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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화 청동 향로 (4) (162/226)

162화 청동 향로 (4)2021.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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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때 강 회장의 비서실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왜 전화를 건 걸까? 의아함을 느끼면서 나는 전화를 받았다.

16560297792909.jpg“비서실장님이 무슨 일로……?”

16560297792914.jpg[계좌로 50억을 보냈습니다. 확인해 보시라고 연락드렸습니다.]

16560297792909.jpg“돈은 다시 돌려드리겠습니다. 아까 말씀드렸듯이 선물이고…….”

16560297792914.jpg[회장님께서 인연을 계속 이어가길 원하십니다.]

인연을 이어가길 원한다니!

16560297792909.jpg“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 돈은 정말 됐습니다.”

그 말을 하면서 고개를 돌리는데, 아버지가 무슨 말이냐며 눈을 크게 뜨는 것이 보였다. 애써 모른 척하게 시선을 돌렸다.

16560297792914.jpg[선물로 보낼 물건을 값을 치르지 않을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16560297792909.jpg“좋은 결정을 해주신 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한데, 돈까지 받기는 마음이 무겁습니다.”

내 말에도 비서실장은 완강했다.

16560297792914.jpg[회장님의 마음이니 받으셨으면 좋겠습니다.]

16560297792909.jpg“……알겠습니다. 좋은 결정 감사드린다고 회장님께 꼭 전해주세요.”

16560297792914.jpg[네. 꼭 전하겠습니다.]

전화를 마친 나는 고개를 돌리다가 흠칫 놀랐다. 언제 왔는지 아버지가 숨결이 닿을 정도로 가까이 있었다.

16560297817433.jpg“인연을 이어가기로 한 거냐?”

16560297792909.jpg“네. 강 회장님이 그렇게 결정했어요.”

16560297817433.jpg“다행이구나. 돈도 받은 거지?”

16560297792909.jpg“네. 굳이 주실 필요 없는데…….”

혼자 중얼거리듯이 말한 건데, 그게 들렸는지 아버지가 내 등짝을 찰싹 때리셨다.

16560297817433.jpg“이 녀석아! 그런 물건을 선물로 주는 것이 어딨어!”

16560297792909.jpg“아…… 아파요. 아버지도 아까 잘했다고 하셨잖아요.”

16560297817433.jpg“그거야 이미 엎질러진 물이니까 그런 거지! 이제 마음이 놓인다.”

그제야 아버지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 문득 아버지가 낡은 집에서 혼자 생활하시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16560297792909.jpg“아버지. 돈 들어온 기념으로 집 사드릴까요? 10분 거리에 신축 아파트 넓고 좋잖아요.”

16560297817433.jpg“또 그 소리냐. 됐어. 나는 지금 집이 좋다. 네 엄마하고 추억이 있는 곳이잖냐.”

16560297792909.jpg“그럼 가게라도 제 건물로 옮기시는 것 어때요?”

16560297817433.jpg“나는 여기가 좋다. 네 눈에 여기가 어떻게 보일지 모르지만, 여긴 내 뿌리야. 옮기고 싶지 않아. 그러니 마음에 걸려할 것 없다.”

은은한 미소를 띠면서 아버지가 말을 이어갔다.

16560297817433.jpg“네 덕에 월세 허덕이지 않는 것만으로도 충분해.”

16560297792909.jpg“별것도 아닌데요.”

홍도관의 대금이 들어오고 가장 먼저 가게가 있는 이 건물을 샀다. 골동상 일은 큰돈이 오가지만 워낙 뜨문뜨문 들어오다 보니, 월세를 내는 것이 쉽지 않았다. 내색한 적은 없지만 월세 내는 날이 다가오면 아버지 얼굴이 유독 어두워졌다.

16560297817433.jpg“별것 아니긴, 엄청나게 큰 거다. 부동산 박 씨가 자식 덕에 말년에 팔자 폈다고 부러워했다.”

부동산 박 씨의 말을 빌려 속마음을 말씀하고 계시다는 것을 잘 알기에, 부끄러우면서도 기분 좋았다. 슬쩍 아버지가 내 눈치를 보시더니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16560297817433.jpg“내 집 걱정할 게 아니라, 이제 네 걱정을 해야지. 언제까지 혼자 살 거야?”

16560297792909.jpg“아버지…….”

왜 이 이야기가 안 나오나 했다. 얼마 전에 선 이야기를 꺼내셔서 여자친구가 있다는 것을 밝혔는데,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결혼 이야기를 꺼내신다.

16560297817433.jpg“여자친구가 없으면 모를까, 있지 않냐.”

16560297792909.jpg“사귄 지 한 달 정도밖에 안 됐어요.”

16560297817433.jpg“알고 지낸 지는 오래되었잖냐.”

16560297792909.jpg“그건 그렇지만,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해요.”

16560297817433.jpg“알았다.”

아버지는 서운한지 입을 다물었다. 마음은 안 좋지만 이때를 이용해 빨리 가야 한다. 아니면 또 도돌이표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16560297792909.jpg“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요. 저 가볼게요.”

16560297817433.jpg“조심해서 가라.”

16560297792909.jpg“네.”

잔소리에서 벗어나기 위해 나는 빠르게 가게를 나섰다. 집에 도착하자 신나는 얼굴로 TV를 보는 경환이 보였다.

16560297873008.jpg“형. 왔어?”

16560297792909.jpg“세월이 참 빠르다.”

16560297873008.jpg“뭔 소리야?”

16560297792909.jpg“너 회사 다녀오면 거의 넋이 빠져서 쓰러졌잖아.”

16560297873008.jpg“언제적 소리를!”

16560297792909.jpg“그러게. 2년도 더 된 이야기지!”

소파에 기대어 앉는 나를 보고 경환이 말했다.

16560297873008.jpg“형. 다음 주에 다영 씨랑 식사하기로 한 거, 잊지 않았지?”

16560297792909.jpg“안 잊었어. 다영이한테도 말 해놨고.”

16560297873008.jpg“잘 했어. 그런데 형은 다영 씨랑 결혼 언제 할 거야?”

16560297792909.jpg“너까지 그 소리냐? 잔소리는 아버지 하나로 충분하다!”

내 반응에 경환은 시무룩해졌다.

16560297873008.jpg“아니 나는 그냥 순수한 호기심이야…….”

16560297792909.jpg“우리 만난 지 얼마 안 됐잖아.”

16560297873008.jpg“아직은 연애를 더 하고 싶으시다? 그럴 수 있지.”

16560297792909.jpg“솔직히 나는 빨리 결혼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 그런데 다영이는 어떤지 모르겠어. 거기에 대해 아직 이야기를 나눠본 적이 없어.”

16560297873008.jpg“그럼 이야기를 나눠보는 것부터 해야겠네.”

나는 잠잠히 고개를 끄덕였다.

16560297792909.jpg“그렇지. 보여주면서 이야기를 나눠봐야겠다.”

16560297873008.jpg“뭘 보여줘? 반지?”

16560297792909.jpg“넌 몰라도 돼.”

16560297873008.jpg“좀 알려줘어.”

16560297792909.jpg“싫어.”

다영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한 한편, 긴장이 됐다. * 청동향로를 보면서 강 회장은 껄껄거리면서 웃었다.

16560297927289.jpg“하하하. 하하하하! 한 선생이 물건은 물건이야. 최기석에게 보낼 물건이란 사실을 알아차린 게지.”

16560297792914.jpg“네. 그런 것 같습니다.”

강 회장이 홍도관을 원했던 이유는 최기석에게 뇌물성으로 보낼 유물로 적합했기 때문이다.

16560297927289.jpg“이거, 보기 좋게 간파당했구만.”

그렇게 말하면서도 강 회장은 기분이 좋았다. 비서실장이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16560297792914.jpg“한 선생과 인연을 이어가시기로 한 이유를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16560297927289.jpg“알면서 뭘 물어. 이런 귀한 선물까지 줬는데 어떻게 연을 끊겠어.”

16560297792914.jpg“회장님이 원하신 홍도관을 다른 사람에게 넘겼지 않습니까.”

16560297927289.jpg“그런데도 왜 봐주냐고? 어느 골동상이 아무 대가 없이 50억짜리 물건을 선물로 주겠나.”

16560297792914.jpg“회장님께 많은 것을 받았으니 대단하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그 말을 들은 강 회장이 폭소를 터트렸다.

16560297927289.jpg“나에게 받아간 녀석들은 많아도 갚은 녀석들은 없어. 한 선생은 제대로 갚잖아. 거기에다 물건을 누구에게 보내야 하는지 확실하게 파악하고 있어. 앞으로도 한 선생이 계속 필요해.”

16560297792914.jpg“그럼 인연을 이어가실 생각이십니까?”

16560297927289.jpg“당연하지. 선물을 받았으니 보답을 해야지. 입금은 잘 해줬어?”

비서실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16560297792914.jpg“네. 바로 입금했습니다.”

16560297927289.jpg“수고했어.”

16560297792914.jpg“한 선생님이 좋은 결정해주셔서 감사하다고 했습니다.”

16560297927289.jpg“돈도 안 받으려 그랬지?”

16560297792914.jpg“네. 제가 잘 설득했습니다.”

강 회장이 신뢰 가득한 눈으로 비서실장을 봤다. 그의 일처리는 자신을 실망시키지 않았다.

16560297927289.jpg“잘 했어. 물건은 내일 비밀스럽게 전달하고.”

16560297792914.jpg“네. 청동 향로는 이만 치울까요?”

16560297927289.jpg“아니. 조금만 더 보고 싶어.”

16560297792914.jpg“네. 알겠습니다.”

조용히 비서실장은 자리를 비웠다. 좋은 유물을 볼 때 강 회장은 혼자 천천히 즐기길 원했기 때문이다. 경제적 가치로 보았을 때 홍도관이 훨씬 진귀한 것이었지만, 강 회장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이 청동향로였다.

16560297927289.jpg“최기석에게 보낼 선물만 아니면 내 수장고에 넣는 건데.”

중국 고미술품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강 회장이었지만, 차분한 느낌이 드는 청동 향로가 마음에 들었다. 물건을 보자마자 마음을 빼앗겼는데도 한지감에게 경고하느라 티를 내지 않으려 애썼다. 수장고에 넣고 싶은 욕심이 올라왔지만 내년에 대선이 치러지기에 그럴 수는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건 하나뿐이다.

16560297927289.jpg“한지감이 더 좋은 유물을 가져다주길 기다려야지.”

한지감에 대한 그의 믿음은 한층 두터워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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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회사에서 일을 마치고 나는 다영과 함께 A호텔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결혼 기념으로 경환이 밥을 사기로 했기 때문이다. 채령을 보고 다영은 달려가 껴안았다.

16560297963944.jpg“채령아! 결혼 축하해!”

16560297963948.png“고마워!”

다영과의 인사를 마친 채령은 나를 보고 인사했다.

16560297963948.png“오빠. 잘 지내셨어요?”

16560297792909.jpg“덕분에 잘 지냈어. 결혼 축하해.”

16560297963948.png“감사합니다.”

만면에 미소를 띤 경환이 말했다.

16560297873008.jpg“인사는 이쯤하고 다들 앉죠.”

그렇게 우리는 자리에 않았고, 미리 시켜둔 음식이 차례로 등장했다. 음식을 먹으면서 나는 채령에게 물었다.

16560297792909.jpg“일 때문에 11월에 결혼하게 돼서 서운하진 않아?”

16560297963948.png“일 때문에 그러는 건데, 서운할 게 뭐가 있어요.”

16560297873008.jpg“역시 우리 채령이!”

예비 신부인 채령을 보면서 경환이 헤벌쭉하게 웃었다. 이왕 결혼을 하기로 한 것이니 둘 다 빨리 하길 원했지만, 6월 메이저 경매가 끝나는 7월은 시간적으로 너무 촉박했다. 그래서 9월 메이저 경매가 끝나고, 10월 신인 작가 경매까지 끝나는 11월에 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채령이 무언가 생각난 듯 가방에서 작은 상자를 꺼내어 나에게 내밀었다.

16560297792909.jpg“뭐야?”

16560297963948.png“넥타이핀이요. 감사의 의미로 샀어요.”

16560297792909.jpg“곧 결혼인데 내가 선물을 줘야지.”

고개를 끄덕이며 다영도 내 말에 동감했다.

16560297963944.jpg“맞아.”

16560297963948.png“선물은 이미 받았어요. 전세 싸게 해주셔서 감사해요.”

16560297792909.jpg“별것도 아닌데…….”

홍도관을 매매한 돈으로 강남에 빌딩 7채와 주택 3채를 사들였다. 그중 한 아파트에 경환과 채령이 들어오기로 했다. 생글생글 웃으면서 경환이 말했다.

16560297873008.jpg“별것 아니라니. 요새 같은 전세난에 그렇게 좋은 집 얻기가 쉽나? 어서 봐봐. 채령이가 신경 써서 골랐어.”

상자를 여니 세련된 디자인이 넥타이핀이 보였다.

16560297792909.jpg“예쁘다. 잘 쓸게.”

16560297963948.png“네.”

옆에서 본 다영이 탄성을 질렀다.

16560297963944.jpg“이거 유명한 브랜드네!”

자세히 보니 그제야 작게 새긴 브랜드 로고가 보였다.

16560297792909.jpg“너무 무리한 거 아니야?”

16560297873008.jpg“많이 무리였지.”

경환이 힘들었다는 듯 고개를 숙이자, 채령이 툭 치며 눈으로 나무랐다. 눈치를 보면서 사랑꾼 경환이 입을 다물었고, 채령은 환한 미소로 말했다.

16560297963948.png“전세비 아껴서 이 정도는 괜찮아요!”

채령의 눈치만 보면서 한마디 못하는 경환을 보면서 나와 다영은 동시에 웃음이 터졌다. 저 녀석은 보나마나 채령에게 꽉 잡혀 살 것이다.

16560297792909.jpg“아이고. 우리 경환이 아주 꽉 잡혀 살겠네.”

생긋 웃은 경환이 채령을 보면서 말했다.

16560297873008.jpg“채령이한테 잡혀 사는 거라면 얼마든지!”

16560297963948.png“아아. 뭐야.”

그 말을 듣고 좋아하는 채령을 보니 둘이 정말 천생연분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문득 채령에게 하려던 말이 떠올랐다.

16560297792909.jpg“채령아. 갤러리 연락 온 데 있어?”

16560297963948.png“몇 군데 연락은 왔는데, 저랑 방향이 안 맞더라구요.”

16560297792909.jpg“이수현 작가 알지?”

시무룩했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16560297963948.png“당연히 알죠. 이번에 신인 작가 후원 경매에 나온 분이시잖아요. 투병중이시라는 기사 봤어요.”

16560297792909.jpg“응. 그분이 가인 갤러리를 운영하셔. 괜찮으면 한번 만나볼래?”

16560297963948.png“저야 좋죠!”

16560297792909.jpg“알았어. 그럼 자리 마련해 볼게.”

이수현 작가에게 채령의 포트폴리오를 보여준 적이 있었는데 반응이 나쁘지 않았다. 전속 작가로 뽑을지 아닐지는 갤러리 대표인 이수현 작가의 권리였지만, 잘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다영을 집에 데려다 주기 위해 경환, 채령과 헤어져 차에 올랐다. 알콩달콩 서로를 위하며 앞길을 꾸리는 두 사람의 모습이 참 예뻤다. 아버지도 결혼을 바라고, 경제적인 부분은 오래 전에 갖춰졌다. 아직도 일에 목말라 있지만 가정이 안정감을 줄 것 같았다. 보여 주고 싶은 곳이 있어 나는 은근 슬쩍 방향을 바꾸었고, 이를 다영은 금방 알아차렸다.

16560297963944.jpg“오빠. 여기 우리 집 가는 방향 아닌 것 같은데요?”

16560297792909.jpg“보여주고 싶은 데가 있어서.”

16560297963944.jpg“그게 어딘데요?”

16560297792909.jpg“가보면 알아.”

30분 정도 달려 도착한 곳은 한적한 주택가였다. 빨간 지붕이 인상적인 집 앞에 차를 멈췄다.

16560297792909.jpg“여기야.”

아기자기하게 꾸민 마당을 지나 집 안으로 들어섰다. 집 안은 아담하고 소박한 느낌이 들었다.

16560297792909.jpg“어때?”

슬쩍 둘러본 다영이 말했다.

16560297963944.jpg“예쁜 집이네요. 정말 예뻐요. 이번에 산 집이에요?”

16560297792909.jpg“응. 너 주려고 샀어.”

16560297963944.jpg“저요?”

16560297792909.jpg“지난번에 집 사달라며.”

당황한 다영이 눈을 깜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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