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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화 청동 향로 (2) (160/226)

160화 청동 향로 (2)2021.12.08.

다시 가게로 들어선 나는 직원에게 말했다.

16560297039859.jpg“이 청동 향로를 구매하고 싶습니다.”

직원이 난색을 표하며 말했다.

16560297039865.jpg“이건 파는 물건이 아닙니다.”

16560297039859.jpg“마음에 꼭 들어서 사고 싶습니다. 어떻게 안 되겠습니까?”

16560297039865.jpg“말씀드렸듯이 판매하는 물건이 아닙니다.”

평소 나라면 물러섰을 터지만 이번에는 그럴 수 없다. 나는 같은 문장만 입력된 로봇처럼 반복했다.

16560297039859.jpg“마음에 꼭 들어서 사고 싶습니다. 부탁드립니다.”

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지만, 대학교 때 읽은 심리학 책에 의하면 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이 요구를 들어주는 데 효과적이라고 한다. 그 이유가 뭔지까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내가 추측하기로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라는 인상이 요구를 들어주게 되는 것 같았다. 직원을 난감하게 만들고 싶진 않지만, 나도 몰릴 데로 몰린 터라 어쩔 수가 없었다. 어쩔 줄 몰라 하던 직원이 말했다.

16560297039865.jpg“잠시 기다리세요.”

16560297039859.jpg“네. 기다리겠습니다.”

직원은 자리를 뜨면서 기다리지 말고 제발 가 줬으면 좋겠다는 표정이었다. 미안하지만 그럴 수가 없어요. 잠시 후. 직원은 매니저로 보이는 40대 남자를 대동하고 왔다. 남자가 영업용 미소를 띠며 나에게 깍듯이 인사를 했다.

16560297039865.jpg“매니저입니다.”

16560297039859.jpg“안녕하세요.”

16560297039865.jpg“말씀을 들어드리고 싶지만, 이건 사장님의 개인 소장품이라서 저희가 판매할 수가 없습니다.”

16560297039859.jpg“그렇다면 사장님 연락처라도 얻을 수 있을까요?”

16560297039865.jpg“그건 어렵습니다.”

매니저는 미소를 잃지 않았지만 단호했다. 같은 말을 반복하더라도 이 사람에게는 씨알도 먹히지 않을 것 같다. 차선책이 필요하단 생각에 나는 바로 지갑에서 명함을 꺼내 내밀었다.

16560297039859.jpg“사장님께 연락해 달라고 말씀을 전해 주세요.”

16560297039865.jpg“말씀은 드려 보겠지만 장담하긴 어렵습니다.”

16560297039859.jpg“알겠습니다. 내일도 뵙죠.”

‘내일도 뵙죠’란 말에 매니저의 표정이 잠시 흔들렸지만, 이내 사무적인 미소를 되찾은 그가 답했다.

16560297039865.jpg“네. 언제든 환영입니다.”

  * 다음 날. 나는 ‘아트 21’로 가서 서가인과 ‘신인 작가 후원 경매’과 관련된 업무들을 진행했다.

16560297039859.jpg“VIP는 누구를 생각하고 계시죠?”

16560297039865.jpg“아직 VIP는 정하지 않았어요. 신인 작가 작품을 넘기겠다는 갤러리들도 많지 않은 상황이라서요.”

16560297039859.jpg“기획안에도 있었지만 중심축이 될 VIP는 매우 중요합니다. 커뮤니티의 중심이 되게 하거든요.”

나의 설명에도 서가인의 반응은 탐탁지 않았다.

16560297039865.jpg“그 부분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아직 작가 세팅도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관심을 보일 VIP는 없어요.”

16560297039859.jpg“그걸 만들어내는 것이 스페셜리스트로서의 능력, 아닐까요?”

16560297039865.jpg“그건 제가 마치 능력이 없다는 소리로 들리는군요.”

나는 여유롭게 미소 지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16560297039859.jpg“그만한 능력을 가지셨으니, 하면 된다는 겁니다.”

내 말에 픽 서가인이 웃었다.

16560297039865.jpg“참 잘 빠져나가시네요.”

16560297039859.jpg“잘 빠져나간 것이 아니라 진심입니다. 어제 왕 회장님을 통해서 아주 능력이 많은 분이시란 이야기를 들었거든요.”

16560297039865.jpg“왕 회장이요? 아. 제리 왕을 말하는 거군요.”

16560297039859.jpg“네. 맞아요.”

커피를 홀짝 마시는 서가인의 얼굴에 호기심이 스쳤다. 정확히 제리 왕이 자신을 어떻게 평가했는지 궁금해하는 것 같았다. 그 궁금함에 나는 답했다.

16560297039859.jpg“‘아트 21’이 현재의 모습을 갖추는 데 팀장님의 역할이 컸다구요. 그런 분이라면 아직 작가 세팅이 끝나지 않았더라도 섭외할 VIP가 있지 않겠어요?”

16560297039865.jpg“아부성 말은 거절할게요.”

그렇게 말하면서도 서가인은 기분이 좋아 보였다.

16560297039859.jpg“아부 아닙니다.”

16560297039865.jpg“한 책임은 처음 경매할 때 중심이 되는 VIP 어떻게 섭외했어요?”

16560297039859.jpg“제 고객 중 한 분께 부탁드렸죠. 그분이 역할을 잘해주신 덕분에 경매가 잘됐구요.”

16560297039865.jpg“부담스러울 수 있는 부탁인데 들어준 것을 보면, 고객들에게 믿음을 주는 스페셜리스트인가 봐요?”

16560297039859.jpg“그럼요. 저는 꽤 유능한 편에 들거든요.”

재밌다는 듯이 서가인이 나를 봤다.

16560297039865.jpg“겸손한 분인 줄 알았더니 그렇지만도 않네요?”

16560297039859.jpg“겸손하기만 했다면 제가 이 자리에 없겠죠.”

무심코 시선을 돌리던 서가인의 눈에 시계가 보였다.

16560297039865.jpg“벌써 점심시간이에요. 괜찮으면 밥 같이 먹죠.”

16560297039859.jpg“저도 그러고 싶지만 점심 때 꼭 가야 할 곳이 있어서요.”

16560297039865.jpg“그래요. 그럼 식사는 다음에 하죠.”

16560297039859.jpg“네!”

어제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벌떡 일어섰다. 아무도 그 약속을 지키길 기대하고 있진 않겠지만 말이다. * 식당 안으로 들어서자 카운터에 있는 직원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난감하게 하고 싶진 않기에 미안했지만 철판을 깔고 미소 지었다.

16560297039859.jpg“청동 향로를 구입하고 싶어서 왔습니다.”

16560297039865.jpg“아…… 네. 잠시만 기다리세요.”

잠시 후, 매니저가 나타나서 사무적인 미소로 인사했다.

16560297039865.jpg“정말 오셨네요.”

그 말에서 짜증이 묻어났지만 나는 웃으며 받아쳤다.

16560297039859.jpg“약속을 잘 지키는 편이라서요. 제 명함은 전달됐습니까?”

16560297039865.jpg“네. 사장님께서 바빠서 아직 연락을 못하신 모양입니다.”

16560297039859.jpg“괜찮습니다. 온 김에 식사나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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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사를 마치고 계산하러 나오자 카운터에 매니저가 있었다.

16560297039865.jpg“음식은 입맛에 맞으셨습니까?”

16560297039859.jpg“네. 정말 맛있어요. 그래서 저녁에 또 와야 할 것 같습니다.”

16560297039865.jpg“언제나 환영입니다.”

멘트와 달리 안정된 미소가 흔들렸지만, 나는 해맑게 웃으며 그곳을 나왔다. * 저녁에 나는 또 그 식당을 찾았고, 직원들은 나만 보면 수군거렸다. 음식은 맛있었지만 칼칼한 맛이 없는 딤섬이 점점 느글느글하게 느껴졌다. 이런 것을 보면 내가 한국인이라는 것이 새삼 실감난다.

16560297039859.jpg“하아……. 김치찌개 먹고 싶다. 회사 근처에 맛있는 집 있는데…….”

평범했던 일상이 그리워지는 순간이었다. 그때 매니저가 나에게 다가오는 것이 보여 맛있는 척하면서 미소 지었다. 내 앞에 선 그가 입을 열었다.

16560297039865.jpg“사장님께서 뵙길 원하십니다. 이쪽으로 오시죠.”

매니저를 따라 사무실로 들어가니 사나워 보이는 50대 여자가 보였다.

16560297039865.jpg“그쪽이 나를 보자고 했다고?”

16560297039859.jpg“네. 장식장에 있는 청동 향로를 구매하고 싶습니다.”

16560297039865.jpg“그딴 건 캣 스트리트에 가면 얼마든지 구할 수 있어. 이런 수작질을 하는 이유가 뭐지? 가게 영업을 방해할 생각인가?”

사장의 공격적인 태도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16560297039859.jpg“아니요. 방해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단지 전 저 금향로를 사고 싶을 뿐입니다.”

그녀가 가증스럽다는 듯이 나를 보면서 명함을 흔들었다.

16560297039865.jpg“탑 옥션? 그딴 옥션은 홍콩 살면서 들어본 적이 없어!”

16560297039859.jpg“탑 옥션은 한국에 있는 경매회사입니다. 10월에 홍콩에서 첫 경매를 시작으로 홍콩 지점을 오픈할 계획입니다. 가게를 운영하시니 소식이 빠르실 거라 여겼는데, 그렇진 않으시네요.”

당당한 태도에 사장은 혼란스러워했고, 나는 그걸 놓치지 않고 몰아붙였다.

16560297039859.jpg“기품 있는 물건을 구매할 정도면 품격있는 분이라 분일 거라 짐작했는데, 제가 틀렸나 봅니다.”

16560297039865.jpg“들어본 적이 없으니까 그런 것 아니야!”

16560297039859.jpg“어제 이 가게를 처음 왔을 때 저는 제리 왕과 동행했습니다. 그분이 미술 애호가라는 것은 아실 테죠. 지금이라도 전화 걸어서 저에 대해 확인해 보시죠.”

16560297039865.jpg“아니기만 해봐. 가만두지 않을 테니까!”

사장이 씩씩거리면서 나갔다. 잠시 후. 돌아온 사장은 나갈 때와 달리 내 눈치를 봤지만 애써 아닌 척 굴었다.

16560297039865.jpg“옥션 회사 직원이란 건 확인했어. 하지만 난 아직도 저 물건을 원하는 이유를 모르겠군.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물건인데 말이야.”

16560297039859.jpg“저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물건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제 감이 틀렸을 수도 있지만 사고 싶습니다.”

16560297039865.jpg“위탁이 아니라?”

16560297039859.jpg“옥션 직원이지만 개인적인 목적으로 사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원하시는 가격이 있으십니까.”

눈을 가느다랗게 뜬 사장이 돈을 불렀다.

16560297039865.jpg“홍콩달러로 60만.”

한국에서 1억 정도 하는 금액이다. 감정이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부담스런 금액이었지만 나는 받아들였다.

16560297039859.jpg“네. 사겠습니다.”

16560297039865.jpg“정말이야?”

16560297039859.jpg“네. 원하신다면 지금 당장 입금시켜 드릴 수도 있습니다. 대신 조건이 있습니다.”

16560297039865.jpg“뭔데?”

16560297039859.jpg“계약서를 써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60만 달러 이상의 가치 있는 물건이라고 밝혀져도 반환을 요구하지 않겠다는 조항을 넣길 바랍니다.”

사장의 성격이 만만치 않은 것으로 봤을 때 가치 있는 물건이라면 난리가 날 것 같아 방지 차원에서 제안한 것이다.

16560297039865.jpg“당신이야말로 나중에 돈 돌려달라는 말이나 하지 마.”

16560297039859.jpg“여부가 있겠습니까.”

계약서는 그 자리에서 영어로 쓰였고, 사장이 도장을 찍자마자 나는 바로 돈을 송금했다. 통장에 찍힌 금액을 보고 사장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16560297039865.jpg“정말 입금했네?”

16560297039859.jpg“바로 입금하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이제 물건을 주시죠.”

16560297039865.jpg“그러지.”

사장은 카운터로 가서 청동 향로를 턱짓하며 말했다.

16560297039865.jpg“꺼내.”

그녀의 말에 직원들이 닦지도 않은 손으로 향로에 손을 데려고 했다.

16560297039859.jpg“잠깐만요!”

16560297039865.jpg“뭐야. 그새 마음이 바뀐 거야?”

사장은 혹시라도 내가 돈을 돌려달라고 할까 봐 전전긍긍하는 모습이었다.

16560297039859.jpg“그게 아니라, 청동 향로를 씻지도 않은 손으로 그렇게 만지면 어떻게 합니까?”

16560297039865.jpg“그럼 안 돼?”

16560297039859.jpg“당연히 안 되죠……! 면장갑이나 깨끗한 손으로 만져야 합니다! 상자는요?”

16560297039865.jpg“종이 상자를 준비했어.”

사장이 허접해 보이는 종이 상자를 봤다. 정말 어이가 없다.

16560297039859.jpg“금속 유물은 생각보다 훨씬 무겁습니다. 종이 상자가 그 무게를 감당 못할 확률이 높아요.”

본인도 1억짜리 물건을 팔면서 포장조차 해주지 않는 것이 민망한지 굳이 말을 덧붙였다.

16560297039865.jpg“포장을 잘 해줘야 한다는 조항은 없었잖아.”

16560297039859.jpg“네. 기본이라서 제가 넣지 않았는데, 실수했네요.”

일단 홍콩 지점에 가서 물건을 제대로 포장할 수 있는 것들을 가져올까 하려다가 생각을 바꿨다.

16560297039859.jpg“화장실이 어디죠?”

16560297039865.jpg“저기야.”

16560297039859.jpg“손을 씻고 올 테니 사장님은 밀폐된 나무 상자를 준비해 주세요.”

16560297039865.jpg“알았어.”

화장실로 가서 바로 손을 씻지 않고 칸으로 들어가 러닝셔츠를 벗었다. 금속 유물은 순면이나 모슬린으로 먼지를 털어준 다음 표면을 천으로 덮는 것이 좋다. 다행히 러닝셔츠는 보송보송했다.

16560297039859.jpg“휴우……. 다행이다.”

손을 깨끗하게 씻고 돌아가 청동 향로를 직접 내리고, 먼지를 러닝셔츠로 털어낸 뒤 천으로 감싸 상자에 넣었다. 그 모습을 본 사장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봤다.

16560297039865.jpg“스페셜리스트가 이런 것도 해?”

16560297039859.jpg“스페셜리스트 전에 골동상으로 일해서요. 판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16560297039865.jpg“나야말로 돈 빨리 입금해줘서 고마워. 돈 달라고 다시 찾아와도 그때는 내 얼굴 볼일 없을 거야.”

16560297039859.jpg“이 청동 향로가 가치가 없어도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위험성을 떠안으면서까지 물건을 산 것은 나이니 말이다. 청동 향로를 품에 안고 나는 바로 그 식당을 떠났다. * 한국으로 돌아온 나는 청동 향로를 들고 홍도관을 감정해준 교수를 찾았다.

16560297039859.jpg“안녕하세요. 황 교수님.”

16560297039865.jpg“안녕하세요!”

16560297039859.jpg“휴일에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16560297039865.jpg“아니에요. 그렇지 않아도 그런 엄청난 유물을 알아보신 분이 누구인지 궁금했습니다. 저도 자세히 보지 않았다면 갑골문이라는 것을 몰랐을 거예요. 도대체 어떻게 알아보신 겁니까?”

부끄러워하며 나는 말했다.

16560297039859.jpg“골동상으로 일한 촉이 운 좋게 발동했죠.”

16560297039865.jpg“정말 부럽네요. 사실 처음 골동상분께 부탁을 받았을 때는 좀 어이없었거든요. 갑골문이 새겨진 온전한 형태가 갖춰진 옹기가 있을 리 없다고 생각했어요. 지난번에 도움을 받은 적이 있어서 속는 셈치고 감정을 했던 건데, 정말 진품이라니……. 지금 생각해도 짜릿하네요.”

16560297039859.jpg“저도 마찬가지입니다.”

황 교수는 흥분감을 감추지 못했다.

16560297039865.jpg“관련된 논문도 쓰고, 기사도 많이 나서 덕을 많이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16560297039859.jpg“봐주셨으니 당연한 거죠.”

차를 마시고 흥분감을 가라앉힌 그가 물었다.

16560297039865.jpg“제가 봤으면 한다는 물건이 저건가요?”

16560297039859.jpg“네.”

16560297039865.jpg“홍도관을 발견하신 분이 가져온 물건이라 기대가 되는데요?”

16560297039859.jpg“순전히 촉에 의지한 거라, 위조품이나 모조품일지도 모릅니다.”

16560297039865.jpg“일단 봐보죠.”

나는 면장갑을 끼고 조심스렇게 상자에서 청동그릇을 꺼냈다. 돋보기를 꺼낸 황 교수가 천천히 청동 향로를 훑어보기 시작했다. 1시간 같은 10분이 지나서야 그는 돋보기를 내려놓았다. 마른 침을 삼키고 조심스레 물었다.

16560297039859.jpg“어떻습니까?”

16560297039865.jpg“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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