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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화 창과 방패 (2) (164/226)

164화 창과 방패 (2)2021.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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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매 한 시간 전. 김태하의 연락을 기다리며 나는 회의실을 서성였고, 보다 못한 다영이 따듯한 차를 가져다주었다.

16560298581743.jpg“이것 가지고 마음 좀 가라앉혀요.”

16560298581748.jpg“고마워.”

차를 마시는데 김태하에게 전화가 왔고, 벨 소리가 한 번 다 울리기도 전에 전화를 받았다.

16560298581748.jpg“네. 형.”

16560298581758.jpg[성공이야. 지금 화장실 가느라 정신이 없어. 그러니까 탑 옥션에는 얼씬도 못할 거야.]

김태하가 예전에 알고 지낸 동생에게 부탁해 강정휘의 차가 나오지 못하도록 주차를 했다. 그러고 나서 강정휘가 움직이려 할 때 전화가 오면 차를 빼주면서 사과의 뜻으로 음료수를 내밀었다. 그 음료수에는 설사제가 들어있어, 마시면 한동안은 화장실을 들락거리느라 정신이 없을 것이다. 음료수를 안 마시면 교통사고를 내서라도 막겠다고 해서 일이 너무 커질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마셨나 보다.

16560298581748.jpg“고마워요. 고생 많으셨어요.”

16560298581758.jpg[이제 아무 걱정하지 말고, 옥션에만 집중해! 보러 가진 못하지만 응원할게.]

16560298581748.jpg“네. 감사합니다.”

전화를 마친 나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고, 그런 나를 보면서 다영이 해맑게 웃었다.

16560298581743.jpg“잘된 거죠?”

16560298581748.jpg“응. 맞아.”

강정휘가 오지 않는다면 안심하고 진행할 수 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찜찜한 기분이 드는 걸까?

16560298581743.jpg“맞다면서 얼굴이 왜 그래요?”

16560298581748.jpg“모르겠어. 정도가 아닌 방법을 써서 그런가? 뭔가 찜찜해.”

16560298581743.jpg“강정휘가 양아치 짓을 하니까 우리도 어쩔 수 없이 이러는 거죠. 뭘 그런 걸로 찜찜해하고 그래요?”

다영의 말이 맞는데 쉽게 수긍이 되지 않는다. 깜깜한 어둠속에서 물건을 찾는 사람처럼, 나는 마음속 여기저기를 뒤지며 내가 걸려하는 부분을 찾아냈다.

16560298581748.jpg“정도가 아니어서가 아니야.”

16560298581743.jpg“그럼 뭔데요?”

16560298581748.jpg“이번엔 강정휘가 아닐 것 같아.”

16560298581743.jpg“그게 무슨 소리예요? 요번에 꼭 경매 참석할 거라고 갤러리 사람들에게 말하고 다녔다면서요.”

나는 흥분해서 목소리를 높였다.

16560298581748.jpg“그게 함정이라면? 같은 수를 두 번 쓸 정도로 강정휘는 멍청하지 않아! 게다가 김승재가 붙었다면 강정휘는 페이크일 확률이 높아.”

16560298581743.jpg“그렇다면…… 어떻게 되는 거죠?”

16560298581748.jpg“관심을 강정휘에게 쏠리게 하고 다른 쪽에 수를 두려는 거지……!”

왜 진작 생각하지 못했을까? 김승재와 강정휘 두 사람의 조합일 때 알아차렸어야 했는데……. 폭탄이 터진다는 건 안다, 하지만 어디서 터질 줄은 모른다는 것이 나를 극도로 불안하게 만들었다.

16560298581748.jpg“오늘 경매…… 제대로 진행할 수 있을까……?”

다영이 내 어깨를 양손으로 붙잡았다.

16560298581743.jpg“오빠. 잘 해낼 거예요. 내 말 믿어요.”

16560298581748.jpg“집중되는 시선에 익숙해졌다고 하지만 아직 자유롭진 않아. 그런데 예상치 못한 상황이 터지면…….”

내 눈을 바라보며 다영은 담담하게 말했다.

16560298581743.jpg“아직 확실한 거 아니잖아요. 그리고 확실하다 해도, 그것 때문에 경매를 망칠 수는 없어요.”

다영의 말이 맞다. 김승재가 가진 폭탄이 무엇이든 나는 이 경매를 제대로 끝내야 한다. 메이저 경매가 처음이란 것은 핑계거리가 되지 못한다. 무슨 일이 생기든 그걸 감내하고 경매를 진행하는 것이 경매사의 일이다. 감정을 누르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16560298581748.jpg“맞아. 망칠 수 없어. 김승재가 우리 경매를 망치도록 하진 않을 거야.”

절대 그렇게 두도록 보고만 있지 않을 것이다. * 탑 옥션 인근 주차장. 김승재가 차 안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조수석 문이 열리면서 기다리던 흥신소 직원이 탔다.

16560298637107.jpg“빨리 오셨네요.”

16560298637113.jpg“기대가 돼서 참을 수가 있어야죠.”

여자 문제로 골머리를 앓을 때 떼어내기 위해 종종 이용하는 곳인데, 이런 식으로 쓰게 될 줄은 몰랐다. 사실 정다영에게 차인 박선호를 이용하려 했지만, ‘정다영’ 이름 석 자를 듣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러워해서 이야기를 꺼내지도 못했다. 그러다, 주변 사람을 쓰는 것보다 이편이 보안에서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직원을 힐끗 보면서 김승재가 물었다.

16560298637113.jpg“응찰할 수 있도록 준비해 놨죠?”

16560298637107.jpg“네. 방금 가서 처리했습니다.”

정회원이라도 응찰하기 위해서는 구매대금을 지불할 능력이 된다는 것을 확인하는 절차가 필요하다.

16560298637113.jpg“로트 66번 이기환의 ‘산’을 응찰하면 돼요.”

16560298637107.jpg“네. 기억하고 있습니다.”

16560298637113.jpg“가격은 얼마가 되어도 상관없어요. 무조건 패들을 들어요. 낙찰 철회 수수료는 내가 내면 그만이니까.”

16560298637107.jpg“네. 알겠습니다.”

그때 핸드폰이 울려서 받으니 강정휘였다.

16560298637113.jpg“오고 있어요?”

16560298665333.jpg[아니요. 사……사정이 생겨서 가기 어려울 것 같아요.]

무슨 일인지 강정휘는 앓는 소리를 냈다.

16560298637113.jpg“사정이요?”

16560298665333.jpg[네. 아무래도 한지감 쪽에서 움직인 것 같아요.]

그 말에 김승재의 얼굴이 환해졌다.

16560298637113.jpg“폭탄을 제거했다면서 지금쯤 좋아하고 있겠군요. 전혀 그렇지 않은데 말이에요.”

16560298665333.jpg[그때를 파고들어 이사님이 생각하신 대로 일을 끝내버리면 되는 사……상황이죠.]

16560298637113.jpg“그래요. 다음에 보죠.”

뚝 전화를 끊고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말했다.

16560298637113.jpg“지금 한지감은 자만하고 있습니다. 이럴 때 상대를 터는 건 거의 빈집털이나 다름없죠. 재미가 없을 것 같아 좀 아쉽네요.”

16560298637107.jpg“원하시는 결과, 반드시 가져오겠습니다.”

인사를 한 직원이 차에서 내렸고, 차 안에는 김승재만 남았다.

16560298637113.jpg“설사 한지감이 내 계획을 알아낸다고 해도 할 수 있는 건 없어. 옥션은 돈을 더 많이 주는 사람이 낙찰받는 단순한 원리이니까.”

결국 한지감이 경매사라고 할지라도 패들을 계속 드는 사람에게 낙찰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스스로 자신의 완전한 범죄를 흡족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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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간이 되자 나는 허리를 꼿꼿하게 펴고 경매장 안으로 들어갔다. 장희정과 김 책임을 지나 경매대에 섰다. 오늘 유독 사람이 많이 왔다. 300석이나 되는 현장석은 꽉 차 있었고, 뒤쪽에는 구경꾼들이 서 있었다. 신인 작가 후원 경매와는 공기 자체가 다르다는 서정선의 말이 실감 난다. 오늘 온 고객 중에는 나의 존재를 낯설어하는 사람이 많았다. 내가 탑 옥션에 입사한 이래로 경매대에 섰던 사람은 늘 서정선이기에, 고객들의 반응이 이해가 됐다. 고객들을 안심시키려 편안한 미소를 지으며 나는 입술을 떼었다.

16560298581748.jpg“안녕하세요. 탑 옥션 경매사 한지감입니다. 오늘 저를 처음 보시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현재의 낯선 느낌이 신선함으로 느껴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멘트를 하면서 현장석에 있는 고객들을 둘러봤다. 처음 ‘저 사람 뭐야?’라고 약간의 거부감을 보이던 이들이 어느새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16560298581748.jpg“지금부터 경매를 시작하겠습니다. 1번 김종운 작가의 ‘사과’입니다. 시작가 사백만 원, 삼십만 원씩 올라갑니다.”

말이 끝나자 천천히 패들이 올라왔다.

16560298581748.jpg“사백만 원, 사백삼십, 사백오십.”

사백오십, 위탁자와 약속된 내정가를 넘어섰다. 로트 1번 치고 분위기가 나쁘지 않지만, 초반부터 과열되는 것은 좋지 않아 슬그머니 힘을 빼며 느리게 호가했다.

16560298581748.jpg“사백팔십, 오백.”

힘을 빼서인지 더 이상 패들이 올라오지 않았다.

16560298581748.jpg“오백삼십만 원 없으십니까?”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패들을 올리는 이는 없었다.

16560298581748.jpg“33번 고객님께 오백삼십만 원에 낙찰되었습니다.”

언제 폭탄이 터질지도 모르는 상황과 달리, 경매 자체는 수월하게 진행되었다. 그걸 신경 쓰다 경매를 망쳐버리고 싶진 않았기에 애써 머릿속에서 지워버리려 했다. 하지만 그러려고 해도 불쑥불쑥 불안감은 올라왔고, 그런 나 자신을 애써 진정시키면서 경매를 진행했다.

16560298581748.jpg“81번 고객님께 오천팔백만 원에 낙찰되었습니다.”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이번 경매에서 가장 중요한 로트 66번이 스크린에 떠올랐다. 6월 메이저 경매의 메인인 이기환 화가의 “산”으로, 녹색 단색화다. 선 하나 그려져 있지 않는데도 산 속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드는 놀라운 작품이었다.

16560298581748.jpg“이기환이 1983년 제작한 작품으로, 농담 표현이 뛰어난 수작입니다. 시작가는 십칠억, 오천만 원씩 올라갑니다.”

안경으로 본 이 작품의 최고가는 삼십억이다. 삼십억에 최대한 가까이 가는 것이 오늘의 내 목표였다.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뒤쪽에 있는 현장고객이 156번 패들을 들었다.

16560298581748.jpg“156번 고객님 십칠억.”

직원석에 있는 다영이 1번 패들을 올렸다. 이수지가 이 그림을 탐내고 있구나.

16560298581748.jpg“1번 십칠억 오천.”

그림을 탐내는 것은 이수지뿐만이 아니었다. 직원석에서, 또 현장 고객석에서 경쟁적으로 패들이 올라온다.

16560298581748.jpg“십팔억, 57번 고객님 십팔억 오천, 십구억.”

이런 상태면 삼십억까지 가는 것도 문제없을 것 같았다. 근데 계속 패들을 올리는 156번 남자는 어디에서 본 느낌이 들었다. 예전 경매에서 스쳤나? 아니면 이번 경매 프리뷰? 확실한 건, 신인 작가 후원 경매에 온 손님은 아니라는 것이다. 신인 작가 후원 경매는 내가 담당자이기도 하고, 인원수도 100명 내외여서 그렇게 많지 않다. 4월에는 경매를 진행했기 때문에 고객의 얼굴을 전부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저 남자는 본 기억이 없다. 그러면 도대체 어디서 봤지? 경매에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남자를 어디서 봤는지 생각하는 것을 멈출 수가 없었다.

16560298581748.jpg“이십억. 지금부터는 1억씩 올라갑니다.”

그 말을 하는 순간 나는 남자를 어디서 봤는지 기억해냈다. 회사에서 본 것이 아니다. 어제 김태하가 보여주었던 김승재 사진, 그 속에 남자가 있었다. 그래. 분명 김승재의 여자 문제를 해결해주는 사람이라고 했다.

16560298581748.jpg“156번 고객님 이십일억, 1번 이십이억.”

다른 사람은 다 떨어져 나가고 156번 남자와 이수지만 남아 경합을 벌였다. 남자는 기계적으로 패들을 들고 있다. 저 기계적인 태도는 절대 이 그림이 탐나서가 아니다. 이제 김승재가 뭘 노리는지 대충 감이 온다. 낙찰한 뒤 이를 철회하고, 그걸 나와 엮어 안 좋은 소문을 내서 나를 나락으로 떨어트릴 참이다. 그렇다면 저 남자가 낙찰되면 안 된다. 하지만 패들을 계속 든다면 경매사인 나로서는 어쩔 수 없다.

16560298581748.jpg“이십삼억, 1번 이십사억, 156번 고객님 이십오억, 이십육억.”

이 상황에서 유일하게 기대할 수 있는 건, 이수지가 이 그림을 정말 탐내서 높은 가격으로 그림을 가져가는 것이다. 하지만 이건 가능성이 낮다. 왜냐면 이수지는 정말 살 생각이 있으니 마지노선이 있을 터이고, 156번 남자는 그런 마지노선이 없다. 낙찰 철회 수수료만 내면 그만인 상황이다.

16560298581748.jpg“이십칠억, 이십팔억, 이십구억, 1번 삼십억, 156번 고객님 삼십일억.”

삼십억이 넘었지만 전혀 기쁘지가 않다. 더욱이, 이어폰에 집중한 다영의 표정이 안 좋다. 나는 다영을 보면서 말했다.

16560298581748.jpg“삼십이억 없으십니까?”

다영은 나만 볼 수 있게 작게 고개를 흔들었다. 이수지의 마지노선은 내가 안경에서 본 최고가인 삼십억이었다. 유일한 희망이 사라졌다. 나는 156번 남자를 보면서 낙찰봉을 두드렸다.

16560298581748.jpg“156번 고객님께 삼십일억에 낙찰되었습니다.”

경합에서 이겨 낙찰을 받은 156번 남자에게 박수갈채가 쏟아졌고, 모든 사람들이 축하했지만 나만은 그러지 못했다. * 다음 날. 해가 중천지 되어서야 일어난 김승재는 흥얼거리면서 룸서비스를 시켰다. 룸서비스가 세팅되고 얼마 되지 않아 흥신소 직원에게서 전화가 왔다. 기다리던 전화였기에 그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전화를 받았다.

16560298637113.jpg“낙찰 철회했어요?”

16560298637107.jpg[네……. 했습니다.]

직원의 말하는 태도가 어딘지 이상했다.

16560298637113.jpg“근데 왜 대답이 이렇게 시원치가 않지?”

16560298637107.jpg[그게…… 저쪽에서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이 너무 시원스럽게 나와서요…….]

눈썹을 꿈틀거리며 김승재가 물었다.

16560298637113.jpg“시원스럽게 나왔다구요?”

16560298637107.jpg[네. 한 번 정도는 철회 수수료를 말하면서 다시 생각해봐달라고 할 줄 알았는데, 바로 처리해주겠다고 하더라구요.]

16560298637113.jpg“……꼴에 한국 1위 옥션이라고 잘난 척하는 모양인데, 신경 쓸 것 없어요.”

16560298637107.jpg[저도 그럴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김승재의 눈빛에는 불안함이 서렸다.

16560298637113.jpg“계획대로 소문만 내주면 돼요. 호텔, 백화점 VIP라운지 위주로 돌면서 알죠?”

16560298637107.jpg[네. 알죠. 걱정하지 마십시오.]

핸드폰을 던지듯 내려놓고서 그는 생각에 잠겼다.

16560298637113.jpg“무슨 짓을 꾸미는 거지?”

머리를 열심히 쥐어짰지만, 무슨 일을 벌이는 건지는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불안감을 애써 별일 아니라고 넘기려고 할 때였다. 흥신소 직원에게 다시 전화가 와서 받았다.

16560298637107.jpg[이사님. 낙찰 취소한 그림…… 이수지 관장님이 사셨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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