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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화 경매사 데뷔 (3) (148/226)

148화 경매사 데뷔 (3)2021.11.10.

다영의 표정이 풀어지면서 진심으로 웃어주었다. 정다영! 겨우 이 정도에 그런 표정을 짓는 거야?

16560292494203.jpg“그렇게 봐주시다니 감사합니다.”

정신 차리라고! 그 말이 목구멍까지 나오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다영과 박선호 사이에 묘한 기류가 흐르는 것 아닌가. 이 꼴을 두고 볼 수는 없다.

16560292494211.jpg“아! 깜박했다. 아까 윤이서 사모님께서 찾으시던데.”

16560292494203.jpg“저를요?”

16560292494211.jpg“응. 하실 이야기가 있다고 하셨어. 나도 드릴 말씀 있는데, 같이 가자.”

16560292494203.jpg“네. 그래요.”

싱긋 웃으며 다영이 박선호에게 인사했다.

16560292494203.jpg“가볼게요.”

16560292494235.jpg“그래요. 다영 씨.”

박선호는 아쉬워하면서도 다영을 보내줄 수밖에 없었고, 나는 보란 듯이 웃으며 목례를 한 후 다영을 데리고 갔다. 윤이서를 향해 가면서 다영이 나지막이 물었다.

16560292494203.jpg“사모님이 왜 절 찾으시는 거예요?”

16560292494211.jpg“네가 담당 스페셜리스트도 아닌데 널 왜 찾겠냐?”

16560292494203.jpg“저 찾는다면서요?”

16560292494211.jpg“박선호의 마수에서 구해주려고 그런 거지.”

16560292494203.jpg“아아.”

그제야 다영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어째 아쉬운 기색이 보여 빈정이 상했다.

16560292494211.jpg“아쉬운 모양이다?”

16560292494203.jpg“아쉽긴요.”

16560292494211.jpg“아까 아주 환하게 웃던데? 그럼 남자들 열에 아홉 넘어갔다고 생각할걸?”

16560292494203.jpg“그런 것 아니거든요?”

걸음을 멈춘 다영이 갑자기 나를 매섭게 노려봤고, 나는 깨갱하면서도 물었다.

16560292494211.jpg“그럼 뭔데?”

16560292494203.jpg“칭찬 받아서 좋으니까 그렇죠.”

16560292494211.jpg“너 꼬시려고 하는 말이잖아.”

16560292494203.jpg“그래도 듣고 싶었던 말이라서요. 누구한테 스포트라이트를 다 빼앗겨서 칭찬에 목말라 있거든요!”

나를 다시 한번 흘겨본 다영이 윤이서 앞에 섰다. 박선호가 지켜보고 있으니 어쨌든 윤이서에게 가는 것이 맞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16560292494203.jpg“사모님.”

16560292494235.jpg“안녕하세요. 이름이…….”

16560292494203.jpg“정다영입니다.”

16560292494235.jpg“그래요. 기억해요.”

나를 본 윤이서가 환한 미소로 말했다.

16560292494235.jpg“지감 씨 오늘 정말 멋졌어요. 잘하던데요?”

16560292494211.jpg“부끄럽습니다. 워낙 많이 삐걱거려서…….”

16560292494235.jpg“그 정도는 삐걱거렸다고 할 수도 없죠. 안 그래요. 다영 씨?”

16560292494203.jpg“네. 그럼요. 한 책임님, 가끔 필요 이상으로 겸손하시다니까요.”

16560292494235.jpg“그렇네요.”

그때 제리 왕이 다가왔고, 나는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16560292494211.jpg“오늘 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16560292494235.jpg“아니에요. 덕분에 좋은 한국의 신인 작가들 그림을 사고 후원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특히 이수현 작가의 자화상은 아주 마음에 들어요.”

16560292494211.jpg“그렇죠?”

윤이서가 영어로 끼어들었다.

16560292494235.jpg“그 그림은 저도 사고 싶었는데, 열기가 뜨거워서 패들을 올릴 틈이 없었어요.”

제리 왕이 껄껄껄 웃으면서 말했다.

16560292494235.jpg“그 뜨거움을 감내한 자만이 좋은 그림을 얻을 수 있죠.”

16560292494235.jpg“이런, 제가 자격이 없었군요.”

윤이서의 장난스런 대답 때문에 분위기는 한층 화기애애해졌다. 그때 제리 왕이 무언가 생각난 듯 말했다.

16560292494235.jpg“5월에 홍콩에서 제가 여는 작은 전시회가 열려요. 괜찮다면 지감 씨가 와줬으면 좋겠어요.”

16560292494211.jpg“저도 가고 싶네요. 시간 조율해서 최대한 갈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대외비라서 말하진 않았지만 10월에 탑 옥션 홍콩 지점이 오픈한다. 홍콩에 따로 팀이 꾸려져 있지만 한국에서도 도와주어야 하기 때문에 몇 번 왔다 갔다 해야 할 것 같다. 그 김에 제리 왕의 전시회도 보면서 관계를 다지면 좋을 것이다. 파티가 끝나고 다함께 뒷정리를 하는데, 다영이 부루퉁한 얼굴로 나를 뚫어져라 봤다.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다 못해 곧 폭발할 것 같아 부러 인상을 썼다.

16560292494211.jpg“사람 얼굴을 왜 그렇게 뚫어져라 봐.”

16560292494203.jpg“부러워서 그래요!”

16560292494203.jpg“뭐가? 제리 왕, 터너 등등 이제 글로벌하게 놀잖아요. 곧 홍콩도 가고.”

시무룩한 다영의 모습이 순간 너무 귀엽게 보여 나도 모르게 볼을 꼬집을 뻔했다. 진짜 그랬다가는 맞을 것 같아 충동을 누르며 말했다.

16560292494211.jpg“홍콩 가는 거, 총괄님한테 말해 볼까?”

16560292494203.jpg“됐어요……. 고미술팀이 거기 가는 게 이상하잖아요. 어차피 고미술품은 해외 경매에 올리기도 힘든데…….”

고미술품은 해외로 반출할 수 없기에, 홍콩 경매에 올리려면 해외에 있는 미술품을 위탁받아야 한다. 한국에서야 탑 옥션을 알아주지만 해외에서의 인지도는 낮기에 위탁받기 쉽지가 않다. 그래서 고미술팀은 홍콩 경매에 직접적으로 관여하기 어려웠다.

16560292494211.jpg“그거야 그렇지만…….”

16560292494203.jpg“그냥 안 들은 걸로 해요.”

다영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싱긋 웃으면서 다시 씩씩하게 일을 해 나갔다. * 집으로 돌아와 씻고 바로 침대에 누웠다. 몇 주 동안 격무에 시달렸기에, 긴장이 풀린 지금 바로 잠이 와야 맞았다. 하지만 머릿속에는 계속 다영이 둥둥 떠다닐 뿐 잠이 오지 않았다. 나는 다영을 여자로 좋아하는 건가? 다영이 아까 시무룩해 보였는데, 홍콩 경매에 참여하게 할 방법은 없을까? 온통 머릿속이 다영과 관련된 생각으로 꽉 차서 잠이 오지 않았다. 결국 나는 뒤척이다가 침대에서 일어나서 거실로 나가 불을 켰다. 그러다 소파에 누군가 앉아있는 것을 보고 흠칫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다행히 그 누군가는 경환이었다.

16560292494211.jpg“야 임마. 깜짝 놀랐잖아.”

내가 놀랐다고 하는데도 경환은 말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아무래도 무슨 일이 있는 모양이다.

16560292494211.jpg“회사에서 무슨 일 있었어?”

경매일 당일부터 일주일은 배송 때문에 작품 관리팀이 정신없이 바쁘다.

16560292616775.jpg“……아니. 채령이랑…….”

16560292494211.jpg“채령이랑 왜?”

그렇게 물어보면서도 나는 심각한 일일 거라고는 전혀 여기지 않았다. 귀여운 사랑 싸움을 사랑꾼인 경환이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라 생각했다.

16560292616775.jpg“일 끝나고 채령이 데리러 갔는데 은근슬쩍 결혼 이야기를 꺼내더라구…….”

16560292494211.jpg“결혼, 너도 계속 생각하고 있었잖아.”

16560292616775.jpg“그랬지. 근데 막상 하려니까 두렵네……. 아버지처럼 될까 봐.”

내가 생각한 것처럼 귀여운 사랑 싸움이 아니라는 것이 당황스러웠지만, 나는 애써 덤덤하게 답했다.

16560292494211.jpg“괜한 걱정이야. 너 일 힘든데도 채령이한테 소홀한 적 없었잖아.”

16560292616775.jpg“무의식적으로 그래야 한다고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아버지처럼 되기 싫으니까.”

경환의 아버지는 일에 너무 치중한 나머지 이혼당했다. 무슨 말을 해야 할까?

16560292494211.jpg“나야 모르지. 근데 경환아. 난 아버님이 나쁜 분이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 이혼했어도 어머니 일하시지 말라고 지속적으로 생활비를 보내셨다면서.”

경환의 어머니가 음식 장사를 시작하신 건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생활비가 끊긴 뒤부터였다.

16560292616775.jpg“그랬지.”

16560292494211.jpg“나는 제삼자니까 정확히 알지는 못하지만, 생활비를 계속 보내는 것이 쉽지는 않은 일이었을 거야. 그런데도 그랬던 건 아버님이 마음을 표현하는 법 아니었을까?”

16560292616775.jpg“…….”

경환은 눈시울을 붉혔다. 내가 괜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면서도 나는 덤덤하게 이야기를 전했다.

16560292494211.jpg“사람은 누구나 그런 강박이 있어. 4년 전에 비해서 나는 지금 엄청 성공했는데, 그런데도 아직 더 해내고 싶어. 그게 심해지지 않도록 균형을 잡아야 하는 건 맞지만, 그렇다고 나쁜 것도 아니잖아. 채령이에 대한 네 마음도 그렇지 않을까?”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경환의 표정이 한결 가벼워졌다.

16560292616775.jpg“고마워. 형. 덕분에 좀 정리가 되는 것 같아.”

나는 그런 경환을 보면서 싱긋 웃었다. 문득 예전에 경환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나에게 정말 소중한 사람이 생겼는데 미처 알아차리지 못해서 놓쳐버릴 수도 있다는 말.

16560292494211.jpg“경환아. 너 회사 합격했을 때 제일 먼저 누가 생각났어?”

16560292616775.jpg“누구긴, 당연히 채령이지.”

16560292494211.jpg“앞으로도 좋은 일 생기면 채령이가 가장 먼저 떠오르겠지?”

16560292616775.jpg“당연하지. 그러는 형은 오늘 성공적으로 경매를 끝내고 나서 누가 생각났어?”

16560292494211.jpg“……아버지.”

수상하다는 듯 경환이 나를 봤다.

16560292616775.jpg“거짓말인 것 같은데?”

16560292494211.jpg“그래. 사실은 다영이가 생각났어.”

방금 전까지만 해도 시무룩했던 녀석이 히죽거렸다.

16560292616775.jpg“내가 이럴 줄 알았지.”

16560292494211.jpg“뭘 이럴 줄 알아?”

16560292616775.jpg“남녀 사이에 친구가 어디 있어?”

16560292494211.jpg“왜 없냐? 나 다영이 여자로 본 지…… 얼마 안 됐거든.”

깔깔거리면서 경환이 나를 비웃었다.

16560292616775.jpg“여자로 본 지 얼마 안 된 게 아니라, 그렇다는 걸 인지한 지 얼마 안 됐겠지.”

머릿 속이 뒤죽박죽 섞여서 답답한 마음에 머리를 헝클었다.

16560292494211.jpg“몰라. 아직 내가 다영이를 여자로 좋아하는지도 모르겠어.”

16560292616775.jpg“좋은 일 생긴 순간에 먼저 떠올랐다면 백퍼센트지, 무슨. 남자가 쪼잔하게 변명을 해.”

16560292494211.jpg“내 말은…… 일시적인 감정일지도 모르잖아.”

어깨를 흔들거리면서 경환이 깝죽였다.

16560292616775.jpg“일시적인 감정에 빠져서 관계를 위험하게 하고 싶지 않다? 미안하지만 형, 이미 관계는 위험해졌어. 내가 보기에 형은 다영 씨 좋아한 지 오래됐어. 이제야 깨달았다니, 놀랄 노자로세.”

16560292494211.jpg“언제 알았는데?”

16560292616775.jpg“음료수 취향이 바뀌었을 때부터.”

16560292494211.jpg“핫초코? 그건 그냥 당이 떨어져서 그런 거야.”

16560292616775.jpg“그렇게 믿고 싶으면 계속 그렇게 믿으시든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경환이 가뿐하게 소파에서 일어섰다.

16560292494211.jpg“어디 가?”

16560292616775.jpg“우리 채령이랑 통화하려고. 결혼 준비 어떻게 할지 상의해야 할 것 아니야.”

그 말을 끝으로 경환은 쌩하니 방으로 들어갔다. 그 모습이 괜히 얄밉다.

16560292494211.jpg“아…… 괜히 위로해줬어!”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해졌다. 나는…… 다영을 여자로 좋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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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점심시간에 나는 밥을 먹는 대신 이수현 작가의 병실로 갔다

16560292494211.jpg“작가님, 얼굴이 좋아지셨네요!”

16560292494235.jpg“그래요? 다행이에요.”

16560292494211.jpg“치료받는 것 힘들지 않으세요?”

16560292494235.jpg“힘들어도 다시 그림 그리기 위해서는 열심히 해야죠. 한 책임님, 정말 고마워요. 좋은 경매사 덕분에 과분한 가격에 제 그림이 팔렸어요. 입금된 금액이 너무 많아서 깜짝 놀랐습니다.”

16560292494211.jpg“과분한 가격 아니에요.”

경매가 끝나고 일주일이 흘렀고, 이수현 작가의 이야기는 연일 업계를 떠들썩하게 했다. 병마와 싸우는 현재 상황이 그의 그림을 더 드라마틱하게 만들었다.

16560292494235.jpg“어떻게 감사 인사를 드려야 할지…….”

16560292494211.jpg“작가님, 아직도 이슈화되고 있는 것 아시죠? 이제 작가님 작품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러니까 빨리 건강해지셔서 다음 작품 보여주세요.”

16560292494235.jpg“네. 그리면 가장 먼저 한 책임님에게 보여드리겠습니다!”

16560292494211.jpg“기대하고 있을게요!”

화가가 완성시킨 그림을 처음 보는 사람이라니, 가슴이 두근거린다. 그러다 문득 이수현의 거취가 궁금해졌다.

16560292494211.jpg“아. 리아 갤러리, 마루 갤러리에서 전속 작가 제안 받으셨다면서요?”

16560292494235.jpg“네. 받았습니다.”

16560292494211.jpg“어떻게 하실 작정인지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16560292494235.jpg“……감사하지만 가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 이유가 궁금해 나는 조심스레 물었다.

16560292494211.jpg“메이저 갤러리에 들어가면 아무래도 더 안정적일 텐데요.”

16560292494235.jpg“당연히 그러겠죠. 하지만 대단한 작가들 사이에서 기가 죽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욕심일지도 모르겠지만, 저는 갤러리를 계속 운영하고 싶어요. 미약할지라도 저와 같은 처지에 있는 작가들에게 기회를 주고 싶습니다.”

이해가 가서 고개를 끄덕거렸다.

16560292494211.jpg“하지만 지금 있으신 상가에서는 어려울 것 같은데요.”

16560292494235.jpg“후원 경매에서 받은 돈으로 좀 더 좋은 곳을 찾으려구요.”

16560292494211.jpg“또 사무실에서 지내시게요?”

16560292494235.jpg“안정될 때까지는 어쩔 수 없죠.”

16560292494211.jpg“그러다 건강 또 망가져요. 집 먼저 구하세요. 갤러리는 제가 강남에 있는 괜찮은 빌딩을 알고 있는데요, 거기로 들어가시는 게 어떠세요?”

이수현의 얼굴이 확 어두워졌다.

16560292494235.jpg“강남이요? 아직 거기 월세 낼 정도는…….”

16560292494211.jpg“월세는 좀 깎을 수 있을 것 같아요.”

가격을 말하니 이수현의 눈이 커졌다.

16560292494235.jpg“그 가격에 정말 빌릴 수 있습니까?”

16560292494211.jpg“네. 사실은 제가 거기 주인이거든요.”

16560292494235.jpg“그럴 순 없습니다. 신세를 많이 졌는데 이렇게 또…….”

16560292494211.jpg“저 그렇게 순수한 사람 아니에요. 작가님에게 투자하는 거예요. 갤러리가 자리 잡을 때까지만 그 가격으로 받겠습니다.”

16560292494235.jpg“정말 감사합니다. 좋은 그림으로 꼭 보답하겠습니다.”

16560292494211.jpg“네! 기대할게요.”

병실에서 나온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차에 탔다. 하지만 사무실에 들어갈 생각을 하니 갑자기 기분이 안 좋아졌다.

16560292494211.jpg“들어가면 다영이 얼굴을 봐야 할 것 아니야.”

그날 이후 다영이 불편해져서 피해 다니고 있는 중이다. 피해 다니는 주제에, 다영이 어떻게 홍콩에 갈 수 있을지 머리를 굴리는 건 멈출 수가 없다.

16560292494211.jpg“잠깐만, 그렇게 하면 가능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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