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화 이수현 작가 (2)2021.11.03.
“탑 옥션 한지감입니다.”
[세원 갤러리 임병규예요. 윤세빈 작가가…… 대마초를 한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게 됐어요.]
“잠시만요…….”
이런 상황이 처음이라 놀라고 당황해서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나는 일단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 심호흡을 하고 나서야 다시 말을 할 수 있었다.
“경찰 조사는 언제 받는 거죠?”
[내일 받아요…….]
“……정말 한 것 맞나요?”
[아니에요. 뭔가 오해가 있었어요. 조사 과정에서 그 오해는 풀릴 거예요. 그러니 믿고 기다려 주신다면…….]
“믿고 기다려야 할지는 논의 후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통화를 마친 나는 푹 한숨을 쉬었다. 정말 결백하다 해도 무혐의라는 결론이 나올 때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운 좋게 경매 전에 무혐의로 결론난다고 해도 이미지 실추는 될 것이고, 그걸 고스란히 후원 경매가 떠안게 된다.
“안될 일이지.”
“뭐가 안될 일이야?”
고개를 돌리니 김도균이 서 있었다. 나는 어떤 상황인지 설명했고, 김도균은 단정적으로 말했다.
“다른 사람으로 대체해야겠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아직 도록도 만들지 않았는데 왜 그렇게 심각해? 후보에 올라있는 작가 중에 다른 작가 뽑으면 그만이야.”
“하지만 그 작가도 아니라는 법이 없지 않습니까. 지금 선정된 작가들 중에 더 있을지도 모르구요.”
답답한 마음에 나는 머리를 흩트렸다.
“경찰 쪽에 아는 사람 있어서, 어느 작가가 거론되는지 정도는 어렵지 않게 알아낼 수 있어.”
덤덤하게 말하는 김도균을 보면서 내 눈이 커졌다.
“정말이십니까?”
“당연히 정말이지.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후보 중에서 괜찮은 사람 3명 정도 더 뽑아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야지.”
“네. 감사합니다.”
“감사하긴, 이건 지감이 네 문제만이 아니야. 탑 옥션의 이미지가 걸린 문제라구.”
“압니다. 그래도 감사해서요.”
툭툭 내 어깨를 두드린 김도균이 말했다.
“뒤처리는 내가 할 테니까 오늘은 티 내지 말고 넘겨.”
“네. 저도 좋은 분위기 깨고 싶지 않습니다.”
흐뭇한 미소를 짓고 김도균이 안으로 들어갔다. 아까는 멘붕 상태였는데 김도균 덕에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아직 나는 훌륭한 스페셜리스트가 되려면 멀었구나, 새삼 그런 생각이 들었다. 왜 윤세빈 그림의 최고가가 오백만 원인지 이제야 알 것 같다. 그리고 그 금액으로 미루어 보건대 그녀는 대마초를 했다. 이미지 실추가 있더라도 무혐의를 받았다면 그 정도 그림의 최고가가 오백만 원일리가 없다. 그런데 왜 특이사항에 가격 폭락이 없었지? 아. 폭락할 가격도 없구나. 신인 작가니까 애초에 몸값 자체가 비싸지 않다. 안경이 정보를 제공하지만 역시 모든 걸 보여주진 않는다. 몸이 차가워져서 나는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자리에 앉기가 무섭게 서정선이 궁금한 듯 물었다.
“누구한테서 전화 왔어?”
“진 회장님한테서 온 전화예요.”
“근데 그렇게 딱딱해. 이 비서님에게 온 전화 아니야아?”
내가 뭐라 할 것도 없이 백 책임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제발 그만 좀 찍어다 붙이세요.”
나도 거들었다.
“지난번에 안 하신다고 하셨잖아요!”
“알았어. 미안. 안 그럴게.”
머쓱해하는 서정선을 보니 웃음이 터졌지만, 재발 방지를 위해 나는 힘든 척 연기했다. 장희정이 다시 대마초 이야기를 꺼냈다.
“이번에 우리가 선정한 작가 중에 대마초로 터지는 사람은 없겠죠?”
“없어야지.”
서정선은 그렇게 믿고 싶은 모양이다. 이미 한 사람 터졌다는 말이 입에서 맴도는 것을 겨우 삼켰다. 그러다 문득 이수현 작가가 떠올랐다. 대마초를 하지 않는다는 그의 말은 진짜인 것 같았다. 어쩌면 이걸로 그를 더 빛나게 할 수 있지 않을까? * 김도균이 퀭한 눈으로 말했다.
“그럼 이 3명의 작가들로 결정하죠.”
“네…….”
“예…….”
모두 동의했지만 목소리가 기어들어갔다. 윤세빈이 대마초를 한 혐의로 조사를 받는다는 말을 들은 후 일주일이 지났다. 최종적으로 후원 경매에 선정된 10인의 작가 중에 윤세빈 외에도 두 명이 더 조사를 받았고, 그래서 우리는 총 세 명의 작가를 내려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김도균의 인맥 덕으로 누가 조사를 받을지는 미리 알아냈기에 당황하진 않았다. 하지만 내려야 하는 작가가 소속된 갤러리들이, ‘우리 작가는 대마초를 하지 않았다’라며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고 끈질기게 들러붙었다. 그것 때문에 우리 팀은 시달렸지만, 김도균이 이런 식으로 나온다면 다음 후원 경매 신청서를 받아주지 않겠다고 엄포를 놓아서 겨우 정리되었다. 김도균이 반쯤 감긴 눈으로 회의실에서 나가자 서정선이 힘겹게 말했다.
“우리 오늘 다 같이 휴가라도 써야 하는 거 아니야? 진짜 너무 피곤하다.”
장희정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도록 만들 시간이 없어요. 애초보다 늦어져서 빨리 해야 하잖아요.”
“그렇네…….”
서정선이 거의 울 것 같이 고개를 떨구어서, 내가 나섰다.
“커피라도 사올까요?”
“응. 지감 씨. 부탁 좀 할게.”
“네.”
내가 일어서려 하자 장희정도 함께 일어났다.
“같이 가요. 한 책임님.”
어쨌든 팀 내에서 직급이 가장 낮은 사람은 장희정이기에 눈치가 보이는 모양이다.
“제가 다 가져올 수 있어요. 쉬고 계세요.”
“그래도…….”
“혼자 머리 좀 식히고 싶어서 그래요.”
그 말을 마지막으로 나는 회의실을 나섰다. 나라고 피곤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의도치 않았지만 이런 상황이 벌어진 것에 대해 담당자로서 책임감이 느껴져, 자그마한 힘이라도 보태고 싶었다. 커피를 사러 가는데 다영이 따라나왔다.
“오빠. 괜찮아요?”
“보면 모르냐? 힘들어 죽겠다.”
진심으로 걱정하는 다영의 표정을 보자 픽 웃음이 튀어나왔다.
“뭘 또 그런 표정을 지어.”
“도와주고 싶은데 할 수 있는 것이 없으니 안타까워 그렇죠. 오후에는 이수현 작가가 입원한 병원으로 간다면서요?”
나는 싱긋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ART TV’ 홍 기자님한테 도움 좀 받았지.”
“홍 기자님이라면 기사를 잘 뽑아줄 것 같긴 한데, 그렇다고 시장에서 먹힐까요?”
“반드시 먹힐 거야.”
“왜 그렇게 확신해요?”
“이선규 알지?”
끄덕거리면서 다영이 말했다.
“당연히 알죠. 배우였지만 잘 안 됐다가 관찰예능으로 빵 떴잖아요.”
“맞아. 그때부터 연기는 안 하고 예능만 하잖아.”
“연기에 소질이 없어서 지켜보는 입장에서도 그게 더 편하더라구요. 그런데 갑자기 이선규는 왜요?”
“이선규가 사람들 사이에서 재평가된 때가 언제인지 알아?”
“방금 말했잖아요. 관찰예능!”
나는 답답해서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아니. 내 말은 대중들이 친근감 외에 ‘정직하고 괜찮은 사람이구나’ 라는 생각을 언제 갖게 된 줄 아냐고.”
눈알을 굴리던 다영이 정답을 떠올리고는 발랄하게 말했다.
“기억 나요! 2년 전에 터졌던 연예인 도박 사건 때 말하는 거죠?”
“그래. 그때 이선규와 같은 프로그램했던 사람들이 다 도박에 걸렸을 때,”
“이선규만 아무것도 걸리지 않았죠. 그것 때문에 출연자들 사이에서 따돌림 당했다는 스태프의 증언도 여럿 나왔구요.”
나는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말했다.
“유혹에 흔들리지 않았다는 점이 대중에게, 이선규가 단순한 예능인이 아니라 진정성 있는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만들어줬지. 그 이후로 이선규는 승승장구하고 있고.”
어깨를 으쓱한 다영의 의문을 제기했다.
“이선규는 연예인이지만 이수현 작가는 무명작가잖아요.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까요?”
“관심은 불러일으키면 되지.”
“어떻게 할 생각인데요? 좀 알려줘요!”
다영이 쫑알거리면서 내 뒤를 쫓아왔지만, 나는 말하지 않고 묘한 미소만 지었다. * 인터뷰를 끝낸 홍 기자가 고마움을 표했다.
“아프신데 인터뷰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수현이 누런 얼굴로 홍 기자에게 감사인사를 전했다.
“아닙니다. 저야말로 이렇게 와주셔서 감사하죠. 홍 기자님 기사 좋아했습니다. 예전에 쓰신 ‘예술의 진정한 가치’라는 칼럼도 재밌게 읽었어요.”
글을 쓰는 사람에게는 최고의 칭찬이었다. 최대한 티를 내지 않으려 했지만, 홍 기자는 좋아하는 감정을 숨기지 못했다.
“별로 좋은 글은 아닌데, 이거 부끄럽네요.”
“좋은 글이 아니라뇨. 그걸 보면서 예술에 대해서 다시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봤습니다. ‘기술이 없으면 예술도 없다.’는 말에 특히 감명 받았어요.”
“그 말 때문에 항의 전화를 참 많이 받았죠.”
“다른 분들은 모르겠지만 전 그 말에 공감이 갔습니다. 결국 예술이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최정점의 기술로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거든요.”
흐뭇한 미소가 홍 기자의 입가에 스쳤다.
“그렇게 생각하셨다니 감사합니다.”
기분 좋은 대화가 이어지는 모습을 나는 가만히 지켜봤다. 그러다 이수현이 힘든 기색을 내비치자 홍 기자는 대화를 마치기로 했다.
“작가님과 얘기하는 것이 재밌어서,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말했네요.”
“언제 시간 괜찮을 때 또 오세요.”
“네. 꼭 그러겠습니다.”
홍 기자는 인사를 하고 병실을 나섰고, 나는 그런 그를 배웅하며 슬쩍 떠봤다.
“인터뷰 어떠셨어요?”
“인터뷰가 아니라 오랜만에 즐거운 대화를 했어요. 이수현 작가 작품이 꼭 잘됐으면 좋겠네요.”
“저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발걸음을 멈춘 홍 기자가 물었다.
“이수현 작가한테 이렇게 공을 들이는 이유가 뭐예요? 신인 작가 후원 경매가 이루어지기 전에 이렇게 인터뷰 잡은 적은 한 번도 없잖아요.”
“저도 작가님이 잘되길 바라는 사람이라서요.”
그제야 납득했다는 듯 홍 기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배웅을 마치고 나는 병실로 들어와 이수현을 칭찬했다.
“잘하시던데요?”
“좀 찔리네요……. 그 칼럼은 한 책임님이 갖다 주셔서 읽은 건데…….”
“언제 읽은 것이 뭐가 중요하겠어요. 그 칼럼을 읽고 인상적이라고 생각한 건 맞잖아요.”
“네. 당연하죠.”
“그럼 된 거예요.”
삼 일 전, 인터뷰가 잡히자마자 나는 이수현에게 홍 기자가 쓴 기사들을 보내주어 읽게 했다. 지난번 주인탁 사건 때 내 인터뷰를 단독으로 땄으니, 홍 기자는 당연히 내가 부탁한 이수현 작가에 대해 긍정적으로 써줄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감정이 아무것도 아닌 허상인 것처럼 말하는 사람이 많지만, 감정이 들어간 글을 사람들은 귀신같이 알아봐요. 그건 사람을 움직이죠.”
미술계에서 손꼽히는 기자가 신인 작가에 대해 좋은 감정이 듬뿍 담긴 기사를 쓴다. 업계 사람들은 다 그 기사를 볼 것이고, 보지 않더라도 누군가에 의해 듣게 될 것이다. 그러는 사이 그들은 이수현이라는 작가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증을 갖게 될 터였다.
“아마 인터뷰가 밀려들 거예요. 하지만 하나도 하지 않을 겁니다.”
“제 건강 때문이라면 괜찮습니다.”
씨익 웃으며 나는 고개를 저었다.
“작가님 건강 때문만은 아니에요.”
“그럼 왜……?”
“작가님과 인터뷰를 하고 싶지만 건강상의 문제로 할 수가 없어요. 타당한 이유이기 때문에 불만을 가지기도 어려워요. 하지만 작가님에 대한 기사는 쓰고 싶어요. 그럼 기자들이 어떻게 할까요?”
이수현은 전혀 감을 잡지 못하는 듯했다.
“작가님 주변을 인터뷰하겠죠. 그때 슬쩍, 마약에 대한 유혹을 이겨냈다는 이야기를 흘릴 겁니다.”
“아아…….”
그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러면 작가님은 ‘유혹을 이겨내고 현실과 타협하지 않은 작가’가 되는 겁니다.”
멍하니 이수현이 나를 바라보다 물었다.
“왜 이렇게까지 저를 도와주시는 겁니까? 저는 아무것도 해드릴 것이 없는데…….”
“해주실 것, 있습니다. 병과 싸워 이겨서 작가님의 그림을 계속 볼 수 있도록 해주세요.”
“한 책임님…….”
눈물을 글썽거리던 그는 목이 메는지 말을 멈췄다가 다시 말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이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은혜라고 하기엔, 제가 한 것이 없어요. 저 그리고 그렇게 좋은 사람 아니에요.”
크게 감동 받은 이수현을 보면서 찔리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음이 편했다. 합리화일 수도 있지만, 죄책감에 빠져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단 그를 위해 무언가 했다는 것이 그렇게 만들었다. 그에게 인사를 하고 나는 병실에서 나와 차에 탔다. 며칠 동안 피로가 쌓이고, 방금 중요한 일이 끝나 긴장이 풀려서인지 잠이 몰려왔다. 나는 피로회복제 음료를 마시고 눈을 번쩍 떴다.
“아직 긴장이 풀리면 안 돼!”
아직 정말 중요한 일은 시작도 하지 않았다. 경매사로서 첫 데뷔 무대가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