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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화 교토에서 (1) (152/226)

152화 교토에서 (1)2021.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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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60293887.jpg“오빠. 왔어요?”

떨어진 지 24시간도 지나지 않았건만, 환하게 웃는 다영을 보니 너무 반가워서 와락 안아버렸다. 안고 나서야 아차 싶어 급하게 떨어졌다.

16560293887006.jpg“외국에서 한국사람 만나면 반갑다더니, 그 말을 알겠다. 너 보니까 너무 반갑네.”

아…… 한지감. 뭐라는 거야. 뭔 말 같지도 않은 말을 하고 있어……! 잔뜩 쫄아서 눈치를 살피는데, 의외로 다영은 덤덤했다.

16560293887.jpg“한국 다녀오느라 많이 힘들었어요? 정신 차리고 빨리 가서 샤워하고 나와요. 냄새 나요.”

코를 막는 다영의 행동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16560293887006.jpg“무슨 냄새가 난다고 그래!”

16560293887.jpg“나요. 그러니까 빨리 씻고 와요. 위탁 부탁드리러 가는데, 깔끔하게 하고 가야죠!”

16560293887006.jpg“알았어. 안 그래도 지금 갈 생각이었거든.”

16560293887.jpg“여기 오빠 키예요. 전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게요.”

16560293887006.jpg“그러던가.”

엘리베이터에 타자마자 킁킁 내 몸의 냄새를 맡았지만 섬유 유연제 냄새밖에 나지 않았다.

16560293887006.jpg“무슨 냄새가 난다는 거야.”

문득 아까 다영의 덤덤했던 반응이 떠올랐다. 그 반응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다. 나는 이제 더 이상 다영에게 남자가 아니다. 이미 오래전에 내가 다영을 거절하면서 그렇게 선이 그어졌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사실이 따끔따끔 아팠다. * 급하게 준비를 마치고 나는 다영과 함께 아버지가 자주 거래를 하셨던 가게인 ‘교토 골동품’을 찾아갔다. 직원이 우리를 보고 다가왔다.

16560293913266.jpg“어떻게 오셨습니까?”

쌍룡검 때 당황한 이후 틈틈이 일본어를 공부했기에, 나는 어렵지 않게 일본어로 말할 수 있었다.

16560293887006.jpg“탑 옥션 한지감이라고 합니다. 사장님과 오늘 뵙기로 약속이 되어 있는데요.”

16560293913266.jpg“사장님과요?”

직원이 의아한 태도로 물어 나는 다시 대답했다.

16560293887006.jpg“네. 사장님과 약속이 되어 있습니다.”

난감함이 직원의 얼굴에 스쳤다.

16560293913266.jpg“잠시,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16560293887006.jpg“네.”

직원이 자리를 뜨고 다영이 귓속말로 속삭였다.

16560293887.jpg“약속된 거 맞아요?”

16560293887006.jpg“아버지가 분명 약속이 되었다고 말씀하셨는데……. 가게도 여기가 맞고…….”

당황스러워하는 찰나, 직원이 누군가와 함께 오는 것이 보였다. 점점 거리가 가까워지면서 그 사람의 얼굴이 보였다. 리무진에서 대화를 나누었던 바로 그 묘한 인상의 남자였다.

16560293887006.jpg“어……. 아까 뵌…….”

남자가 싱긋 웃으면서 한국어로 말했다.

16560293913266.jpg“이렇게 뵙게 될지는 몰랐네요. 저는 사카모토 소스케입니다. 아버지가 몸이 아프셔서 갑작스럽게 입원하시는 바람에 제가 대신 오게 되었습니다.”

16560293887006.jpg“아…… 아드님이셨군요.”

16560293913266.jpg“사무실로 모시겠습니다. 이쪽으로 오시죠.”

소스케를 따라 다영과 나는 사무실로 들어섰다. 사무실 테이블에는 화과자와 과일, 그리고 따듯한 차가 정갈하게 준비되어 있었다.

16560293913266.jpg“멀리서 오셨는데 대접이 너무 보잘것없습니다.”

16560293887006.jpg“그렇지 않습니다. 준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16560293913266.jpg“아닙니다. 어서 드시죠.”

소스케의 태도는 친절했지만 리무진에서와 달리 설명할 수 없는 벽이 느껴졌다. 업무상 만났기에 그런 것이라 여기며, 지난 인연을 이야기하면서 경계심을 푸는 시도를 했다.

16560293887006.jpg“아버지께서 사카모토 사장님의 물건은 믿을 수 있다고 좋아하셨습니다.”

16560293913266.jpg“아버지가 들으셨다면 정말 좋아하셨을 겁니다. 아버지도 한 사장님은 좋은 물건을 제 가격을 쳐주신다고 좋아하셨습니다.”

아버지와 사카모토 사장의 인연은 20년 전 시작되었다. 사카모토 사장은 평소 조선 백자를 좋아했기에 한국 고미술품에 대한 안목이 높았고, 덕분에 일본 내에 한국 미술품을 소장하고 있던 사람들이 사카모토 사장에게 파는 경우가 많았다. 사카모토 사장은 일본 내에서 판매자를 찾을 수 있었음에도 한국으로 돌려보내고 싶다는 생각에 한국 소장자를 찾았다. 그러는 차에 아버지와 연이 닿아 지속적으로 거래가 이루어졌다. 매번 말로만 듣던 사카모토 사장이 어떤 사람일지 궁금했는데, 이렇게 아들만 만나게 되다니 아쉬운 기분이 들었다. 급하게 입원했다는데 어디가 많이 아픈 것은 아닌지 걱정되었다.

16560293887006.jpg“사장님은 몸이 어디가 안 좋으신 건가요?”

16560293913266.jpg“맹장입니다. 심각한 상태는 아니니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16560293887006.jpg“괜찮으시다면 병문안을 가고 싶습니다.”

16560293913266.jpg“아버지도 좋아하실 겁니다.”

차를 마시는 소스케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딱 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그는 이 사무실을 꽤 낯설어한다는 것 같다.

16560293887006.jpg“이곳에서 일하신 지 얼마나 되셨나요?”

16560293913266.jpg“아직 일하고 있진 않습니다. 도쿄에서 아직 수련중에 있거든요. 오늘은 아버지 대신 손님을 맞으러 온 겁니다.”

16560293887006.jpg“그렇군요. 다른 가게에서 잘 배우고 계시니 ‘교토 골동품’의 미래는 밝네요.”

16560293913266.jpg“모두들 그렇게 하는군요.”

원래 일본 골동품 사장들은 자신의 가게에서 자녀들을 훈련시키지 않는다. 일부러 멀리 떨어진 곳의 가게로 자녀를 보내, 5년 정도 일을 배우고 나면 그제야 가게를 맡긴다. 이제 슬슬 본래의 목적을 꺼내놓을 시간이 된 것 같다.

16560293887006.jpg“제가 여기 왜 오게 되었는지 들으셨나요?”

16560293913266.jpg“네. 들었습니다.”

갑자기 소스케의 얼굴이 어두워지더니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16560293913266.jpg“한국 고미술품이 최대한 많이 필요하다고 하셨죠.”

16560293887006.jpg“네. 몇 점 정도 가능할까요?”

16560293913266.jpg“죄송하지만 5점 이상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

대만에서 한국, 한국에서 교토까지 왔는데 5점이라니……. 기가 막혔다.

16560293887006.jpg“30점까지 가능하다고 전해들었는데요.”

16560293913266.jpg“소통과정에서 착오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한국 고미술품이 그 정도로 많이 들어오진 않습니다.”

안타깝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더없이 단호해서, 나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 ‘교토 골동품’에서 나오자마자 나는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16560293887006.jpg“아버지. 정말 30점이라고 한 것 맞아요?”

16560293995675.jpg[맞아. 왜 그러냐?]

16560293887006.jpg“사카모토 사장이 아파서 아들이 대신 나왔는데, 5점밖에 줄 수 없다고 해서요.”

16560293995675.jpg[그럴 리가 없는데…….]

16560293887006.jpg“일단 알겠어요. 사카모토 사장 병문안 가서 제가 다시 확인해 볼게요.”

전화를 마치려는데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16560293995675.jpg[아. 그리고 홍도관 말이다.]

16560293887006.jpg“네.”

16560293995675.jpg[중국 고미술을 거래하는 이 씨에게 보이니 군침을 흘리더구나. 확신은 못하지만 갑골문자일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그 사람 말이, 정말 갑골문자라면 못해도 100억은 받을 거라는 구나.]

16560293887006.jpg“아……. 그래요.”

정말 갑골문자라면 그 가치가 높을 수밖에 없는 것이, 도자기에 쓰인 경우가 거의 없는 데다 그 드문 경우에도 대부분 파편으로만 남아 있기 때문이다. 내가 구입한 홍도관과 달리 온전한 상태가 아니었다. 100억이 생길지도 모른다는데, 어째 별로 기쁘지가 않았다.

16560293995675.jpg[내일 중국 고미술을 전공한 교수를 만나기로 했다. 교수를 만나면 좀 더 확실해질 거다.]

16560293887006.jpg“네. 감사합니다. 부탁드려요.”

좋은 소식을 들었음에도 통화를 마친 내 머릿속에는 5점만이 떠다닐 뿐, 홍도관의 가격은 마음에 들어오지 않았다. 어깨를 축 늘어트린 나를 보며 다영이 밝게 말했다.

16560293887.jpg“배고프죠? 맛집 찾아놨어요. 먹고 가요.”

16560293887006.jpg“배 안 고파…….”

5점 주겠다는 소리에 입맛도 의욕도 싹 달아났다.

16560293887.jpg“일단 가요. 먹고 힘내야 병문안 가서 설득이라도 하죠!”

나를 잡아 끌고 다영은 작은 음식점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소고기 덮밥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16560293887006.jpg“안 먹을래. 정말 입맛이 없어.”

16560293887.jpg“쓰읍! 어서 먹어요.”

엄마처럼 다영은 내 손에 젓가락을 떡하니 쥐여주었다.

16560293887006.jpg“알았어. 먹으면 될 거 아니야.”

16560293887.jpg“얼른 들어요.”

다영이 이렇게까지 챙겨 주니 보여주기 식으로 깨작거릴 요량으로 밥을 입에 넣었는데, 생각 이상으로 맛있었다. 내 표정을 다영은 놓치지 않았다.

16560293887.jpg“거봐요. 맛있죠? 어서 먹어요.”

밥을 먹고 나왔지만, 대만부터 허탕을 치는 느낌이 들어 힘은 전혀 나지 않았다.

16560293887006.jpg“천 회장부터 사카모토 사장까지, 어떻게 하나도 쉽게 흘러가지를 않냐.”

16560293887.jpg“쉽게 가면 재미없죠. 아직 실패했다고 침울해할 때는 아니잖아요. 병문안 찬스가 있으니까요.”

16560293887006.jpg“그렇지. 그런데 왠지 느낌이 쉽게 흘러갈 것 같지가 않아.”

더 정확하게 말하면, 안 해 줄 것 같았다.

16560293887.jpg“정말 고미술품이 얼마 없는 거면 어쩔 수 없죠.”

16560293887006.jpg“네 느낌은 어떤데? 정말 없어서 못 주겠다고 하는 것 같아?”

사뭇 진지해진 다영이 고개를 저었다.

16560293887.jpg“아니요.”

16560293887006.jpg“태도가 친절하지만 단호해. 명확한 선을 그으면서 밀쳐내는 느낌이야.”

16560293887.jpg“네. 정말 착오가 일어난 거라면 미안해서 어쩔 줄 몰라 하거나, 다른 소장자나 다른 가게를 소개해 줄 텐데 그러지도 않구요.”

16560293887006.jpg“맞아. 우리에게 말한 것이 핑계에 불과하다면, 진짜 이유는 뭘까?”

16560293887.jpg“이제부터 오빠가 알아봐야죠.”

툭툭 다영이 어깨를 두드리자 잘 해내고 싶다는 마음이 강해졌다.

16560293887006.jpg“그래. 내가 알아봐야지. 너는 선배 만나러 가야지?”

16560293887.jpg“네. 지금 출발해야 할 것 같아요.”

다영은 교토에서 일하고 있는 고등학교 선배를 만나러 가기로 했다. 그 선배가 골동품 애호가라 일본 이곳저곳에 있는 우리나라 고미술품들을 사들여 20점 정도 소유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16560293887006.jpg“같이 가면 좋은데.”

16560293887.jpg“어쩔 수 없잖아요. 10점이라도 꼭 위탁받아 올게요.”

16560293887006.jpg“나도 사카모토 사장 꼭 설득할게.”

싱긋 웃은 다영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걸어갔다. 나도 슬슬 움직이려는데 김도균에게 전화가 왔다.

16560293887006.jpg“네. 총괄님.”

16560294077911.jpg[잘되고 있어?]

16560293887006.jpg“아니요. ‘교토 골동품’에서 5점밖에 위탁하지 못한다고 말을 바꿨어요.”

16560294077911.jpg[너무 실망하지 마. 내가 희소식을 들었거든.]

상황이 좋지 못하다 보니 귀가 더 솔깃했다.

16560293887006.jpg“희소식이 뭔데요?”

16560294077911.jpg[말했지. 홍콩 갤러리에서 근무하던 후배가 있다고.]

16560293887006.jpg“네! 소장자랑 연결시켜 준대요?”

16560294077911.jpg[응. 더 긍정적인 건, 그 소장자가 홍콩에서 경매회사를 가지고 있는데 ‘신인 작가 후원 경매’에 관심이 있다는 거야.]

가뭄에 단비 같은 소식에 나의 입꼬리는 절로 올라갔다.

16560293887006.jpg“그럼 위탁에 긍정적으로 나올 가능성이 높겠군요.”

16560294077911.jpg[그렇지. 거기서 못해도 50점 정도는 위탁받을 수 있어. 그러니까 너무 힘들어하지 말라구.]

16560293887006.jpg“네. 힘이 납니다.”

외국까지 돌면서 이러고 있는데 다 미끄러지다 보니 많이 침울했는데, 가능성이 보이니 다시 힘이 났다. 이 모든 것들을 이겨내고 꼭 고미술품 경매를 이뤄내고 싶은 마음이 활활 타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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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60293887006.jpg“혹시 이틀 후에 그 소장자분과 약속 잡아 주실 수 있습니까?”

16560294077911.jpg[바로 홍콩으로 가려고?]

16560293887006.jpg“네. 시간으로 봤을 때 그게 더 나을 것 같아서요.”

16560294077911.jpg[알았어. 약속 잡아 보고 연락 줄게.]

16560293887006.jpg“네. 감사합니다.”

통화를 마치자 한결 가벼운 느낌이 든다. 죽으라는 법은 없다. 우리가 예상한 대로 고미술품이 있다면, 사카모토 사장의 마음만 바꾸면 된다.

16560293887006.jpg“부딪혀 봐야지!”

  * 사카모토 사장이 좋아한다는 음료수를 사서 그의 병실로 갔다. 일본어로 인사를 전했다.

16560293887006.jpg“안녕하세요. 탑 옥션 한지감입니다.”

부드러운 인상을 한 사카모토 사장이 깊게 고개를 숙이며 나에게 미안함을 전했다.

16560293913266.jpg“이런 누추한 곳까지 오게 해서 죄송합니다.”

16560293887006.jpg“누추한 곳이라뇨. 그렇지 않습니다.”

사카모토 사장이 지그시 나를 보더니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16560293913266.jpg“한지감 씨는 한 사장님과 무척 닮았습니다.”

16560293887006.jpg“소스케 씨도 사장님을 많이 닮았습니다.”

16560293913266.jpg“……그렇죠. 많이 닮았죠.”

그의 미소는 어딘지 씁쓸해 보였다. 나는 그의 감정이 갈무리되길 기다린 후 천천히 이곳에 온 이유를 꺼내놓았다.

16560293887006.jpg“오늘 가게에 갔습니다.”

16560293913266.jpg“직접 맞았어야 하는데, 죄송합니다.”

16560293887006.jpg“몸이 아프신데 당연한 거죠. 이런 시기에 오게 되어 제 마음이 안 좋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여쭤보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16560293913266.jpg“말씀하시죠.”

최대한 차분하고 부드럽게 말했다.

16560293887006.jpg“이곳에 오기 전에 제 아버지로부터는 30점을 위탁해주실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소스케 씨는 5점밖에 위탁해줄 수 없다더군요. 정말 그것밖에는 없는 건가요?”

내 눈을 보지 못하고 두 손이 불안하게 움직인다. 그는 지금 변명거리를 찾고 있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것은 진짜 이유다. 설사 이 거래가 완전히 무산되더라도 나는 진짜 이유를 알아야겠다.

16560293887006.jpg“5점만 위탁하셔도 됩니다. 아니, 위탁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건 어디까지나 ‘교토 골동품’의 권리이니 말입니다. 하지만 왜 30점이 5점이 되었는지 그 이유는 알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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