했어?”

16560286750441.jpg“아. 들었어요? 욕을 코앞에서 하길래, 귀가 많이 안 좋으신 줄 알았죠. 기분 나빴으면 미안해요.”

일부러 가식적인 미소를 지으면서 나는 그곳에서 나왔다. 더 이상 저딴 놈과 상종도 하고 싶지 않았다. 반드시 이겨서 강민수를 이곳에서 쫓아낼 것이다. 그러려면 ‘예술가의 초상’이 높은 가격으로 팔리는 것이 필요하다. 강정휘와 강민수가 소문으로 망쳐버린 이미지를 어떻게 회복할까 * 한껏 짜증이 난 강정휘가 못마땅한 눈으로 강민수를 훑어봤다. 10분 전 퇴근 준비를 하는 중에 강민수가 다짜고짜 대표실로 쳐들어오더니 한지감을 욕하기 시작했다.

16560286750447.jpg“정말 비열한 놈 아닙니까? 메이저 갤러리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위탁을 받고, 그것도 모자라 아버지가 골동상인 것까지 이용하다니요!”

강민수는 한지감이 죽을죄라도 지은 것처럼 말하고 있었지만, 먼저 선을 넘은 건 그였다. 강정휘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지금 이 상황이 기가 막혔다. 그렇게 억울하면 메이저 갤러리에 가서 위탁받으라는 말이 튀어나오려는 것을, 안경을 생각하면서 간신히 버텼다.

16560286750483.jpg“그러게 말이에요. 정말 후안무치하군요. 민수 씨가 속이 많이 상했겠어요.”

16560286750447.jpg“많이 상했습니다. 페어플레이가 뭔지 전혀 모르는 놈입니다. 그런 주제에 저한테 학벌밖에 내세울 게 없냐면서 까더군요.”

학벌밖에 내세울 것이 없다는 말이 지금의 상황과 너무나도 맞아서, 강정휘는 자신도 모르게 웃을 뻔했다. 그녀는 노련하게 웃음기를 없애고 정색했다.

16560286750483.jpg“그 무슨 말도 안 되는……! 이렇게 재능 있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그런 말 신경 쓸 것 없어요.”

16560286750447.jpg“저도 그렇게 생각하지만 상처가 크네요.”

뭘 저런 걸 가지고 상처가 크다고 하는지, 강정휘는 속으로 비웃으면서도 겉으로는 비위를 맞춰주었다.

16560286750483.jpg“그 마음 잘 알아요.”

16560286750447.jpg“전 여태까지 한 번도 1등을 빼앗긴 적이 없어요. 그런데 고작…… 한지감 같은 사람한테 1등을 빼앗겼다는 것이…….”

꽃노래도 한두 번이면 질리는 것이 사람 마음이다. 그런데 강민수는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 하소연을 계속한다. 당장이라도 입을 막아버리고 싶지만, 슬쩍 한지감을 탑 옥션에서 쫓아낼 방법으로 주제를 바꾸기로 했다.

16560286750483.jpg“힘들죠. 그 마음 내가 잘 알아요. 그러니까 이번 기회에 보란 듯이 증명해 줘야 하지 않겠어요?”

16560286750447.jpg“그래야죠.”

그제야 강민수의 눈빛이 결연한 빛을 띠었다.

16560286750483.jpg“아는 골동상분이 있어요. 그분한테 10점 정도 위탁받을 수 있을 거예요.”

16560286750447.jpg“매번 이렇게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도와주신 것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강정휘는 괜찮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16560286750483.jpg“내가 신경 써준 것이 뭐가 있다구요. 나는 그냥 민수 씨 같은 바른 사람이 이 미술계에 더 많아졌으면 하는 마음뿐이에요.”

16560286750447.jpg“반드시 그렇게 만들겠습니다!”

헤벌쭉 웃는 강민수를 강정휘는 속으로 비웃었다. 그녀가 원하는 것은 단 한 가지, 한지감이 무너져내리는 것이다. 학벌만 좋은 멍청이가 미술계에서 살아남든 말든 그녀와는 상관없었다. 단지 지금은 한지감을 무너트릴 도구로 그가 필요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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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슬쩍 슬쩍 황덕현은 눈치를 봤지만 말을 꺼내지 못했고, 이를 알아차린 김도균이 물었다.

16560286804742.jpg“‘예술가의 초상’ 때문에 그러지?”

16560286804746.jpg“응. VIP들이 자꾸 전화 걸어서 물어봐. 네가 영국에서 알고지낸 고객이 소유한 그림이라는데도 믿지를 못해.”

16560286804742.jpg“경매팀 총괄로서 대응방안이 없냐는 거지?”

16560286804746.jpg“그렇지. 너라면 방법이 있을 거 아니야.”

경매에서 진작과 가작은 상당히 민감한 문제였다. 진작인데도 가작이라는 소문에 휩싸이면 시장성을 잃는다. 고가의 그림이기 때문에 구매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불안할 수밖에 없었고, 그런 부분 때문에 구매를 꺼리게 된다. 법원까지 가서 진작이라는 판결을 받아도 거기에 쏟은 노력에 비해 시장의 반응은 싸늘하다. 그러기에 황덕현이 수장으로서 대응 방안을 궁금해하는 것은 당연했다. 초초한 황덕현과 달리 김도균은 덤덤했다.

16560286804742.jpg“방법이야 있지.”

16560286804746.jpg“있으면 이제 써야 하지 않을까? 경매까지 2주 정도밖에 남지 않았어.”

황덕현의 마음은 급할 수밖에 없었다. 어렵게 세계적인 그림을 위탁받았는데 가작이란 모함 속에서 유찰되게 놔둘 수는 없는 노릇이다. 김도균이 차분하게 답했다.

16560286804742.jpg“나도 알아. 하지만 총괄인 내 개입이 있기 전에 담당 스페셜리스트가 어떻게 하는지 봐야 하지 않겠어?”

16560286804746.jpg“설마 한지감이 어떻게 대응할지 궁금해서 기다리고 있는 거야?”

16560286804742.jpg“맞아. 궁금해. 지감 씨가 어떻게 나올지.”

헛웃음을 지은 황덕현이 말했다.

16560286804746.jpg“한지감한테 그렇게 날을 세우더니만, 단단하게 빠졌구만. 이래서 늦바람이 무섭다는 건가?”

16560286804742.jpg“늦바람은 무슨. 그저 선배 스페셜리스트가 후배 스페셜리스트에게 거는 기대야.”

16560286804746.jpg“아아. 그러세요. 어째 나보다 그 기대가 훠얼씬 큰 것 같은데?”

16560286804742.jpg“그런 것 아니라니까!”

그렇게 말하면서도 김도균은 한지감이 어떤 방안을 내놓을지 내심 설렜다.

16560286804746.jpg“네 마음은 충분히 알겠지만, 일주일 전까지는 방법이 나와야 해. 시작가가 오백억이야. 여태 우리나라에서 한 번도 다룬 적 없는 금액이라고.”

16560286804742.jpg“알아. 걱정하지 마. 나도 ‘예술가의 초상’이 홀대받는 것은 견딜 수 없어.”

16560286804746.jpg“너만 믿는다.”

16560286804742.jpg“그래. 나만 믿어.”

언제나처럼 김도균은 자신감이 넘쳤다. * 시계를 보니 곧 6시다. 해야 할 일이 있어 나는 슬그머니 짐을 싸고 김도균을 힐끗거렸다. 6시 정각이 되자 김도균이 일어서 나갈 준비를 마치고 경매팀 직원들을 향해 말했다.

16560286804742.jpg“이만 퇴근하죠. 오늘도 수고 많았어요.”

16560286863348.jpg“네!”

16560286863348.jpg“넵!!”

김도균은 미소를 지으며 사무실을 나섰고, 나는 가방을 들고 재빠르게 그의 뒤를 쫓아 엘리베이터를 함께 탔다. 사무실을 빨리 나온 사람이 김도균과 나뿐이었기에 엘리베이터에 다른 사람은 타지 못했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기가 무섭게 김도균이 입을 열었다.

16560286804742.jpg“이제 말해보죠.”

16560286750441.jpg“네?”

16560286804742.jpg“할 말 있어서 득달같이 쫓아왔잖아요. ‘예술과의 초상’ 관련한 대응 문제겠죠?”

나는 흠칫 놀랐다.

16560286750441.jpg“알고…… 계셨어요?”

16560286804742.jpg“지감 씨 성격에 이대로 넘어갈 리 없으니까요.”

16560286750441.jpg“그러니까 제가 생각한 대응은…….”

엘리베이터 문이 열려 말을 끝맺지 못했다. 그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서 시계를 확인했다.

16560286804742.jpg“오늘 가족 모임이 있어서 카페에 가서 이야기하긴 어려울 것 같고, 차 같이 타고 가면서 이야기하죠.”

16560286750441.jpg“네.”

마침 차를 가져오지 않아 별 문제가 없었다. 차가 도로 위를 달리기 시작하자 김도균이 다시 입을 열었다.

16560286804742.jpg“어떻게 하고 싶은지 이제 말해 봐요.”

16560286750441.jpg“소문의 근원지인 강정휘를 흔들 계획입니다.”

16560286804742.jpg“소문이 낸 사람을 흔들어서 신뢰에 손상을 주겠다, 이거죠?”

16560286750441.jpg“네. 소문은 소문으로 잠재우는 것이 맞는 것 같아서요.”

16560286804742.jpg“하지만 이 소문을 낸 사람이 한지감 씨라는 것이 밝혀지면, 복수심에서 한 일이라고 오히려 역풍을 맞을 수도 있어요.”

맞는 말이기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16560286750441.jpg“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가 드러나지 않도록 조금 우회적인 방법을 써 보려구요.”

16560286804742.jpg“우회적인 방법이요? 구체적인 계획을 들어보고 싶군요.”

계획을 말하자 김도균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다.

16560286804742.jpg“좋은 계획이긴 하지만 시작해줄 사람이 중요할 텐데요.”

16560286750441.jpg“생각해둔 분이 있습니다. 받아들이실지는 모르겠지만 말을 꺼내 보려 합니다.”

16560286804742.jpg“받아들이시면 나한테도 말을 해줘요. 왜 받아들였는지까지는 몰라도,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알아야 하니까요.”

16560286750441.jpg“알겠습니다.”

그분이 받아들이면 소문은 차질 없이 진행될 터였다. 그 모습이 머릿속에 저절로 그려져 미친 사람처럼 헤헤 웃었다. * 다음 날. 나는 반차를 내고 권미애의 회사로 찾아갔다. 해외 출장을 마친 사람답지 않게 권미애는 생기가 넘쳤다.

16560286920709.png“지감 씨! 이게 도대체 얼마만이에요!!”

16560286750441.jpg“작년에 뵙고 못 뵌 것 같네요. 정신이 없어서 전화 연락만 드렸습니다. 죄송합니다.”

권미애는 손사래를 치면서 괜찮다는 표시를 했다.

16560286920709.png“죄송하긴요. 사느라 정신없는 것 다 똑같은데에. 전화 자주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해요.”

16560286750441.jpg“그렇게 봐주시면 감사하구요.”

16560286920709.png“좋은 홍차 들어왔는데 마침 잘됐다!”

홍차 때문에 나는 잠시 흠칫했다. 홍차를 좋아하지 않거니와, 요새 아이스 초코에 길들여져 단맛에 익숙해져 있었다. 이런 내 마음도 모른 채 그녀는 해맑게 비서에게 차를 부탁했다.

16560286920709.png“김 비서, 홍차 좀 내와요.”

16560286920735.jpg“네. 사장님.”

잠시 후 테이블에는 따끈한 홍차가 세팅됐다.

16560286920709.png“어서 마셔 봐요.”

기대감 가득한 권미애의 표정에 나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홍차를 들이켰다. 그런데 이게 웬일, 생각보다 훨씬 맛있는 것 아닌가. 내 입맛이 변했나? 그럴 리가 없는데……. 표정을 살핀 권미애는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16560286920709.png“맛있죠?”

16560286750441.jpg“네. 역시 골든 팁스라 그런지 정말 맛있네요. 과일향이 느껴지고 가벼워서 전혀 부담스럽지가 않네요.”

16560286920709.png“지감 씨가 좋아할 줄 알았어요. 좀 싸줄 테니까 이따 가져가요.”

16560286750441.jpg“저는 홍차를 자주 마시지도 않는데요.”

16560286920709.png“내가 주고 싶어서 그래요. 꼭 가져가요.”

챙겨주고 싶어 하는 권미애의 마음이 고마워, 입가에 저절로 미소가 맺혔다.

16560286750441.jpg“네. 가져가겠습니다. 매번 챙겨주셔서 감사합니다.”

16560286920709.png“내가 챙겨준 것이 뭐가 있다구요.”

16560286750441.jpg“처음 뵈었을 때 갈비찜도 챙겨주셨고, 강정휘 대표의 뻔한 수가 노여워 제가 싫을 만도 한데 분청사기까지 주셨지 않습니까. 고미술의 밤에서도 저 도와주셨구요. 권 대표님께 도움 받은 것은 셀 수 없이 많죠.”

16560286920709.png“다른 사람한테도 비슷하게 했어요. 유독 지감 씨가 잘 기억해주는 거예요.”

권미애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면서 나를 봤다. 그 표정이 나의 양심을 콕콕 질리게 했다. 이렇게 나를 아껴주는 사람에게 이런 부탁을 해도 될까? 내가 온 이유가 궁금했는지

16560286920709.png“뭐 때문에 왔어요? 이제 슬슬 말해봐요.”

16560286750441.jpg“부탁드리고 싶은 것이 있어 왔습니다.”

16560286920709.png“말해봐요.”

16560286750441.jpg“부탁 거절하셔도 괜찮습니다. 어차피 제가 대표님께 해드릴 수 있는 건 없으니 말입니다.”

나를 보는 권미애의 눈동자에 호기심이 어렸다.

16560286920709.png“무슨 일인데 거절부터 먼저 이야기할까?”

16560286750441.jpg“긴 이야기입니다.”

16560286920709.png“인내심을 갖고 들어보죠.”

16560286750441.jpg“이번 메이저 경매에 ‘예술가의 초상’이 나오는 것 알고 계시죠?”

16560286920709.png“그걸 어떻게 모르겠어요.”

16560286750441.jpg“여러 소식통을 통해 저희가 위탁받은 ‘예술가의 초상’이 가작이라는 말도 들으셨겠죠?”

권미애가 평온하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녀를 부드러운 사람으로만 평가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이런 부분을 보면 사업가다웠다.

16560286920709.png“들었어요.”

16560286750441.jpg“그 소문을 들으셨을 때 사실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셨나요?”

어이없는 소리를 들은 사람처럼 그녀는 픽하고 웃었다.

16560286920709.png“소문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은 것 알잖아요. 이미 그런 소문이 돌았다는 것이 문제죠.”

16560286750441.jpg“맞습니다. 이미 그런 소문이 돌았다는 것이 문제죠. 소문이 사실이든 아니든, ‘예술가의 초상’을 보는 사람들의 눈은 이미 달라져 있죠.”

안 좋은 소문이 난 연예인의 이미지가 사실과 상관없이 이미지가 추락하는 것과 비슷하다. 나는 마른 침을 삼키며 말을 이어갔다.

16560286750441.jpg“이미 예상하셨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이번 소문의 시작에는 강정휘 대표가 있습니다.”

16560286920709.png“역시 그랬군요.”

16560286750441.jpg“그래서 강정휘 대표에게 그대로 갚아줄 생각이에요. 하지만 그림을 위탁받은 당사자인 제가 나서는 건 모양새가 좋지 않죠.”

어렵지 않게 권미애는 내가 무슨 뜻으로 말하는 건지 알아차렸다.

16560286920709.png“내가 나서줬으면 하는 거군요.”

16560286750441.jpg“네. 소문을 불씨를 지펴주셨으면 좋겠어요.”

16560286920709.png“…….”

16560286750441.jpg“흔쾌히 들어주시기 어려운 부탁이란 것 잘 알고 있습니다. 거절하셔도 됩니다.”

나는 판결을 기다리는 사람처럼 권미애를 봤다.

16560286920709.png“기분 나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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