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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화 김승재 (2) (142/226)

142화 김승재 (2)2021.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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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리뷰 전시실에 도착하자 멀지 않은 곳에 서 있는 이수지와 김승재가 보였다. 나는 후다닥 가서 그 둘의 앞에 섰다.

16560290540847.jpg“고객 배웅하느라 늦었습니다. 많이 기다리셨어요?”

나를 본 이수지는 싱긋 웃으며 시크하게 말했다.

16560290540852.jpg“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이수지와 김승재는 팔짱을 끼고 있었지만 둘 사이에는 다정한 분위기가 전혀 흐르지 않았다. 오히려 그 느낌이 어색해서 쇼윈도라는 사실을 다른 사람들에게 다 들켜버릴 것 같았다. 굳이 이곳에 둘이 같이 온 것은 나에게, 또 다른 사람들에게 관계를 보여주고 싶어서일 것이다. 며칠 전 이수지의 수행원과의 통화를 생각해 봐도 이 추측이 맞을 터였다. 그녀는 둘의 이 어색한 공기가 대외적으로 노출될 것을 매우 걱정하면서 잘 커버해달라고 했다. 나야 모른 척을 하면 되지만, 다른 사람들의 눈까진 어떻게 하란 말인가. 안내를 하면서 두 사람의 어색한 몸짓을 다른 사람이 볼 수 없도록 적절히 가려야 하나?

16560290540847.jpg“이쪽으로 오시면…….”

이수지가 나를 따르려는데, 김승재가 발걸음을 멈추고 나를 보고 정색했다.

16560290540861.jpg“잠깐만요. 한 책임. 늦었으면 사과가 선행되어야 하는 거 아닌가.”

나는 당황했고, 이수지는 짜증을 누르며 애써 말했다.

16560290540852.jpg“아까 사과했잖아.”

16560290540861.jpg“사과? 죄송하다는 말도 미안하다는 말도 못 들었는데. 들었어요?”

김승재가 수행원을 보면서 묻자 그녀는 난색을 표했다.

16560290540873.jpg“그게…….”

나는 재빠르게 사과를 했다.

16560290540847.jpg“죄송합니다. 제가 정신이 없어서 사과도 못 드렸네요.”

16560290540861.jpg“빠트릴 게 따로 있죠. 우리 자기가 하도 칭찬을 해서 기대가 많았는데, 좀 실망스럽네요.”

그러면서 가식적인 미소를 짓는다. 확 받아버리고 싶은 것을 꾹 참았다. 여기는 신성한 프리뷰 전시실이고, 다른 고객들도 있다.

16560290540847.jpg“네. 다음부터는 빠트리지 않겠습니다. 다시 기대하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안내하겠습니다.”

16560290540861.jpg“지켜보죠.”

그가 가증스런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정말 한마디를 그냥 안 넘어간다. 그런 김승재에게 짜증을 느꼈는지 이수지의 미간은 깊이 파였다. 이수지의 감정에 공감이 되는 믿을 수 없는 일을 김승재가 해냈다. 정말 대단한 인간이다.

16560290540847.jpg“관장님께서 구매하고 싶어 하셨던 전명자 화가의 ‘꽃’을 보시겠습니다.”

흩날리는 꽃잎 가운데 여인이 묘한 표정으로 꽃을 들고 정면을 응시한다.

16560290540847.jpg“전명자 화가 특유의 선명한 색감이 인상적인 작품이죠. 이쪽에 서시면 여인과 눈을 맞추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내가 서보라는 제스처를 하자 이수지는 순순히 와서 섰고, 김승재는 이 상황이 매우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억지로 이수지 옆에 섰다. 씨익 이수지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16560290540852.jpg“정말 그렇네. 눈을 맞추는 기분이야.”

혼자 신나 하는 이수지를 보고 수행원이 김승재에게 물어보란 눈치를 줬다. 주변에 몰린 시선들을 의식하란 것이다. 사람들은 안 보는 척하면서도 이수지와 김승재를 다 보고 있었다. 이수지의 인지도가 높기에 알아보는 사람도 많았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세련되어 보이는 비주얼 커플의 등장은 시선을 끌기 마련이다. 어쩔 수 없이 이수지는 만들어낸 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16560290540852.jpg“자기는 어때?”

16560290540861.jpg“그러게, 나도 그런 느낌이 들어. 신기하다.”

진심이 하나도 들어가 있다고 느꼈지만 나는 웃으면서 입에 발린 칭찬을 했다.

16560290540847.jpg“역시 예술재단 이사여서 그런지 보는 눈이 있으시네요.”

16560290540861.jpg“예술재단 이사가 아니어도 제가 사는 세계에서 미술은 기본이어서요.”

나와 자신이 사는 세계가 다르다는 말을 하고 싶은 거다. 네네. 오죽하시겠어요. 너랑 같은 세계에 안 산다는 것이 나에게는 행운이에요. 하지만 겉으로는 사무적인 미소를 지으며 응했다.

16560290540847.jpg“역시 기본이 다르시군요. 다음 그림 보시죠.”

걸음을 옮기려는데 김승재가 가증스런 미소를 지으며 또 다시 딴지를 걸어왔다.

16560290540861.jpg“도슨트도 아니고 스페셜리스트라면 투자 가치에 대해서 말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

16560290540847.jpg“그 부분은 안목이 뛰어나신 이수지 관장님께서 너무나 잘 알고 계신 부분이라서요.”

나는 이수지를 보며 물었다.

16560290540847.jpg“투자가치에 대해서 말할까요?”

16560290540852.jpg“아니. 됐어. 나는 누구랑은 안목이 달라서.”

이수지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면서 김승재를 힐끗거렸고, 그는 인상을 썼지만 나는 모르는 척했다. 김승재, 네가 아무리 재벌이라도 여긴 내 구역이야. 까불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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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60290540847.jpg“다음 그림 보시죠.”

그림을 설명하는 중간중간 수행원이 두 사람의 어색함을 사람들을 볼 수 없게 가려달라는 요구를 했지만 나는 묵인했다. 걱정과 달리 두 사람의 고급스러운 패션과 잘난 외모에 빠져 사람들은 어색함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프리뷰 전시를 다 돌자 나는 멈춰 섰다.

16560290540847.jpg“보셔야 할 작품은 다 보셨습니다.”

이수지가 끄덕거리며 말했다.

16560290540852.jpg“일이 있어서 그만 가볼게.”

16560290540847.jpg“네. 배웅해 드리겠습니다.”

그때 김승재가 끼어들었다.

16560290540861.jpg“자기야. 오늘 배웅은 넘어가면 안 될까? 재단에서 구매할 그림을 한지감 씨랑 논의하고 싶어서 말이야.”

이수지가 내 곁에 있어주길 바라는 날이 올 거라고는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다. 김승재와 둘만 있는 것이 영 기분이 별로였다. 하지만 이수지는 김승재와 떨어진다는 사실에 기뻐하는 눈치였다.

16560290540852.jpg“그래.”

사람들을 의식한 이수지가 상냥한 미소까지 지으며 말했다.

16560290540852.jpg“같이 있으면 좋은데, 일 때문에 아쉽다. 끝나면 연락 줘.”

16560290540861.jpg“응. 꼭 연락할게.”

그렇게 이수지는 수행원을 데리고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나는 사무적인 미소를 잃지 않으며 그에게 물었다.

16560290540847.jpg“어떤 작품을 구매하고 싶으신가요?”

그의 표정이 바로 쎄해졌다.

16560290540861.jpg“그것 때문에 내가 남은 것이 아니란 걸 한지감 씨가 더 잘 알 텐데요. 여긴 보는 눈이 많으니 조용한 곳으로 가죠.”

그래. 차라리 이게 낫다. 이 우라질 놈아. * 나는 2년 전 아이리시 커피 신세를 진 조용한 카페, 리틀 포레스트로 그를 데려갔다. 그 일이 있은 이후 이곳의 단골이 되었는데, 이곳은 2년 전이나 지금이나 사람이 한결같이 없다. 어떻게 유지가 되는지 신기할 정도다. 나는 차분하게 말했다.

16560290540847.jpg“하고 싶은 말씀 하시죠.”

그는 헛웃음을 지으며 기가 막히다는 듯 말했다.

16560290540861.jpg“뭐가 그렇게 당당해요?”

16560290540847.jpg“제가 당당하지 못할 것이 뭐가 있는지 모르겠군요.”

16560290540861.jpg“게이라면서요?”

속으로 뜨끔했지만 포커페이스를 유지했다.

16560290540847.jpg“그게 뭐가 문제죠?”

16560290540861.jpg“성적 취향은 개인의 문제죠. 그걸 핑계로 내 아내에게 들러붙어서 이익을 챙기니까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16560290540847.jpg“그러니까 제가 성적 취향을 이유로 관장님에게 친근하게 다가가 이익을 얻는다는, 그런 말이네요?”

16560290540861.jpg“네. 기생충처럼.”

고객이라고 선을 지켜줬더니 이거 아주 막나온다. 이렇게 나온다면 나도 막 나갈 수밖에.

16560290540847.jpg“죄송하지만 저는 관장님과 스페셜리스트와 고객의 선을 넘어본 적이 없습니다. 골동상 때도 그랬구요. 오늘 두 눈으로 똑바로 확인하시지 않았나요?”

16560290540861.jpg“사람들은 다르게 말하던데요.”

16560290540847.jpg“관장님은 뭐라고 말하시던가요?”

움찔한 김승재가 나를 노려봤다. 십중팔구 물어보지 못했을 테지. 쇼윈도 부부가 그런 이야기를 나누지는 않으니까. 그걸 놓치지 않고 나는 몰아붙였다.

16560290540847.jpg“관장님의 말이 아니라 남의 말을 믿고 저한테 이렇게 대하신다니, 믿을 수 없군요.”

16560290540861.jpg“그 이야기는, 계속 내 아내 곁에 붙어서 기생충처럼 살겠다는 건가요?”

16560290540847.jpg“기생충이 아니라 스페셜리스트로서 제 역할을 하는 겁니다. 그것이 이사님 눈에 기생충처럼 보인다면 어쩔 수 없겠죠.”

16560290540861.jpg“감히 누구 보고……!”

김승재가 흥분했지만 나는 개의치 않은 채 벌떡 일어섰다.

16560290540847.jpg“한 번 더 이런 걸로 저를 괴롭히신다면 이수지 관장님께 직접 가서 문제를 의논드리겠습니다. 저로서는 그게 최선이라서요.”

이런 이야기를 나한테 했다는 것을 들킨다면 김승재에게는 아주 창피한 일일 것이다. 아무리 쇼윈도 부부라도 딴짓을 하지 않았다면 모를까, 김승재가 여자를 바꿔가면서 만나는 건 업계에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아내가 일 때문에 만나는 상대를 문제 삼는다고? 말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부들부들 떠는 김승재에게 나는 가벼운 목례를 하고 돌아서 카페를 나왔다.

16560290540847.jpg“이러다 내가 동성애자라는 소문이 기정사실화되는 거 아니야?”

뭐라고 딱 집어 설명할 수 없는 찝찝한 기분이 들긴 했지만 그냥 날려버리기로 했다. 얼마 후, 나는 이 찝찝한 기분을 무시했던 것을 후회했다. * 퇴근시간이 지났지만 나는 퇴근하지 않았다. 서정선에게 경매사를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물어보기 위해서였다.

16560290540847.jpg“팀장님은, 처음 경매할 때 어떻게 준비하셨어요?”

1656029067856.jpg“영상을 많이 찾아봤지. 크리스토퍼 버지나 필카넨 같은 전설적인 경매사들이 어떻게 경매를 했는지 따라하면서 차츰 내 스타일을 만들어냈어. 그런 의미에서 내가 준비했지.”

싱긋 웃은 서정선이 USB를 내밀었다.

1656029067856.jpg“여기 내가 봤던 영상들 들어 있어. 보고 따라해 봐.”

16560290540847.jpg“감사합니다.”

1656029067856.jpg“연습은 좀 해 봤어?”

16560290540847.jpg“집에서 이미지 트레이닝하면서 해봤는데, 같이 사는 동생이 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라구요…….”

1656029067856.jpg“아! 작품 관리팀 경환 씨 말하는 거지?”

기억할지 몰랐기에 나는 놀랐다.

16560290540847.jpg“기억하시네요?”

1656029067856.jpg“그럼 기억하지. 지난번에 밥 먹을 때 이야기했잖아. 몸이 어색한 건 어쩔 수 없어. 계속 연습하고 떠올리면서 몸을 익숙하게 만드는 수밖에.”

16560290540847.jpg“계속 연습해야겠네요. 아! 그리고 하나 궁금한 게 있는데요.”

1656029067856.jpg“응. 물어봐.”

고개를 끄덕이며 서정선이 허락했다.

16560290540847.jpg“보조 경매사할 때 번호 위주로 적으면서도 패들번호가 잘 안 보일 때가 있거든요.”

지난해부터 김 책임과 나는 역할을 바꿔서 하고 있었다.

1656029067856.jpg“그런데?”

16560290540847.jpg“팀장님은 다 패들이 보이세요? 되게 진행이 빠르잖아요.”

1656029067856.jpg“빨리 진행되니까 패들 번호 못 볼 때가 많아. 그래서 패들번호 말고 호가만 부르는 경우도 있잖아.”

16560290540847.jpg“낙찰되었는데도 패들 번호를 보지 못하면요?”

별거 아니라는 듯 서정선이 으쓱 어깨를 올렸다.

1656029067856.jpg“패들번호 보여주시겠냐고 하면 되지. 그러고 나서 낙찰되었다는 말을 하면 되고.”

16560290540847.jpg“아……. 그렇네요.”

기억을 더듬어 보면 여러 번 서정선이 그렇게 했는데도 내 일에 바쁘다 보니 알아차리지 못했다.

16560290540847.jpg“제 일만 하느라고 정신이 없어서, 팀장님이 어떻게 하시는지 제대로 못 봤던 것 같아요.”

1656029067856.jpg“자기 일 놓치는 것보단 그게 나아. 지감 씨,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마. 긴장하면 할수록 말리는 기분이 든다고. 평소대로만 해.”

16560290736099.jpg‘평소대로만 해.’

  시험 보기 전에 부모님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다. 시험 공포증이 생긴 이후 그 말이 정말 무서웠다. 평소대로 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으니까. 굳은 내 얼굴을 보고 서정선이 말했다.

1656029067856.jpg“정 안 되겠다 싶으면 그냥 내려와. 그래도 돼.”

16560290540847.jpg“그러면 경매 분위기를 망치는 거잖아요.”

1656029067856.jpg“안 좋은 영향은 있겠지만, 내가 커버할게. 나 그 정도 능력은 있어. 지감 씨 뒤에 내가 있을 테니까, 못 견디겠으면 언제든지 내려와도 돼.”

서정선의 진심이 느껴져 나는 울컥했다. 나도 언젠가 저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울컥한 감정을 누르며 나는 애써 웃었다.

16560290540847.jpg“네. 그럴게요.”

  * 방 안에서 나는 경매 현장을 상상하며 호가를 해봤다.

16560290540847.jpg“천, 천오십, 44번 고객님 천백, 천백오십! 천이백 없으…… 하아…… 이게 아닌데.”

뭔가 흉내는 내지만 제대로 하지 못하는 느낌이 들었다.

16560290540847.jpg“안 되겠다. 경환이한테 봐 달라고 하자.”

거실로 나간 나는 경환을 불렀다.

16560290540847.jpg“경환아!”

한껏 꾸민 경환이 방에서 나왔다.

16560290763448.jpg“응. 형. 왜 그래?”

16560290540847.jpg“너 왜 그렇게 꾸몄냐?”

16560290763448.jpg“오늘 채령이 학원 일찍 끝나잖아. 그래서 같이 영화 보려고.”

16560290540847.jpg“아. 그렇구나.”

16560290763448.jpg“왜 불렀어?”

16560290540847.jpg“아니야. 잘 다녀와라.”

16560290763448.jpg“응.”

경환은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집에서 나갔다. 연습을 봐 줄 사람이 누가 있는지 머리를 굴리니 다영이 떠올랐다.

16560290540847.jpg“밥 사준다고 꼬셔내서 먹이고 연습 봐 달라고 해야겠다.”

바로 나는 다영에게 전화를 걸었다. 통화 연결음이 몇 번 이어지도록 다영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16560290540847.jpg“무슨 약속 있나?”

전화를 끊으려는데 달칵 전화를 받는 소리가 들렸다.

16560290763485.jpg[오빠.]

16560290540847.jpg“다영아.”

수화기 너머 음악 소리,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16560290540847.jpg“밖에 있구나?”

16560290763485.jpg[네. 시끄러워서 전화 온 줄도 몰랐어요.]

16560290540847.jpg“친구 만나?”

16560290763485.jpg[아니요. 김승재 이사가 주최하는 파티에 왔어요.]

뭔가 싸한 기분이 들었다.

16560290540847.jpg“삼원그룹 김승재?”

16560290763485.jpg[네. 맞아요.]

16560290540847.jpg“네가 거기 왜 있어?”

16560290763485.jpg[왜 있긴요. 오빠 연결 시켜줘서 고맙다고, 답례로 옥션에 관심 있는 유명인사들을 소개 시켜준다고 했단 말이에요.]

앙갚음을 하기 위해 김승재가 다영에게 손을 뻗칠 거라고, 나의 직감이 말했다.

16560290540847.jpg“거기 어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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