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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화 홍콩 고미술 경매 (2) (150/226)

150화 홍콩 고미술 경매 (2)2021.11.15.

타오위안 국제공항에 내려 짐을 찾고 게이트 밖으로 나왔다. 밖으로 나가려는데 다영이 보이지 않아 걸음을 멈췄다. 잠시 후, 자기 몸보다 큰 캐리어를 끌고 끙끙거리면서 나오는 것이 보였다. 나는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면서 다가갔다.

16560293219202.jpg“무슨 짐을 이렇게 많이 쌌냐?”

16560293219208.jpg“필요한 것만 싸려고 했는데, 어쩌다 보니까 이렇게 됐어요.”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내가 다영의 캐리어를 대신 끌려고 하자 다영이 말렸다.

16560293219208.jpg“내가 할 수 있어요!”

16560293219202.jpg“할 수야 있겠지. 몇 분이면 끝날 게 몇 시간으로 늘어나서 그렇지.”

슬쩍 다영을 밀쳐내고는 나는 다영의 캐리어를 대신 끌었고, 다영은 종종걸음으로 따라왔다.

16560293219208.jpg“할 수 있는데…….”

공항 밖으로 나오자 습한 온도가 신경을 거슬리게 했다. 4월의 대만은 우리나라 초여름 같은 날씨였다. 우리는 택시를 타고 공항을 벗어나 대만의 수도인 타이베이로 갔다. 호텔로 도착했지만 다영은 풀이 죽어 고개를 떨궜다.

16560293219202.jpg“왜 풀이 죽었어.”

16560293219208.jpg“……풀 안 죽었어요.”

16560293219202.jpg“풀 죽었잖아. 왜 그러는데?”

16560293219208.jpg“짐도 그렇고 민폐인 것 같아서요. 솔직히 나 말고 다른 사람이 오길 바랐죠?”

16560293219202.jpg“그래. 잘 아네.”

부루퉁한 얼굴을 한 다영이 말했다.

16560293219208.jpg“아무리 그래도 너무한 거 아니에요? 여기 오는 동안 나 제대로 본 적 없는 것 알아요?”

나는 눈을 똑바로 뜨고 다영을 봤다.

16560293219202.jpg“이제 됐지?”

16560293219208.jpg“일회성이잖아요! 솔직히 말해 봐요!”

16560293219202.jpg“그럼 그렇게 믿든가.”

엘리베이터가 룸이 있는 10층에 도착해 나는 저벅저벅 내렸다. 룸 앞에서 나는 걸음을 멈췄다.

16560293219202.jpg“한 시간 후에 보자.”

16560293219208.jpg“……네.”

풀이 죽은 다영을 뒤로 하고 나는 룸 안으로 휙 들어갔다. 문에 기대어 쿵쾅거리는 심장을 부여잡았다.

16560293219202.jpg“아……. 문제가 없긴 뭐가 없어……!”

고미술품을 위탁받는 해외출장이기에 고미술팀에서 한 명은 가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6월에 있는 메이저 경매 때문에 다들 위탁받으러 정신이 없던 차에, 그나마 다영의 스케줄이 조정 가능해서 오게 된 것이다. 나는 다영과 출장이 큰 문제가 없을 거라 생각했다. 아니, 정확히는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다. 하지만 비행기부터 삐거덕거리기 시작했다. 당연히 우리는 옆자리에 앉았고, 다영이 쫑알거릴 때마다 그 모습이 귀여워서, 가만히 있어도 사랑스러워서 심장이 계속 쿵쾅쿵쾅 뛰었고 티가 날까 곁눈질로 봤다. 그 모습을 다영은 못마땅해하는 것으로 여겨 이 상태까지 온 것이다.

16560293219202.jpg“교토도 다영이랑 가야 하는데…… 어떻게 하냐구!”

오랜만에 마주한 설레는 감정이 이토록 사람을 괴롭게 하다니, 정말 울고 싶었다. * 한 시간 후. 룸에서 나온 나는 다영이 나오길 기다렸고, 곧 문이 열렸다. 하늘색 블라우스에 검은 정장을 입은 다영은 단아하고도 예뻤고, 나는 잠시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봤다.

16560293219208.jpg“뭐 묻었어요?”

16560293219202.jpg“아니.”

16560293219208.jpg“그럼 예뻐서 본 거구나?”

16560293219202.jpg“하늘색 블라우스랑 검은 정장이 따로 놀아서 신기해서 봤다.”

16560293219208.jpg“왜 자꾸 시비예요?”

16560293219202.jpg“시비가 아니라 진실을 말하는 거야.”

입술을 삐죽거린 다영이 걱정스럽게 말했다.

16560293219208.jpg“그렇게 안 어울려요? 옷 갈아입고 올까요?”

16560293219202.jpg“됐어. 지금 가야지 안 늦어.”

16560293219208.jpg“그래도 미술 업계에서 일하는데 패션이 별로면…….”

16560293219202.jpg“우리가 패션 업계에서 일하냐? 예의만 차리면 그만이지. 얼른 가자.”

다영과 함께 약속 장소인 D호텔 VIP 라운지에 도착했다. 시간에 맞춰 천안핑 회장이 수행원과 라운지를 들어섰다. 70대인 그는 호랑이 같은 인상을 가진 사내였다. 우리는 일어서 그를 맞았고, 나는 준비해온 중국어로 인사를 건넸다.

16560293219202.jpg“탑 옥션 한지감입니다. 만나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16560293274462.jpg“중국어를 할 줄 아나?”

16560293219202.jpg“회장님을 만나고 싶어 공부했습니다.”

흐뭇한 표정의 천안핑 회장의 입가에 스쳤다. 그의 시선이 다영에게 향하자 준비한 인사를 다영이 했다.

16560293219208.jpg“안녕하세요. 탑 옥션 정다영입니다.”

16560293274462.jpg“반갑군. 나는 천안핑이다.”

그는 나와 다영을 번갈아 보면서 그렇게 말했다. 인사를 마친 우리는 자리에 앉았다. 다시 말을 꺼낸 것은 천 회장이었다.

16560293274462.jpg“진 회장의 연락을 받고 놀랐어. 기업이 망했는데도 잘 지내는 것 같아 기쁘더군. 그 기쁨이 아니었다면 이 자리에 나오는 일은 없었을 거야.”

16560293219202.jpg“잘 알고 있습니다.”

나는 차분한 미소를 지으면서 말을 이어 갔다.

16560293219202.jpg“만나 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16560293274462.jpg“이렇게 나왔으니 날 부른 목적을 이야기해 보게.”

그는 자신을 만나고 싶은 목적은 만나서 직접 듣겠다고 했다. 만나기 전 목적을 들으면 원치 않는 경우 우아한 거절을 할 수 있다. 진 회장을 생각해 그는 우아한 거절을 하지 않고, 지금처럼 만나서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이다.

16560293219202.jpg“탑 옥션은 홍콩 지점을 10월에 열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픈 경매를 탑 옥션의 뿌리인 한국을 보여줄 수 있는 고미술품으로 하고자 합니다.”

16560293274462.jpg“그러니까 내가 소장하고 있는 한국 고미술품들이 필요하다, 이건가?”

16560293219202.jpg“네. 맞습니다. 제가 듣기로 회장님은 10년 전 분청사기에 매력을 느껴 한국 도자기를 많이 사들이셨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는 매서운 눈빛으로 나를 압박했다.

16560293274462.jpg“나는 장사꾼이 아니네. 내 마음이 떠났을 때만 미술품을 팔지.”

자산에 있어서 남부럽지 않은 회장이 돈 때문에 미술품을 팔 리는 없다. 이 부분 때문에 어떻게 해야 할지 나도 골머리를 앓았다. 준비해 온 말을 차분하게 꺼냈다.

16560293219202.jpg“돈이 되진 않지만, 회장님의 좋은 인품을 홍보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순 있을 것 같습니다.”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다영은 준비해 놓은 기획안을 천 회장에게 내밀었다. 수행원이 기획안을 대신 읽으려 하니 그는 손을 들어 하지 말라는 제스처를 했다.

16560293274462.jpg“내가 보지. 안경을 주게.”

16560293274462.jpg“네.”

수행원이 준 안경을 쓰고 기획안을 읽기 시작했다. 눈이 안 좋은지, 아니면 기획안이 마음에 들지 않은지 그의 미간이 깊게 파였다. 그렇게 한참 시간이 지났을 때 그가 안경을 벗고 나를 봤다.

16560293274462.jpg“그러니까 나에게 위탁받았다는 사실을 프리뷰에서부터 밝히고, 수익금 전부를 기부한다?”

16560293219202.jpg“네. 그렇습니다. 회장님의 인격을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일을 제안하고 싶었습니다.”

천 회장은 굉장한 부자였지만 늘 인색함 때문에 평가절하 당하곤 했다. 그의 수중으로 들어간 돈은 나오지 않았고, 기업의 복리후생도 좋지 않았다. 그런 것 때문에 그에게는 ‘천크루지’라는 별명이 따라다녔는데, 돈만 아는 그의 성품을 ‘스크루지’에 빗댄 것이다. 이러한 이미지를 탈피할 수 있는 하나의 방안을 제안한 것이었다. 순식간에 천 회장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16560293274462.jpg“인격을 보여주기 위한 행동들을 할 만큼, 내 인품이 형편없다는 말을 하고 싶은 건가?”

16560293219202.jpg“그런 뜻이 아니라…….”

화가 난 천 회장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16560293274462.jpg“이런 모욕적인 언사를 들을 줄은 몰랐군. 다시 얼굴 볼 일 없었으면 하네.”

급히 일어나서 쫓아가려 했지만, 수행원이 막아서서 그럴 수 없었다. 그렇게 나는 천 회장이 라운지를 떠나는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내 말이 오해할 소지가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수행원이 내 말을 제대로 전하지 않았던 걸까? 그도 아니면 내 말이 그의 자격지심을 불러일으킨 걸까. * 호텔을 나서면서 나는 푹 한숨을 쉬었다.

16560293219202.jpg“천 회장, 화난 것 같았지?”

16560293219208.jpg“기분이 상한 것 같았어요.”

내 눈치를 보면서 다영은 조심스레 말했다.

16560293219202.jpg“애초에 내 전략이 잘못된 걸까?”

16560293219208.jpg“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한 거예요. 누가 왔어도 그럴 거예요.”

16560293219202.jpg“정말 그럴까.”

중얼거리는데 다영이 내 어깨를 양손으로 잡고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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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60293219208.jpg“정말 그래요. 의심하지 말아요.”

다영의 체온과 눈동자 때문에 가슴이 콩닥댔지만 나는 애써 웃으면서 말했다.

16560293219202.jpg“알았어. 잘 알겠으니까 그렇게 무리하게 굴 필요는 없어.”

16560293219208.jpg“무리하게 군 게 아니라 확신을 주고 싶은 것뿐이에요. 아마 다른 사람이라면 천 회장에게 이런 기획안을 가져갈 생각조차 못했을걸요.”

다영이 위로해주니 시끄러웠던 마음이 잠잠해지면서 속도 없이 미소가 떠오른다.

16560293219202.jpg“고마워.”

16560293219208.jpg“고맙긴요. 전 사실을 말한 것뿐인데.”

16560293219202.jpg“그래도.”

16560293219208.jpg“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천 회장과 잘 풀리지 않더라도 앞으로 일본에서 미팅도 있고, 또 총괄님도 애쓰시고 있으니까 오빠는 혼자가 아니에요.”

16560293219202.jpg“그거 하나만은 확실한 것 같네.”

발걸음을 멈춘 다영이 쾌활하게 말했다.

16560293219208.jpg“우리 힘내고 맛있는 것 먹으러가요!”

16560293219202.jpg“그럼 너무 관광 온 것 같은 느낌 아닌가?”

16560293219208.jpg“그게 왜 관광이에요. 우리는 다음 일을 위해 충전을 하는 거지!”

16560293219202.jpg“합리화 한번 기똥차다.”

16560293219208.jpg“합리화가 아니라 진짜예요! 어서 와요. 제가 맛집 찾아 놨어요!”

16560293219202.jpg“알았어. 천천히 가.”

합리화라는 이야기를 하면서도 내 입꼬리는 내려갈 줄을 몰랐다. * 40대 남자가 식당 안으로 들어오자 김도균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악수를 청했다.

16560293394967.jpg“진짜 오랜만이네요. 잘 지냈어요?”

16560293274462.jpg“덕분에 잘 지냈습니다.”

그 남자의 이름은 신재범, 홍콩 갤러리에서 일한 갤러리스트였다. 신재범의 약간 부담스러워하는 것 같자 김도균은 특유의 편안한 분위기로 그를 안심시켰다.

16560293394967.jpg“비즈니스도 비즈니스지만 얼굴 보고 싶어서 연락한 거니까 그렇게 얼어있을 필요는 없어요.”

16560293274462.jpg“비싼 밥 얻어먹고 값을 못할까 봐서요.”

머쓱해진 신재범이 머리를 흩트렸다.

16560293394967.jpg“얼굴 보여주는 걸로 밥값은 충분히 했어요. 일단 밥 먹죠.”

16560293274462.jpg“네.”

밥을 먹으면서 김도균은 시시콜콜하게 살아온 이야기들을 했다.

16560293394967.jpg“신인 작가 후원 경매가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정신이 없어요.”

16560293274462.jpg“들었어요. 엄청 분위기가 뜨거웠다면서요.”

16560293394967.jpg“엄청까진 아니지만 나쁘지 않았어요.”

16560293274462.jpg“선배님 너무 겸손하시네요. 저희 갤러리도 신인 작가 후원 경매에 전속 작가 한 명 넣으려고 난리예요.”

목소리를 낮춘 신재범이 장난스레 말을 이어갔다.

16560293274462.jpg“이런 말 좀 그렇지만, 이번 대마초 사건 터졌을 때 대표님이 은근 기대하시는 눈치였어요.”

16560293394967.jpg“아이구. 이거 안타깝네요. 김서린 작가님 작품은 저희도 흥미롭게 봤는데, 신청한 갤러리가 많다 보니 그렇게 됐어요.”

같은 업계에서 일하는 사이이기 때문에 할 말도 많아서 이야기는 자연스레 이어졌고, 그러는 사이 신재범도 부담감을 털어내고 부드러워졌다. 어느 순간 신재범이 자연스레 오늘 만남의 목적을 말 꺼냈다.

16560293274462.jpg“오늘 선배님하고 만나니까 어제 안부인사인 척 린 사장한테 슬쩍 전화를 걸어봤어요.”

16560293394967.jpg“그랬군요. 고마워요.”

자신의 갤러리에서 하는 행사도 아닌데 이런 식으로 나서는 게 결코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김도균은 잘 알았다.

16560293274462.jpg“아직도 고미술품 구매에 열을 올리시는 모양이더라구요. 그런데 판매할 생각은 전혀 없으신 것 같았어요.”

16560293394967.jpg“그렇군요.”

16560293274462.jpg“그런데 린 사장님이 신인 작가 후원 경매를 알고 계시더라구요.”

16560293394967.jpg“신인 작가 후원 경매를요?”

16560293274462.jpg“네. 린 사장님이 ‘아트21’이라는 경매 회사를 운영 중이신 것 알죠?”

16560293394967.jpg“네. 알죠.”

16560293274462.jpg“그래서 신인 작가 후원 경매가 어떤 사람이 만들었는지 궁금해하는 눈치셨어요.”

어떤 상황인지 대강 감이 잡힌다. 벤치마킹을 하고 싶은데, 제대로 할 수 있을지 불안하다 보니 기획하고 만든 사람을 만나고 싶은 것이다. 한지감이 린 사장을 직접 만나게 된다면 생각보다 일이 잘 돌아갈지도 모르는 노릇이다.

16560293394967.jpg“린 사장님께 신인 작가 후원 경매를 만든 사람을 소개시켜드리고 싶단 말을 전해줄 수 있나요?”

16560293274462.jpg“그럼요.”

일이 잘 풀릴 것 같은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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