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화 이수현 작가 (1)2021.11.01.
나는 급하게 옷을 걸치고 차에 올라탔다. 느낌이 좋지 않았다. 내가 그곳에 도착하기까지는 적어도 한 시간이 걸린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거라면 너무 늦어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112에 전화했다.
“저…… 아시는 분이 통화를 하다 갑자기 전화가 끊겼는데요.”
상황을 설명하자 지구대에서 근무하는 경찰관을 보내주겠다고 했다.
“네. 감사합니다…….”
안 좋은 예감이 나를 뒤흔들었다.
“별일 아닐 거야…….”
단순 해프닝으로 끝나길 나는 진심으로 바라고 바랐다. 잠시 후, 경찰 쪽에서 연락이 왔다.
[이수광 씨가 쓰러져 있는 걸 발견하고 급하게 응급실로 이송했습니다.]
나는 바로 차를 돌려, 이수현이 쓰러졌다는 병원 응급실로 갔다. 멀리 힘없이 누워있는 그의 모습이 보였다. 자고 있는 건지 그냥 눈을 감고 있는 건지는 알 수 없었다. 다가서려 했지만 의료진이 있어 그러지 못했다. 잠시 후, 진료를 마친 의사가 나를 보고 물었다.
“이수광 씨 동생분이신가요?”
“아니요, 거래처 직원입니다.”
“거래처 직원이요?”
“네.”
회사 동료도 아니고 거래처 직원이라 하니 의아한 모양이다.
“이수광 씨 동생분 연락처는 모르시나요?”
“거기까진 모릅니다.”
“네. 알겠습니다.”
의사가 나를 지나쳤고, 그제야 나는 이수현에게 다가설 수 있었다.
“이수현 작가님.”
내 목소리를 들은 이수현이 부스스 눈을 떴다.
“한 책임님……. 죄송합니다. 주무시는데 전화를 걸어서…….”
“아니요. 괜찮습니다. 그런데 몸 많이 안 좋으신 거예요?”
“……간암이라네요.”
“…….”
그는 눈시울을 붉히면서 헛헛하게 웃었다.
“후원 경매에 서고 이제 겨우 기회가 왔는데…… 그런데…….”
웃음은 결국 울음이 되어 그는 눈물을 쏟아냈다. 나는 어떤 위로의 말도 하지 못한 채 그의 앞을 지켰다. * 이수현의 동생이 도착해 배턴 터치하듯 응급실에서 나와 로비를 지났다. 병원 로비 TV 뉴스에서는 탤런트 최준수의 대마초 혐의가 나왔다. 평소라면 놀라겠지만 지금은 관심도 가지 않았다. 아침 7시 지금 회사로 출발하면 늦지 않게 도착할 수 있지만 가고 싶지 않았다. 나는 서정선에게 전화를 걸어 휴가를 쓰겠다고 하고 차에 올랐다. 너무 놀랐는지 피로한 느낌조차 들지 않았다. 그저 이수현이 울던 모습이 머릿속에서 반복해서 재생됐다. 이수현의 그림이 폭등하는 이유가 바로 이거였을까? 작가가 죽은 뒤에 그림이 폭등하는 경우가 있다. 죽음의 전이든 후이든 주목 받을 일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전제조건이지만 말이다. 메슥거리는 기분이 들었고,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가게에 있었다. 내 얼굴을 본 아버지는 무슨 일이 있다는 것을 바로 알아차렸다.
“무슨 일이야?”
“아버지……. 제가 작가님이 죽는 데 일조를 한 걸까요?”
“그게 무슨 소리야?”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상황을 설명했고, 아버지는 묵묵히 들어주셨다.
“그러니까 가격 폭등을 고려한 선택이, 그 작가가 죽는 데 일조한 것처럼 느껴진다는 거지?”
“네……. 솔직히 말하면 그 작가님 그림은 저도 별로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가격 폭등할 것만 보고 선정했죠.”
아버지가 지그시 나를 보다 입을 열었다.
“가격이 폭등한 정보를 이용했다는 사실 자체는 양심에 걸릴 수 있지만, 그 외에 네가 무엇을 잘못했냐? 오히려 그 작가 쓰러졌을 때 도와줬잖아.”
“그렇게 생각이 되지 않아요.”
“그럼 그 생각을 떨쳐내기 위해 뭐라도 해보는 것이 어떠냐?”
나는 멍하니 반문했다.
“……어떤 걸요?”
“그 사람이 원하던 주목을 받을 수 있도록, 경매를 제대로 준비하는 거야.”
“그건 합리화 아닐까요……?”
“네가 죄책감을 느낀다고 그 사람한테 이익이 되는 건 없다. 하지만 그 사람이 원하는 걸 누릴 수 있게 해준다면, 적어도 도움은 될 거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 같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제가 할 수 있는 걸 할게요.”
* A호텔 바에 있는 룸, 그곳에 김승재와 박선호가 있었다. 술잔을 기울이던 김승재가 떠보듯 박선호에게 물었다.
“연락해봤어?”
“이제 해봐야지…….”
“야. 바로 그날 해야지. 이렇게 굼떠서 만날 수나 있겠나?”
뒷머리를 긁적인 박선호가 힘없이 말했다.
“다영 씨가 날 부담스러워하는 것 같아서 그러지……. 하긴 나같이 이상한 소문 난 놈을 누가 만나고 싶어 하겠냐?”
“그거 사실도 아니잖아. 더한 짓을 하고도 당당한 사람 많은데, 네가 왜 풀죽어서 그러냐? 그리고 너, 재벌 3세야. 좀 당당해져.”
“나도 그러고 싶지. 그런데 여자 앞에선 그게 잘 안 돼…….”
소심한 박선호를 보고 김승재는 미간을 찌푸렸다.
“적극적으로 다가가 봐. 다영 씨, 딱 네 스타일이잖아.”
“그러긴 하지.”
헤실거리며 웃는 박선호를 김승재는 한심하다는 듯 쳐다봤다. 예전부터 박선호는 아담하고 귀여운 스타일을 좋아했다.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던 여자도 딱 그런 스타일이었다. 원래도 여자 앞에서는 자신감이 없던 녀석인데, 그 일 있고 나선 거의 자신감을 상실했다. 소개팅 자리라고 하면 정다영이 안 나올 것 같아 그림에 관심 있다는 식으로 소개했는데, 다 차려놓은 밥상을 먹지 못한다. 한지감을 괴롭히고 싶어 정다영에게 박선호를 소개했다. 굳이 박선호인 이유는, 후계자 구도에서 멀어진 그는 일반인과 교제해도 상관이 없었고, 그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이 한지감을 더 자극하리라 여겼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수지를 초대장 삼아 파티 안으로 들어왔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정말 화가 났다.
“원한다면 셋이 같이 하는 자리 만들게.”
“생각 좀 해보고. 다영 씨가 부담스러워할 수도 있잖아.”
“너는 생각이 너무 많은 게 탈이야. 재미없어. 나 간다.”
“같이 나가자.”
바를 나선 두 사람은 엘리베이터에 탔고, 박선호가 물었다.
“너 요새 호텔에서 지낸다며?”
“응.”
“정말 이혼할 거야?”
“이수지 하는 거 봐서.”
“딴짓하지 말고 수지에게 잘해줘. 그러다 헤어지고 후회한다.”
“…….”
때맞춰 로비에 도착한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고, 박선호가 내렸다.
“간다.”
박선호의 조언이 고까운지, 김승재는 문이 닫히는데도 아무런 인사도 하지 않았다. 룸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에 홀로 남겨져서야 그는 중얼거리듯 말했다.
“나한테 관심도 없는 애한테 잘해줘서 뭐해…….”
홀로 있을 때만 그는 이 외로움을 드러낼 수 있었다. * 비서가 강정휘의 눈치를 보며 한지감의 근황을 읽어내려갔다.
“현재 ‘신인작가 후원 경매’를 진행하느라 정신이 없다고 합니다……. 그것 때문에 갤러리 대표들이 다 한지감과 만나길 원한다고 합니다…….”
확 노려보며 강정휘가 쏘아붙였다.
“왜 말꼬리를 늘여? 제대로 딱딱 말 못해!”
“죄…… 죄송합니다.”
“갤러리 대표라는 양반이 경매 때문에 일개 사원에게 살랑거려? 창피한 줄을 알아야지!”
사원이 아니라 책임이라는 말을 하려다가 화를 낼까 입을 다물었다. 화를 가라앉힌 강정휘가 다시 물었다.
“또 다른 건 없어?”
“이번 후원 경매에서 한지감이 직접 경매사로 선다고 합니다.”
“이제 3년차인데 경매사? 개나 소나 경매를 한다고…….”
무언가 깨달은 사람처럼 강정휘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비서를 잡고 말했다.
“직접 경매를 한다고?”
“네. 그렇다고 합니다.”
“처음 서는 경매라, 아주 떨리겠구만.”
“아마…… 그렇겠죠?”
“드디어 내가 원하는 때가 왔어.”
그때가 무슨 때를 말하는 건지, ‘안경’의 존재를 알지 못하는 비서는 의아했다. 그저 강정휘가 한지감에게 앙심을 품어 그가 추락하길 원한다는 정도만 알고 있었다. 희번덕거리는 눈으로 강정휘가 말을 이어갔다.
“유치원때 학예회 생각나?”
“생각나죠. 처음 무대에 서서 무척 긴장했습니다.”
“그래. 그날 한지감이 딱 그 꼴일 거라 말이지.”
“그렇겠죠.”
“하하하하! 하하하하하! 아주 재밌는 날이 될 거야.”
계획을 떠올리며 강정휘는 2년 만에 호탕하게 웃었다. * 3월 메이저 경매 날의 아침이 밝았다. 나는 30분 일찍 집에서 나와 리틀 포레스트로 갔다.
“핫초코 2잔 주세요.”
“네.”
사장은 변함없이 무뚝뚝했지만 음료 맛이 참 좋았고, 조용해서 아지트로도 좋은 곳이다. 핫초코 두 잔을 받아 구석에 자리 잡았다. 잠시 후, 다영이 숨을 헉헉대며 와서 앉았다.
“자. 마셔.”
“고맙다는 말은 안 할게요. 오빠 때문에 15분 더 잘 수 있는 거, 굳이 일찍 일어나서 온 거니까.”
“그래. 고맙다.”
경매 당일에는 꼭 여기에 와서 다영과 핫초코를 마신다. 이것이 나의 징크스였고, 다영은 그것을 맞춰주러 경매 당일에 평소보다 빨리 나왔다. 풀이 죽어있는 나를 보면서 다영은 걱정스레 말했다.
“이수현 작가님 때문에 그러죠?”
“응. 최선을 다해서 홍보하고 있는데…… 도움이 안 되는 것 같아.”
“그게 왜 도움이 안 돼요? 오빠가 잘될 작가라고 해서 고객들이 다 기대하고 있는 눈치던데.”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어차피 이수현 작가의 그림들은 비싸질 거고, 유명해질 거거든.’
그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것을 겨우 삼켰다.
“작가님이 아프신데 아무런 도움이 못 되는 것 같아서.”
“어제 그렇게 바쁜 와중에도 문병 갔다면서요. 작가님 도록도 개인적으로 따로 준비하면서 무슨 소리예요. 오빠 힘든 건 이해하는데, 왜 죄책감을 느끼는지 이해 못하겠어요.”
숨을 고른 다영이 다시 말을 쏟아냈다.
“솔직히 오빠가 작가님 그림 밀어붙이지 않았으면 ‘신인 작가 후원 경매’에 올라올 일도 없었어요. 오빠 덕에 이수현 작가님은 자신을 알릴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거라구요.”
“아니. 기회를 얻은 건 나야.”
“그게 무슨 소리예요?”
설명할 수 없기에 나는 시간을 보고 말을 돌렸다.
“이제 그만 가자. 가서 경매 준비해야지.”
“그래요. 경매 준비하면서 다른 생각 다 날려버려요!”
나에게 힘을 주려는 듯 활짝 웃는 다영이 고마웠다. * 경매 정리가 끝나고 경매팀 전원은 근처 호프집으로 갔다. 가장 상석에 자리한 김도균이 일어서 직원 한 명 한 명을 보면서 말했다.
“메이저 경매 준비하느라 정말 고생 많았습니다. 4월엔 신인 작가 후원 경매가 있으니 근현대미술팀 주축으로 잘해봅시다!”
“네!”
“고생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좋은 분위기를 망치기 싫어서 따라 웃었지만 마음은 즐겁지 않았다. 과열된 분위기가 정리될 때쯤 장희정이 주변을 살피더니, 근현대미술팀이 앉은 테이블에만 들릴 만큼 목소리를 낮추고 말했다.
“최준수 이야기 들으셨죠?”
백 책임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무슨 이야기인데?”
나는 눈치를 보다 작게 말했다.
“듣긴 들었어요. 줄줄이 엮여 들어갈 판이라면서요.”
최준수, 그는 30대 초반의 한류 배우로 키 크고 잘생기고 심지어 학벌까지 좋다. 같은 남자로서는 짜증나지만, 여성들에게는 로망인 그런 남자다. 하지만 공평한 신이 그에게 단 한 가지 허락하지 않은 것이 있으니, 바로 본업인 연기력이었다. 그런데 3개월 전쯤 개봉한 영화에서 약쟁이 역할을 했고, 기가 막히게 잘 소화하면서 모든 것을 다 가진 사람이 되었다. 문제는 얼마 전 최준수가 대마초 혐의로 경찰의 수사를 받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최준수가 마약을 하는데 왜 상관도 없는 미술계에서 불안해하는지 의아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이유는 최준수가 유명 미대를 졸업했기 때문이다. 비록 배우가 되었지만 미술을 사랑했던 그는 여러 화가에게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함께 어울렸다. 경찰은 수사방향을 공개적으로 말하진 않았지만,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그와 어울린 많은 화가들이 약에 손을 댔다고 한다. 푹 서정선이 한숨을 쉬었다.
“다들 쉬쉬하지만 대마초나 마약 하는 작가들 꽤 있잖아.”
나는 조심스레 물었다.
“혹시라도 관련 작가 있으면 그림 내려야 하죠?”
“그렇지. 메이저 경매에는 별 타격이 없는데, 후원 경매에서 터지면 곤란하지.”
내가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말했다.
“저도 걱정이 되네요. 이기적인 것은 알지만, 저희가 선정한 작가 중에서는 안 나왔으면 좋겠어요.”
“그래야지.”
그렇게 말하면서도 서정선은 불안한지 웃지 못했다. 그때 임병규에게서 전화가 왔다. 불길한 느낌을 받으며 나는 전화를 받았다.
“탑 옥션 한지감입니다.”
[세원 갤러리 임병규예요. 윤세빈 작가가…… 대마초를 한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게 됐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