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화 홍콩 고미술 경매 (3)2021.11.17.
줄까지 서서 우육면을 먹었다. 국수라 배가 안 찰 것 같았는데, 고기가 많아서 그런지 배가 불렀다. 가게를 나오면서 나는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정말 잘 먹었어.”
“오길 잘했죠? 여기 정말 유명한 곳이래요.”
“응 덕분에 정말 잘 먹었어.”
천 회장을 설득하는 데 실패했다는 불쾌함도 어느새 날아가 있었다. 발걸음을 옮기는데 골동품 가게로 보이는 곳이 눈에 들어와 걸음을 멈췄다. 그런 나를 보고 다영이 픽 웃었다.
“내가 이럴 줄 알았어.”
“뭐가?”
“오빠. 골동품 가게 보면 이렇게 관심을 보일 줄 알았다구요.”
“태어날 때부터 골동품집 아들이라서 그런다. 보고 가자.”
“그래요.”
골동품 가게 안으로 들어서니 안정된 기분이 들었다. 주인아저씨가 친근한 미소로 우리를 맞았다.
“어서 오세요. 찾으시는 물건 있나요?”
내가 중국어로 답했다.
“구경하고 싶어서 들어왔어요.”
“네. 편하게 구경하세요.”
우리나라의 도자기들과 달리 화려한 색깔의 도자기들이 많았다. 풍경화의 그림 양식은 중국이 원조이기에 비슷하지만 훨씬 꽉 차있다. 여백의 미를 중시하는 우리나라 그림과는 달라서 보는 맛이 달랐다. 새로운 유물을 구경한다는 것만으로도 고갈된 에너지가 충전되는 기분이 든다. 중국 고미술에 대한 정보는 없기에 안경의 정보가 표기되지 않아 왠지 더 신이 났다. 그런 나를 보고 다영은 재밌다는 듯이 픽 웃었다.
“누가 보면 놀이공원에 놀러온 줄 알겠어요.”
“나한테는 놀이공원보다 여기가 훨씬 재밌어.”
싱글벙글 구경을 하던 나에게 붉은 옹기, 홍도관이 눈에 들어왔다. 구부에는 꽃무늬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근데 꽃무늬 모양이 좀 묘한데? 나의 시선을 눈치 챈 다영이 물었다.
“왜 그래요?”
“저 붉은 옹기, 어떻게 보여?”
“토속적이고 투박한 느낌이 나서 꽃을 담으면 예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위에 꽃무늬도 있고.”
우리의 대화를 눈치챈 주인이 다가왔다.
“아름답고 튼튼한 옹기입니다. 청나라 후기 도자기로 추정됩니다. 장난감을 넣을 수도 있고 꽃병으로도 쓸 수도 있는 실용적인 물건이니, 가져가신다면 분명 쓰임이 많을 겁니다.”
“그렇게 보이네요. 가격은 어느 정도 됩니까?”
“5만 달러만 주시죠. 외국에서 온 손님이니 특별히 싸게 해드리겠습니다.”
대만달러로 5만이면 한국 돈으로는 2백만 원 정도 되는 금액이다. 나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죠.”
카드를 꺼내는 나를 다영이 다급하게 말렸다.
“오빠. 한국 돈으로 2백만 원이나 돼요. 그 돈이면 한국에서 삼국시대 토기를 산다구요!”
“마음에 들어서 그래.”
“좀 더 생각한 뒤에…….”
다영이 말하는데도 나는 카드를 내밀었고, 주인은 냉큼 계산을 하고는 빠른 손놀림으로 홍도관을 포장해 나무 상자 안에 넣어 내밀었다.
“여기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홍도관을 가지고 나오는데 다영이 툴툴 거렸다.
“저 아저씨 사람 좋게 생겨서 바가지를 씌우냐? 거기에 넘어가면 어떻게요? 명색이 전 골동상, 현 스페셜리스트인데!”
“어쩌면 전혀 바가지가 아닐 수도 있어. 밀리언 달러 베이비라고 알지?”
“알죠. 1달러 샵에서 백만 불 이상의 가치의 보물을 찾아냈을 때 쓰는 말이잖아요. ……이게 설마 밀리언 달러 베이비라구요?”
“확실한 건 아니지만, 그럴 수도 있어. 한국에 가져가 보면 알겠지.”
나를 살핀 다영의 얼굴에 호기심이 어렸다.
“왜 그런 보물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내 눈이 이상한 걸지도 모르겠지만, 아까 구부에 그려진 꽃무늬 말이야.”
“그게 왜요?”
“꽃무늬가 아니라 갑골문자처럼 보였어…….”
“에이 설마…….”
그렇게 말하면서도 어쩌면 내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고 느꼈는지, 다영은 주변을 의식해 낮은 목소리를 냈다.
“만약…… 아주 만약에요. 국보격인 물건이라면 반출 자체가 안 되지 않아요?”
“그 가치를 알아본다면 그렇겠지. 여기 대만인데 누가 듣는다고 그렇게 소곤거려?”
“요새 한류 때문에 한국어 하는 사람들 엄청 늘었어요. 조심해야 한다구요. 여긴 한국인들도 많이 오는 데구요.”
일리가 있는 말이라 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래. 조심해서 나쁠 건 없지. 나도 국보급 유물이라면 무리해서 가지고 나가고 싶은 마음은 없어.”
우리나라는 문화재 유출로 많은 상처를 받았고,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부분이 많다. 국보급의 문화재가 다른 나라로 나가는 것이 얼마나 민감한 문제인지 모르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홍도관을 대만에 둔 채로 그 가치를 알아보기엔 무리가 있다.
“일단 우리는 내일 아침 떠나야 하고…….”
“대만 내에 이 홍도관의 가치를 알아봐줄 연줄이 없죠.”
“맞아. 바로 그게 문제야.”
대만 내에 믿을 만한 골동상이나 교수 등의 연줄이 전혀 없다. 생각을 해봐라. 뜬금없이 나타난 외국인이 ‘제 감에는 이게 이 나라 국보급 물건 같은데, 제대로 봐주시면 안 될까요?’라고 말한다면 어느 누가 ‘그래요. 가져와 봐요.’라고 하겠는가. 문전박대 당하기 십상이지. 천 회장과의 분위기가 좋았다면 부탁이라도 했겠지만, 감정이 상한 상태이니 불가능하다. 낮은 한숨을 쉬며 나는 말을 이어갔다.
“그렇다고 이걸 안전하게 맡길 만한 곳도 없고. 차라리 공항에서 이걸 국보급 물건이라고 판단한다면, 그편이 오히려 물건의 가치를 빠르게 알아볼 수 있는 편이 되겠지.”
“오빠, 목적이 요상한 거 아니에요?”
“뭐가?”
“아니, 이왕 샀는데 안 걸리고 가져나갈 생각을 해야죠. 돈이 되는 유물이면 더더욱.”
“돈도 탐나긴 하지만, 그것보다 골동상으로서 내 감이 죽지 않았는지 시험해 보고 싶어.”
안경이 제공하는 정보 덕에 좋은 미술품을 골라낼 수 있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안경에 의존하고 싶지만은 않았기에, 나는 더 매달려서 실력을 길러 왔다. 그래서 시험해보고 싶다. 안경의 정보가 전혀 제공되지 않은 상태에서 감만으로 선택한 유물로 나를 증명해보고 싶었다. 지금 내가 얻은 것이 안경의 힘으로만 이뤄낸 것은 아니라고, 그것보다 훨씬 많은 나의 노력이 있었노라고, 그렇게 스스로에게 말하고 싶었다. 팔짱을 낀 다영이 그런 나를 짜증난다는 표정으로 봤다.
“그 표정은 뭐야?”
“역시 강남 건물주는 돈에 연연하지 않는구나 싶어서, 소시민인 저는 짜증이 나네요.”
“네가 무슨 소시민이냐? 갤러리 다닐 때 벌어놓은 돈 꽤 되잖아. 우리 회사 월급도 적은 편은 아니구.”
“오빠에 비하면 소시민이죠.”
무언가 떠오른 다영이 걱정스럽게 말했다.
“근데 우리, 바로 교토로 넘어가야 하잖아요. 내일 오후 2시 미팅이에요. 기억하고 있죠?”
“오늘 밤에 인천으로 가는 비행기가 없는지 알아봐야지.”
“잠 안 자고 바로 교토로 가겠다는 거예요?”
“비행기 편만 있으면, 그렇게 해야지.”
나는 바로 핸드폰으로 인천으로 가는 비행기 편을 검색했다. * 다행히 인천으로 가는 비행기 편이 있어 얼른 예약하고 공항 내 문화재를 신고하는 곳으로 갔다. 홍도관을 꺼내고 있는데, 매서운 눈빛을 한 감정위원이 물었다.
“어디서 구매하신 거죠?”
“융캉제 골동품 거리에 있는 가게에서 샀습니다.”
나는 긴장했지만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말했다. 감정위원은 조심스럽게 나무상자에서 홍도관을 꺼내 돋보기로 찬찬히 보기 시작했다. 구부부터 시작해서, 어깨, 굽까지 꼼꼼하게 봤다. 대만이나 우리나라나 도자기 보는 방법은 크게 다르지 않은 모양이다. 굽까지 다 본 감정위원이 그럼에도 걸리는 부분이 있는지 다시 보더니, 이윽고 문양을 세세하게 보는 것 아닌가. 등에서 땀이 주르륵 흘러내리는데 애써 태연한 표정을 지었다. 문양을 다본 감정위원이 천천히 고개를 들어 나를 지그시 바라봤다. 정말 국보급 물건인건가? 국보급 물건이라고 말해줬으면 좋겠다는 마음과 그냥 넘어갔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복잡하게 얽혀 나를 더 긴장시켰다. 나를 보면서 감정위원이 천천히 입을 뗐다.
“가져가시면 됩니다.”
“아. 네.”
홍도관을 가지고 나오면서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감정위원이 알아보지 못할 정도면 국보급 물건은 아닌 건가?”
슬쩍 실망스러운 마음이 올라왔지만 그래도 끝까지 확인해 보고 싶었다. 혹시 모르잖아. 그렇게 나는 비행기에 올랐고, 인천 공항으로 갔다. 도착하자마자 나는 게이트 밖으로 나가 아버지를 찾아 서성였다. 멀리 아버지의 모습이 보여 나는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아버지!”
심드렁한 얼굴로 아버지가 다가왔다.
“새벽 5시에 이 늙은 아버지가 여기까지 와야겠냐?”
“가장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아버지니까 그렇죠.”
“이 시간에 공항으로 불러낼 수 있는 사람이 나밖에 없어서겠지.”
“에이. 정말이라니까요.”
골동상인 아버지의 시선은 자연히 홍도관이 담겨 있는 나무 상자로 향했다.
“이게 그거냐?”
“네. 제가 보기엔 이 입구에 쓰인 것이 아무래도 갑골문자 같아요. 아버지가 좀 알아봐주세요.”
“알았다.”
조심스레 홍도관을 집어든 아버지를 보면서 나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이제 좀 마음이 놓인다.
“어서 가세요. 저 다시 교토로 가야 해요.”
평소처럼 가도 되는데, 아버지는 발걸음이 잘 떨어지지 않으시는 모양이다.
“식사 거르지 말고, 가는 동안만이라도 눈 붙여라. 얼굴 상했다.”
이런 말씀을 잘 하시는 분이 아닌데, 아버지도 늙으셨나 보다. 나는 환한 미소로 아버지를 안심시키기로 했다.
“요즘 기내식 잘 나와요. 그리고 저, 하루 못 자는 걸로 안 쓰러져요.”
“너도 이제 삼십 대 중반이다. 건강 자신하지 마.”
“자신 안 해요. 어서 가세요.”
“알았다.”
아버지는 홍도관은 품에 안고 돌아섰다. 멀어지는 뒷모습을 지그시 바라보다 나는 시계를 보고 화들짝 놀랐다.
“빨리 움직여야겠다.”
그렇게 다시 수속을 마치고 비행기에 올랐다.
“하루에 두 번 비행기에 오르다니, 이거 아주 글로벌하구만.”
피곤한 느낌을 애써 미소로 흘려보내면서 나는 눈을 감았다. 아버지 말대로 잠깐이라도 눈을 붙여야겠다. * 간사이 공항에 도착한 나는 교토로 가기 위해 리무진에 올랐다. 자리에 막 앉았을 때 다영에게서 전화가 왔다.
“응. 다영아.”
[오고 있는 거죠?]
다영의 목소리에는 불안감이 가득했다. 아버지와 오래 거래했던 사람이기에, 내가 있는 것이 상황적으로 유리했다.
“그럼. 지금 리무진 탔으니까 11시쯤에는 도착해.”
[하아……. 다행이다. 그럼 호텔에서 간단하게 씻고 옷 갈아입으면 2시까지 시간 맞출 수 있겠네요.]
“그렇지. 걱정하지 마.”
[어떻게 걱정을 안 해요! 우리가 부탁하는 입장인데, 나 혼자 가서 뭐라고 하냐구요!]
“한 번도 안면이 없는 건 너나 나나 마찬가지거든?”
[소개해준 사람이 오빠 아버님이잖아요. 당연히 오빠가 있는 게 낫죠. 그리고 간다고 했는데 안 오면, 그분 기분이 어떻겠어요?]
래퍼처럼 다영은 숨도 쉬지 않고 말했다. 귀가 따가울 만도 한데 그 모습까지 나는 귀엽게 느껴졌다. 주책이다. 한지감……! 티를 내지 않으려 나는 애써 심드렁한 목소리를 냈다.
“그래서 지금 가잖아. 이따 보자. 끊는다.”
그렇게 전화를 끊고 나는 반쯤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웃음이 새어나왔다.
“좋아하는 사람이죠?”
훅 들어온 한국어에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고개를 돌리니 복도를 사이에 두고 건너편에 앉은 20대 젊은 남자가 ‘좋을 때다’하는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눈빛이 깊은 묘한 매력의 남자였다. 그 눈빛 때문이었을까, 나도 모르게 대답해버렸다.
“맞아요.”
“역시 그렇군요.”
남자는 한국말을 잘했지만 한국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교포이신가요?”
“아니요. 일 때문에 자주 가서 한국어를 조금 할 줄 압니다.”
“잘하시는데요.”
“감사합니다.”
교토 역에 도착해서 나는 리무진에 내렸고, 남자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싱긋 웃으면서 말했다.
“교토에 오시는 줄은 몰랐네요. 여자친구분하고 여행을 오셨군요.”
“아니요. 일 때문에 왔어요. 그럼 가보겠습니다.”
“네.”
짐을 가지고 나는 빠르게 호텔로 들어갔다. 로비에서 기다리고 있던 다영이 반갑게 나를 맞았다.
“오빠. 왔어요?”
떨어진 지 24시간도 지나지 않았건만, 환하게 웃는 다영을 보니 너무 반가워서 와락 안아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