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화 청동 향로 (3)2021.12.11.
“어떻습니까?”
“이건…… 청나라 향로입니다.”
“정말입니까……?”
다시 한번 직감이 맞았다는 것이 나조차도 믿어지지 않았다.
“네. 여기 손잡이가 봉황 모양인 것 보이시죠?”
“네.”
혼자 볼 때는 반신반의했는데, 황 교수가 짚어주면서 말하니 명확하게 보였다. 그는 향로 중앙을 가리키며 말을 이어갔다.
“여기는 모란꽃이 새겨져 있습니다. 봉황과 모란꽃은 황실의 상징물이죠. 분명 황궁에서 사용했을 겁니다. 1700년대 경으로 추정합니다. 도대체 이걸 어디서 발견하신 겁니까?”
“홍콩의 한 식당에서 봤습니다.”
“하하……. 이거 대단하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군요. 홍도관에 이어 청나라 향로라니요. 정말 물건 보는 감각이 타고나셨습니다.”
어떻게 물건을 이렇게 잘 보는지 신기하다는 듯 황 교수가 멍하니 나를 봤다. 그의 시선이 살짝 부담스러웠지만 나는 미소로 넘겼다. 이제 중요한 것은 가격이었다. 하지만 교수는 진위 여부를 감정하는 사람이지 가격 감정하는 사람이 아니기에, 지난번 홍도관 때 도와주었던 이 씨 아저씨를 찾아가야 할 것 같다. * 아버지와 함께 이 씨 아저씨의 가게를 찾았다. 청동 향로를 보자마자 이 씨 아저씨는 군침을 흘리기 시작했다.
“나한테 팔아. 넉넉하게 쳐줄게.”
“이 사람 왜 이러나. 가격이 어떻게 되는지 궁금해서 온 사람한테. 가격이나 말해봐.”
아버지가 살살 굴리는데도 이 씨 아저씨는 물러서지 않았다.
“지난번에 황 교수 소개시켜줬잖아. 이 세상에 공짜가 어딨어. 그러니까 이번엔 나한테 팔아!”
지난번에 황 교수를 소개시켜준 보답으로 두둑이 건넸건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한 모양이다. 이 씨 아저씨가 물러설 것 같지 않아, 나는 청동 향로를 다시 포장하고 나가려 했다.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만 가볼게요. 아버지, 가요.”
득달같이 이 씨 아저씨가 나를 막아섰다.
“진짜 간다고? 가격 모르는데?”
“빨리 알아보고 싶어서 여기로 온 거죠. 저 스페셜리스트인 것 잊으셨어요?”
“탑 옥션은 중국 고미술 취급 안 하잖아.”
허를 찔려 당황했지만 겉으로는 덤덤하게 말했다.
“저희 회사에 위탁한다는 이야기 아니에요. 얼마 전에 소더비, 크리스티하고 인연이 닿게 돼서요. 그쪽에 위탁해 보려구요. 굳이 거기가 아니라도 홍콩에 아는 경매 회사도 있구요.”
내 말에 이 씨 아저씨는 끙 하고 입을 다물었다 아까와 달리 살갑게 말했다.
“뭘 또 그렇게 정색하고 그래. 좋은 물건 보내는 게 아쉬워서 그렇지. 한 사장 단골들은 중국 고미술에 대해서 모르니 팔기 힘들지 않겠어? 나한테 위탁하면 높은 값으로 팔아줄게!”
“괜찮습니다.”
다시 가려는 나를 이 씨 아저씨가 막아서더니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알았다. 알았어! 가격 말해주면 될 것 아니야! 그 대신 감정료 두둑이 챙겨줘야 해.”
“지난번에도 흐뭇하게 챙겨드렸잖아요.”
“못 본 새 네 아버지를 많이도 닮았구나.”
궁시렁거린 이 씨 아저씨가 말을 이어갔다.
“못해도 30억, 최고 50억까지 받을 수 있는 물건이야.”
좋은 물건이었지만 홍도관에 감히 비할 바는 아니었다. 나는 푹 한숨을 쉬었고, 이 씨 아저씨는 그런 나를 나무랐다.
“좋은 유물 앞에 두고 웬 한숨이야!”
“사정이…… 있어서요. 돈은 계좌로 보내드릴게요. 감사합니다.”
“돈도 돈이지만, 다음에 이런 물건 또 보면 꼭 나한테 위탁 좀 해!”
“네. 그럴게요.”
나는 희미한 미소로 답하고 아버지를 봤다.
“아버지, 가요.”
“그래.”
이 씨 아저씨의 배웅을 받으며 아버지와 나는 차를 타고 그곳을 떠났다. 조수석에 앉은 아버지가 나를 걱정스레 봤다.
“강 회장님이 원하는 정도의 급이 아닌 거지……?”
“네. 홍도관 급이 아니다 보니 그렇죠. 사실 당연한 거긴 해요. 홍도관은 인생에 한 번 만날까 말까 한 엄청난 물건이잖아요.”
“그렇지. 그래도 괜찮은 물건을 건졌으니 강 회장님이 이해해주시지 않을까?”
“좋은 분이시라 그러실 거예요.”
아버지 앞이라 이렇게 말하는 것일 뿐, 사실 강 회장이 이해해 주지 않을 확률이 높았다. 강 회장 입장에서는 여태까지 나에게 많은 것을 배려해 주었고 홍도관마저 보내주었는데,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으로 느껴질 것이다. * 강 회장의 집 앞. 나는 망설이다 초인종을 눌렀고, 안으로 들어섰다. 강 회장이 기대감 가득한 표정으로 나를 맞았다.
“벌써 한 달이 지났네요.”
“네. 시간이 참 빠릅니다.”
“내가 원한 유물은 준비가 됐어요?”
“일단 보시고 말씀하시죠.”
“그래요.”
포장을 풀러 청동 향로를 조심스레 강 회장 앞에 놓았다.
“1700년대 청나라 향로입니다.”
강 회장의 눈이 커지더니 홀린 듯 유물을 바라봤다. 한참 그렇게 보고 나서 그는 나를 봤다.
“아름다운 유물이네요. 시가가 어느 정도 하죠?”
“30억에서 50억 사이입니다.”
강 회장의 표정이 싸하게 식었다.
“약속된 유물은 아니네요. 실망스러워요.”
“죄송합니다. 최선을 다했지만 이것이 최선이었습니다.”
“최선이었다는 말을 방패막이로 쓸 정도로 한 선생이 능력이 없었던가요?”
“해내지 못한 건 제 잘못이니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여태까지 회장님께서 저를 많이 배려해주신 것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어떤 결정을 하시든 거기에 따르겠습니다.”
냉냉한 표정으로 강 회장이 차를 마셨다.
“배 째라는 소리로 들리는 군요. 일단 알겠어요. 이만 가보세요.”
“네.”
나는 청동 향로를 둔 채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런 나를 보고 그림자처럼 자리를 지키던 비서실장이 말했다.
“유물, 가져가셔야죠.”
“가져갈 필요 없습니다. 회장님께 선물로 드리기 위해서 가져온 것이니까요.”
가만히 듣던 강 회장이 반응했다.
“선물로 주기 위해서 가져왔다구요?”
“네. 여태까지 회장님이 해주신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제 마음입니다.”
“이런다고 내가 한 선생과 인연을 이어가는 건 아니에요. 몇 년 동안 나를 봤으니 그 정도는 알지 않아요?”
“회장님께서 끊고 맺음이 분명하신 분이라는 걸 압니다. 하지만 그동안 배려해주신 것들 때문에라도 그냥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물건을 받으실 분이 좋아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공손하게 인사를 하고 그곳을 나왔다. * 김승재가 저벅저벅 ‘강정휘 갤러리’ 안으로 들어섰다. 그를 알아본 여자 직원이 재빠르게 다가섰다.
“삼원 예술 재단 김승재 이사님 맞으시죠?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이렇게 알아보실 줄은 몰랐네요. 지나가다가 그냥 가볍게 그림 보고 싶어서 온 건데.”
잘생긴 얼굴에 다정한 미소는 드라마 남자주인공을 연상시키는 모습이었고, 여자 직원은 설렘을 감추지 못하며 볼을 붉혔다.
“그럼 편하게 둘러보세요. 궁금한 점 있으시면 찾으시구요.”
“네. 고마워요.”
김승재는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며 천천히 안을 둘러봤다. 도무지 눈에 들어오는 건 하나도 없는 조잡한 작품들뿐이었다.
‘이딴 작품을 걸어 넣고 갤러리를 하다니, 양심이 있는 건가?’
강정휘가 망가졌다는 소문은 익히 들었지만 갤러리에 와보니 피부에 정말 와닿았다. 더 이상 그림을 보는 건 짜증이 나서 견딜 수가 없었기에, 그는 아까의 여자 직원을 찾았다.
“이 그림하고, 저 그림을 사고 싶은데요. 가능할까요?”
“김 이사님이 사시는데 가능하지 않아도 가능하게 만들어야죠.”
“고마워요. 이런 멋진 작가를 전속 작가로 두셨다니, 규모와 상관없이 좋은 갤러리란 생각이 드네요.”
“감사합니다! 작가님께 꼭 말씀 전하겠습니다. 좋아하실 거예요.”
여자 직원은 ‘멋진 작가’가 빈정거리는 말이라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김승재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그 번지르르한 외모에 속아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대표님을 뵙고 싶은데 가능할까요?”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네.”
다른 사람이 급하게 와서 이런 만남을 요청한다면 씨알도 먹히지 않을 일이었지만, 그는 재벌 3세다. 비록 삼원 그룹이 재계 순위가 현성에 비해 떨어졌지만, 누군가의 무시를 받을 정도로 영향력이 없지도 않았다. 잠시 후. 강정휘가 영업용 미소와 함께 그 앞에 나타났다.
“어머. 김승재 이사님!”
“안녕하세요.”
“언제 한번 인사드리고 싶었는데, 이렇게 찾아오실 줄은 몰랐어요. 어서 제 방으로 가요.”
“네.”
대표실로 가자 강정휘는 차를 대접했다.
“오시는 줄 알았으면 뭐라도 사놨을 텐데.”
“차로 충분합니다.”
“이 관장님은 잘 지내시죠?”
“네. 잘 지내고 있어요.”
그를 보는 강정휘의 입가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김승재가 잘생겨서가 아니라 앞으로 돈이 될 손님이 자신의 발로 걸어들어와서였다.
“언제 한번 셋이서 식사해요.”
“글쎄요. 아내가 원치 않을 것 같은데요.”
“네……?”
자신의 귀를 의심하는 강정휘를 보면서 김승재는 태연하게 말했다.
“말 그대로예요. 미술품 가지고 자잘하게 장난질 치는 분하고 현성 미술관 관장이 어울리는 그림은 아니잖아요.”
“…….”
“아! 맞다. 지난번 신인작가 경매 때 핸드폰 벨 울린 건 진짜 별로였어요. 방해에도 격이 있는 건데 말이에요.”
영업 미소가 사라진 강정휘가 매서운 눈빛으로 물었다.
“그런 격 떨어지는 곳에 발걸음을 하신 이유가 뭔가요?”
“격이 떨어지더라도 공통점이 있어서요. 우리 둘 다 한지감이 망했으면 하죠.”
흥미롭다는 표정이 강정휘의 얼굴에 스쳤다.
“그래서요?”
“격을 높여서 나랑 일해 보면 어떨까 해서요.”
“궁금하네요. 저야 미술계에서 한지감 같은 사람이 없어지길 바라서 두 팔 걷어부친 거지만, 뭐가 이사님을 이렇게 만들었는지요.”
말을 들은 김승재의 얼굴이 단숨에 싸해졌다.
“강 대표. 그런 질문은 자기 아랫사람한테나 하는 거예요. 내가 아랫사람이에요?”
“아랫사람이 아니라도 같은 목표를 위해 달려가는 입장이라 그러는 거죠.”
싸한 김승재의 태도에도 강정휘는 흔들리지 않았다. 기 싸움에서 밀린 그는 한 걸음 물러났다.
“같은 목표를 위해 가는 입장이라 이번만은 예외로 하고 말해주죠. 아무것도 아닌 놈이 뭐라도 되는 것처럼 설치는 것이 같잖아서 그래요.”
“그렇군요.”
“이제부터 한지감이 망가질 때까지 같이 잘해보죠.”
“네. 좋습니다.”
호박이 넝쿨째 굴러온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하면서 강정휘는 음험하게 웃었다. * 가게 안으로 들어서자 그림에 먼지를 털어내는 아버지의 모습이 보였다.
“왜 이렇게 늦게까지 일하세요?”
“손님이 있었어.”
거짓말이다. 아버지는 내가 오늘 강 회장을 만나는 걸 알고 있다. 걱정되는 마음에 가게 문을 닫지 못한 거다. 그런 마음을 숨기려 그는 애써 나를 보지 않고 물었다.
“강 회장님은 잘 만났어?”
“아무래도 이번이 마지막 거래가 될 것 같아요.”
아버지는 놀랐지만 의연하게 답했다.
“네 손님이 어디 강 회장 한 명이냐? 그리고 이제 너는 골동상이 아닌 스페셜리스트잖냐. 큰 의미 없는 일이니 마음 쓰지 마라.”
“고객이 없어진 것도 없어진 거지만, 강 회장님과는 여태까지 좋은 인연을 이어왔으니까요. 그 인연이 끊어진 것 같아 아쉬워서 그렇죠.”
청동 향로가 홍도관보다 경제적 가치는 떨어지지만 강 회장의 취향이기에 그걸 봐서라도 한 번은 넘어가 주지 않을까 하는 얕은 기대를 했는데, 보기 좋게 무너졌다.
“오래된 인연도 작은 오해로 갈라지는 것이 세상사다. 30년 넘게 살 맞대고 산 부부도 이혼하는 판에, 손님 하나 잃은 것이 뭐 그리 대수야.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덤덤하게 넘겨라.”
“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런데 청동 향로는 어떻게 했냐?”
“강 회장님께 드렸어요.”
“얼마에 팔았는데?”
“……팔지 않고, 그냥 드렸어요.”
이상한 소리를 들은 사람처럼 아버지는 그대로 굳어버리더니 한참 있다가 되물었다.
“정말 그냥 드렸다고?”
“……네.”
“50억짜리 유물을……?”
“……네.”
“지감아. 5천만 원도, 5억도 아닌 50억이다……! 그런데 그걸 그냥 줬다고?”
나는 눈치를 보면서 말했다.
“그 돈 없다고 제가 못 사는 건 아니잖아요. 홍도관 때문에 재산이 크게 늘어났기도 했구요.”
“그래. 그 돈 없다고 못 사는 건 아니지. 하지만…… 골동상이…….”
기가 막혀서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 듯했다.
“무슨 말씀이신지 알아요. 그런데 처음 골동상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강 회장님께 도움을 많이 받아서, 감사 표시하고 싶어서 그랬어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눈앞에서 돈이 사라진 사람처럼 아버지는 털썩 소파에 주저앉았다.
“죄송해요…….”
“……아니다. 잘했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 마지못해 말하는 것이 느껴져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때 강 회장의 비서실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왜 전화를 건 걸까? 의아함을 느끼면서 나는 전화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