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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화 홍콩 린 사장 (2) (155/226)

155화 홍콩 린 사장 (2)2021.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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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트21’에서 나와 우리는 회사 사옥이 있는 곳으로 갔다. 모두 화이트 큐브 같은 세계적인 화랑이 밀집해 있는 센트럴 갤러리 지구였기에, 이동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진 않았다. 홍콩 지점의 경매팀 책임자인 양 팀장이 우리를 맞았다.

16560294997439.jpg“안녕하세요. 양민종 팀장입니다.”

16560294997443.jpg“한지감 책임입니다.”

16560294997448.jpg“정다영입니다.”

양민종 팀장은 한눈에 보기에도 선한 느낌이 났다. 부드러운 리더십으로 김도균도 그를 높게 평가한다.

16560294997443.jpg“양 팀장님,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16560294997439.jpg“저야말로 한지감 씨에 대한 말 많이 들었어요. 특히 ‘신인 작가 후원 경매’는 정말 인상적인 기획이었어요. 운영도 좋았구요. 그럼 회사 한번 둘러볼까요?”

회사 사옥은 ‘아트21’만큼은 아니지만 충분히 세련되고 규모 있었다. 전체적인 구성은 서울 사옥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수장고, 프리뷰 전시장, 경매장, 사무실 등이 있었다.

16560294997443.jpg“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넓고, 멋있네요.”

16560294997439.jpg“인테리어에 신경 좀 썼죠. 첫 경매를 고미술품만으로 하는 기획을 냈다면서요?”

16560294997443.jpg“네. 그런데 실현시키기가 어렵네요.”

16560294997439.jpg“아무래도 그렇죠. 저희 팀이 다 움직여도 10점도 위탁받기가 어려웠거든요. 이번이 아니라도 다음번에 꼭 한국 고미술품만으로 된 경매를 하고 싶네요.”

16560294997443.jpg“그렇게 생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영역을 침해당했다고 고깝게 생각할 수 있는데, 호응이 나쁘지 않아 고마웠다. 사옥을 보는 다영의 얼굴에는 생기가 넘쳤다.

16560294997448.jpg“3월에 왔으면 더 좋았을 텐데, 아쉽네요.”

3월에는 홍콩에서 아트 바젤, 아트 센트럴 같은 세계적인 아트페어를 비롯한 많은 행사들이 열린다. 그 기간이 끝나면 홍콩은 쥐죽은 듯 잠잠해진다.

16560294997439.jpg“이번 해만 있나요. 내년에 오면 되죠.”

16560294997448.jpg“그렇죠.”

양 팀장의 말에 다영이 미소를 숨기지 못했다. 다영이 웃는 모습을 보니 나도 저절로 미소가 떠오른다. 아트페어가 많이 열리는 3월에 일이 아니라 데이트를 하러 다영과 이곳에 오고 싶다. 매일 그림을 보고, 나랑 다영이 좋아하는 그림을 사면서 시간을 보내면 얼마나 좋을까. 다영이 나를 남자로 보지 않으니 그 꿈이 이루어질 가망성은 없겠지만 말이다. 사옥을 한 바퀴 돌고 우리는 다시 로비로 돌아오자 양 팀장이 물었다.

16560294997439.jpg“언제 한국으로 돌아가시나요?”

16560294997443.jpg“내일 아침에 돌아가야 할 것 같습니다.”

이곳에 오면서 다영이 린 사장의 비서와 약속을 잡으려 노력했지만 헛수고였다. 하루 더 머물면서 린 사장을 설득할지 아니면 이대로 한국으로 돌아갈지 우리는 정해야 했고, 몸도 마음도 지친 관계로 내일 아침에 돌아가기로 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홍콩에 머무는 마지막 밤에 어마어마한 일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몰랐다. * 저녁을 먹고 호텔로 돌아가는 길에 다영이 징징거렸다.

16560294997448.jpg“진짜 술 안 마실 거예요?”

16560294997443.jpg“안 마신다니까. 너무 피곤해. 며칠 동안 제대로 못 잔 거, 너도 알잖아.”

16560294997448.jpg“그렇지만…… 홍콩에서 마지막 밤인데 아쉽잖아요.”

16560294997443.jpg“하나도 아쉽지 않거든.”

피곤하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오히려 너무 쌩쌩해서 문제였다. 요즘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아서인지, 아니면 다영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깊이 잠들어 있던 욕구가 꿈틀댔다. 이런 날에 다영과 술을 마신다? 백퍼센트 실수하고, 돌이킬 수 없는 어색함을 만들겠지. 그럴 수는 없다. 룸 앞까지 와서도 다영은 포기하지 않고 말했다.

16560294997448.jpg“진짜 술 안 마셔요?”

16560294997443.jpg“안 마셔요. 그러니까 빨리 들어가서 자세요.”

16560294997448.jpg“쳇…….”

입술을 삐죽인 다영을 방으로 밀어넣고, 나도 방으로 들어갔다. 문에 기대 푹 한숨을 쉬었다.

16560294997443.jpg“넌 내가 지금 어떤 마음인지 죽었다 깨어나도 모를 거다.”

그때 초인종이 울렸고, 나는 미간을 좁히면서 문을 벌컥 열었다.

16560294997443.jpg“정다영……!”

하지만 문 앞에서 서 있는 사람은 정다영이 아닌 린 사장의 비서였다. 어디 클럽에라도 갔다 왔는지, 그녀는 가슴이 훅 파인 자극적인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16560294997443.jpg“안녕하세요, 비서님. 여긴 어쩐 일이세요?”

16560294997439.jpg“들어가서 말할 수 있을까요?”

별로 방에 들이고 싶진 않다.

16560294997443.jpg“방이 더러워서요. 밖에 나가서…….”

문틈으로 쓰윽 파고 들더니 태연하게 내 방으로 들어섰다.

16560294997439.jpg“방 전혀 더럽지 않은데요?”

방의 주인이라도 되는 듯 자연스레 1인용 소파에 앉았다. 도대체 저런 꼴로 여길 왜 온 걸까? 의심하는 머리와 달리 본능에 충실한 말초신경은 육감적인 몸매에 쏠렸다. 나는 의식적으로 보지 않으려 노력하며 그녀의 앞에 앉았다.

16560294997443.jpg“들어오셨으니 무슨 일인지 말씀해 주셔야죠.”

16560294997439.jpg“사장님이 소장한 미술품을 위탁받고 싶다고 하셨죠?”

16560294997443.jpg“네. 그렇습니다.”

16560294997439.jpg“제가 힘 써볼 수 있어요.”

살짝 어깨를 앞으로 내밀자 더욱 자극적이었다. 나는 보지 않으려 고개를 돌렸다. 그런 나를 보며 비서는 풋하고 웃었다.

16560294997439.jpg“지감 씨는 다른 남자들하고 좀 다르네요.”

16560294997443.jpg“네?”

일어선 비서가 저벅저벅 나에게 걸어오더니 내가 앉은 소파 팔걸이에 걸터앉았다.

16560294997439.jpg“다른 남자들은 나를 쳐다보지 않으려고 애쓰지 않거든요. 본능이 시키는 대로 하죠.”

평소 같았으면 그녀의 행동을 비웃으며 당장 꺼지라고 했겠지만, 욕구가 일어난 오늘은 힘들었다. 이걸 그녀도 알아차렸는지 빙그레 웃으면서 내 목을 감쌌다.

16560294997439.jpg“당신을 즐겁게 만들어줄게요.”

천천히 나에게 다가오는데, 2년 전 다영이 A호텔에서 내 목을 감싼 모습과 겹쳐지면서 그날의 기억이 또렷하게 살아났다.

16560294997448.jpg‘오빠, 좋아해요.’

  입술이 닿기 전 나는 재빠르게 고개를 돌리고 그녀를 밀쳐냈다.

16560294997443.jpg“이러지 마세요……!”

내가 밀치는 바람에 비서는 바닥에 쓰러졌다.

16560294997443.jpg“미안해요. 당황해서 그만…….”

16560294997439.jpg“하하하. 하하하하!”

깔깔 웃어대며 비서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미친 사람 같은 반응에 나는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한참 웃던 그녀는 팔짱을 끼고 나를 봤다.

16560294997439.jpg“재밌는 분이네요.”

그러더니 핸드폰을 들어 어디론가 전화를 거는 것이 아닌가.

16560294997439.jpg“사장님. 한지감 씨가 즐거움을 버리셨습니다. 올라오시죠.”

그 말을 마침과 동시에 비서는 전화를 끊었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건지, 나는 통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16560294997443.jpg“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거죠?”

16560294997439.jpg“그건 린 사장님이 올라오시면 말씀드리죠.”

잠시 후, 초인종이 울리자 비서는 자신의 방이라도 된 듯 문을 열었고, 린 사장이 들어섰다. 실험실 속 쥐가 된 느낌이라 기분이 좋지 않았다.

16560294997443.jpg“무슨 일인지 설명해 주시죠.”

린 사장은 낮처럼 자신의 비서를 끈적하게 보지 않고, 차분히 나를 보다 입을 열었다.

16560294997439.jpg“믿고 일할 수 있는 사람인지 테스트가 필요했소.”

16560294997443.jpg“무슨 테스트를 이런 식으로 합니까? 정말 불쾌합니다.”

16560294997439.jpg“불쾌한 마음 충분히 이해합니다. 하지만 나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어요. 유독 내 주변에서 이성 문제로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많았던 터라.”

끼리끼리 어울린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이런 식으로 나에게 영향을 끼칠 줄은 몰랐다. 화가 났지만 나는 최대한 차분하게 가라앉혔다.

16560294997443.jpg“기분이 좋진 않지만 사장님의 기준이니 받아들이기로 하죠. 그럼 전 테스트에 통과한 겁니까?”

16560294997439.jpg“네. 테스트를 통과했소. 아주 의외요. 이렇게 아름다운 비서를 밀어낼 줄은 몰랐소.”

히죽거리는 그 얼굴을 보니 화가 더 났다.

16560294997443.jpg“그럼 저희에게 한국의 고미술품 위탁하시는 겁니까?”

16560294997439.jpg“그렇게 하겠소. 아깝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신인 작가 후원 경매를 우리에게 잘 가르쳐줄 분이니 그 정도는 기꺼이 내어드리지.”

16560294997443.jpg“감사합니다. 내일 맑은 정신으로 이후 일정을 의논드리기로 하죠.”

16560294997439.jpg“알겠소. 기대가 되는군. 가지.”

16560294997439.jpg“네. 사장님.”

비서가 재빠르게 앞으로 가서 문을 열 거란 예상과 달리, 린 사장이 문을 열었다. 문틈 사이로 다영의 얼굴이 보였다. 두 사람을 보고 다영은 놀라 한 걸음 물러섰고, 그런 다영을 보고 린 사장이 장난스런 표정을 지었다.

16560294997439.jpg“이거, 약속이 먼저 잡혀 있었군.”

그 말을 마지막으로 린 사장과 비서는 룸을 떠났다. 문제는 다영이 비서의 옷차림을 놓치지 않았다는 데 있었다.

16560294997448.jpg“왜 저러고 여길 와요?”

나는 머리를 흩트리며 어떤 상황이 있었는지 설명했다.

16560294997443.jpg“그렇게 된 거야.”

팔짱을 낀 다영이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나를 봤다.

16560294997448.jpg“오빠. 솔직히 말해 봐요.”

16560294997443.jpg“뭘?”

16560294997448.jpg“그 비서에게 관심 있었죠?”

16560294997443.jpg“없었거든?”

내 항변에도 다영은 의심을 놓지 않고, 장난스레 나를 헤집었다.

16560294997448.jpg“아닌데에. 처음부터 단호했던 것 같지가 않은데에? 솔직히 말해 봐요. 관심 있었죠?”

16560294997443.jpg“야! 너 지금 이 상황이 즐겁냐? 나는 너 때문에 하루하루가 폭탄을 들고 있는 것 같은데!”

놀란 다영이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물었다.

16560294997448.jpg“내가 뭘 어쨌다고요 그래요?”

16560294997443.jpg“내가 너 좋아하니까……!”

아…… 이게 아닌데. 말을 해놓고도 아차 싶다. 절대 해서는 안 되는 말인데……. 하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게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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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60294997448.jpg“오빠가 나 좋아한다고요?”

16560294997443.jpg“그래……. 나 너 많이 좋아해. 알아. 너한테 난 남자 아니란 걸…….”

피식거리는 소리가 들려 고개를 드니 다영이 웃고 있었다.

16560294997448.jpg“도대체 언제 고백하나 했네.”

16560294997443.jpg“응……?”

16560294997448.jpg“나도 오빠 좋아요.”

16560294997443.jpg“놀리지 마. 나 정말 상처받아.”

16560294997448.jpg“정말이거든요. 그래서 술의 도움을 좀 받아보려 했더니, 이런 식으로 고백을 받게 될 줄은 몰랐네요.”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아 멍한 나를 향해 다영이 말했다.

16560294997448.jpg“2년 전에 뻥 차버린 거 복수하느라 그동안 모르는 척했어요. 이제 이해됐어요?”

16560294997443.jpg“그럼…… 눈치채고 있었어?”

16560294997448.jpg“내가 바보예요? 그런 것도 눈치 못 채게?”

얼굴이 화끈거리는데 다영이 태연하게 말을 이어 갔다.

16560294997448.jpg“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그렇게까지 고백을 안 해요?”

16560294997443.jpg“나는 너한테 상처 줬다고 생각해서…… 그래서…….”

16560294997448.jpg“그래서 고백을 안 할 작정이셨다? 이거 서운하네. 그럼 오빠의 의도대로 고백 안 들은 걸로 할게요.”

돌아서려는 다영을 나는 황급히 막아섰다.

16560294997443.jpg“어떻게 있었던 일을 없었던 일로 하냐…….”

16560294997448.jpg“난 우리 관계를 위해서 그렇게 했거든요?”

16560294997443.jpg“그건…… 나도 미안하게 생각해.”

16560294997448.jpg“그럼 제대로 고백해 봐요.”

16560294997443.jpg“무슨 고백을 또…….”

싸한 표정을 지은 다영이 나를 지나치려 해서 나는 황급하게 다영을 막아섰다.

16560294997443.jpg“알았어. 할게.”

그제야 다영은 새초롬한 표정으로 걸음을 멈춰 섰고, 나는 마른 침을 삼키며 말했다.

16560294997443.jpg“좋아해. 줄곧 좋아하고 있었어. 너무 늦게 깨달았지만…… 이런 나라도 받아줄래?”

물끄러미 나를 보던 다영이 씨익 미소를 지었다.

16560294997448.jpg“받아줄게요.”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다영은 폭 나의 품에 안겼다.

16560294997443.jpg“받아줘서 고마워.”

16560294997448.jpg“고마우면 잘해요.”

16560294997443.jpg“응. 잘할게.”

나는 흐뭇하게 미소 지으며 다영을 꼭 껴안았다. * 아침에 일어난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린 사장을 만나러 갈 준비를 했다.

16560294997443.jpg“흐응 흐으응.”

곧 다영을 만날 생각을 하니 콧노래가 저절로 나왔다. 준비를 마치고 나는 룸에서 나가 다영의 방 앞에 섰다. 목을 가다듬고 초인종을 누르려는데, 벌컥 문이 열리더니 다영이 나왔다. 평소에 입지 않던 빨간색 원피스를 입어 눈이 휘둥그레졌다. 한눈에 봐도 꾸민 느낌이었다.

16560294997443.jpg“이러고 가게?”

16560294997448.jpg“네. 왜요? 별로예요?”

16560294997443.jpg“아니 예뻐! 예쁜데…… 일하러 가는 느낌이 아니라서.”

빨간색의 강렬함 때문인지 레스토랑이나 백화점 쇼핑 정도는 가 줘야 할 것 같았다.

16560294997448.jpg“예쁘면 됐어요.”

16560294997443.jpg“오늘 왜 이렇게 꾸몄어? 혹시 비서 때문이야?”

16560294997448.jpg“네. 일 때문이었다고 하지만 어쨌든 내 남자한테 요사스런 짓을 한 건 맞잖아요! 지고 싶지 않단 말이에요.”

앙칼진 표정을 짓는 모습이 귀여워 웃음이 났다. 그런 나를 보면서 다영이 미간을 좁혔다.

16560294997448.jpg“웃지 말아요! 누구 때문에 이렇게 입었는데!”

16560294997443.jpg“알았어. 미안. 귀여워서 그래.”

그때 핸드폰 벨소리가 울렸다. 도강그룹 강 회장의 비서실장에게서 온 전화였다. 느낌이 좋지 않았지만 나는 전화를 받았다.

16560294997443.jpg“비서실장님, 잘 지내셨어요?”

16560295275445.jpg[한 선생님 덕분에 잘 지냈습니다. 오늘 좀 뵐 수 있을까요?]

16560294997443.jpg“제가 지금 홍콩에 있고, 오늘 밤에야 한국에 들어가서요. 내일이나 되어야 뵐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무슨 일 때문에 그러신지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16560295275445.jpg[한 선생님이 소장중인 홍도관, 강 회장님께서 원하십니다.]

아……. 이런 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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